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메이 아줌마가 돌아가신 날, 오브 아저씨는 트레일러로 돌아와 예복을 평상복으로 갈아입고는 밖에 있던 시보레 승용차 안에 앉아 그 날 밤을 보냈다.
그 고물차는 언제나 개집 옆에 있었는데, 무성한 잡초에 둘러싸여 언뜻 보면 눈에 잘 띄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왜 오브 아저씨가 그 고물딱지를 치워 버리지 않는지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했다. 장례식을 치른 뒤 그 안에 앉아 있는 아저씨를 보기 전까지는.
그 때 나는 알았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이해하지 못할지라도, 오브 아저씨만은 그 고물차가 반드시 그 곳에 있어야 할 이유가 있다고 믿었음을. 그리고 메이 아줌마가 돌아가셨을 때, 아저씨는 그 이유를 깨달았다는 것을.
나는 그렇게 애틋하게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처음 보았다. 두 분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따금 눈물이 핑 돌곤 했는데, 6년 전, 그러니까 내가 이 곳에 처음 왔을 때 너무 어려서 사랑이 뭔지 생각조차 못했던 시절에도 그랬다.
그러고 보면 내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언제나 사랑을 생각하고 사랑을 보고 싶어했나 보다. 어느 날 밤, 오브 아저씨가 부엌에 앉아 메이 아줌마의 길고 노란 머리를 땋아주는 광경을 처음 보았을 때, 숲 속에 가서 행복에 겨워 언제까지나 울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았으니까.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도 그처럼 사랑받았을 것이다.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날 밤 오브 아저씨와 메이 아줌마 사이에 흐르던 것을 보면서 어떻게 그게 사랑이라는 걸 알았을까? 우리 엄마는 돌아가시기 전에 윤기나는 내 머리카락을 빗겨 주고, 존슨즈 베이비 로션을 내 팔에 골고루 발라 주고, 나를 포근하게 감싼 채 밤새도록 안고 또 안아주었던 게 틀림없다.
엄마는 자신이 오래 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어떤 엄마들보다도 오랫동안 나를 안아 주었던 게 틀림없다. 그리고 그 때까지 받은 사랑 덕분에 나는 다시 그러한 사랑을 보거나 느낄 때 바로 사랑인 줄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 아무도 나를 맡으려 하지 않았을 때도, 이모나 삼촌들 손에 끌려 이집 저집 전전할 때도 나는 그 사랑을 가슴 속 깊이 간직했으며, 아무도 나를 친딸처럼 받아들이지 않아도 투정을 부리거나 남들을 미워하지 않았다. 가엾은 우리 엄마는 나를 받아 줄 누군가가 나타날 때까지 내가 살아갈 수 있을 만큼 넉넉한 사랑을 남겨 두고 간 것이다.
집은, 지금도 그렇지만, 낡고 녹슨 트레일러로, 파예트군 한복판에 자리잡은 딥 워터 마을의 산자락에 박혀 있었다. 처음에 그 트레일러는 마치 하늘나라에서 하느님이 가지고 놀다가 어쩌다 떨어트린 장난감처럼 보였다. 트레일러는 아래로, 아래로 하염없이 떨어지다가 쿵하고 이 산에 내려앉은 것 같았다. 비록 한쪽으로 기울어져 덜컹거리긴 했지만, 고맙게도 다친 곳 하나 없이.
메이 아줌마가 불을 켠 순간, 온 벽을 뒤덮은 듯한 선반에 걸린 바람개비들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 때까지 보았던 바람개비와는 딴판이었지만, 나는 금방 바람개비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오하이오 주 사람들은 바람개비를 울타리에 걸어 놓거나 정원에 세워 놓고 새들을 쫓았다. 그 바람개비는 어느 것이나 거의 비슷했다. 바람결에 빙글빙글 도는 로드러너나 닭이나 오리가 대부분이었다. 만화 주인공들도 인기가 좋았다. 장난구러기 고양이 가필드가 산들바람에 미친 듯이 팔을 돌리고 있는 정원들도 많았다.
그 동안 많은 바람개비를 보았지만, 오브 아저씨네 바람개비 같은 것은 처음이었다. 오브 아저씨는 예술가였다. (-)
오브 아저씨네 바람개비들 중에 가축이나 만화 주인공은 하나도 없었다. 그것들은 ‘신비’였다. 오브 아저씨는 그렇게 말했고, 나는 아저씨의 말뜻을 금방 알아들었다.
어떤 바람개비는 천둥치는 폭풍을 나타냈는데, 정말로 천둥치는 폭풍처럼 먹빛과 잿빛을 띠고 있었으며 무시무시하면서도 아름다웠다. 또 천국에 대한 아저씨의 생각을 표현한 바람개비도 있었는데, 언제라도 거기서 천사들이 떨어져 나와 금빛으로 빛나며 유유히 트레일러 안을 날아다닐 것만 같았다.
불과 사랑과 꿈과 죽음이라는 바람개비도 있었다. ‘메이’라고 부르는 바람개비도 있었는데, 작은 날개 부분이 다른 바람개비보다 많고 모두 순백색이었다. 그건 메이 아줌마의 ‘영혼’이라고 오브 아저씨는 말했다. (-)
메이 아줌마가 머리 위의 선풍기를 켜자, 나는 그 선반 앞에 서서 바람개비들이 일제히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는 몹시 경이로운 광경을 보았다. 마치 이상한 나라에 떨어진 앨리스라도 된 것 같았고, 마술에 걸린 아이, 선택받은 아이가 된 것 같기도 했다. 그 때의 기분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2
메이 아줌마는 밭을 가꾸다가 돌아가셨다. ‘밭을 가꾼다’는 표현은 아줌마가 즐겨 쓰던 말이다. 파예트 군에서는 누구나 밭에 일하러 나간다는 표현을 썼는데, 그 말은 어쩐지 흙먼지 속에서 딴을 뻘뻘 흘리며 투덜대면서 일하는 광경을 떠올리게 했다.
그러나 메이 아줌마는 밭을 ‘가꾸었고’, 아줌마가 그렇게 말하면 아주 사랑스런 사람이 머리에 노란 꽃 모자를 쓰고 어깨에 작은 울새들을 잔뜩 앉힌 채 귀여운 분홍 장미를 다듬는 장면이 떠오른다.
물론 메이 아줌마는 평생 꽃 모자 하나 없었고, 아줌마의 밭도 여느 밭들처럼 실용적이었다. 장미나무 대신에 굵은 콩대와 튼실한 배추와 단단한 당근이 온 밭을 차지했다. 그 밭은 믿음직스럽고 정겨웠다.
오브 아저씨도 나도 나중에는, 아줌마가 그 정겨운 밭에서 자라는 사랑스런 채소 사이에 있다가 하늘나라로 떠났으니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줌마는 그 밭에서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고, 오브 아저씨가 말했듯이 눈부시게 새하얀 영혼이 되어 천국으로 떠난 것이다.
밭에서 돌아가신 것. 아줌마의 죽음에서 그나마 위안거리는 이것뿐인 듯했다. 나머지는 모두 엉터리 같았다.
아줌마가 돌아가신 지 어느덧 여섯 달이 흘렀고 오브 아저씨와 나는 아줌마 없이 벌써 두 계절을 맞이했지만, 나는 아직도 아줌마 없이 어떻게 생활을 꾸려 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그 동안 우리는 그저 아줌마를 그리워하며 가슴 아파했을 뿐,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 나는 우리가 이토록 상실감에 휩싸이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분명히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강인한 사람들이었다.
겨울은 한결 힘들었다. 산마을의 2월은 혹독한 시간이다. 아침이면 나는 캄캄한 어둠을 뚫고 통학 버스를 타러 산 아래로 내려갔고, 집 안에 혼자 남은 오브 아저씨는 그런 내 모습을 창 밖으로 물끄러미 내다보았다.
하지만 나는 이제 열두 살이고, 통학 버스쯤은 혼자서 타야 한다. 혹독한 어둠이 내 앞에 불러일으킨 것은 결코 두려움이 아니었다. 산에서 살기 시작한 이래, 나는 어떤 것도 두려워해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단지 쓸쓸함일 뿐이었다. 등 뒤에는 오브 아저씨가 바람개비들이 잠들어 있는 낡은 트레일러 속에 혼자 남아 있고, 나는 이 캄캄한 길을 혼자 걷는다.
(-) 아줌마가 죽어서 하늘나라로 갈 때 어떤 후회도 슬픔도 근심도 없었으면 했다. 메이 아줌마가 우리에게 밝은 빛을 비추어 주면서, 아줌마는 아주 잘 있다고,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해 주었으면 싶었다.
나는 정말이지 아줌마가 걱정에 휩싸여 있지 않길 바랐다. 자신의 죽음이 옳았는지, 집 안의 전기 플러그들은 모두 뽑혀 있는지, 스토브는 꺼져 있는지 하는 걱정에.
나는 영혼을 믿는다. 천사라는 말이 더 그럴싸해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영혼이 더 정확한 말인 것 같다. 그래서 아저씨가 메이 아줌마가 여기 있다고 하면, 나는 아줌마가 그랬으리라고 믿는다.
메이 아줌마도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된다고 믿었다. 아줌마는 홍수 때 돌아가신 어머니 아버지가 늘 아줌마를 지켜보고 있다고 말하곤 했다.
가엾은 메이 아줌마.
그 일이 일어났을 때, 아줌마는 겨우 아홉 살이었다. 비는 하루 낮 하룻밤을 내리고도 모자라 이튿날 새벽까지 퍼부었고, 산이 더 이상 빨아들이지 못한 빗물이 시냇물을 덮쳐 6미터나 되는 물기둥으로 솟구치며 메이 아줌마네 식구들이 곤히 잠들어 있는 골짜기에 밀어닥쳤다.
큰물이 거대한 해일처럼 작은 골짜기를 덮쳤고, 마을의 집들은 모두 산산 조각이 났다. 커다란 트럭들이 거꾸로 뒤집혀 물살에 둥둥 떠내려갔다. 수많은 나무들이 반으로 쪼개졌다.
아줌마의 어머니(아줌마는 항상 ‘엄마’라고 불렀다.)는 큰물이 밀어닥치는 소리를 듣고 잠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아줌마의 방으로 달려왔다고 한다. 그리고는 자고 있는 어린 딸을 번쩍 들어올려 낡은 양철 빨래통에 집어넣었단다.
그것이 메이 아줌마가 기억하는 전부였다. 정신을 차려보니 아줌마는 빨래통에 탄 채 집에서 10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을 둥둥 떠 가고 있었고, 물 속에서 허우적대던 늙은 고양이 한 마리를 건져올렸다고 한다. 아줌마의 어머니 아버지는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메이 아줌마는 그분들이 아줌마를 지켜보았다고 한다. 혼자서 자라는 동안 아줌마의 마음 속에는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 또 자신이 어떤 길로 가야 할지 일러 주는 강렬한 느낌이 한시도 떠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메이 아줌마처럼 좋은 사람은 보지 못했다. 오브 아저씨보다도 훨씬 좋았다. 아줌마는 오직 사랑밖에 없는 커다란 통 같았다.
아줌마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했고, 누가 어떻게 행동하든 간섭하지 않았다. 아줌마는 만나는 사람 하나하나를 다 믿었고, 그 믿음은 결코 아줌마를 저버리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아줌마를 배신하지 않았으니까. 아마도 사람들은 아줌마가 자신들의 가장 좋은 면만 본다는 점을 알고, 아줌마에게 그런 면만 보여 줌으로써 좋은 인상을 남기려고 했던 모양이다.
오브 아저씨도 온 종일 바람개비나 만지작거리는 해군 출신의 상이 군인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나도 몇 년 동안 이집 저집 떠돌아다닌 고아라는 사실이 부끄럽지 않았다. 아줌마는 아저씨와 나의 자랑이었다.
우리는 강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강하지 않다. (-)
아저씨마저 메이 아줌마의 뒤를 좇아 떠나 버린다면, 나는 저 바람개비들에 둘러싸인 채 혼자 남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밤 같은 정적 속에서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날개를 달라고, 멀리 날아갈 수 있도록 우리에게 진짜 날개를 달라고.
지금 메이 아줌마가 여기 있다면, 나와 클리터스에게 말했을 것이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우리에게서 떨어져 나가려는 것들을 꼭 붙잡으라고. 우리는 모두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게 마련이니까.
아줌마는 우리가 함께 살 수 있는 곳이 이 세상만이 아니라고 일러 주곤 했다. 이 세상의 삶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을 모두 얻지 못한다고 실망하지 말라고. 또 다른 생이 우리를 기다린다고.
하지만 바로 그 점에서 메이 아줌마와 나는 생각이 달랐다. 나는 나한테 행복이 다시 찾아오리란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오랜 세월을 외톨이로 지냈던 나는, 오브 아저씨와 메이 아줌마를 만나 지낸 세월 자체가 바로 죽어서 간 천당이라고 여겼다. 그렇게 멋진 일이, 어떻게 나한테 또다시 일어난단 말인가.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클리터스는 나더러 꼭 세파에 찌든 노인네 같다고 한다. 잘못하다간 내가 대형 할인점에서 계산대 출구를 지키는 의심 많은 아줌마들처럼 될 거란다.
한 번은 그 애가 말했다.
“서머야, 그 돌덩이들 좀 내려놔. 그렇게 무거워서 어떻게 사냐?”
내가 그렇게 애늙은이가 되어 인생의 무게에 허덕였던 것은 메이 아줌마가 우리 곁을 떠났기 때문이다. 오브 아저씨는 메이 아줌마의 빈 자리를 메꾸어 줄 사람이 필요했고, 나는 내 나이가 쉰 살이라면 그 빈 자리를 메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나 보다.
5
(-) 아저씨는 그 아이를 데리고 메이 아줌마의 텅 빈 밭으로 나갔다. 애처롭기 짝이 없는 광경이었다. 그 겨울, 두툼한 외투와 털장화를 신은 우리 세 사람은 말라 죽은 식물 줄기들 가운데 서서 한때 그 흙으로 모든 것을 키웠던 한 여인이 생명의 신호를 보내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여인이 키운 것은 비단 식물들만이 아니었으니까.
클리터스는 이 모든 일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이야기하고 설명하는 쪽은 항상 오브 아저씨였고, 그 애는 처음으로 아무 말 없이, 마치 아주 어린 아이처럼 순순히 아저씨를 따라서 죽은 콩대와 브로콜리 사이를 지나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어느 여인이 사랑한 곳으로 나아갔다.
아저씨는 바로 그 곳에서 메이 아줌마의 이야기를 들려 주며 클리터스의 눈앞에 아줌마의 모습을 생생히 그려 주면, 그 반향이 밭을 가득 채우고 퍼져 나가 아줌마를 우리에게 데려올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이 틀림없다. ‘귀가 따갑도록 말한다.’는 말처럼.
그렇게 우리는 서 있었다. 외투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 넣은 채 아저씨는 클리터스를 바라보고, 클리터스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나는 땅바닥을 내려다보면서.
오브 아저씨는 메이 아줌마가 생전에 얼마나 훌륭한 아내였는지, 그리고 아저씨와 나에게 얼마나 상냥하게 대해주었는지 이야기했다.
(-) 아저씨는 (-) 사소한 일들만 골라서 이야기했다. 아줌마가 단 하루도 빠짐없이 아저씨의 아픈 무릎을 연고로 문질러 주어서, 아저씨가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 걸어다닐 수 있게 해주었던 일. 내가 꼬마였을 때, 아줌마가 집안일을 하다 말고 밖에서 그네를 타고 노는 나를 창 너머로 내다보며 “서머야, 우리 귀여운 아기. 세상에서 제일 예쁜 우리 아기.”하고 다정하게 불러 주던 일. (나는 아저씨의 말을 듣고서야 그 일이 생각났다.) 이렇듯 그 동안 아저씨가 마음 속에 소중히 간직했던 따스한 기억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