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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 이야기
김도연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월
평점 :
지금부터 하려는 이야기는 바로 콩 이야기다.
사실 나는 꽤 오래전부터 콩과 관련된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막상 쓰려고 하면 그동안 발갛게 달아오른 프라이팬 속의 콩들처럼 소란스럽던 머릿속이 이상하게도 텅 비어버린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 콩이라니! 대체 그 자그마한 알 속에 무슨 얘기가 들어 있단 말인가! 더 중요하고 재미난 이야기들이 넘쳐나는 세상인데 겨우 콩알이나 만지작거리는 내가 한심해서 결국 들고 있던 콩 주머니를 컴컴한 곳간 속으로 던져버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콩이 내 마음속에서 영영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콩보다 더 무겁고 값이 나가는 것들, 감자나 배추 당근 당귀 무 옥수수 등등에 대부분의 시간과 힘을 들이다가도 흙 묻은 손을 털고 집으로 돌아오는 저물녘이면 아주 잠깐 ‘아, 콩이 있었지’라고 아무도 몰래 중얼거리곤 했다. 물론 집으로 들어가면 하루의 피곤에 밀려 콩 생각은 저만치 밀어두곤 그대로 잠에 빠져드는 나날이었지만. 고작해야 어지러운 꿈의 끄트머리에서 겨우 한 마디 웅얼거릴 뿐이었다. 언젠가는 콩 이야기를 쓸 거야. 그렇게 웅얼거리다가 지난 10년의 세월이 훌떡 지나가버렸다. 잘 아시다시피 세월이란 게 참 잔인하다 싶을 정도로 빨리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고 그때 어떤 사람들은 지나간 시간 속에서 이루지 못한 무엇을 아쉬워하는 경우가 있는데 내게 있어 그것은 다름 아닌 콩이었다. 막연히 콩이었다. 콩과 관련된 아무런 애틋함도 기억 속에 없었는데 바로 콩이었다. 그러니 막막할 수밖에. 이게 대체 뭔가? 왜 하필 팥도 아니고 콩이지? 내 마음이 공연히 억지를 부리는 건 아닌가. 지난가을, 한 포기에 15,000원까지 치솟은 배추값에서 나만 비껴난 분풀이를 콩에게 하려는 것은 아닐까. (-)
(-) 사실 콩을 생각하면 안 좋은 기억이 먼저 떠올랐다. 늦가을 저물 무렵 밭에서 콩을 줍던 일이 그것이다. 중학생 시절, 학교에서 돌아와 가방을 내려놓기 무섭게 아버지의 불호령에 콩밭으로 호출되던 날이 있었는데 그때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바로 다래끼를 들고 콩을 줍는 거였다. 아버지가 낮 동안 꺾어놓은 콩을 지게에 싣고 떠나면 그 자리에 떨어진 콩알을 하나하나 주워야 했다. 콩알이란 게 특이하게도 꼭 한 번에 한 알밖에 주울 수 없었다. 날은 추워서 손가락은 곱아오고 더군다나 어두워지고 있었다. 자그마한 콩알은 아무리 주워도 다래끼 바닥에서 키를 키우지 않았다. 침침한 눈을 손등으로 비벼도 콩알은 점점 보이지 않았고 곱은 손을 사타구니에 넣고 불알을 만지작거리며 녹였지만 꺼내면 이내 다시 차가워졌다. 아픈 무릎을 두드리며 작은 콩알을 하나씩 줍느니 영어단어 하나를 더 외우는 게 미래를 위해선 나을 것 같았지만 식구들 누구에게도 통하지 않았다. 날이 완전히 어두워질 때까지 꼼짝없이 콩알을 줍는다는 것은 세상 모든 게 다 콩으로 보이거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집으로 돌아와 전등불 아래서 다래끼를 들여다보면 그야말로 콩 반 돌 반이어서 고생했다는 말보다 퉁바리맞는 게 먼저였다. (-)
“콩이죠. 땅속에서 자라는 콩. 저기…… 제가 지금 콩 이야기를 써야 하거든요.”
“……쓰세요. 콩 이야기!”
사무실로 돌아가는 사서의 들썩이는 어깨를 놓고 볼 때 아무래도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불과 2년 전만 하더라도 그녀는 어떤 존경의 눈으로 나를 대했었다. 그 존경이 무의미한 눈빛으로 되돌아가는 데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봄날 콩을 심고 가을에 콩대궁을 꺾기도 전에 이미 식어 있었다. 어쩌면 그녀의 말대로 나는 산 아래에 있는 조그마한 이 도서관에서 환갑, 진갑을 모두 지내고 심지어는 열람실의 책상에 엎드려 죽음까지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경을 떠올려보았는데 이상하게도 슬픔과 기쁨의 경계가 분명하게 나눠지지 않았다. 마치 낮과 밤의 경계가 뒤섞였던 그 늦가을 저녁의 손이 곱아오는 콩 줍기처럼. 죽기 직전까지 시골 도서관에서의 콩 줍기라. 사실 나는 그동안 도서관에 다닌 과거와 도서관에 있는 현재에만 급급했지 도서관에서 맞을 미래에 대해선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건 정말이지 새로운 콩 이야기였다. 색깔이 불분명한.
“마당에 있는 울콩, 경주상회에 가지고 가서 팔아라.”
“그거 몇 푼이나 받는다고 팔아요!”
“오늘 팔아야 안 시들어!”
“에이!”
도서관에 가려고 가방을 메고 나온 내게 건넨 엄마의 울콩을 팔아 오라는 주문이었다. 콩은 구멍이 숭숭 뚫린 붉은 양파자루에 담겨 있었다. 아침나절에 딴 풋콩이었다.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귀찮은 일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자루에 담긴 콩을 장거리에 내다 파는 일이었다. 덥고 힘들고 귀찮고 당연히 폼도 나지 않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콩값이 금값도 아니니 투덜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책과 노트가 들어 있는 가방끈을 왼쪽 어깨에 걸치고 오른손에 콩자루를 쥔 채 집을 나섰다. 오전의 마지막 시내버스를 놓치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걸어야 했다. 집에서 버스정류장까지 걸어서 10분 정도 걸리는데 덥고 손이 저려오는 터라 버스가 오나 안 오나 확인하며 몇 번을 쉬어야만 했다. 온갖 투덜거림을 콩에게 쏟아놓으며. 그래도 거기까진 보는 사람이 없어 괜찮았다. 마침 장날이라 평소 한가하던 버스는 이 골 저 골에서 나온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들은 당연히 콩자루를 들고 버스에 올라탄 나를 주시하며 한 마디씩 했다. 강낭콩이네. 콩이 벌써 나오네. 콩값이 어터 되나? 앉을 자리도 없었다. 모두 낯이 익은, 그러나 말을 나눠본 적은 없는 얼굴들이었다. (-)
“콩 심어서 돈 번 사람 못 봤다!”
당연히 뼈가 있는 말이었다. 사실 나는 강낭콩을 내다 팔은 돈의 거의 대부분을 엄마에게 전해주지 않고 그냥 내 주머니에 넣어버렸다. 액수가 좀 크다 싶으면 어쩔 수 없었지만 나머지는 차비와 담뱃값, 점심으로 사 먹는 김밥값…… 등등의 용도로 사용했다. 부모 자식 지간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어린 시절에 농촌생활을 겪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덩치가 큰 농작물이 아버지의 소관이라면 자잘한 것들은 어머니의 영역에 속한다는 것을. 어머니는 그 잡곡들을 장에 갈 때마다 한 말씩 머리에 이거나 배낭에 지고 나가서 팔아 자잘한 생필품이나 반찬거리들을 사 오곤 했다. 거기에다가 그런 곡물이나 봄날의 산나물 같은 것들은 누가 키웠고 누가 뜯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다 판 사람이 임자라는 농촌의 우스갯말도 있었기에 나는 별다른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았다. 물론 내가 매일 콩 한 자루를 메고 나와 팔아버린 것도 아니었다. 가끔, 아주 가끔일 뿐이었다. 그런데…… 다시 곰곰이 그때를 생각해보니 어쩌면 엄마는 내가 도시에서 벌여놓았던 일들을 모두 말아먹고 거의 무일푼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온 처지를 모두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하루에 5,000원을 가지고 도서관을 들락거린다는 사실도. 내게 팔아 오라고 건네준 콩자루는, 그러니까…… 엄마의 안타까움이 분명했다. 터미널 옆 치킨집에 앉아 튀긴 닭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생맥주를 홀짝거리던 나는 고개를 꺾어야만 했다.
“주문한 거 포장해주세요.”
“반 마리를요?”
“반 마리는 안 됩니까?”
“……됩니다.”
(-) 콩을 두 손바닥으로 감싼 채 흔들어 보았다. 적당하게 간지러운 콩의 소리가 들렸다. 마침 다시 사서가 내 곁으로 다가오자 재빠르게 콩을 두 손에 나누고 움켜쥔 오른손을 내밀며 물었다.
“홀일까요, 짝일까요?”
“자꾸 콩 가지고 장난하면 내쫓을 겁니다.”
“알았어요. 홀? 짝?”
“……짝.”
나는 손바닥을 펼쳤다. 반들반들해진 콩들이 손바닥 위에서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홀이네요.”
“콩 이야기 쓰는 거 정말 맞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서의 표정에는, 만약 사실이 아니면 아무리 10여 년 동안 줄곧 도서관을 드나들었다 해도 영영 추방시키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나는 두 손에 있던 콩을 작고 투명한 비닐봉지에 담았다. 홀이라는 사실이 왠지 슬퍼졌다.
“다 쓰면 보여드릴게요.”
택시에서 내린 나는 집을 향해 걸었다. 별들이 총총한 봄밤이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밤하늘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내가 아는 별자리는 많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고작해야 눈에 잘 띄는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이아가 전부였다. 콩 이야기가 끝나면 북두칠성의 네 번째 별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있지만 자신할 순 없었다. 사실 콩 이야기만이라도 잘 끌고 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도서관에 앉아 내가 한 일은 고작 손바닥이나 노트북 자판 위 여기저기에 콩들을 올려놓고 들여다보거나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은 것 정도가 전부였다. 그 콩들이 스스로 입을 열고 내게 말을 걸어왔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었다. 사실 자그마한 콩 속에 어떤 이야기가 들어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집으로 건너가는 다리 위에서 나는 술 냄새가 가득한 한숨을 하늘로 올려 보냈다. 낮 동안의 구름들은 모두 어디론가 사라지고 별들만 촘촘한 하늘로. 북두칠성의 네 번째 별은 다른 여섯 개의 별들과 달리 그런 내 마음처럼 희미하게 깜박이고 있었다. 그래도 여기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이냐고 내게 속삭이는 것 같기는 했다. 마치 까만 쥐눈이콩의 작은 눈처럼. 그러고 보니 왠지 하늘의 별이나 지상의 콩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누가 되지 않는다면 그 별들에게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다. 목욕탕에서 때를 미는 때밀이, 할머니 등에 업혀 장에 가는 아기, 도서관 옥상에서 콩을 심는 사서, 콩자루를 들고 툴툴거리며 시내버스를 타는 나, 매일같이 콩과 팥을 나누고 합치고 다시 나누는 엄마와 아버지…… 야, 이거 괜찮은 별과 콩의 이야기구나! 나는 집으로 가는 길에 신이 나서 별들의 새 이름을 지어주었다. 아주까리콩, 흰콩, 선비제비콩, 누렁콩, 우렁콩, 푸른콩, 얼룩콩, 밤콩, 좀콩, 작두콩, 완두콩, 까치콩…… 그러다 결국 돌부리에 걸려 손도 못 내민 채 앞으로 넘어지고 말았다. 뭐, 인생에서 가끔 벌어지는 일이었다. 옷에 묻은 흙을 털고 얼얼한 뺨을 문지르는데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드니 집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어둠 속에 오롯이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술 취한 아버지는 잠들었고 돋보기를 쓴 엄마는 둥근 상 위에 콩을 가득 올려놓고 하나하나 고르는 중이었다. 오래된 경전을 읽듯이. 내 꼬락서니를 훑어본 엄마가 입을 열었다.
“애비나 자식이나…….”
_『현대문학』 2011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