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통신사 - 한일공통역사교재
한일공통역사교재 제작팀 지음 / 한길사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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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한일 관계사는 믿음으로 통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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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일본인들이 사용하고 있는 딱딱하고 하얀 표면에 아름다운 채색을 한 다기나 접시 등은 병이나 단지 등의 도기와 다른 자기입니다. 중국 송나라 때 처음으로 제조된 자기는 백옥과 함께 아주 귀하게 여겨졌고, 그 뒤 조선에도 전해졌습니다. 그러나 17세기 전반까지 일본에서는 자기 제조 방법을 몰랐고, 기술자인 도공도 전혀 없었기 때문에 자기를 중국과 조선에서 수입하였습니다.

눈부신 연한 푸른색 표면에 얇게 상감한 고려청자와, 도기에서는 나올 수 없는 흰색 바탕에 쪽빛으로 그림을 그린 조선백자는 유럽에서 아주 귀중하게 여겨졌습니다. 일본에서도 다이묘나 대상인들만이 조선과의 무역을 통해 청자와 백자를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시작한 조선 침략 전쟁을 일본에서는 ‘도자기 전쟁‘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이 전쟁을 일으킨 일본군의 각 다이묘가 자신들의 영지 내에 도자기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조선 각지에서 도공들을 수십 명씩 포로로 잡아왔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는 조선에서 끌려간 이삼평(1579~1655)이라는 한 사람의 도공에 의해 처음으로 자기가 만들어졌습니다. 일본의 다이묘들은 이를 도공들의 힘을 바탕으로 영지 내 도자기 산업과 경제를 발전시켰습니다. 이들 중 절반 이상은 규슈 지방의 다이묘들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가고시마 현 시마즈의 사쓰마 도자기, 사가 현 나베시마의 아리타 도자기, 나가사키 현 오무라의 하사미 도자기, 나가사키 현 마쓰우라의 히라도 도자기, 후쿠오카 현 구로다의 다카토리 도자기, 구마모토 현 호소가와의 쇼다이 도자기, 야마구치 현 모리의 하기 도자기 등은 지금도 일본의 대표적인 도자기들로 전국에서 판매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조선에서는 많은 도공들이 포로로 붙잡혀 감에 따라 도자기 생산이 격감하였고, 원상 회복까지 30여 년이 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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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표류기 - 낯선 조선 땅에서 보낸 13년 20일의 기록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3
헨드릭 하멜 지음, 김태진 옮김 / 서해문집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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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조선에 흘러든 하멜과 그의 동료들이 지닌 서양 문명 지식과 기술을 잘 받아들였더라면, 조선은 더 빨리 개화했고, 식민지가 되지 않았으며, 남북 분단이 일어나지 않았으리라고 가정한 옮긴이의 바람은 너무 비약이 아닌가? 하멜이 남긴 기록은 조선 왕조를 비난하려는 글로 읽기에는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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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9일 오후에 서기와 일등항해사 그리고 하급선의下級船醫가 제주 목사에게 불려갔다. 그곳에 가 보니 긴 붉은 수염을 한 어떤 사람이 있었다. 목사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물어 와서 우린 ‘우리와 같은 네덜란드 사람‘이라고 대답했더니, 총독이 웃으며 우리에게 그는 조선 사람이라고 손짓 발짓으로 설명해 주었다. 많은 이야기와 손짓 발짓을 주고받은 끝에 그때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이 사람은 우리말로 떠듬떠듬 우린 ‘어떤 사람‘이며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우린 그에게 ‘암스테르담에서 온 네덜란드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또 ‘어디에서 출발하여 어디로 가는 길‘이었느냐고 물어서, ‘타이완에서 출발하여 일본으로 가던 중 전능하신 하나님이 길을 막아 폭풍우에 5일 동안이나 갇혀 있다가 이 섬까지 표류하게 되어 지금은 자비로운 조처만 바라고 있다.‘고 대답했다.

우리 쪽에서 그에게 그의 이름과 국적, 어떻게 해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를 물었다. 그는 ‘나의 이름은 얀 얀스 벨테브레Weltevree이고 드 레이프De Rijp 출신이며, 1629년 홀란디아Hollandia 호를 타고 고국을 떠났으며, 1627년 오버커크Ouwerkerck 호를 타고 일본으로 가던 중, 조선 해안 근처에서 역풍을 만나 식수가 부족해서 보트로 육지까지 왔다가 우리들 중 세 사람만이 주민에게 잡혔고 나머지 사람들은 보트를 타고 도망쳐 배까지 가 버렸다.‘고 대답했다.

17년 전 혹은 18년 전에 만주의 침략이 있던 때에 그의 두 동료(드 레이프 출신 데릭 히스버츠와 암스테르담 출신의 얀 피터스 버바스트)는 죽었다. 그들은 벨테브레와 함께 동인도 제도에 도착했었다.

그에게 어디에 살고 있으며 무엇을 하고 있고 무엇 때문에 이 섬에 왔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자기가 ‘서울에 살고 있고 왕으로부터 적당한 식량과 의복을 지급받고 있으며 이곳에 보내진 이유는 우리가 누구이고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되었는지를 알아 보기 위해서‘라고 대답했다. 그는 또 덧붙여서 여러 차례 왕과 관리들에게 일본으로 보내 달라고 청원했지만, 왕은 항상 ‘당신이 새라면 그곳으로 날아갈 수 있겠지만 우리는 외국인을 나라 밖으로 보내지 않는다. 당신을 보호해 주겠으며 적당한 식량과 의복을 제공해 줄 테니 이 나라에서 여생을 마치라.‘고 대답하면서 거절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를 위로하면서 만약 우리가 왕을 만나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래서 통역을 만나서 기뻤던 마음은 곧 슬픔으로 바뀌고 말았다. 그는 약 57, 8세로 보였는데 놀랍게도 모국어를 거의 잊고 있어서 아까도 말했듯이 처음에는 그의 말을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으나, 약 한 달 정도 같이 지내다 보니 그가 다시 모국어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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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민주주의
최경봉 지음 / 책과함께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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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문 민족주의를 넘어서 어문 민주주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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