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 결혼식에서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은 신랑 신부의 부모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모를 대신하여 덕혜에게는 오빠 부부가 있고, 타케유키에게는 원래 후견인인 쿠죠 부부가 중매인으로 되어 있으나 이는 형식적인 교제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 결혼은 고아끼리의 결혼이었다. 본인의 의사에 따른 것이 아니라는 것은 당시 사회에서 그다지 드물지 않은 일이었지만, 본인들의 이해를 가장 잘 대변할 수 있는 부모의 모습이 여기에는 없다.
정략결혼이라고는 하지만 도대체 양가의 어느 쪽이 이익을 얻은 것일까. 일조동화日朝同化라는 국책에 따른 결혼으로, 그야말로 각본대로 젊은 두 사람(만 23세와 18세)의 결혼이 치러진 것이다. 이은 부부를 비롯하여 도대체 누가 그 두 사람의 장례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었을까. 아니!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 나의 직감이다. 이 느낌은 그 후 두 사람의 결혼생활을 보면 볼수록 더욱 깊어진다.
일본 당국의 의도는 덕혜를 일본인과 결혼시킨 후 그녀를 정말 일본인으로서 황실의 번병격인 화족에 편입시켜 조선 왕족으로서의(고종의 유복자로서의) 영향력을 완전히 제거해버리는 것이었다. 고종에 대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덕혜를 조선민족으로부터 빼앗아 그들의 구심력을 상실케 한다. 실제로 덕혜옹주에 대한 조선의 신문 보도는 이후 자취를 감춘다. 조선민족은 깊은 실망과 함께 덕혜옹주를 잃어버린 것이다.
《조선일보》에는 덕혜옹주의 결혼식 옷차림 사진이 게재되어 있다. 그러나 이 사진은 덕혜만 있을 뿐 타케유키는 삭제되어 있다. 소 타케유키는 처음부터 한국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있었다. 덕혜옹주를 잃은 슬픔이 그만큼 깊었던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