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에 대비된 비주류 문자의 이름이었지만, 나라를 빼앗긴 사람들에게 ‘한글‘은 독립의 의지를 일깨우는 이름이기도 했고 민족의 얼을 상징하는 이름이기도 했다. ‘대한제국의 문자‘라는 의미는 새롭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고, 상처 입은 민족적 자존심을 치유하기 위해 ‘한글‘에는 ‘큰‘, ‘위대한‘, 또는 ‘유일한‘이라는 의미가 덧붙었다.

그만큼 한글은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위대한 증거물이었다. 민족의 정체성이 위기에 처할수록 이 위대한 증거물의 의미는 더 크고 풍부해졌다. 일제강점기에 한글 반포일을 기념해 한글날을 제정한 것은 그 증거물의 의미를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고, 한글날은 갈수록 희미해져가는 우리말과 우리 정신을 지킬 것을 다짐하는 날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글이 문자의 이름이면서 우리말의 이름이 된 것은 자연스러웠다. 한글을 지키는 것이 곧 우리말을 지키는 길이었던 상황에서 말과 글을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지 않았을까? 지금까지도 우리는 한국어를 지칭하거나 우리가 쓰는 문자를 가리킬 때 한글이라는 말을 쓴다. 언어의 용법이 언어 사용자의 역사적 경험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때, 이는 단순한 혼동은 아닐 터이다. 한글과 한국어를 혼동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언어의식에는 한글과 한국어를 분리해 생각할 수 없었던 역사적 경험과 상처가 착종되어 있다.

이처럼 한글의 역사적 의미가 강조되고 그 의미가 확장되는 상황에서는 언어와 문자의 본질에 대한 성찰이 소홀해질 수밖에 없는 법이다.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언어 문제에 관한 논쟁의 저변에는 한글과 관련한 역사적 경험과 상처가 도사리고 있고, 역사적 경험과 상처의 기억은 언어의 문제를 언어의 문제가 아닌 것으로 만들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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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간이 들려주는 일본의 고대
토노 하루유키 지음, 이용현 옮김 / 주류성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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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건너온 시문집 『문선』을 읽고, 유제품을 먹던 고대 일본인들의 생활상을 목간으로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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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간의 연이은 발견으로 일본고대사의 연구에도 조금씩 변화가 생기는 것처럼 보인다. 요즘은 모든 학문이 세분화되어 역사학 분야에서도 대략적인 역사 흐름의 파악이 오히려 소홀해지고, 또한 불가능해졌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일본고대사도 예외는 아닌데, 고대사의 경우 그 원인의 하나로 목간을 비롯한 새로운 사료의 증가를 예로 들어도 좋을 것이다. 사료의 증가는 역사 연구에서 환영할 일이지만, 고대사의 경우는 일반론으로 대입시킬 수 없다는 약점이 있다. 원래 고대사는 사료가 적은 것을 전제로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새로운 설이나 이론이라 해도 지금 남아 있는 사료 사이에 정합성이 인정되면, 그것으로 충분하였다. 또한 검토한다는 마음을 먹어도 그 이상 새로운 사료가 발견될 가능성 따위는 전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목간의 발견은 같은 조건을 바꾸었다. 더구나 땅 속에서 문헌사료가 계속 나오는 이상 안심은 할 수가 없다. 굵직한 가설이나 이론을 세울 수 없는 것도 당연한 현상이다. 이와는 달리 지금까지는 사료의 부족으로 확인할 수도 없었던 사항이 새로 나온 목간을 빌려 다시 확인할 수 있는 경우도 생긴다. 가설이 장래에 나올 목간에 따라 입증할 가능성이 생긴다는 것은 고대사 연구의 획기적인 일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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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왕권과 교역
이성시 / 청년사 / 199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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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원에 갈무리된 신라 유물과 육국사 등에 기록된 발해 관련 기사를 두루 살펴보면서 근대인의 선입관과 달리 정치와 경제를 뚜렷이 가르기 어려운 고대 동아시아 교류사의 특성을 당대인의 시선에 가깝게 복원하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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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요즘 주변에서 접할 수 있는 역사 서술이 대체로 최근 100년 사이에 해석되고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중·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일본 고대사의 내용도 고대부터 이어지는 전통적인 것과는 완전히 성격이 다르다. 그 대부분은 19세기 후반의 근대 국가 형성기에 국민의식을 형성하기 위해서 서양의 것과 유사하게 창안된 것으로, 이것이 지금까지 일본 고대사라고 일컬어져 온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러한 현상은 일본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고 중국, 한국, 북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일본서기》를 필두로 하는 일본 6국사나 중국의 《사기》부터 《신당서》에 이르는 정사(正史), 혹은 한국의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고대사 사료는 이전부터 계속 읽혀 오지 않았는가 하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역사상을 이들 사료에서 직접 끌어낼 수는 없다. 근대 국가가 고대의 역사상을 새롭게 구축했기 때문이다.

역사학은 해석학이다. 과거의 사료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학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어떠한 시대에 살고 어떤 가치관의 구속을 받고 있는가를 생각하지 않고 과거의 사료를 해석한다면, 현재 우리 시대의 가장 통속적인 가치관과 해석 도식에 질질 끌려다닐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시험 삼아 2차세계대전 이전에 나온 일본사 책과 전후 1960년대 무렵까지의 연구서를 펼쳐보라. 거기서 일정한 사고의 패턴 아래 이뤄진 해석 유형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역사 연구는 어쩔 수 없이 그 시대 분위기와 시대상황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러면 그러한 구속에서 그나마 자유롭게 역사를 탐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 하나의 방법은, 우리가 어떤 시대의 구속을 받으면서 역사를 연구해 왔는가, 그리고 현재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가를 깨닫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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