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일본인들이 사용하고 있는 딱딱하고 하얀 표면에 아름다운 채색을 한 다기나 접시 등은 병이나 단지 등의 도기와 다른 자기입니다. 중국 송나라 때 처음으로 제조된 자기는 백옥과 함께 아주 귀하게 여겨졌고, 그 뒤 조선에도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17세기 전반까지 일본에서는 자기 제조 방법을 몰랐고, 기술자인 도공도 전혀 없었기 때문에 자기를 중국과 조선에서 수입하였습니다.
눈부신 연한 푸른색 표면에 얇게 상감한 고려청자와, 도기에서는 나올 수 없는 흰색 바탕에 쪽빛으로 그림을 그린 조선백자는 유럽에서 아주 귀중하게 여겨졌습니다. 일본에서도 다이묘나 대상인들만이 조선과의 무역을 통해 청자와 백자를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시작한 조선 침략 전쟁을 일본에서는 ‘도자기 전쟁‘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이 전쟁을 일으킨 일본군의 각 다이묘가 자신들의 영지 내에 도자기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조선 각지에서 도공들을 수십 명씩 포로로 잡아왔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는 조선에서 끌려간 이삼평(1579~1655)이라는 한 사람의 도공에 의해 처음으로 자기가 만들어졌습니다. 일본의 다이묘들은 이를 도공들의 힘을 바탕으로 영지 내 도자기 산업과 경제를 발전시켰습니다. 이들 중 절반 이상은 규슈 지방의 다이묘들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가고시마 현 시마즈의 사쓰마 도자기, 사가 현 나베시마의 아리타 도자기, 나가사키 현 오무라의 하사미 도자기, 나가사키 현 마쓰우라의 히라도 도자기, 후쿠오카 현 구로다의 다카토리 도자기, 구마모토 현 호소가와의 쇼다이 도자기, 야마구치 현 모리의 하기 도자기 등은 지금도 일본의 대표적인 도자기들로 전국에서 판매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조선에서는 많은 도공들이 포로로 붙잡혀 감에 따라 도자기 생산이 격감하였고, 원상 회복까지 30여 년이 걸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