분명히 있었던 과거지만 그것이 우리에게 원래의 모습으로 전해질 수는 없다. 우리가 보는 세상은 굴절 없이 그대로 우리의 망막에 와 닿는 것일까. 망막에 와 닿더라도 우리의 뇌가 또 다른 굴절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잠시라도 현재의 우리가 하는 일을 미래의 사람들이 어떻게 판단할까, 그것도 아니라면 얼마간 시간이 지난 뒤 나 스스로가 어떻게 생각할까를 염두에 두면 오늘 내 머릿속에 만들어내는 굴절은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현실은 과거보다 더 많은 사건과 일, 생각들로 차있다. 그리고 그것들 모두 우리의 후손들에게 전할 수도 없다. 전한다고 하더라도 그 모두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을 것이다. 과연 우리들이 과거가 되었을 때 우리가 한 일 중에 의미 있는 일이 무엇일지를 생각하면서 오늘 우리의 행동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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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의 "인간은 자신의 역사를 만든다. 그러나 역사를 만들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말처럼 우리가 배웠던 우리의 과거에 대한 지식은 많은 부분들이 오늘날에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지식의 상당 부분은 우리 시대가 공유하였던 신화인 셈이다. 당연히 그런 지식이 미래에도 유용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내일은 또 내일의 역사를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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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중독 - 새것보다 짜릿한 한국 고전영화 이야기
조선희 지음 / 마음산책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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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 100년의 밑바탕을 이룬 옛 영화들과 옛 영화인들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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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통신사 - 한일공통역사교재
한일공통역사교재 제작팀 지음 / 한길사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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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한일 관계사는 믿음으로 통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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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일본인들이 사용하고 있는 딱딱하고 하얀 표면에 아름다운 채색을 한 다기나 접시 등은 병이나 단지 등의 도기와 다른 자기입니다. 중국 송나라 때 처음으로 제조된 자기는 백옥과 함께 아주 귀하게 여겨졌고, 그 뒤 조선에도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17세기 전반까지 일본에서는 자기 제조 방법을 몰랐고, 기술자인 도공도 전혀 없었기 때문에 자기를 중국과 조선에서 수입하였습니다.

눈부신 연한 푸른색 표면에 얇게 상감한 고려청자와, 도기에서는 나올 수 없는 흰색 바탕에 쪽빛으로 그림을 그린 조선백자는 유럽에서 아주 귀중하게 여겨졌습니다. 일본에서도 다이묘나 대상인들만이 조선과의 무역을 통해 청자와 백자를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시작한 조선 침략 전쟁을 일본에서는 ‘도자기 전쟁‘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이 전쟁을 일으킨 일본군의 각 다이묘가 자신들의 영지 내에 도자기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조선 각지에서 도공들을 수십 명씩 포로로 잡아왔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는 조선에서 끌려간 이삼평(1579~1655)이라는 한 사람의 도공에 의해 처음으로 자기가 만들어졌습니다. 일본의 다이묘들은 이를 도공들의 힘을 바탕으로 영지 내 도자기 산업과 경제를 발전시켰습니다. 이들 중 절반 이상은 규슈 지방의 다이묘들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가고시마 현 시마즈의 사쓰마 도자기, 사가 현 나베시마의 아리타 도자기, 나가사키 현 오무라의 하사미 도자기, 나가사키 현 마쓰우라의 히라도 도자기, 후쿠오카 현 구로다의 다카토리 도자기, 구마모토 현 호소가와의 쇼다이 도자기, 야마구치 현 모리의 하기 도자기 등은 지금도 일본의 대표적인 도자기들로 전국에서 판매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조선에서는 많은 도공들이 포로로 붙잡혀 감에 따라 도자기 생산이 격감하였고, 원상 회복까지 30여 년이 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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