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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머니는 맑고 강풍
최진영 지음 / 핀드 / 2025년 6월
평점 :
나는 자발적 여행마저 해내야 하는 '일'처럼 수행하는 사람. 일상의 비슷한 흐름이 깨지는 상황을 매우 버거워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청소를 하고, 정오부터 저녁 6시까지는 내 방에서 글을 쓰고, 저녁 산책을 다녀온 뒤 야구를 보면서 이기거나 지는 기분으로 마무리하는 하루가 나에게는 행운이고 행복이다. (-) 내가 나에게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은 '할 수 있을까?' 강연이나 북토크를 시작하기 직전까지, 인터뷰나 미팅을 위해 약속 장소로 갈 때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침대에서 벗어나기 전에 나 자신에게 거듭 묻는다. 낯선 번호로 전화가 오면 통화 버튼을 누르길 망설이면서, 때로는 머리를 감기 전에도, 컴퓨터 전원을 켜기 전에도, 심지어 엄마에게 안부 전화를 하기 전에도 스스로에게 묻는다. 할 수 있을까?
(-) 할 수 있을까. 쓸 수 있을까. 사랑할 수 있을까. 나의 가장 깊은 곳에서 펄펄 끓는 질문들. 누구에게도 던질 수 없는 질문을 나에게 하려고 글을 쓴다. 나에게 들어야만 하는 대답이 있기에 계속 쓴다.
제주의 '무한의 서'를 정리하고 제주를 떠나기 전까지 두어 달 동안, 저녁마다 다크니스와 함께 한림항의 방파제를 걸었다. (-) 힘찬 바람이 우리의 대화를 가로막았던 어느 날 나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길 없음'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길이 없다는 경고판을 보고도 계속 걸어가는 거야. 한참을 걸어서 절벽 앞에 다다르는 거야. 그렇게 끝까지 걸어가서 길은 없지만 무언가가 있음을 확인하고 돌아오는 사람의 이야기를 언젠가는 쓸 거야. 꼭 쓸 거야. 나의 다짐을 듣고 다크니스는 대답했다. 그래, 너는 쓸 거야. 꼭 쓸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