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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만 낳으면 엄마가 되는 줄 알았다 - 아이와 함께 커가는 엄마들의 성장 육아 에세이
파워 오브 맘스 지음, 구세희 옮김 / 북라이프 / 2014년 9월
평점 :
절판
세상에서 엄마라는 직업(?)이 가장 위대한 이유 중 하나는 엄마는 결코(!) 퇴근할 수 없다는 것이 아닐까요? 게다가 휴직도 없이 일단 엄마가 되고 나면 최소 18년 혹은 그 이상 끊임없이 엄마로써 살아야 한다는 것 역시 만만한 일이 아닙니다. 오래전 유행했던 다마고치처럼 힘들거나 질렸다고 리셋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힘들어도 나몰라라 외면할 수도 없으니 정말 ‘모두가 엄마가 될 수 있지만 아무나 엄마로써 살아갈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네이버 카페에만 해도 육아 카페가 참 많습니다. 힘들고 지친 엄마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그것을 통해 위로를 얻는 것은 “나는 혼자가 아니니까”라는 동질감이 아닐까 싶습니다. 상황은 달라도 비슷한 고민을 나누고 노하우를 배우다 보면 눈앞에 닥친 문제 때문에 편협해진 시야를 넓힐 수도 있고 다른 관점에서 접근할 수도 있으니까요. 미국의 파워 오브 맘스(Power of Moms)가 그렇습니다. 전혀 다른 환경의 전혀 다른 엄마들이 모여 육아에 대해 이야기하고 고민을 털어놓는 파워 오브 맘스, 2007년에 생긴 미국 엄마들의 “힐링”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들 중 수많은 엄마들의 가슴을 울리고 마음을 움직인 포스팅만 골라 발간된 신간, <아이만 낳으면 엄마가 되는 줄 알았다>를 소개합니다!
엄마로써 살아간다는 것
엄마가 된다고 하면 그저 축하해주시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열에 일곱 여덟분은 저주 아닌 저주(?)같은 예언을 하시곤 합니다. “좋을 때 다 지났네”, “이제 지옥의 문이 열릴거야” 혹은 “인생 끝났네” 등 아이를 낳는 것이 그렇게 끔찍한 일일까 (그리고 도대체 그렇다면 어째서 대부분은 아이를 낳고 자신의 삶을 지옥으로 만드는 결정을 하는걸까?) 싶을 정도로 말이죠. 유럽에서 들어온 저로써는 그냥 ‘한국문화’ 하고 넘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한국에서 쭉 사신 분들도 이런 부정적인 이야기로 인해 출산과 육아에 대해 왜곡된 시선을 가지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육아의 선배들은 즐겁고 행복한 이야기보다 괴롭고 힘든 이야기를 즐겨(?) 하시는 걸까요?
<아이만 낳으면 엄마가 되는 줄 알았다>의 엄마들을 만나보면 그 이유를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엄마 중에는 화려한 커리어우먼도 있었고, 결혼 전에는 자신의 인생을 즐겁게 누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생긴 후 180도 달라진 자신의 삶에 우울증도 겪고 무력감과 자책감에 싸여 괴로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죠. 자유로운 에세이 식으로 전개되는 그들의 이야기는 아마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고개를 끄덕이며 격하게 공감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예전처럼 “여자는 그저 시집 잘 가서 애나 키우는거지”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이제 아마 찾아보기 어려울테니까요.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한 사람의 여자로써, 사회구성원으로써 그리고 자신을 계발하고 일하는 커리어우먼으로써 살아왔던 여자들은 “엄마”라는 타이틀을 단 후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됩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도 아이 뒷바라지를 하고 집안을 청소하고 나면 부지런하게 움직인 것이 허무할 정도로 시간이 빨리 가고 오후가 다 되어도 얼굴조차 씻지 못한 채 초라한 몰골로 있기 일쑤이고, 그나마도 하루이틀 청소를 미루게 되면 집안은 아수라장으로 변하고… 어지럽히고 치우고 먹고 치우는 일이 무한대로 반복되면서 “이렇게 보람없이 일만 하다 죽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되는 상황. 아이들도 남편도 이런 마음을 몰라주면 세상에 혼자가 된 것처럼 외롭고 무기력해지는 엄마라는 이름. <아이만 낳으면 엄마가 되는 줄 알았다>의 엄마들이 공통적으로 호소하는 고민입니다. 자기계발은 고사하고 제대로 화장 한번 하기 어려운 엄마들의 좌충우돌 적응기를 읽고 있노라면 “도대체 무엇이 날 기다리고 있는거지!!”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지금 임신 33주차로 다음달이면 드디어 아기와 만나게 되거든요!). 아기를 맞이하기 위한 행복한 준비를 하다가도 문득 ‘이것이야말로 바로 폭풍 전 고요가 아닐까?’하는 우스갯소리가 나오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로써 살아간다는 것
이런 글을 읽으면서 혹자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거봐. 이러니까 내가 엄마가 되기 싫다는거야. 희생할 것, 포기해야할 것 투성이고, 애 없이도 잘 살 수 있는데 굳이 고생을 사서 할 이유가 없잖아!”라고요. 오히려 그런 분들에게 이 책을 더 권해드리고 싶은 이유는 이 책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무언가” 때문입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엄마들은 보통 세명에서 많게는 다섯명의 자녀를 두고 있습니다. 이제 첫째를 출산하는 (그리고 솔직히 둘째에 관하여 회의적인) 저로써는 정말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 엄마들이죠. 한 명 만으로도 벅차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한데 연령대도 다르고 필요한 것, 원하는 것,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까지 모두 다른 여러 명의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도대체 이 사람들은 수퍼우먼일까?” 하는 생각이 든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많은 아이들을 낳았을까 하는 의구심과 함께요.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느끼게 된 것이 있습니다. 어쩌면 엄마라는 직업은 힘들고 고달파서 행복한 것이 아닐까요? 갑자기 무슨 마조히스트같은 소리냐 하실지 모르겠지만, 확실히 엄마가 되면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았을 때)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훨씬 많습니다. 그나마 아빠들은 생리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덜 영향을 받을 수 있지만 엄마들은 전혀 다르니까요. 아직 출산 전이라 본 게임(?)에 들어가지도 못한 저조차도 임신 후 참 많은 것을 포기하고 잃어야 했습니다. 직장도 직장이지만 하루하루 무거워져 가는 몸 때문에 움직이기도 힘들고, 즐거웠던 취미활동도 접어야 했고요. 어느 날은 속이 안좋았다가 다른 날은 허리와 골반이 빠질 듯 아프고, 손발이 저리며 다리에 쥐가 나기도 하고… 무엇보다 아기가 커지면서 숨쉬기도 힘들어진데다가 하루에 화장실을 스무 번은 넘게 가니 문자 그대로 “내 몸 하나 건사하는 것”이 미션이 된 느낌이랍니다 (임신 후 11kg 불은 몸 때문에 웬만한 옷을 입어도 답답하고 맘모스처럼 변해버린 자신을 볼 때마다 깜짝 놀라는 것은 제외하고서라도 말이죠). 도대체 아기가 뱃속에 있을 때 이렇게 힘든데 세상 밖으로 나오면 어떻다는 이야기인지 기대 아닌 기대(?)가 되기도 한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 달라진 것이 있습니다. 그 전에는 대단히 자기중심적이었던 스스로가 눈에 띄게 변해가기 시작했습니다. 무엇이든 나 귀찮은 것, 방해받는 것을 가장 싫어했던 저의 시선이 달라졌습니다. 부쩍 커진 아들이 뱃속에서 폭풍 태동을 하는 바람에 아파 눈물이 찔끔 날 때 스스로가 아프다는 느낌보다는 아기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음에 감사하게 되고, 속이 안좋아 제대로 먹지 못하고 먹는 것마다 체한 것 같아 괴로울 때도 아기가 괜찮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미소짓게 되고… 무엇보다 배를 쓰다듬을 때 대답이라도 하듯 아기가 손이 닿은 부분을 톡톡 칠 때면 지금까지는 느껴보지 못한 신비로움과 기쁨에 사로잡히게 된답니다. “봄이야~”하고 나즈막히 부를 때 꿈틀거리는 아기가 느껴지면 가슴 한 켠이 정말 따뜻해지고요. 많이 부족하고 모자란 저 자신이 세상의 전부인 아기를 생각하면 감격에 벅차오르기도 합니다.
이 책에 나온 엄마들도 고달프고 괴로운 일상에 갇혀 잊고 있었던 바로 이 감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아이들로 인해 너무나도 많은 것을 잃고, 포기하고, 제쳐두어야 했지만, 그것에 반해 아이들로 인해서 얻은 표현할 수 없는 기쁨에 대해서 말이죠. 힘들고 어렵기 때문에 더욱 소중하고, 세상에서 (누가 뭐라해도) 가장 나와 닮은, 또 내가 가장 사랑하는 남편을 닮은 아이들이 우리에게 주는 소중한 순간들을 바라볼 수 있게 합니다. 집이 좀 더러워지면 어떻고, 프로젝트가 미뤄지면 어떻고… 돈을 좀 못 벌고 원하는 차를 타지 못하는 것이 뭐가 그렇게 중요할까요? 화려해보이는 싱글들의 삶이 부럽기도 하고, 밤늦게까지 자유롭게 외출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하루를 마칠 때 마다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다시금 느끼게 됩니다.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이야기가 결국 “기-승-전-행복”으로 끝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두고두고 읽을 에세이, 머리맡에 붙여두세요!
행복은 갖지 못한 것이 아니라 찾지 못한 것이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평범하게 하루를 시작하고 마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얼마나 큰 감사의 제목이고 행복인지 실감하게 되는 요즘이니까요. 뉴스를 볼 때면 이 나라에서 하루를 무사히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가 기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만큼 끔찍한 일과 사고가 벌어지고, 상상 못했던 일이 일어나고… 사랑하는 사람 곁에서 일어나 자신의 일과를 다하고 다시 사랑하는 사람과 잠자리에 들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만큼 큰 축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도 우리나라 국민들의 가슴에 아물지 않은 상처인 세월호에서 자녀들을 잃은 부모님들은 단 한번만 딸과 아들을 만날 수만 있다면 어떤 댓가도 크다고 생각하지 않으실거에요. 단 한번만 더 “엄마”, “아빠”라고 부르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따뜻한 손을 잡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성적이 오르지 않거나 사춘기에 접어들어 반항하고, 집안을 어지럽히고 동생과 싸우며 학원을 빠지거나 엄마 몰래 영화를 보러간 행동들은 너무나도 하찮고 사소해 생각도 나지 않을 것입니다.
너무 가까워서 보지 못하는 행복. 너무 일상적이라 깨닫지 못하는 즐거움. 피곤해 지쳐 괴로울 때 다시 일어날 힘을 주는 에세이들을 읽으면서 나중에 육아가 너무 힘들 때 꼭 읽어야겠다라는 생각을 했답니다. 실제로 파워 오브 맘스의 회원들은 몇 개의 에세이들을 프린트해서 침대 머리맡에 붙여두셨다고 해요. 한참 “긍정의 한 줄” 같은 책들이 큰 인기를 끌었는데 엄마들에게는 이 책이 그런 역할을 해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함께 웃고 공감하고 눈물 흘리면서 위로를 받는 것은 물론, 다시금 새롭게 하루를 헤쳐나갈 수 있는 큰 도움이 될테니까요!
슬프게도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들을 잃고 난 뒤에야 그것이, 그 사람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되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다. 인생의 기쁨이 바로 내 눈앞에 있을 때에는 어쩌면 그리도 쉽게 그것을 무시하게 되는지 참으로 의아할 따름이다. 어떻게 하면 그것으로부터 시선을 떼지 않을 수 있을까? (158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