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옹주 (양장) -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
혼마 야스코 지음, 이훈 옮김 / 역사공간 / 200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자기를 억누르는 이들에게 저항할 힘이 없어서 마음이 무너진 사람을 ‘독립운동가‘로 꾸미는 것은 덕혜 옹주를 위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글쓴이가 당사자들의 침묵과 대중의 오해로 가려진 덕혜 옹주와 소 다케유키 부부가 겪었을 슬픔과 아픔을 여러 자료를 통하여 추적하는 과정이 흥미롭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본의 고대사 인식 - '동아시아세계론'과 일본
니시지마 사다오 지음, 이성시 엮음, 송완범 옮김 / 역사비평사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한자, 유교, 율령, 불교를 지표로 삼아서 동아시아사를 체계화하려고 한 글쓴이의 구상은 시대를 앞서갔으나, 이른바 남선경영설에 기대어서 서술한 부분은 눈에 거슬릴 수밖에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러나 이 결혼식에서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은 신랑 신부의 부모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모를 대신하여 덕혜에게는 오빠 부부가 있고, 타케유키에게는 원래 후견인인 쿠죠 부부가 중매인으로 되어 있으나 이는 형식적인 교제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 결혼은 고아끼리의 결혼이었다. 본인의 의사에 따른 것이 아니라는 것은 당시 사회에서 그다지 드물지 않은 일이었지만, 본인들의 이해를 가장 잘 대변할 수 있는 부모의 모습이 여기에는 없다.

정략결혼이라고는 하지만 도대체 양가의 어느 쪽이 이익을 얻은 것일까. 일조동화日朝同化라는 국책에 따른 결혼으로, 그야말로 각본대로 젊은 두 사람(만 23세와 18세)의 결혼이 치러진 것이다. 이은 부부를 비롯하여 도대체 누가 그 두 사람의 장례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었을까. 아니!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 나의 직감이다. 이 느낌은 그 후 두 사람의 결혼생활을 보면 볼수록 더욱 깊어진다.

일본 당국의 의도는 덕혜를 일본인과 결혼시킨 후 그녀를 정말 일본인으로서 황실의 번병격인 화족에 편입시켜 조선 왕족으로서의(고종의 유복자로서의) 영향력을 완전히 제거해버리는 것이었다. 고종에 대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덕혜를 조선민족으로부터 빼앗아 그들의 구심력을 상실케 한다. 실제로 덕혜옹주에 대한 조선의 신문 보도는 이후 자취를 감춘다. 조선민족은 깊은 실망과 함께 덕혜옹주를 잃어버린 것이다.

《조선일보》에는 덕혜옹주의 결혼식 옷차림 사진이 게재되어 있다. 그러나 이 사진은 덕혜만 있을 뿐 타케유키는 삭제되어 있다. 소 타케유키는 처음부터 한국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있었다. 덕혜옹주를 잃은 슬픔이 그만큼 깊었던 것은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런데 일본 역사를 중국문화권 속에 규정하고 거기에 세계의 존재를 상정하려 할 경우에, 이 중국문화권의 영역에 들어가는 것은 중국과 일본만이 아니다. 즉, 일본과 더불어 한반도와 베트남이 중국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이나, 나아가 중국·조선·일본·베트남이라는 동아시아 일대의 지역이 중국문화권으로서 공통문화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 공통문화란 한자·유교·불교·율령 네 가지이다. 이들 문화현상은 모두 중국에서 기원하는데, 어떤 것은 계속적으로 어느 것은 한정된 시대에만 유지되었다는 차이가 있긴 해도, 모두가 이들 지역에 보급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 때문에 이 동아시아 일대에 확장된 중국문화권을 하나의 세계로 본다면, 그곳에서 공유되는 여러 가지 문화적 성향이 이 세계의 성격을 규정한다. 여기서의 성격이란, 이들 여러 문화가 단순히 모두가 중국에서 기원한 것이라는 의미만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 어떻게 동아시아 지역에 향수享受되었느냐 하는 수용과정과, 또 그것이 각 지역에서 어떠한 활동을 했느냐 하는 기능적 측면을 고려해서 판단해야 한다. 이것은 다음 절에서 고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중요한 문제이다.

이상과 같은 동아시아 일대에 널리 퍼진 중국문화권을 나는 동아시아세계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앞에서 언급한 의미를 기준으로 해서 하나의 세계로 인정받으려면, 거기에 공통문화가 자리했다는 사실 외에도 자기완결적인 정치구조가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떻게 나타내야 할까. 그리고 또 그것의 존재를 나타내는 것이 가능하더라도 문화권과 정치권이 일치한다는 것은 우연의 결과일까. 아니면 양자 간에, 혹은 더 큰 관점에서 문화와 정치 자체에 서로 유기적인 관련이 있어서일까. 앞서 말한 이 세계에서 특정한 문화 요소의 공유 측면과 더불어 이것의 고찰 또한 중요한 문제에 속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야모토 타다오씨는 《정신분열증의 세계》에서 정신분열증이라는 것이 문학·회화라는 예술적 창조에까지 깊이 관련되어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넓은 시야에서 쓴 것으로, "인간에게는 누구에게나 ‘이상‘한 부분이 있으며 ‘정상‘과 ‘이상‘의 미묘한 균형이 잡혔을 때라야만 참다운 ‘건강‘이 성립된다."라는 기본적인 견해에 공감한다. 나아가 "분열증의 경우, 보통은 ‘자폐‘로 불리며 주위에 대한 관심을 완전히 잃은 것처럼 인식되고 있지만, 그러나 (중략) 사실은 전혀 그 반대가 많다. 즉 그들의 마음은 애처로울 정도로 주위, 특히 인간세계를 향해 있으며, 또 인간 세계로부터의 여러 가지 통신과 자극에 매달려 있다."라는 지적이 가슴에 와닿는다. 분열증으로 시달리는 덕혜의 내면을 짐작한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 지적을 기억하면서 고찰해가려 한다.

한 사례를 증거로 들자면, 《햄릿》에 나오는 오필리어의 광기는 정신의 갈등 끝에 초래된 분열증으로 간주되고 있지만, 덕혜옹주의 경우는 이보다 더 가혹한 갈등, 즉 민족적 고난과 정치적 압력의 틈바구니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말살당한 고독한 영혼의 고뇌였다고 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