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의 에메랄드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 지음, 석영중 옮김 / 고려대학교출판부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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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누구도 나처럼/몸통도 사지도 없는 입술로 변신하지 못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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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만 꿈만 꾸자 문학동네 시인선 231
조온윤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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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 교사



아이들에게

문을 뒤집으면 곰이 나타난다는

실없는 농담을 하는 어른이 되어버렸다


집을 뒤집으면요? 사람을 뒤집으면요?

울음을 거꾸로 하면 몽롱이 되는 것 같아요

그럼 몽롱은 기쁜 거예요?


아이들의 존재는 왜 이다지도

물구나무 같을까?

질문을 뒤집어주면 대답이 될까

반문이 될까?


아이를 어른스럽게 대하지 못하는

아이 같은 어른이 되어버렸지

너희를 돌볼 때면

뒤집힌 교실에 홀로 남아

오래전에 잊어버린 공식을 풀어내야 하는 것 같아


아무리 깨쳐도 졸업이 없는 삶의 교정에서

내가 무얼 알려줄 수 있을까?

또렷한 목적 없이 갈지자로 살아감을 뜻하는 몽롱이란 기분을?

어른의 문을 열고 뒤집어 흔든다 해도

아무것도 튀어나오지 않는다는 심심한 진실을?


벽은 뒤집어도 벽, 컵은 뒤집으면 반드시

빈 컵이 될 테지만


철봉 아래에서 친구를 괴롭히는

장난꾸러기 아이를 붙들고 말해줄 수 있겠지

얘야, 우는 사람을 거꾸로 뒤집어도

웃는 사람이 되지 않는다고




두루미



이 좁은 유리병에

어떻게 사랑이 가득 담길 수 있을까?


형태가 가지각색인 식기를 식탁 위에 깔아두고서

길쭉한 목을 가진 이웃에게 초대받은 여우처럼


이건 언 손에 입김 부는 입 모양을 본뜬 술병

이건 깨어질 듯 위태로운 불안을

연인에게 기울이는 각도로 만든 주전자


처음 보는 유리의 형태에

어떻게 사랑이 흘러넘칠 수 있나요?

병속에 어리둥절 끼여버린 여우처럼 묻는다면


좁은 문틈으로 환한 말소리가 새어 나올 수 있는 건

얼어 있던 공기가 모두 녹아내렸기 때문이라고


투명한 식기의 주인은 말하겠지

의심이 많아 바깥에 갇힌 여우야

이제 너의 마음이 녹아

액체와 같이 흐른다면


이리 들어와 이걸 마셔봐

우리의 시간이 아주 달단다





사인용 식탁



어느 날 침묵을 두르고 

밥을 먹으며 생각했다


외로움은 일인분의 식사가 아니다

사인용 식탁의 빈자리들이다


그리움은 인간을 본뜬 석고를

보며 그린 소묘를

또다시 베끼는 일이다


그걸 베끼고 또 베끼다보면

언젠가는

추상적인 동그라미 몇 개만 남게 될 것이다


식기를 치우면

책상이 되기도 하는

식탁 앞에 앉아

닫힌 창문을 보며 창밖을 그렸다


그릇을 씻고 덜 마른 손에

동그라미가 번져서

무언지 알아볼 수 없었다




림보



뚱뚱한 천사는 게으를 거라고 생각하니?

온 힘을 다해 사랑하지 않을 것 같니?


우리는 그 품에서 아늑해진다

이불 속에 파묻혀 보내는 일요일의 무사안일처럼

사랑의 중량은 커질수록 힘껏 안기기에도

힘없이 쓰러지며 안기기에도 좋으니


(-)


키 작은 천사는 하늘에 닿지 못할 것 같니?

천사라는 말의 높이가 온 힘을 다해 제자리 뛰기를 해봐도

닿을 수 없는 림처럼 느껴지니?


(-)


우리의 시선이 수심이라면, 눈금이 낮아질수록

거기서 온 힘으로 헤엄하는 지느러미를 볼 수 있다

발을 헛디디고 빠지게 되는 깊은 마음으로


그리하여 깊은 밤

홀로 농구공을 튕기던 소년이 림을 향해

닿고 싶은 마음으로 뛰어오르는 걸 본다면


아주 잠깐 그 모습이

천사의 머리 위에 달린 

둥근 링처럼 보인다면




조온윤 시집, 『자꾸만 꿈을 꾸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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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두려워하지 말기
미미 주 지음, 류진오 옮김 / 글항아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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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진오의 글을 1그램이라도 읽고 싶은 마음은 그가 옮긴 책으로 덕질을 하게 만들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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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얘기가 그렇게 음란한가요?
은하선 지음 / 오월의봄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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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의 신간이라니 고생 많으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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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중도 배웅도 없이 창비시선 516
박준 지음 / 창비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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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해 전 아버지는 자신의 장례에 절대 부르지 말아야 할 지인의 목록을 미리 적어 나에게 건넨 일이 있었다 금기형, 박상대, 박상미, 신천식, 샘말 아저씨, 이상봉, 이희창, 양상근, 전경선, 제니네 엄마, 제니네 아빠, 채정근. 몇은 일가였고 다른 몇은 내가 얼굴만 알거나 성함만 들어본 분이었다 "네가 언제 아버지 뜻을 다 따르고 살았니?"라는 상미 고모 말에 용기를 얻어 지난봄 있었던 아버지 장례 때 나는 모두에게 부고를 알렸다 빈소 입구에서부터 울음을 터뜨리며 방명록을 쓰던 이들의 이름이 대부분 그 목록에 적혀 있었다


─박준, 「블랙리스트」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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