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3 1호 - 2017년 1호, 창간호
문학3 기획위원회 지음 / 창비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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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퍼포먼스 「리듬 0」: 비인칭적 장소로서의 몸

 

(-) 그녀는 1997년 찌는 듯이 더운 한낮의 베네찌아 어느 건물 지하실에서 나흘 동안 매일 여섯시간씩 1500개가량의 소뼈에 묻은 피를 닦는 「발칸 바로크」라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유고 내전으로 죽은 수많은 사람들을 애도하는 이 퍼포먼스로 그녀는 그해 베네찌아 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또한 2010년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회고전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vramovi: The Artist is Present)에서는 3월 14일부터 5월 31일까지 매일 전시장 한가운데 의자에 앉은 채 침묵 속에서 건너편 의자의 관객을 응시하는 퍼포먼스를 총 736시간 30분 동안 진행했다. 1973~74년에는 리듬시리즈―「리듬 10」 「리듬 5」 「리듬 2」 「리듬 4」 「리듬 0」―를 제작했다. 가령 「리듬 10」은 20여 개의 온갖 칼을 이용해서 빠른 속도로 손가락 사이를 찍는 한시간가량의 퍼포먼스이고, 「리듬 2」는 긴장병과 조현병 환자가 먹는 약을 먹고 정신은 멀쩡하지만 심리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뻣뻣해진 상태를 일곱시간 동안 견디는 퍼포먼스이다. 리듬시리즈의 마지막 퍼포먼스인 「리듬 0」는 전작들과 달리 작가 자신은 마조히스트 역할만 맡고 새디스트 역할은 관객들에게 넘긴 작업이다.

이딸리아 나뽈리에 소재한 스튜디오 ‘모라’에서 저녁 여덟시부터 새벽 두시까지 총 여섯시간 동안 아브라모비치는 물건처럼 정지해 있었다. 그저 지나가던 사람들을 포함한 관객들을 맞이한 것은 전시장 입구에 비치된 지침서의 문장 “사람들이 내게 하고 싶은 것을 도와줄 72개의 물건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 퍼포먼스. 나는 물건/대상이다. 이 시간 동안 일어난 것은 전적으로 내가 책임진다.”였다. 그리고 전시장 한켠에는 그녀가 “매우 신중하게 골라온” 물건들, 즉 ‘쾌락’을 위한 물건―립스틱, 향수, 장미, 스카프, 거울, 유리잔, 카메라, 깃털, 헤어핀, 책 등―과 ‘고통’을 위한 물건―채찍, 사슬, 바늘, 가위, 망치, 톱 등―그리고 ‘죽음’을 초래할 물건들―총, 탄알―이 놓여 있었다.

처음에는 쭈뼛거리며 서로의 눈치만 보던 관객들은 세시간쯤 지나 마침내 아브라모비치에게 다가왔다. 우선 누군가가 면도칼로 그녀의 옷을 찢었고, 누군가는 립스틱으로 그녀의 몸에 글자를 적었고, 누군가는 그녀의 머리에 물을 부었고, 그녀의 노출된 상반신을 장미가시로 찌르는 사람이 있었고, 목에 면도칼로 상처를 내고 그 피를 마시는 사람이 있었고, 사소한 성폭력을 행하는 사람이 있었고, 그녀의 눈에 고인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이 있었다. 마침내 장전된 총을 그녀의 손에 쥐여주고 그녀의 목을 겨누게 만든 누군가가 등장했다. 관객들은 작가를 보호하려는 측과 더 고통을 주려는 측으로 양분되어 싸우기도 했다. 물건/대상이었던 그녀는 함부로 다뤄지거나 존경과 연민의 대상이 되었다. 아브라모비치는 어떤 의도, 내면, 인간성도 없이 그냥 서 있거나 눕혀졌다. 새벽 두시 무렵 아브라모비치는 움직였고 관객에게 다가가자 그들은 도망갔다. 그녀는 이후 이 퍼포먼스를 두고 “내가 얻은 경험은 퍼포먼스가 아주 멀리까지 나아갈 수 있다는 것, 그러나 결정을 관객에게 맡기면 살해당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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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메이 아줌마 (반양장) 사계절 1318 문고 13
신시아 라일런트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사계절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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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메이 아줌마가 돌아가신 날, 오브 아저씨는 트레일러로 돌아와 예복을 평상복으로 갈아입고는 밖에 있던 시보레 승용차 안에 앉아 그 날 밤을 보냈다.

  그 고물차는 언제나 개집 옆에 있었는데, 무성한 잡초에 둘러싸여 언뜻 보면 눈에 잘 띄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왜 오브 아저씨가 그 고물딱지를 치워 버리지 않는지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했다. 장례식을 치른 뒤 그 안에 앉아 있는 아저씨를 보기 전까지는.

  그 때 나는 알았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오브 아저씨만은 그 고물차가 반드시 그 곳에 있어야 할 이유가 있다고 믿었음을. 그리고 메이 아줌마가 돌아가셨을 때, 아저씨는 그 이유를 깨달았다는 것을.

  나는 그렇게 애틋하게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처음 보았다. 두 분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따금 눈물이 핑 돌곤 했는데, 6년 전, 그러니까 내가 이 곳에 처음 왔을 때 너무 어려서 사랑이 뭔지 생각조차 못했던 시절에도 그랬다.

  그러고 보면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언제나 사랑을 생각하고 사랑을 보고 싶어했나 보다. 어느 날 밤, 오브 아저씨가 부엌에 앉아 메이 아줌마의 길고 노란 머리를 땋아주는 광경을 처음 보았을 때, 숲 속에 가서 행복에 겨워 언제까지나 울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으니까.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도 그처럼 사랑받았을 것이다.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날 밤 오브 아저씨와 메이 아줌마 사이에 흐르던 것을 보면서 어떻게 그게 사랑이라는 걸 알았을까? 우리 엄마는 돌아가시기 전에 윤기나는 내 머리카락을 빗겨 주고, 존슨즈 베이비 로션을 내 팔에 골고루 발라 주고, 나를 포근하게 감싼 채 밤새도록 안고 또 안아주었던 게 틀림없다.

  엄마는 자신이 오래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어떤 엄마들보다도 오랫동안 나를 안아 주었던 게 틀림없다. 그리고 그 때까지 받은 사랑 덕분에 나는 다시 그러한 사랑을 보거나 느낄 때 바로 사랑인 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 아무도 나를 맡으려 하지 않았을 때도, 이모나 삼촌들 손에 끌려 이집 저집 전전할 때도 나는 그 사랑을 가슴 속 깊이 간직했으며, 아무도 나를 친딸처럼 받아들이지 않아도 투정을 부리거나 남들을 미워하지 않았다. 가엾은 우리 엄마는 나를 받아 줄 누군가가 나타날 때까지 내가 살아갈 수 있을 만큼 넉넉한 사랑을 남겨 두고 간 것이다.

  

  집은, 지금도 그렇지만, 낡고 녹슨 트레일러로, 파예트군 한복판에 자리잡은 딥 워터 마을의 산자락에 박혀 있었다. 처음에 그 트레일러는 마치 하늘나라에서 하느님이 가지고 놀다가 어쩌다 떨어트린 장난감처럼 보였다. 트레일러는 아래로, 아래로 하염없이 떨어지다가 쿵하고 이 산에 내려앉은 것 같았다. 비록 한쪽으로 기울어져 덜컹거리긴 했지만, 고맙게도 다친 곳 하나 없이.



  메이 아줌마가 불을 켠 순간, 온 벽을 뒤덮은 듯한 선반에 걸린 바람개비들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때까지 보았던 바람개비와는 딴판이었지만, 나는 금방 바람개비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오하이오 주 사람들은 바람개비를 울타리에 걸어 놓거나 정원에 세워 놓고 새들을 쫓았다. 그 바람개비는 어느 것이나 거의 비슷했다. 바람결에 빙글빙글 도는 로드러너나 닭이나 오리가 대부분이었다. 만화 주인공들도 인기가 좋았다. 장난구러기 고양이 가필드가 산들바람에 미친 듯이 팔을 돌리고 있는 정원들도 많았다.

  그 동안 많은 바람개비를 보았지만, 오브 아저씨네 바람개비 같은 것은 처음이었다. 오브 아저씨는 예술가였다. (-)

  오브 아저씨네 바람개비들 중에 가축이나 만화 주인공은 하나도 없었다. 그것들은 ‘신비’였다. 오브 아저씨는 그렇게 말했고, 나는 아저씨의 말뜻을 금방 알아들었다.

  어떤 바람개비는 천둥치는 폭풍을 나타냈는데, 정말로 천둥치는 폭풍처럼 먹빛과 잿빛을 띠고 있었으며 무시무시하면서도 아름다웠다. 또 천국에 대한 아저씨의 생각을 표현한 바람개비도 있었는데, 언제라도 거기서 천사들이 떨어져 나와 금빛으로 빛나며 유유히 트레일러 안을 날아다닐 것만 같았다.

  불과 사랑과 꿈과 죽음이라는 바람개비도 있었다. ‘메이’라고 부르는 바람개비도 있었는데, 작은 날개 부분이 다른 바람개비보다 많고 모두 순백색이었다. 그건 메이 아줌마의 ‘영혼’이라고 오브 아저씨는 말했다. (-)

  메이 아줌마가 머리 위의 선풍기를 켜자, 나는 그 선반 앞에 서서 바람개비들이 일제히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는 몹시 경이로운 광경을 보았다. 마치 이상한 나라에 떨어진 앨리스라도 된 것 같았고, 마술에 걸린 아이, 선택받은 아이가 된 것 같기도 했다. 그 때의 기분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2


  메이 아줌마는 밭을 가꾸다가 돌아가셨다. ‘밭을 가꾼다’는 표현은 아줌마가 즐겨 쓰던 말이다. 파예트 군에서는 누구나 밭에 일하러 나간다는 표현을 썼는데, 그 말은 어쩐지 흙먼지 속에서 딴을 뻘뻘 흘리며 투덜대면서 일하는 광경을 떠올리게 했다. 

  그러나 메이 아줌마는 밭을 ‘가꾸었고’, 아줌마가 그렇게 말하면 아주 사랑스런 사람이 머리에 노란 꽃 모자를 쓰고 어깨에 작은 울새들을 잔뜩 앉힌 채 귀여운 분홍 장미를 다듬는 장면이 떠오른다. 

  물론 메이 아줌마는 평생 꽃 모자 하나 없었고, 아줌마의 밭도 여느 밭들처럼 실용적이었다. 장미나무 대신에 굵은 콩대와 튼실한 배추와 단단한 당근이 온 밭을 차지했다. 그 밭은 믿음직스럽고 정겨웠다. 

  오브 아저씨도 나도 나중에는, 아줌마가 그 정겨운 밭에서 자라는 사랑스런 채소 사이에 있다가 하늘나라로 떠났으니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줌마는 그 밭에서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고, 오브 아저씨가 말했듯이 눈부시게 새하얀 영혼이 되어 천국으로 떠난 것이다. 

  밭에서 돌아가신 것. 아줌마의 죽음에서 그나마 위안거리는 이것뿐인 듯했다. 나머지는 모두 엉터리 같았다.

  아줌마가 돌아가신 지 어느덧 여섯 달이 흘렀고 오브 아저씨와 나는 아줌마 없이 벌써 두 계절을 맞이했지만, 나는 아직도 아줌마 없이 어떻게 생활을 꾸려 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그 동안 우리는 그저 아줌마를 그리워하며 가슴 아파했을 뿐,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 나는 우리가 이토록 상실감에 휩싸이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분명히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강인한 사람들이었다.

  겨울은 한결 힘들었다. 산마을의 2월은 혹독한 시간이다. 아침이면 나는 캄캄한 어둠을 뚫고 통학 버스를 타러 산 아래로 내려갔고, 집 안에 혼자 남은 오브 아저씨는 그런 내 모습을 창 밖으로 물끄러미 내다보았다. 


  하지만 나는 이제 열두 살이고, 통학 버스쯤은 혼자서 타야 한다. 혹독한 어둠이 내 앞에 불러일으킨 것은 결코 두려움이 아니었다. 산에서 살기 시작한 이래, 나는 어떤 것도 두려워해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단지 쓸쓸함일 뿐이었다. 등 뒤에는 오브 아저씨가 바람개비들이 잠들어 있는 낡은 트레일러 속에 혼자 남아 있고, 나는 이 캄캄한 길을 혼자 걷는다. 

  


  (-) 아줌마가 죽어서 하늘나라로 갈 때 어떤 후회도 슬픔도 근심도 없었으면 했다. 메이 아줌마가 우리에게 밝은 빛을 비추어 주면서, 아줌마는 아주 잘 있다고,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해 주었으면 싶었다.

  나는 정말이지 아줌마가 걱정에 휩싸여 있지 않길 바랐다. 자신의 죽음이 옳았는지, 집 안의 전기 플러그들은 모두 뽑혀 있는지, 스토브는 꺼져 있는지 하는 걱정에.

  나는 영혼을 믿는다. 천사라는 말이 더 그럴싸해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영혼이 더 정확한 말인 것 같다. 그래서 아저씨가 메이 아줌마가 여기 있다고 하면, 나는 아줌마가 그랬으리라고 믿는다.

  메이 아줌마도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된다고 믿었다. 아줌마는 홍수 때 돌아가신 어머니 아버지가 늘 아줌마를 지켜보고 있다고 말하곤 했다.

  가엾은 메이 아줌마.

  그 일이 일어났을 때, 아줌마는 겨우 아홉 살이었다. 비는 하루 낮 하룻밤을 내리고도 모자라 이튿날 새벽까지 퍼부었고, 산이 더 이상 빨아들이지 못한 빗물이 시냇물을 덮쳐 6미터나 되는 물기둥으로 솟구치며 메이 아줌마네 식구들이 곤히 잠들어 있는 골짜기에 밀어닥쳤다.

  큰물이 거대한 해일처럼 작은 골짜기를 덮쳤고, 마을의 집들은 모두 산산 조각이 났다. 커다란 트럭들이 거꾸로 뒤집혀 물살에 둥둥 떠내려갔다. 수많은 나무들이 반으로 쪼개졌다.

  아줌마의 어머니(아줌마는 항상 ‘엄마’라고 불렀다.)는 큰물이 밀어닥치는 소리를 듣고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아줌마의 방으로 달려왔다고 한다. 그리고는 자고 있는 어린 딸을 번쩍 들어올려 낡은 양철 빨래통에 집어넣었단다.

  그것이 메이 아줌마가 기억하는 전부였다. 정신을 차려보니 아줌마는 빨래통에 탄 채 집에서 10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을 둥둥 떠 가고 있었고, 물 속에서 허우적대던 늙은 고양이 한 마리를 건져올렸다고 한다. 아줌마의 어머니 아버지는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메이 아줌마는 그분들이 아줌마를 지켜보았다고 한다. 혼자서 자라는 동안 아줌마의 마음 속에는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 또 자신이 어떤 길로 가야 할지 일러 주는 강렬한 느낌이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메이 아줌마처럼 좋은 사람은 보지 못했다. 오브 아저씨보다도 훨씬 좋았다. 아줌마는 오직 사랑밖에 없는 커다란 통 같았다.

  

  아줌마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했고, 누가 어떻게 행동하든 간섭하지 않았다. 아줌마는 만나는 사람 하나하나를 다 믿었고, 그 믿음은 결코 아줌마를 저버리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아줌마를 배신하지 않았으니까. 아마도 사람들은 아줌마가 자신들의 가장 좋은 면만 본다는 점을 알고, 아줌마에게 그런 면만 보여 줌으로써 좋은 인상을 남기려고 했던 모양이다.

  오브 아저씨도 온 종일 바람개비나 만지작거리는 해군 출신의 상이 군인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나도 몇 년 동안 이집 저집 떠돌아다닌 고아라는 사실이 부끄럽지 않았다. 아줌마는 아저씨와 나의 자랑이었다. 

  우리는 강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강하지 않다. (-)

  아저씨마저 메이 아줌마의 뒤를 좇아 떠나 버린다면, 나는 저 바람개비들에 둘러싸인 채 혼자 남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밤 같은 정적 속에서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날개를 달라고, 멀리 날아갈 수 있도록 우리에게 진짜 날개를 달라고.



  지금 메이 아줌마가 여기 있다면, 나와 클리터스에게 말했을 것이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우리에게서 떨어져 나가려는 것들을 꼭 붙잡으라고. 우리는 모두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게 마련이니까.

  아줌마는 우리가 함께 살 수 있는 곳이 이 세상만이 아니라고 일러 주곤 했다. 이 세상의 삶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을 모두 얻지 못한다고 실망하지 말라고. 또 다른 생이 우리를 기다린다고.

  하지만 바로 그 점에서 메이 아줌마와 나는 생각이 달랐다. 나는 나한테 행복이 다시 찾아오리란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오랜 세월을 외톨이로 지냈던 나는, 오브 아저씨와 메이 아줌마를 만나 지낸 세월 자체가 바로 죽어서 간 천당이라고 여겼다. 그렇게 멋진 일이, 어떻게 나한테 또다시 일어난단 말인가.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클리터스는 나더러 꼭 세파에 찌든 노인네 같다고 한다. 잘못하다간 내가 대형 할인점에서 계산대 출구를 지키는 의심 많은 아줌마들처럼 될 거란다.

  한 번은 그 애가 말했다.

  “서머야, 그 돌덩이들 좀 내려놔. 그렇게 무거워서 어떻게 사냐?”

  내가 그렇게 애늙은이가 되어 인생의 무게에 허덕였던 것은 메이 아줌마가 우리 곁을 떠났기 때문이다. 오브 아저씨는 메이 아줌마의 빈 자리를 메꾸어 줄 사람이 필요했고, 나는 내 나이가 쉰 살이라면 그 빈 자리를 메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나 보다.



5


  (-) 아저씨는 그 아이를 데리고 메이 아줌마의 텅 빈 밭으로 나갔다. 애처롭기 짝이 없는 광경이었다. 그 겨울, 두툼한 외투와 털장화를 신은 우리 세 사람은 말라 죽은 식물 줄기들 가운데 서서 한때 그 흙으로 모든 것을 키웠던 한 여인이 생명의 신호를 보내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여인이 키운 것은 비단 식물들만이 아니었으니까.


  클리터스는 이 모든 일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이야기하고 설명하는 쪽은 항상 오브 아저씨였고, 그 애는 처음으로 아무 말 없이, 마치 아주 어린 아이처럼 순순히 아저씨를 따라서 죽은 콩대와 브로콜리 사이를 지나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어느 여인이 사랑한 곳으로 나아갔다.

  아저씨는 바로 그 곳에서 메이 아줌마의 이야기를 들려 주며 클리터스의 눈앞에 아줌마의 모습을 생생히 그려 주면, 그 반향이 밭을 가득 채우고 퍼져 나가 아줌마를 우리에게 데려올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 틀림없다. ‘귀가 따갑도록 말한다.’는 말처럼.

  그렇게 우리는 서 있었다. 외투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 넣은 채 아저씨는 클리터스를 바라보고, 클리터스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나는 땅바닥을 내려다보면서.

  오브 아저씨는 메이 아줌마가 생전에 얼마나 훌륭한 아내였는지, 그리고 아저씨와 나에게 얼마나 상냥하게 대해주었는지 이야기했다.


  (-) 아저씨는 (-) 사소한 일들만 골라서 이야기했다. 아줌마가 단 하루도 빠짐없이 아저씨의 아픈 무릎을 연고로 문질러 주어서, 아저씨가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 걸어다닐 수 있게 해주었던 일. 내가 꼬마였을 때, 아줌마가 집안일을 하다 말고 밖에서 그네를 타고 노는 나를 창 너머로 내다보며 “서머야, 우리 귀여운 아기. 세상에서 제일 예쁜 우리 아기.”하고 다정하게 불러 주던 일. (나는 아저씨의 말을 듣고서야 그 일이 생각났다.) 이렇듯 그 동안 아저씨가 마음 속에 소중히 간직했던 따스한 기억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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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밍아웃 프롬 더 클로젯 - 가족 중에 동성애자가 있을 때
김준자 지음 / 화남출판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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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자신이 느끼는 감성의 일부를 잘못된 것으로 생각하면 죄의식을 갖게 된다. 이러한 감성은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게 된다. 이렇듯 감성은 몹시 예민하기 때문에 감성에 소홀하거나 무시하게 되면 큰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

 

 

‘슬플 이유가 없는데 나는 참 슬픕니다.’라는 말을 듣고, 그의 상황을 살펴보면 그 슬픔이 어떻게 어디서 생겼는가를 찾는 것이 과히 어렵지 않습니다. (-) 

 

 

동성애자의 문제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거나 나쁜 것으로 생각하는데서 시작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자신의 감정이 틀렸다는 생각은 곧 다른 사람이 자신을 의심스럽게 본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죄의식이 생기고 자신을 싫어하게 됩니다. 또 자신이 느끼는 동성애 감정을 나쁜 것으로 생각하면 자신의 다른 감정까지도 나쁘게 생각하게 되고 결국 자신이 솔직하지 못한 (-) 사람으로 자신을 만들어가는 결과가 됩니다. 결국 의식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누르고 남에게 정중하게 대합니다. 자신이 한 모든 일을 옳게 증명하려고 애쓰며 살게 되지요. 그럴수록 불편한 감정은 점점 더 깊어가고 그것이 설명할 수 없는 행동으로 노출될 수도 있습니다. (-)

 

 

(-) ‘나는 퍽 부끄러운 감정을 느꼈어’라고 썼다면 감정을 잘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나쁜 사람이라고 느꼈다.’면 그것은 느낀 것이 아니라 판단이기 때문에 틀린 것입니다. ‘나는 그가 기계를 빌려줄 것이라고 느꼈어. (-) 그에게는 그 기계가 필요 없었으니까’ 이것 또한 틀린 말입니다. (-) 느낌이 아니라 자기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 말하고 싶은 것은 자신의 감정에 너무 익숙해지기 전에 그것을 알고 배우라는 것입니다. 감정은 생각과 판단이 아닙니다. 또 생각과 판단 사이에 혼란을 일으켜서도 안됩니다.

모든 감정은 경험에서 오지만 그것은 이미 말을 배우기 이전부터 알아온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특정 사실에 대해 자신이 배운 말과 다른 사람이 사용하는 말에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예를 들어서 게이 감정 때문에 고민하고 화가 난 아이에게 어머니가 ‘너 너무 피곤해 보인다. 낮잠 한번 자고 나면 괜찮을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낮잠은 화를 가라앉히기는 하지만 그 감정은 ‘피곤’이 아니기 때문에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자신이 누구인가를 분명히 알고,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그 감정을 표현해야만 자신이 묶인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심성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따지기 좋아합니다. 동정심은 좋은 감정이고, 분노는 나쁜 감정이라고 알지만 사실은 자신에게 나쁜 감정 혹은 좋은 감정이 따로 있을 수 없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는 모든 감정이 다 필요하고 허용되어야 합니다. 

 

 

마음이 넓고 게이나 레즈비언 친구가 많은 사람도 막상 자신의 자녀가 게이나 레즈비언이라고 하면 혼란스럽고 당황해 한다. (-) 자녀가 게이라고 발표하는 순간 큰 충격을 받고 눈물을 흘린다. 그것은 사랑하는 자녀가 가여워서, 실망이 되어서, 기대에 어긋나기 때문에 우는 슬픔일 수 있다. 그리고 아이가 시대를 따라 느끼는 일시적인 감정이기를 간절히 바라며 게이인 사실을 부인하려 든다. 자녀를 잘못 양육했다는 자책을 하며 에이즈에 걸릴 것을 염려하는 사람도 있다. 어린 자녀와 시간을 갖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로 자신을 탓하면서 벌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부모도 있다. 그리고 자녀를 포기하고 일생을 불행하게 사는 부모도 있다. (-)

 

자녀가 게이나 레즈비언이라고 생각되거나, 그 사실을 확인하게 되면 부모는 게이나 레즈비언에 대한 공부를 해야 한다. (-) 부모가 먼저 게이나 레즈비언 자녀를 안심시켜야 한다. 올바른 안내로 위험한 길에 들지 않도록 인도하는 것이 옳은 방법이다.

 

'우리에게 말해주어서 고맙다. 우리는 너를 사랑하니까 네가 게이라고 해서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엄마 아빠에게까지 감추느라고 힘들었겠다.'

'진작 말했으면 우리가 도울 일이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지금 우리가 도울 일은 없니?'

 

이런 말들이 게이 자녀에게 용기를 주는 부모의 태도이다. 

그러나 자신의 성 정체를 밝힌 지 얼마 안 되는 아이에게는 조용히 내버려 두는 것이 오히려 낫다. 이 기간이 세상에서 부모가 제일이라는 인식을 갖는 중요한 시기가 될 수 있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우선으로 살피고, 부모가 당하는 고통은 후에 해결해야 한다. 게이 자녀에게 피해야 할 말이 있다. '얼마나 힘들었니? 혹은 얼마나 놀랐니?'라는 말은 묻지 않는 것이 좋다.

'부모가 실망한 것'도 말하지 않는다.

'게이가 확실한가.'라고 다시 묻지 않는다.

'게이 정체성이 없어진다거나 고칠 수 있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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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우의 봄날을 읽는다 이 작품을 읽는다 5
양진오 지음 / 열림원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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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임철우의 <봄날>을 놓고 얘기하자면 문학을 형성하는 근본 동력은 절실함이라고 말하고 싶다. 절실함이라는 감정 그 자체가 문학이 될 수는 없지만 문학은 이 감정에서 출발하는 거라고 말하고 싶다.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해야 할 세계와 인간에 관해 진정으로 혹은 절실하게 발언의 필요성을 느끼는 작가들에 의하여 문학은 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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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 이야기
김도연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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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바로 콩 이야기다.

사실 나는 꽤 오래전부터 콩과 관련된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막상 쓰려고 하면 그동안 발갛게 달아오른 프라이팬 속의 콩들처럼 소란스럽던 머릿속이 이상하게도 텅 비어버린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 콩이라니! 대체 그 자그마한 알 속에 무슨 얘기가 들어 있단 말인가! 더 중요하고 재미난 이야기들이 넘쳐나는 세상인데 겨우 콩알이나 만지작거리는 내가 한심해서 결국 들고 있던 콩 주머니를 컴컴한 곳간 속으로 던져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콩이 내 마음속에서 영영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콩보다 더 무겁고 값이 나가는 것들, 감자나 배추 당근 당귀 무 옥수수 등등에 대부분의 시간과 힘을 들이다가도 흙 묻은 손을 털고 집으로 돌아오는 저물녘이면 아주 잠깐 ‘아, 콩이 있었지’라고 아무도 몰래 중얼거리곤 했다. 물론 집으로 들어가면 하루의 피곤에 밀려 콩 생각은 저만치 밀어두곤 그대로 잠에 빠져드는 나날이었지만. 고작해야 어지러운 꿈의 끄트머리에서 겨우 한 마디 웅얼거릴 뿐이었다. 언젠가는 콩 이야기를 쓸 거야. 그렇게 웅얼거리다가 지난 10년의 세월이 훌떡 지나가버렸다. 잘 아시다시피 세월이란 게 참 잔인하다 싶을 정도로 빨리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고 그때 어떤 사람들은 지나간 시간 속에서 이루지 못한 무엇을 아쉬워하는 경우가 있는데 내게 있어 그것은 다름 아닌 콩이었다. 막연히 콩이었다. 콩과 관련된 아무런 애틋함도 기억 속에 없었는데 바로 콩이었다. 그러니 막막할 수밖에. 이게 대체 뭔가? 왜 하필 팥도 아니고 콩이지? 내 마음이 공연히 억지를 부리는 건 아닌가. 지난가을, 한 포기에 15,000원까지 치솟은 배추값에서 나만 비껴난 분풀이를 콩에게 하려는 것은 아닐까. (-)

 

 

(-) 사실 콩을 생각하면 안 좋은 기억이 먼저 떠올랐다. 늦가을 저물 무렵 밭에서 콩을 줍던 일이 그것이다. 중학생 시절, 학교에서 돌아와 가방을 내려놓기 무섭게 아버지의 불호령에 콩밭으로 호출되던 날이 있었는데 그때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바로 다래끼를 들고 콩을 줍는 거였다. 아버지가 낮 동안 꺾어놓은 콩을 지게에 싣고 떠나면 그 자리에 떨어진 콩알을 하나하나 주워야 했다. 콩알이란 게 특이하게도 꼭 한 번에 한 알밖에 주울 수 없었다. 날은 추워서 손가락은 곱아오고 더군다나 어두워지고 있었다. 자그마한 콩알은 아무리 주워도 다래끼 바닥에서 키를 키우지 않았다. 침침한 눈을 손등으로 비벼도 콩알은 점점 보이지 않았고 곱은 손을 사타구니에 넣고 불알을 만지작거리며 녹였지만 꺼내면 이내 다시 차가워졌다. 아픈 무릎을 두드리며 작은 콩알을 하나씩 줍느니 영어단어 하나를 더 외우는 게 미래를 위해선 나을 것 같았지만 식구들 누구에게도 통하지 않았다. 날이 완전히 어두워질 때까지 꼼짝없이 콩알을 줍는다는 것은 세상 모든 게 다 콩으로 보이거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집으로 돌아와 전등불 아래서 다래끼를 들여다보면 그야말로 콩 반 돌 반이어서 고생했다는 말보다 퉁바리맞는 게 먼저였다. (-)

 

 

“콩이죠. 땅속에서 자라는 콩. 저기…… 제가 지금 콩 이야기를 써야 하거든요.”

“……쓰세요. 콩 이야기!”

사무실로 돌아가는 사서의 들썩이는 어깨를 놓고 볼 때 아무래도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불과 2년 전만 하더라도 그녀는 어떤 존경의 눈으로 나를 대했었다. 그 존경이 무의미한 눈빛으로 되돌아가는 데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봄날 콩을 심고 가을에 콩대궁을 꺾기도 전에 이미 식어 있었다. 어쩌면 그녀의 말대로 나는 산 아래에 있는 조그마한 이 도서관에서 환갑, 진갑을 모두 지내고 심지어는 열람실의 책상에 엎드려 죽음까지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경을 떠올려보았는데 이상하게도 슬픔과 기쁨의 경계가 분명하게 나눠지지 않았다. 마치 낮과 밤의 경계가 뒤섞였던 그 늦가을 저녁의 손이 곱아오는 콩 줍기처럼. 죽기 직전까지 시골 도서관에서의 콩 줍기라. 사실 나는 그동안 도서관에 다닌 과거와 도서관에 있는 현재에만 급급했지 도서관에서 맞을 미래에 대해선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건 정말이지 새로운 콩 이야기였다. 색깔이 불분명한.

“마당에 있는 울콩, 경주상회에 가지고 가서 팔아라.”

“그거 몇 푼이나 받는다고 팔아요!”

“오늘 팔아야 안 시들어!”

“에이!”

도서관에 가려고 가방을 메고 나온 내게 건넨 엄마의 울콩을 팔아 오라는 주문이었다. 콩은 구멍이 숭숭 뚫린 붉은 양파자루에 담겨 있었다. 아침나절에 딴 풋콩이었다.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귀찮은 일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자루에 담긴 콩을 장거리에 내다 파는 일이었다. 덥고 힘들고 귀찮고 당연히 폼도 나지 않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콩값이 금값도 아니니 투덜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책과 노트가 들어 있는 가방끈을 왼쪽 어깨에 걸치고 오른손에 콩자루를 쥔 채 집을 나섰다. 오전의 마지막 시내버스를 놓치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걸어야 했다. 집에서 버스정류장까지 걸어서 10분 정도 걸리는데 덥고 손이 저려오는 터라 버스가 오나 안 오나 확인하며 몇 번을 쉬어야만 했다. 온갖 투덜거림을 콩에게 쏟아놓으며. 그래도 거기까진 보는 사람이 없어 괜찮았다. 마침 장날이라 평소 한가하던 버스는 이 골 저 골에서 나온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들은 당연히 콩자루를 들고 버스에 올라탄 나를 주시하며 한 마디씩 했다. 강낭콩이네. 콩이 벌써 나오네. 콩값이 어터 되나? 앉을 자리도 없었다. 모두 낯이 익은, 그러나 말을 나눠본 적은 없는 얼굴들이었다. (-)

 

 

“콩 심어서 돈 번 사람 못 봤다!”

당연히 뼈가 있는 말이었다. 사실 나는 강낭콩을 내다 팔은 돈의 거의 대부분을 엄마에게 전해주지 않고 그냥 내 주머니에 넣어버렸다. 액수가 좀 크다 싶으면 어쩔 수 없었지만 나머지는 차비와 담뱃값, 점심으로 사 먹는 김밥값…… 등등의 용도로 사용했다. 부모 자식 지간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어린 시절에 농촌생활을 겪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덩치가 큰 농작물이 아버지의 소관이라면 자잘한 것들은 어머니의 영역에 속한다는 것을. 어머니는 그 잡곡들을 장에 갈 때마다 한 말씩 머리에 이거나 배낭에 지고 나가서 팔아 자잘한 생필품이나 반찬거리들을 사 오곤 했다. 거기에다가 그런 곡물이나 봄날의 산나물 같은 것들은 누가 키웠고 누가 뜯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다 판 사람이 임자라는 농촌의 우스갯말도 있었기에 나는 별다른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았다. 물론 내가 매일 콩 한 자루를 메고 나와 팔아버린 것도 아니었다. 가끔, 아주 가끔일 뿐이었다. 그런데…… 다시 곰곰이 그때를 생각해보니 어쩌면 엄마는 내가 도시에서 벌여놓았던 일들을 모두 말아먹고 거의 무일푼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온 처지를 모두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하루에 5,000원을 가지고 도서관을 들락거린다는 사실도. 내게 팔아 오라고 건네준 콩자루는, 그러니까…… 엄마의 안타까움이 분명했다. 터미널 옆 치킨집에 앉아 튀긴 닭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생맥주를 홀짝거리던 나는 고개를 꺾어야만 했다.

“주문한 거 포장해주세요.”

“반 마리를요?”

“반 마리는 안 됩니까?”

“……됩니다.”

 

 

(-) 콩을 두 손바닥으로 감싼 채 흔들어 보았다. 적당하게 간지러운 콩의 소리가 들렸다. 마침 다시 사서가 내 곁으로 다가오자 재빠르게 콩을 두 손에 나누고 움켜쥔 오른손을 내밀며 물었다.

“홀일까요, 짝일까요?”

“자꾸 콩 가지고 장난하면 내쫓을 겁니다.”

“알았어요. 홀? 짝?”

“……짝.”

나는 손바닥을 펼쳤다. 반들반들해진 콩들이 손바닥 위에서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홀이네요.”

“콩 이야기 쓰는 거 정말 맞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서의 표정에는, 만약 사실이 아니면 아무리 10여 년 동안 줄곧 도서관을 드나들었다 해도 영영 추방시키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나는 두 손에 있던 콩을 작고 투명한 비닐봉지에 담았다. 홀이라는 사실이 왠지 슬퍼졌다.

“다 쓰면 보여드릴게요.”

 

 

택시에서 내린 나는 집을 향해 걸었다. 별들이 총총한 봄밤이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밤하늘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내가 아는 별자리는 많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고작해야 눈에 잘 띄는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이아가 전부였다. 콩 이야기가 끝나면 북두칠성의 네 번째 별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있지만 자신할 순 없었다. 사실 콩 이야기만이라도 잘 끌고 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도서관에 앉아 내가 한 일은 고작 손바닥이나 노트북 자판 위 여기저기에 콩들을 올려놓고 들여다보거나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은 것 정도가 전부였다. 그 콩들이 스스로 입을 열고 내게 말을 걸어왔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었다. 사실 자그마한 콩 속에 어떤 이야기가 들어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집으로 건너가는 다리 위에서 나는 술 냄새가 가득한 한숨을 하늘로 올려 보냈다. 낮 동안의 구름들은 모두 어디론가 사라지고 별들만 촘촘한 하늘로. 북두칠성의 네 번째 별은 다른 여섯 개의 별들과 달리 그런 내 마음처럼 희미하게 깜박이고 있었다. 그래도 여기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이냐고 내게 속삭이는 것 같기는 했다. 마치 까만 쥐눈이콩의 작은 눈처럼. 그러고 보니 왠지 하늘의 별이나 지상의 콩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누가 되지 않는다면 그 별들에게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다. 목욕탕에서 때를 미는 때밀이, 할머니 등에 업혀 장에 가는 아기, 도서관 옥상에서 콩을 심는 사서, 콩자루를 들고 툴툴거리며 시내버스를 타는 나, 매일같이 콩과 팥을 나누고 합치고 다시 나누는 엄마와 아버지…… 야, 이거 괜찮은 별과 콩의 이야기구나! 나는 집으로 가는 길에 신이 나서 별들의 새 이름을 지어주었다. 아주까리콩, 흰콩, 선비제비콩, 누렁콩, 우렁콩, 푸른콩, 얼룩콩, 밤콩, 좀콩, 작두콩, 완두콩, 까치콩…… 그러다 결국 돌부리에 걸려 손도 못 내민 채 앞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뭐, 인생에서 가끔 벌어지는 일이었다. 옷에 묻은 흙을 털고 얼얼한 뺨을 문지르는데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드니 집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어둠 속에 오롯이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술 취한 아버지는 잠들었고 돋보기를 쓴 엄마는 둥근 상 위에 콩을 가득 올려놓고 하나하나 고르는 중이었다. 오래된 경전을 읽듯이. 내 꼬락서니를 훑어본 엄마가 입을 열었다.

“애비나 자식이나…….”


_『현대문학』 2011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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