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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
올리버 색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마 / 2012년 9월
평점 :
많은 의미를 함축한 한 마디가 구구절절 설명보다 강렬하게 와닿을 때가 있습니다. 단지 한 문장을 읽었을 뿐인데도 머릿속에 그 내용이 펼쳐지는 구절처럼요. 책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제목은 그런 면에서 대단히 중요하고, 작가들 역시 자신의 작품에 어떤 제목을 붙일까 고민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독서를 하면서 사실 영향을 받지 않으려 해도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 바로 이 제목입니다. 그렇게 책을 읽으려 샀다가 "낚인" 경험도 자주 있었고, 책의 제목과 내용이 일치하지 않아 실망했던 적도 있었지만, 요즘도 역시 제목의 유혹에 넘어가곤 합니다. 그만큼 제목의 파급력이 대단하거나, 경험에서 배우지 못한 저의 무능력함일 수도 있겠네요.
오늘 소개할 책이 그랬습니다. 제목을 읽고는 "아, 이 책은 읽어야겠다!"라는 생각이 든 책이죠. 그렇게 상세설명을 읽던 중 정말 읽어야 할 이유가 생겼습니다. <뮤지코필리아>를 통해 관심과 애정을 갖게 된 저자 올리버 색스 박사의 실제 이야기를 엮은 책이니 말입니다. 강렬한 제목으로 눈길을 끄는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 를 소개합니다!
이것은 실화다!
처음 이 책의 소개글을 읽고서 깜짝 놀랐습니다. 이미 "뮤지코필리아"를 통해 관심을 갖게 된 저자 올리버 색스 박사가 사고를 당해 쓴 책이라니! 나이도 많으신 분이 산에서 사고를 당하셨으니 얼마나 심각하려나 하고 말이죠. 하지만 이런 (순진무구한) 오해는 책의 첫 페이지를 넘기자 마자 해소되었는데, 이 책은 색스 박사가 1984년 출간한 책으로, 1991년 새로운 후기를 덧붙여 재출간한 책을 번역한 것입니다. 결국 한국어 번역판의 출간이 늦어졌을 뿐, 2007년에 첫 출간된 뮤지코필리아보다 33년 전의 책이라는 것이죠. 우리나라에서는 색스 박사의 대표작 "뮤지코필리아"를 비롯해 "깨어남", "편두통" 등을 이미 선보인 알마 출판사에서 출간되었습니다.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 책날개에는 올리버 색스 박사의 근간 소식도 담겨져 있어 다음에 꼭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이미 뮤지코필리아를 읽어본 분들이라면 알고 계시겠지만 올리버 색스 박사는 저명한 신경과 전문의로 대단한 음악애호가로 알려져있습니다. 음악을 향한 그의 열정으로 탄생된 책이 뮤지코필리아인데요, 뮤지코필리아를 읽어보면 색스 박사가 음악에 조예가 깊을 뿐만 아니라 글을 쓰는데에 있어서도 뛰어난 실력의 소유자라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뮤지코필리아가 상당수 전문적이고 어려운 내용을 포함하고 있음에도 불구, 의학적인 지식이 전무한 사람도 즐겁게 읽어갈 수 있습니다.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이 책은 저자의 직접적인 경험과 환자라는 "이색적인" 환경을 주제로 한만큼 재치있는 그의 이야기가 더욱 돋보이는 책입니다. 노르웨이의 산을 홀로 오르다가 갑작스럽게 조난당한 색스 박사는 자신의 왼쪽 무릎근육이 처참하게 찢겨져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맙니다. 얼마 전 홀로 산행하던 사람이 두 다리가 부러진 채로 사망하여 일주일만에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지라 그 순간만큼은 너무도 죽음이 가까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도움을 줄 수 있을만한 사람들이 20킬로미터 떨어져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내가 무엇보다도 겁이 질린 것은 그 통증 때문이라기보다는 무릎이 힘없이 툭 꺾어지는데도 내가 그것을 막거나 다리를 통제할 길이 전혀 없다는 점 때문이었다. 다리가 마비된 듯한 느낌도 무서웠다. 그런데 한 순간 그토록 압도적이던 두려움이 나의 '전문가다운 태도' 앞에서 사라져버렸다.
'그래. 의사 양반.' 나는 혼잣말을 했다. '다리를 좀 진찰해보겠소?" (20 페이지)
생명이 위급한 상황에서도 시종일관 유머러스함을 잃지 않고 지나치게 "전문가답게" 대처하는 그의 모습은 '이것이 정말 실화일까?'마저 궁금하게 합니다.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는데도 그는 특유의 여유로움으로 침착하게 해야 할 일들을 하였고, 다행스럽게 구조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드라마가 끝난 것이 아니었으니, 의사로써, 의학 박사로써 이미 오랜 경험의 소지자인 그에게 이 사건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닌 오랜 여정의 시작이었기 때문입니다.
의사에서 환자로
"나는 갑자기 버림받은 사람처럼 쓸쓸해져서 환자들 특유의 본질적인 고독을 느꼈다. 병원에 입원한 뒤로 처음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 같았다. 산에서도 그런 고독은 느껴본 적이 없었다. 반드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며 어떻게든 안심이 되는 말을 듣고 싶었다. 힘들고 당혹스러운 상황에서도 자신이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 말을 꺼낸 그 젊은 환자와 같았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내 주치의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100 페이지)
흔히들 의사라는 직업을 "천직"이라고 합니다. 진심으로 사명감과 비전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수행할 수 없는 하늘이 주신 직업이라는 거죠. 거의 모든 의사들이 이러한 "소명"을 가지고 공부하고 또 자격을 얻었겠지만, 매일 매일의 사투 속에서 그 소명을 기억하고 실천하기란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에 등장하는 의사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색스 박사에게 절대적인 연민과 동정심을 가진 독자로써 책을 읽으면 그야말로 "악덕 의사들이군!" 하며 욕을 할 수 밖에 없지만, 실상은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자신의 주치의에게 섭섭함을 감추지 못하던 색스 박사도 결국 인정하는 부분이죠. 색스 박사의 주치의들은 더이상 자신의 왼쪽 다리를 인식하지 못하는 색스 박사의 말을 들어주거나 기분을 이해해주거나 하지 않습니다. 그저 기계적으로 "수술은 잘 끝났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대답할 뿐입니다. 그나마도 주치의의 얼굴을 직접 볼 수 있는 것은 지나치게 짧은 한정된 시간 뿐, 그 외에는 주치의가 전하는 "전달사항"에만 의지해야 합니다. 색스 박사는 주치의가 자신에게 어떤 악감정이 있어서 고의로 자신을 피한 것이 아니라, 그가 단지 의사라는, 주치의라는 그의 임무에 충실했을 뿐인 것을 깨닫습니다.
"그동안 나를 비참하게 만들었던 것은 두 가지였다. 아마 모든 환자들이 나와 똑같은 처지일 것이다. 그것이 바로 환자의 조건이니까 말이다. (...) 하나는 나의 존재와 공간이 유기적으로 단호하게 부식되는 신체적인 ('신체-존재론적인') 장애였다. 나머지 하나는 환자로 전락하면서 생겨난 마음의 문제 (그다지 적절한 단어는 아니다)로, 특히 '그들'과의 갈등 및 '그들'에게 항복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여기서 '그들'이란 의사, 병원 체제 전체, 병원 자체를 뜻한다." (189 페이지)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하는 병원들을 보면 주인공에게 세심한 배려와 관심을 보여주기 마련이지만 (아니면 반대로 악덕 의사와 간호사들이 주인공을 괴롭히기도 합니다만) 병원에 입원해본 사람이라면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그것은 의사나 간호사들이 못되거나 직업의식이 투철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들의 일상적인 업무가 힘들고, 환자들의 호소나 불만이 대부분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것이기 때문이죠. 그것을 일일히 대꾸하기에는 이미 그들의 경험과 지식이 "쓸모없는 일"이라고 알려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천성적으로 유쾌하고 낙천적인 올리버 색스 박사가 직접 환자가 되어 겪은 체험은 후에 그의 전반적인 의사 인생에 있어서 큰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사실 사람은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역지사지의 감정을 제대로 알기 어려운 법이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당시만 해도 정신착란이나 유별난 행동으로 치부되었던 "신체이미지장애"와 "신체자아장애"를 색스 박사 자신이 직접 경험하게 된 것은 어떻게 보면 큰 행운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뛰어난 의사이자 학자인 그가 이 분야를 새롭게 연구하고 학계에 보고함으로써 이후 많은 환자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절감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신적 질환이 아니라 신경단절로 인한 지극히 정상적인(?) 과정이라는 것을 색스 박사가 밝혀주지 않았다면, 아직도 많은 환자들의 호소는 일방적으로 무시되지 않았을까요.
흥미진진한 의학 드라마
예전에는 미드 <닥터 하우스>의 대단한 팬이라 절대 놓치지 않고 매 회를 챙겨보던 기억이 납니다. 시즌 3까지는 정말 열심히 보았던 것 같은데, 조금 더 바빠지면서 어쩔 수 없이 "포기"하게 되었죠 (라고 말하면서도 언젠가 시즌을 몰아 볼 생각은 확실히 하고 있습니다). 괴팍한 성격의 하우스와 그 주변인물들이 펼치는 인간관계도 흥미로웠지만 주요 관심사는 역시 "진단학과"라는 특수 상황의 설정이었습니다. 물음표만 던지는 희귀병 앞에서 고민하는 하우스. 그리고 의학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조금만 집중하면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친절한 "시뮬레이션" 설명 (하우스를 안 좋아하는 지인들의 경우 상당히 이러한 시뮬레이션 장면에 알레르기성 반응을 보이더군요), 그리고 결국은 비밀의 열쇠를 찾아내고야 마는 천재 의사. 의학 드라마가 이렇게 재미있는 것인지 처음 알게 해 준 작품입니다.
하지만 하우스만큼이나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가 흥미진진한 것은 바로 이것이 "뛰어난 의사가 직접 겪은 희귀한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비록 하우스에서처럼 극적인 전개나 숨겨진 반전은 없다 할지라도, 색스 박사가 아주 작은 디테일까지 놓치지 않고 보고하는 병상 기록은 드라마 못지 않은 전개를 자랑합니다. (이것 역시 색스 박사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메모를 쉬지 않는 메모광이었다는 것이 큰 도움이 되었겠죠)
자신의 고통과 아픔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환자는 드물기 마련입니다. 행여 언변이 뛰어나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의학적인 전문지식 앞에선 한없이 약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언변이 뛰어나고 의학적인 지식이 풍부한" 색스 박사가 너무도 무력하게 "병원 권력" 앞에 무너지는 것을 보며 의아하기도 하고 조금은 씁쓸하기도 했습니다. "색스 박사도 이 정도인데, 역시 나는 아무런 것도 할 수 없는 것이었어"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문득 몇년 전 급작스러운 목디스크 통증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119 구조대에 실려갔던 기억이 납니다. 나중에 알게 된 상황이지만 그 때 갑작스럽게 일어날 수 없고 움직일 때마다 말못할 고통에 시달렸던 것은 목 부근의 척추 한마디가 삐져나온 상태였기 때문이라 하더군요. 관절이 삐져나온 것이 그렇게 아프다니, 도대체 목이 부러지고도 살아남은 분들은 어떤 고통이었을까 섬뜩하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잠옷 바람으로 119에 실려와 응급실로 이송되었는데, 꽤나 추웠던 날씨임에도 불구 병원 간이침대에 누인 채로 한참을 기다렸던 기억이 납니다. 응급실에는 저를 포함, 두 세 명의 환자 밖에 없었는데도 말이죠. 간신히 엑스레이를 촬영하고 제 담당의사라는 사람이 들어와 한다는 말이 "뼈가 안 부러졌어요. 안아프니 그만 일어나세요" 였습니다. 맨발도 시리고 잠옷도 창피하니 누구보다도 일어나서 집으로 가고 싶었던 것은 저였는데 그렇게 말을 하니 얼마나 야속했는지. 게다가 머리 정수리 부근을 두드리면서 "이러면 아파요?"하고 물어오는데 몸만 멀쩡했다면 멱살이라도 잡아주고 싶은 심정이더군요. 얼마나 아픈지 눈물이 나와 말도 할 수 없었는데 말입니다.
강한 진통제를 투여받고 약간의 물리치료를 마친 뒤 집으로 돌아오며 좀 더 적극적으로 자신의 고통을 피력하지 못한 스스로에게 화도 나고 연민도 들었습니다. 제대로 이야기만 했다면 의사가 좀 더 알아주지 않았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 때문에 분하기도 하더라고요. 하지만 결론적으로 보자면 의사의 소견대로 "안 부러졌기 때문에" 무사히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러기까지 약 3개월의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그리고 그동안 혼자 거동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느낄 수 있었지만) 말입니다.
무력하고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는 환자의 신분으로 오랜 시간 병원에 머무르면서 색스 박사는 확실히 의사로서 "새롭게" 태어난 듯 합니다. 남의 고통이 아니라 자신도 겪어본, 체험해본 고통이기에 작은 말이라도 허투루 듣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이해하려 노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더 나아가 이것이 하나의 "영적인 드라마"였다고 회고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나의 경험은 종교적인 것이었다. 확실히 나는 문제의 다리를 잃어버렸을 때 그 다리가 하느님께 버림받았다고 생각했으며, 다리를 되찾았을 때는 초월적인 의미의 회복이라고 생각했다. 그 경험은 또한 황홀한 과학적 경험이자 인지적 경험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중에는 과학과 인지의 한계를 초월했다. 아무래도 이것이 나를 영원히 바꿔놓을 것 같았다. 나로 하여금 과학적 열정과 엄격함을 조금도 누그러뜨리지 않은 채 철학과 종교에 공감하게 만들 것 같았다." (228 페이지)
다행스럽게도 색스 박사의 여정은 해피 엔딩으로 끝나게 됩니다만, 그는 여기서 머무르지 않고 자신이 겪은 신경단절에 의한 현상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이 이야기를 통한 진짜 해피 엔딩은 여기에서 시작된 것이 아닌가 싶네요. 앞서 말했듯, 색스 박사가 스스로 이런 경험을 한 것은 의학계의 시선으로 보자면 대단한 행운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색스 박사는 그로 인해 참 오랫동안 힘든 시간을 겪어야 했지만 말입니다.
사건의 개요와 결말을 알고 읽었는데도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까지 흥미진진했던 책이었기에 오히려 끝났다는 것이 아쉬울 정도였는데요, 다행스럽게도 글쓰기에 부지런한 색스 박사의 다른 근간을 위로삼기로 했습니다. 사건의 진행과 함께 길어지는 색스 박사의 독백은 의학적 지식이 전무한 저로써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습니다만, 워낙 친절한 부연설명과 옮긴이의 추가 설명으로 무리없이(?) 완독할 수 있었답니다. 오히려 신경학이라는 다소 생소한 분야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고요.
의학에 관심이 많은 분들도, 드라마를 즐겨 보시는 분들도, 색스 박사의 저서를 감명깊게 읽으시는 분들도 모두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는 책 -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 그 진짜 흥미진진함은 그것이 "실화"라는 것과 뛰어난 문장력으로 마치 독자 스스로가 사건 안으로 빨려들어가는 듯 흡입해오는한 색스 박사의 저력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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