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코끼리
스에요시 아키코 지음, 양경미.이화순 옮김, 정효찬 그림 / 이가서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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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혼. 다시는 입에 담지 말라는 신랑의 목소리가 쟁쟁하게 들려온다.
부모님의 서두름에 얼떨결에 결혼이라는 것을 한 내가 이혼은 내 힘으로 해 보겠다고 나선 적이 있었다. 20개월을 바라보고 있는 딸 아이가 백일이 채 되지 않았을 무렵이다. 보면 볼수록 이쁘고 사랑스러움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는 말이 사실이다. 정말 그랬다. 그렇지만 잠시도 내 손이 쉬고 있으면 난 자리는 안다고 금새 표가 나고, 내 생활을 한다는 건 생각도 못할 뿐 아니라, 잠시도 그냥 두지 않는 아이로 나는 나날이 지쳐만 갔다.

식은 밥이라도 끼니를  챙겨먹고, 화장실이라도  잠시 다녀왔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누군가가 잠시라도 아이를 안고 있어 주었으면 하고 바랄 때가 셀 수도 없이 많았다. 날마다 회사 일로 새벽에 들어오는 신랑을 이해하면서도 난, 내 편이 되어, 육아에 대한 힘겨움을 알아주고 위로해 주기만을 바랬지만, 피곤에 찌든 신랑 앞에서 나의 힘겨움은 팔자 편한 투정으로 밖에는 들리지 않았다.  신랑과의 신경전을 벌이는 와중에 아이의 얼굴에 태열이 오르기 시작하면서 하루 24시간을 손 안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아 삼일 밤낮을 품에 안고 웃고 울고 자야만 했다. 그 때 난 결심했다. 이혼녀라는 이름표가 지금의 이 힘겨움보다는 나을 거라고, 혼자 이렇게 바둥거려도 이 모습 이대로가 끝이라면 더이상 기댈 것도 바랄 것도 없다고 말이다.

요군과 나나는, 흔들리는 나를 단호하게 잡은 신랑이 없었다면 나의 아이가 평생 가슴에 안고 갈 상처이고,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기다리게 되는 오래된 그리움을 현실로 보여주는 단상이며, 나의 이기적이고 섣부른 행동에 마침표를 찍어주기에 충분하였기에 마음을 더욱 아리게 한다.
요군은 엄마의 상처를 드러내어 감싸주면서 새로운 가정의 가장 역할을 충실히 해 내는 11살 생일을 맞이한 엄마의 아들이다.

바보, 멍청이에 속 뒤집어지는 낙천주의자. 이것이 요군이 바라본 엄마의 진짜 모습이고 마음 깊이 보듬어 줘야만 하는, 어른이기에 안타까운  엄마의 모습이다.  덤벙거림으로 하루의 시작을 알리고, 일을 할 때면 아이들의 식사는 번번이 잊어 아이들의 아우성을 들어야 하고, 차에 열쇠를 꽂아놓고 문을 잠그고 나와 소동을 벌이는가 하면, 아이를 베이비시터에게 보내면서 전차 역이름을 잘못 말하여 졸지에 미아 신세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이렇게 나약하고 허점투성이 엄마가 처음으로 '노란 코끼리' 같이 생긴 자동차를 사 차고에 집어넣었을 때 또 한 번 기암을 토하고 말았다. 실기에서 떨어졌지만 언젠가는 면허증을 손에 넣을 테니 미리 차를 샀다는 것이 엄마의 해명이다. 이를 본 요군은 어른이면서 자신보다 생각이 짧은 엄마때문에 한숨이 절로 내쉬어지고, 마냥 어린 아이 나나는 행복에 젖어 노란 코끼리와의  만남을 즐겁게 받아들인다.  요군은 잠시 나나였으면, 나나처럼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는 나이라면 빗속을 뚫고 지나가는 아빠를 쫓아가 우산을 씌워 주며 마지막으로 한 번 가지 말라고 잡아 보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군은 그러기에는 너무나 커버렸다. 아빠가 왜 돌아올 수 없는지, 우산을 받으면 다시 돌려주러 와야 하기 때문에 받을 수 없다는 아빠의 말에 담겨진 의미를 너무나 잘 안다. 그러기에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아빠의 뒷모습을 단한번도 바라보지 않고 나나의 어깨를 잡고 집으로 돌아간다. 이것이 아빠와의 이별이다.  이것은 더이상 요군과 나나에게 그리고 엄마에게 아빠도 남편도 없다는 것을 말해 준다.  

엄마는 모든 일에 서투른, 요군의 마음을 쓰이게 한다. 엄마 자신도 너무나 잘 알면서도 시행착오를 겪으며 끊임없이 일을 만들고 안절부절해 하며 새로운 일을 또 시작한다. 엄마는 요군과 나나에게 멋진 엄마로 잘하는 엄마로 보이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다만 아빠가 없는 집에서 요군과 나나를 지켜낼 사람은 엄마 자신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예전처럼 그대로 있어서는 안 되겠기에 쉴새없이 무언가에 도전을 하는 것이다. 작고 낡은 노란 코끼리는 할 수 없다는 우물 안 개구리를 사회 속으로 밀어내는 촉매제를, 나약하고 잘하는 것 없는 한 사람이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용기를 심어주는 아주 의미있는 존재가 되어 그들 곁을 떠나갔다.
나약한 이혼녀가 아닌 당당한 엄마인 다나짱과 그녀의 아이들에게 노란 코끼리는 새로운 세상으로의 출발과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안아주는 연결 고리가 되어 주었다.

노란 코끼리. 그의 가슴 속엔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담겨져 있을까?
10년이란 사회 생활을 접고 육아에 전념하면서 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나로 인해 힘들었을 신랑이, 그래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한 아이의 엄마라는 자리에 머물게 해 준 것에 대해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내 마음속에 담겨진 소중함과 고마움 그리고 항상 곁에 있어줄 거라는 믿음이 노란 코끼리였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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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경제학
유병률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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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빚내서 집을 산다고?

작년 2월 아기가 태어나기 석달전, 신랑이 느닷없이 집을 사자고 하였다. 결혼하면서, 결혼하고 나서도 양쪽 부모님에게 단 돈 십원 하나 받은 거 없이 하나부터 열까지 우리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는 형편에 어떻게 집을 사느냐는 내 말에 신랑은 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적금 통장과 집은 다르다고. 아기가 태어나면 집은 꿈일 뿐 현실이 될 수 없다는 말로 설득시켜왔다.

대출? 결국 은행에서 돈을 빌리자는 말인데, 육아로 무기한 휴직으로 맞벌이에서 외벌이로 전환이 되는 이 상황에 대출이자와 원금은 다 어떻게 갚을까,란 생각에 난 두려웠다.

우리는 완공 되지 않은 아파트에 P라는, 정말 납득이 되지 않는 정말 아깝다는 생각만 드는 P를 일이만원도 아닌 천만원이 훌쩍 넘는 금액을 주어야 했다. 그래야만 우리 것이 된다는 것이다.  P라는 것이 무엇이고, 왜 주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동안 힘들게 모은 돈을 한 순간에 남의 손에 쥐어져야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나고 아깝다는 생각에 며칠 밤잠을 설쳤다.

이렇게 난 경제에 무지하고 내가 아는 얄팍한 상식으로 경제를 논하는 탐관오리였던 것이다.

 나는 여자다.

여자는, 결혼 잘 해서 신랑의 그늘 아래서 잘 살면 된다는 생각을 눈꼽만치도 해 본 적 없는 여자다.

내가 좋아하는 일 열심히 하고, 그 댓가로 주어지는 월급을 요긴하게 잘 나누어 쓰면서, 적당한 금액만큼 적금을 넣어 목돈을 만드는 것이 경제이며, 돈 모으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해 왔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흥청망청 쓰지 않는 것에 대한 보상인 것처럼 적금 만기일에 모인 목돈이 나의 자랑이며, 사회 생활 10년이란 시간을 대신해 주는 뿌듯한 증거물이라고 여겨왔다.

나는 그랬다. 내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그것은 나만의 착각이고, 경제를 모르는 여자라는 것을 떠벌리고 다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난 나름대로 경제에 밝지는 않지만, 돈을 열심히 모으려고 애쓰는 사람들 중에 하나일거라고 생각했던 것이 기회와 돈을 잃게 하였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자 경제학』이라는 단 한권의 책으로 나의 경제적 실체가 고스란히 드러나고야 말았다.

나 자신을 위해 아무런 투자도 하지 않는 것,

경제는 남자들의 전유물인양 등한시 하며 사는 것,

나의 가치를 상승시키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나의 현실이고, 경제를 모르는 여자의 표본이 되어가고 있었다.

환율, 금리, 부동산, 시세, 펀드라는 말이 언론 매체에서 날마다 떠들고, 사람들의 귀를 솔깃하게 만드는데, 여전히 그 사람의 관심사가 모두 나의 관심사가 되는 것은 아니지, 하며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난, 절대 아싸~ 가오리!가 될 수 없음을 대신해 주고 있다.

그러나 절망만을 안겨주려고 하지는 않는다. 희망이 존재하며, 얼마든지 기회가 있음을 말하는 친절함이 나에게 경제적 펀드가 되었음을 말하고 싶다.

남자 중심의 세상에서 남자 여자 평등의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경제는 자신이 지닌 가치와 존중을 지켜나가는 필요조건이며, 관심을 기울이며 귀를 기울였을 때 경제에 눈을 뜨게 하는 바탕이 될 수 있음을 전하고 있다.

 모아 놓는 족족 카드값으로 대출이자로 나가는 우리의 가계를 살리기 위해 가계부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돈을 아끼고 아끼는 나의 유일한 경제활동이, 나아가 경제 마인드를 갖는 나로 발전되는 그 날까지 어렵고 재미없다는 경제의 문턱을 열심히 넘어보련다.

나에게 찾아오는 기회와 재테크의 성공을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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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관계 1
안도현 지음, 이혜리 그림 / 계수나무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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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랑 걔랑 어떤 사이야? 사귀는 거 아니야?"
하는 주위의 의심을 받으면서도 우리로 얽히는 것을 겁내한 나와 걔는 친구라는 관계로 단정지으며, 그 이상 그 이하로 관계를 짓는 것은 서로를 불편하게 만든다는 초라한 핑계라는 것을 대면서 극구 부인할 때가 있었어요. 그러길 세 해를 넘기고 나와 걔는 주위의 의심을 현실로 전환시키면서 누가 보아도 연인임을 알 수 있는 우리가 되어가길 바라면서 사랑의 고리를 채웠지요.
'나와 너'에서 '우리'라는 관계를 맺으며 어느 새 '우리 마누라는, 우리 신랑은'하는 부부가 되었고, 두 돌을 바라보는 아이에게는 '엄마 아빠'로 불리우며 가족이라는 관계를 맺으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어요.

나라는 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부모에게는 고집 센 셋째딸로, 형제에게는 제 할 일 똑 부러지게 하는 동생으로 누나로, 신랑에게는 어설픈 완벽주의로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마누라로 아이에게는 항상 곁에 있어주는 든든한 엄마라는 이름표를 달고 이 믿음이 깨어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깨어지더라도 곁에 있어주는, 우리의 관계를 의심치 않으며 살아가고 있음을 나는 압니다.
그들과 나의 연결 고리 속에는 뿌리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혈연 관계가 적용되어 있지만, 그 보다 더한 것은 한 번 맺어진 관계는 신뢰와 그 동안의 노력의 결과라는 믿음이 해를 더해 갈수록 더 큰 자리를 차지해 가고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톡"
하는 소리와 함께 시작되는 동화 '관계'
갈참나무에서 땅으로 떨어져 버린 도토리 한 알.
외롭고 캄캄한 땅 위의 공포도 잠깐, 봄 여름 동안 함께 지냈던 나뭇잎들이 도토리의 곁을 지켜 주지요.
나뭇가지에서는 비바람을, 땅 위에서는 인간과 쥐의 먹이로부터 몸을 가려주고, 숨어 사는 것이 갑갑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려 할 때 도토리가 있어야만 나뭇잎도 존재할 수 있다는, 도토리와 나뭇잎이 또다시 만나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이 나뭇잎 모두의 꿈이라고 견뎌내야 하는 존재의 이유를 설명해 주지요.
이 말은 도토리 자신을 아끼고 사랑할 수 있게 하는 용기의 메시지가 되어 도토리를 추위와 고통 속에서도 살아가게 해 주는 힘이 되어 준답니다.

나뭇잎들은 도토리에게 존재하는 갈참나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세상 속에 한 그루의 나무로, 동물들에게는 겨우내 먹이로 키워낸답니다. 도토리로 하여금 새로운 생명을 꿈꾸고, 도토리는 나뭇잎으로 하여금 갈참나무가 되어 새로운 생명을 키워나가요.
이것이 바로 진정한 관계이며, 서로가 존재하는 이유라고 하겠지요.

작은 도토리의 가슴 속에,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 존재만은 분명한 갈참나무 한 그루.
우리는 도토리 한 알에서 자라나는 갈참나무의 존재를 믿듯, 우리들 가슴 속에 잠재되어 있는 희망과 새로운 용기를 믿고 그것을 세상에 펼치기까지 닥쳐올 어려움을 겪어내야만 합니다.
도토리가 잘 해 나가고 있음을 우리의 식탁을 사계절 내내 장식해 주고, 시골 뒷산에는 여전히 다람쥐들이 오독오독 씹으며 끼니를 해결하는 맑은 소리로 알 수 있잖아요.
이제 조금은 덜 두렵지 않나요?
보이지 않는 희망의 길이 외롭게 느껴지지는 않을 테니까요.

'연어'라는 동화를 통해 안도현 시인의 문체와 사고에 매력을 느낀 저에게 '관계'는 또 한번의 행복함을 안겨주기에 너무나 충분한 동화였어요.
우리 인간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생명들에게서 인간들이 배워야 하는, 누구나 알고 있기에 쉽게 지나쳐 버리는 의미를 전달하지요.
나뭇잎과 도토리.
엄마와 아이.
아이의 가슴 속에서 날마다 자라고 있을 새싹이 세상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 나뭇잎과 열매를 키워낼 수 있도록 비바람을 막아주고, 행복함으로 껴안을 수 있는 따스한 가슴이 될 수 있도록 오늘도 열심히 내 몸이 먼저가 아닌, 세상에 나올 모두의 꿈을 위해 내 몸을 낮추렵니다. 도토리와 나뭇잎이 서로 관계를 맺어 한 그루의 갈참나무를 키워내었듯이 '나와 너'가 아닌 '우리'의 관계로,세상에 아름다운 미소 하나 떨구고 가는 내가 되고픈 바람이 욕심처럼 저를 찾아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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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든에서의 그 여름
라빌 스펜서 지음, 이창식 옮김 / 고려원북스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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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둘이라는 나이와 함께 서른 두 해를 살아오면서 그 중 이십 구년 동안은 몸만은 자유였다. 그리고 그 중 이년은 사랑이란 이름의 한 남자로, 그 중 일 년은 한 남자와 사랑의 결실로 태어난 사랑스런 딸과 지내며 이제는 몸도 마음도 자유에서 벗어났다. 
점차 나와 연결되어지는 이들이 하나에서 둘로 늘어나면서 완벽하게 자유를 누렸던 것도 아니면서 이십 구년의 시간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육아로 몸이 지치고, 집에서 약간의 내 일을 하면서 마음이 지칠 때 혼자였다면 지금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살며시 나를 찾아온다.
한 남자를 사랑해서, 한 남자와 결혼해서, 한 남자와 나 사이에서 태어난 생명이 생기면서 늘 행복했다고 장담하지 못한다면, 그건 불행해서 일까?
행복하지 않은 건, 불행해서도 행복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생활에 스스로 안주해 버리기 때문인 것이다. 행복도 불행도 느끼지 못하는 말 그대로 안주.
난 이게 너무 싫어질 때 이혼이라는 말을 생각해 본다. 내가 정말 이혼을 한다면, 로베타 주에트처럼 이혼녀가 된다면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무엇을 하며 생계를 유지해 가고, 사람들의 시선을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할지 막막함을 지나 두려움마저 든다.

며칠 전, 모 방송국에서 아이의 행동에서 문제점을 찾아 해결하는 프로그램을 신랑과 함께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 날 방송된 아이는 이혼 경험이 있는 엄마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막내둥이이다. 우리 부부가 그 프로그램에서 중점을 두고 본 건 막내둥이의 행동이 아닌, 이혼을 하고 재혼을 하면서 가족을 이루게 된 세 명의 자녀였다. 방송 진행자는 인터뷰를 통해 부모님의 이혼에 대한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토해내게 하였다.
‘아이들이 무슨 죄길래? 방송이 대체 뭐길래? 지나간 아픈 상처를 저렇게 들추게 하여 아이들의 눈에 눈물을 맺게 하는 거야?’ 이게 우리 부부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그 뒤를 이어 신랑은 ‘이혼은 어떤 경우에도 하면 안 되는 거야. 어른들이 서로 한 발만 물러서면 되는데, 아이들에게 저런 고통을 줘.’한다. 나는 아니다. 아이들의 고통과 상처가 마음 아프고 안쓰럽지만, 어떤 경우라는 조건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때론 함께 하기에 서로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는 경우가 있다. 로베타의 전 남편 조지의 행동은 로베타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 정당화시키지 못하며, 가정은 아이들에게 울타리 역할을 해 주지 못하였다고 판단된다. 아이들에게 가정은 마음에 영양제를 충전하는 곳과 다름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정의 필요성과 소중함을 알지 못하는 남편과 이혼을 하고 고향 캠든으로  돌아온 로베타와 그녀의 세 딸. 자유로움 속에서 자라 행복이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깨달아가는 그들에게 캠든은 그리 넉넉한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눈 속에 들어온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새로운 환경들을 자신들의 방식대로 사랑하고 가꾸면서 새로운 사랑도 가정도 꾸려나간다.
이혼녀라는 이름표가 그녀의 모든 행동들에 제약을 주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따갑고 주목될수록 힘이 나는 로베트를 보면서 이혼녀라는 이름표는 그 뿐,  자기 자신을 포기하고 스스로 이혼이라는 굴레 속에 가두어두는 것이 더 큰 사회로의 걸림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자로, 아내로, 엄마로의 자리를 지켜나가야 하는 많은 여자들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에만 연연해하지 말고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는 존재감을 위해서도 꾸준한 연습과 노력이 필요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혼녀가 아닌 여자로 엄마로 당당하게 세상과 맞서는 로베타의 생기 있고 기운 넘치는 모습을 통해 신랑에게 많은 것을 의지하고 사는 나의 나약함이 미안해졌다면, 이 또한 로베타를 향한 편견은 아닐까 하는 마음에 조심스러워진다.
나만 괜찮다면, 다른 사람들의 말은 말일뿐으로 여기는 당당한 그녀가 이루어내는 가브리엘과의 사랑 또한 로베타이기에 이루어낼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한다.
상처가 있는 두 사람이 사랑을 하면서 자연스레 과거의 상처를 보듬어 주게 되고, 그 상처마저도 추억으로 남겨둘 수 있었던 그들의 모습이 잔잔하게 내 가슴에 스며들어와 글의 마지막을 알리는 맺음이 왔을 때 아쉬움이 찾아 들었다. 얼마만에 느껴보는 아쉬움과 기쁨인지….

난 캠든에서의 여름 이야기를 읽으면서 로베타가 삶을 살아가는 당당함과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 그리고 솔직하고도 따스함이 묻어나는 마음의 표현들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부러웠다.
자유스럽게 키우는 세 딸의 모습을 보면서 더욱 그러했다.
책을 읽는 내내 연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 것 또한 로베타만의 교육 방식이었다. 자연을 벗삼아 자연을 있는 그대로 즐기며 자연에서 나눔을 배우며 서로를 향하는 그 마음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흐뭇했는지,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를 생각하게 하였다. 이것 또한 내가 한 아이의 엄마이기에 가능한 생각이었겠지.

결혼과 이혼, 그리고 재혼은 우리 모두의 삶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것을 기억하고 어느 것을 잊는지는 오직 나만의 선택이지만, 우리의 삶 주머니 속에는 세 가지의 맛이 담긴 사탕이 모두 들어있는 것이다.
나는 로베타를 응원하고, 그녀의 삶을 존중하지만, 사랑을 한다면 사랑을 했다면 사랑을 하고 있다면 씁쓸한 맛의 사탕을 먹어 입맛을 떨어지게 하는 실수보다는 달콤해서 녹아내리는 것마저도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행복의 사탕을 집어 달콤함이 내내 입 속에 머물렀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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