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9일 오후에 서기와 일등항해사 그리고 하급선의下級船醫가 제주 목사에게 불려갔다. 그곳에 가 보니 긴 붉은 수염을 한 어떤 사람이 있었다. 목사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물어 와서 우린 ‘우리와 같은 네덜란드 사람‘이라고 대답했더니, 총독이 웃으며 우리에게 그는 조선 사람이라고 손짓 발짓으로 설명해 주었다. 많은 이야기와 손짓 발짓을 주고받은 끝에 그때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이 사람은 우리말로 떠듬떠듬 우린 ‘어떤 사람‘이며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우린 그에게 ‘암스테르담에서 온 네덜란드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또 ‘어디에서 출발하여 어디로 가는 길‘이었느냐고 물어서, ‘타이완에서 출발하여 일본으로 가던 중 전능하신 하나님이 길을 막아 폭풍우에 5일 동안이나 갇혀 있다가 이 섬까지 표류하게 되어 지금은 자비로운 조처만 바라고 있다.‘고 대답했다.

우리 쪽에서 그에게 그의 이름과 국적, 어떻게 해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를 물었다. 그는 ‘나의 이름은 얀 얀스 벨테브레Weltevree이고 드 레이프De Rijp 출신이며, 1629년 홀란디아Hollandia 호를 타고 고국을 떠났으며, 1627년 오버커크Ouwerkerck 호를 타고 일본으로 가던 중, 조선 해안 근처에서 역풍을 만나 식수가 부족해서 보트로 육지까지 왔다가 우리들 중 세 사람만이 주민에게 잡혔고 나머지 사람들은 보트를 타고 도망쳐 배까지 가 버렸다.‘고 대답했다.

17년 전 혹은 18년 전에 만주의 침략이 있던 때에 그의 두 동료(드 레이프 출신 데릭 히스버츠와 암스테르담 출신의 얀 피터스 버바스트)는 죽었다. 그들은 벨테브레와 함께 동인도 제도에 도착했었다.

그에게 어디에 살고 있으며 무엇을 하고 있고 무엇 때문에 이 섬에 왔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자기가 ‘서울에 살고 있고 왕으로부터 적당한 식량과 의복을 지급받고 있으며 이곳에 보내진 이유는 우리가 누구이고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되었는지를 알아 보기 위해서‘라고 대답했다. 그는 또 덧붙여서 여러 차례 왕과 관리들에게 일본으로 보내 달라고 청원했지만, 왕은 항상 ‘당신이 새라면 그곳으로 날아갈 수 있겠지만 우리는 외국인을 나라 밖으로 보내지 않는다. 당신을 보호해 주겠으며 적당한 식량과 의복을 제공해 줄 테니 이 나라에서 여생을 마치라.‘고 대답하면서 거절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를 위로하면서 만약 우리가 왕을 만나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래서 통역을 만나서 기뻤던 마음은 곧 슬픔으로 바뀌고 말았다. 그는 약 57, 8세로 보였는데 놀랍게도 모국어를 거의 잊고 있어서 아까도 말했듯이 처음에는 그의 말을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으나, 약 한 달 정도 같이 지내다 보니 그가 다시 모국어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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