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마지막 한 줌의 흙을 걷어낸 허진아 연구원은 자신도 모르게 훅 하고 숨을 내쉬었다. 푸른 빛의 무언가가 보였다. 조금 전까지 농담을 나누던 발굴단원들에게서 웃음 조차도 사라졌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뚫어져라 ‘한 곳‘만 바라봤다. 발굴 현장에는 정적만 감돌았다.
지금까지 발굴해왔던 유물과는 차원이 다른 유물이라는 것을 모두 직감했다. 1,500년 전의 역사와 처음으로 오롯이 마주하게 된 행운을 한두 마디 말로 깨트리고 싶지 않은 것이 모두의 솔직한 심저잉었다. 잠시 후 서로를 마주보는 발굴단원들의 눈에 어느새 이슬이 맺혔다. 8년이라는 세월이 결코 헛된 시간은 아니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뜨거운 햇빛 아래에서나 칼바람 속에서도 왕흥사 이름 하나만 믿고 끝없이 땅을 파고 흙을 나르고 물을 퍼냈던 발굴단에게, 고고학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평생 한 번 맛볼까 말까 한 짜릿한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허진아 연구원은 다시 한 번 크게 숨을 쉰 다음 손을 조심스럽게 아래로 뻗었다. 천천히 손으로 청동 사리합을 어루만졌다. 서드를 수도 그렇다고 마냥 시간을 끌 수도 없었다. 마치 자궁 속에서 태아를 안아 꺼내듯 부드럽게 온몸의 신경을 손끝에 담아 한 번에 들어 올려야 했다. 허진아 연구원은 부드럽게 청동 사리합을 잡아보았다. 그러나 1,500년의 역사는 그리 쉽게 몸을 드러내지 않았다. 청동 사리합은 사리공 바닥에 붙어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1,500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진흙에 뒤덮인 사리합의 바닥이 압착되어 있었던 것이다. 얼핏 보면 튼튼해 보이지만 부서지기 쉬운 청동이라 행여 힘을 주었다가 깨지기라도 한다면 지금까지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었다.
청동 사리합을 어르고 달래던 허진아 연구원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조심스럽게 이 방향 저 방향으로 한 번씩 손을 밀어넣을 때마다 그 땀은 주르륵 이마를 타고 내려왔다. 곁에서 지켜보던 발굴단원들도 입안이 타들어가긴 마찬가지였다.
십여 분의 시간이 흘렀을까? 꿈쩍도 않던 사리합이 ‘뜩‘ 하는 소리와 함께 1,500년 동안 자리 잡고 있던 땅을 벗어나 허진아 연구원의 손에 안겼다. 허진아 연구원은 조심스럽게 사리합을 들어올렸다.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푸른 빛의 청동 사리합은 더 없이 빛났다. 그리고 청동 사리합을 안은 발굴단원의 얼굴은 그 가을 하늘보다 몇 배 더 빛이 났다. 허진아 연구원이 청동 사리합을 조심스럽게 안고 있는 동안, 다른 발굴단원이 손으로 청동 사리합에 묻어 있는 진흙을 조금씩 제거했다. 백제 역사의 비밀을 밝힐 국보급 유물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