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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든에서의 그 여름
라빌 스펜서 지음, 이창식 옮김 / 고려원북스 / 2006년 7월
평점 :
서른 둘이라는 나이와 함께 서른 두 해를 살아오면서 그 중 이십 구년 동안은 몸만은 자유였다. 그리고 그 중 이년은 사랑이란 이름의 한 남자로, 그 중 일 년은 한 남자와 사랑의 결실로 태어난 사랑스런 딸과 지내며 이제는 몸도 마음도 자유에서 벗어났다.
점차 나와 연결되어지는 이들이 하나에서 둘로 늘어나면서 완벽하게 자유를 누렸던 것도 아니면서 이십 구년의 시간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육아로 몸이 지치고, 집에서 약간의 내 일을 하면서 마음이 지칠 때 혼자였다면 지금 내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살며시 나를 찾아온다.
한 남자를 사랑해서, 한 남자와 결혼해서, 한 남자와 나 사이에서 태어난 생명이 생기면서 늘 행복했다고 장담하지 못한다면, 그건 불행해서 일까?
행복하지 않은 건, 불행해서도 행복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생활에 스스로 안주해 버리기 때문인 것이다. 행복도 불행도 느끼지 못하는 말 그대로 안주.
난 이게 너무 싫어질 때 이혼이라는 말을 생각해 본다. 내가 정말 이혼을 한다면, 로베타 주에트처럼 이혼녀가 된다면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무엇을 하며 생계를 유지해 가고, 사람들의 시선을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할지 막막함을 지나 두려움마저 든다.
며칠 전, 모 방송국에서 아이의 행동에서 문제점을 찾아 해결하는 프로그램을 신랑과 함께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 날 방송된 아이는 이혼 경험이 있는 엄마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막내둥이이다. 우리 부부가 그 프로그램에서 중점을 두고 본 건 막내둥이의 행동이 아닌, 이혼을 하고 재혼을 하면서 가족을 이루게 된 세 명의 자녀였다. 방송 진행자는 인터뷰를 통해 부모님의 이혼에 대한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토해내게 하였다.
‘아이들이 무슨 죄길래? 방송이 대체 뭐길래? 지나간 아픈 상처를 저렇게 들추게 하여 아이들의 눈에 눈물을 맺게 하는 거야?’ 이게 우리 부부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그 뒤를 이어 신랑은 ‘이혼은 어떤 경우에도 하면 안 되는 거야. 어른들이 서로 한 발만 물러서면 되는데, 아이들에게 저런 고통을 줘.’한다. 나는 아니다. 아이들의 고통과 상처가 마음 아프고 안쓰럽지만, 어떤 경우라는 조건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때론 함께 하기에 서로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는 경우가 있다. 로베타의 전 남편 조지의 행동은 로베타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 정당화시키지 못하며, 가정은 아이들에게 울타리 역할을 해 주지 못하였다고 판단된다. 아이들에게 가정은 마음에 영양제를 충전하는 곳과 다름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정의 필요성과 소중함을 알지 못하는 남편과 이혼을 하고 고향 캠든으로 돌아온 로베타와 그녀의 세 딸. 자유로움 속에서 자라 행복이 무엇인지, 사랑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깨달아가는 그들에게 캠든은 그리 넉넉한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눈 속에 들어온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새로운 환경들을 자신들의 방식대로 사랑하고 가꾸면서 새로운 사랑도 가정도 꾸려나간다.
이혼녀라는 이름표가 그녀의 모든 행동들에 제약을 주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따갑고 주목될수록 힘이 나는 로베트를 보면서 이혼녀라는 이름표는 그 뿐, 자기 자신을 포기하고 스스로 이혼이라는 굴레 속에 가두어두는 것이 더 큰 사회로의 걸림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자로, 아내로, 엄마로의 자리를 지켜나가야 하는 많은 여자들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에만 연연해하지 말고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는 존재감을 위해서도 꾸준한 연습과 노력이 필요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혼녀가 아닌 여자로 엄마로 당당하게 세상과 맞서는 로베타의 생기 있고 기운 넘치는 모습을 통해 신랑에게 많은 것을 의지하고 사는 나의 나약함이 미안해졌다면, 이 또한 로베타를 향한 편견은 아닐까 하는 마음에 조심스러워진다.
나만 괜찮다면, 다른 사람들의 말은 말일뿐으로 여기는 당당한 그녀가 이루어내는 가브리엘과의 사랑 또한 로베타이기에 이루어낼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한다.
상처가 있는 두 사람이 사랑을 하면서 자연스레 과거의 상처를 보듬어 주게 되고, 그 상처마저도 추억으로 남겨둘 수 있었던 그들의 모습이 잔잔하게 내 가슴에 스며들어와 글의 마지막을 알리는 맺음이 왔을 때 아쉬움이 찾아 들었다. 얼마만에 느껴보는 아쉬움과 기쁨인지….
난 캠든에서의 여름 이야기를 읽으면서 로베타가 삶을 살아가는 당당함과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 그리고 솔직하고도 따스함이 묻어나는 마음의 표현들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부러웠다.
자유스럽게 키우는 세 딸의 모습을 보면서 더욱 그러했다.
책을 읽는 내내 연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 것 또한 로베타만의 교육 방식이었다. 자연을 벗삼아 자연을 있는 그대로 즐기며 자연에서 나눔을 배우며 서로를 향하는 그 마음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흐뭇했는지,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를 생각하게 하였다. 이것 또한 내가 한 아이의 엄마이기에 가능한 생각이었겠지.
결혼과 이혼, 그리고 재혼은 우리 모두의 삶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것을 기억하고 어느 것을 잊는지는 오직 나만의 선택이지만, 우리의 삶 주머니 속에는 세 가지의 맛이 담긴 사탕이 모두 들어있는 것이다.
나는 로베타를 응원하고, 그녀의 삶을 존중하지만, 사랑을 한다면 사랑을 했다면 사랑을 하고 있다면 씁쓸한 맛의 사탕을 먹어 입맛을 떨어지게 하는 실수보다는 달콤해서 녹아내리는 것마저도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행복의 사탕을 집어 달콤함이 내내 입 속에 머물렀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