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다른 사람들 - 인간의 차이를 만드는 정서 유형의 6가지 차원
리처드 J. 데이비드슨 & 샤론 베글리 지음, 곽윤정 옮김 / 알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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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잘못 알려진 사실을 뒤집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저번에도 언급했던 월터 리프먼의 명언 "모두가 비슷하게 생각할 때, 아무도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에서도 알 수 있듯, 너무나도 당연하게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그것의 부당성을 지적한다면 오히려 상식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질타를 받게 될지도 모릅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태양이 아닌 지구가 돈다는 것을 주장하고 나서자 그는 생명의 위협까지 받게 되었던 것처럼요.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머릿속에 문득 떠오른 의문을 대수롭지 않게 여겨 잊어버리거나 리스크를 방지하기 위해 혼자서만 조용히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과학과 혁신은 용기 있는 몇몇 사람들의 끊임없는 투지와 연구로 발전되어 왔습니다. 당시 그들은 수많은 고초와 수난을 겪었을지 모르지만, 훌륭한 과학자들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진실"에 조금 더 가까이 갈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이제는 태양이 돈다고 주장한다면 배우지 못한 무식한 사람 취급을 받겠지만, 이런 관점의 변화와 의식의 개선이 이루어질때까지는 많은 시간이 지나야 했습니다. 어디엔가 숨겨진 "진실"을 찾아 진정한 과학자들은 오늘날에도 비난과 조롱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지켜나가고 있습니다.

 

 

 

 

여기 오랜 시간 굳혀져온 고정관념과 싸운 또 한 과학자가 있습니다. 현재 위스콘신 대학에서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리처드 J. 데이비드슨 교수 역시 자신의 의문과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오랜 시간 싸워야 했고 수많은 연구를 거듭해야 했습니다. 뇌과학을 비롯한 신경과학의 세계적인 전문가이자 탁월한 심리학자인 그의 저서 "너무 다른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머리와 가슴이 서로 다른 세상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데이비드슨 교수가 자신의 연구를 시작했던 1980년대에는 머리와 가슴은 서로 전혀 다른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었습니다. 즉, 머리는 이성을, 마음은 감성을 대변하고 있다는 것이죠. 그러나 데이비드슨 교수는 이미 1970년 이전 EGG (뇌전도 혹은 뇌파를 측정하기 위해 전기신호를 감지하는 센서를 두피에 부착하는 기기) 실험을 통하여 인간의 뇌파가 감정 변화에 따라 특정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뇌와 감성이 연결되어있다는 것과 정서가 인간의 행동패턴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학계에 전혀 알려진 바도 연구된 바도 없었기에 그는 자신의 주장을 인정받기 위해서 인내해야만 했다고 합니다.

 

 

 

 

"당시 행동주의자들은 우울증이나 양극성 장애, 정신분열증과 같은 심각한 정신질환을 '보상과 벌'이라는 말도 안 되는 관점에서 비난하고 있었던 것이다. 행동주의자들은 망상이나 기분장애를 앓는 사람들이나 자살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그렇게 행동할 때 보상을 받고, 정상적으로 행동할 때 벌을 받기 때문에 비정상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는 그러한 주장이 도덕적으로 혐오스러울 뿐만 아니라 생물학, 특히 뇌를 무시하는 주장이라며 강력하게 비난했다." (49 페이지)

 

젊지만 확신에 찬 그의 연구는 시간이 지날 수록 그 가치와 효과를 인정받기 시작했습니다. 책이 출간되는 시점을 기준으로 하여 무려 275편의 논문과 13권의 책을 집필한 그의 열정은 수 많은 수상 경력으로 이어졌는데, 현재 데이비드슨 교수는 미국은 물론 전세계적으로 신경과학계에서는 전후무후한 전문가로 인정받고 있다고 합니다. 어쩌면 통속적인 "머리와 가슴" 이론에 대한 반박이 오늘날의 그가 되기까지의 첫걸음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서론과 첫 몇 장 동안 연구의 계기와 시작 그리고 검증과정이 소개되어 있는데, 지치지 않고 연구를 위해 모든 것을 건 그의 모습에 감동받았습니다. 그러한 노력과 열정이 있었기에 깊이 자리잡고 있던 "잘못된" 지식을 정정할 수 있던 것이 아닐까요. 

 


정서 유형의 여섯 가지 차원

 

감성, 감정과는 상극으로 여기어졌던 뇌가 정서를 지배한다는 그의 주장은 책 전반에 걸쳐 의학적으로, 하지만 너무 어렵지 않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뇌과학에 대해서 거의 아는 것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의 논증을 따라가는데 큰 어려움은 없다는 것이 이 책의 큰 장점입니다. 또한 그가 소개하는 정서 유형의 여섯 가지 차원 역시 어렵고 심오한 전문용어가 아닌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하고 추측할 수 있을만한 말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정서 유형의 여섯 차원 역시 특정한 뇌 회로의 활동을 반영한다. 각 차원에는 관점에서의 긍정이나 부정과 같은 양극단이 존재하는데, 이는 특정 뇌 회로의 활동이 증가하거나 감소함으로써 나타나는 결과이다." (121 페이지)

 

 

 

 

머리와 가슴이 서로 나뉘어져있다던 예전의 주장에 확실히 반대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는 방식이 뇌에 따라 결정된다는 사실은 상당히 충격적입니다. 같은 사람이라도 뇌의 특정 부분에 손상을 입게 되면 정서적인 큰 변화를 겪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을 빨리 극복하고 다시 삶의 페이스를 찾을 수 있는 성격의 사람은 특별히 긍정적인 마인드나 의지를 가진 것이 아니라 뇌의 전전두엽피질과 편도체가 빠른 신호를 주고받는다는 해석은, 마치 사랑에 빠졌을 때 우리 몸에 일어나는 화학작용을 의학적으로 분석한 것만큼이나 이상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순수과학이 그렇듯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고자 하는 사명감"에서 많은 연구가 시작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데이비드슨 교수의 연구는 우리에게 있어 형이상학적인 개념이었던 "정서"를 손에 잡힐 수 있는 척도로 해석할 수 있게 만들어주니까요.

 

- 회복탄력성 (Resilience)
- 관점 (Outlook)
- 사회적 직관 (Social Intuition)
- 자기 인식 (Self-Awareness)
- 맥락 민감성 (Sensitivity to Context)
- 주의 집중 (Attention)

 

이 여섯가지 파라미터들이 합쳐서 정서 유형을 만들고 각 사람은 해당 파라미터의 눈금이 얼마나 왼쪽 혹은 오른쪽으로 치우쳤냐에 따라 특정한 정서 유형으로 나뉘어질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연구의 진정한 가치는 어떤 사람을 어떤 정서 유형에 분리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겪는 특정 "정서 변화" 및 "감정" 을 과학적으로 분석함으로 아직 까지 많은 의문과 궁금증을 가지고 있는 심리학의 열쇠가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우울증이나 반사회적 경향 혹은 자폐증 같은 지금까지는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은 분야를 보다 과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것에 있어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또 한 가지, 데이비드슨 교수는 "타고난 정서"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주장은 그 뿐만 아니라 신경과학의 저명한 학자들이 함께 의견을 나누고 있는 것으로 선천적인 유전자보다는 후천적인 환경과 교육이 한 사람의 정서를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은 이미 수 차례의 실험을 통해 검증된 바 있습니다. 그는 각자가 처한 환경에 따라 특정 유전자의 특성이 그 사람의 정서에 나타나거나 나타나지 않음으로써 변화를 줄 수 있다고 덧붙입니다.

 

"환경이 단지 행동이나 뇌의 기능을 변화시키는 것만은 아니다. 어느 유전자가 켜지고 꺼지는지 그리고 이에 따라 어떤 유전적 특성이 발현되는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188 페이지)

 


정서적 삶의 열쇠

 

"정서 유형의 차원에서 극단에 해당하는 경우 병리적인 상태가 될 가능성이 크다. (...) 누군가가 정신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정서 유형을 고려해야 한다. 정서 유형 그 자체가 정신질환의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정서 유형이 정신질환 발병 가능성을 결정짓는 다른 요인과 상호작용하는 것만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229 페이지)

 

정신질환은 말 그대로 정신적인 장애입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이 외국보다 심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정신적인 상태나 건강에 대해서 말하기를 꺼려합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폐쇄적인 사회가 정신적으로 연약한 사람들에게 불리한 환경을 제공하게 되고, 어쩌면 아무렇지도 않게 회복될 수 있었을 만한 상황도 극적으로 치닫을 수 있는 만큼 보다 정확하고 올바른 인식이 절실합니다.

 


저자는 정서 유형을 파악함으로 인해 어떤 사람의 잠재적인 위험성을 파악하고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의 이런 주장은 윤리적으로 볼 때에는 약간 오해의 소지가 있어 보입니다. 단지 어떤 사람에게 정신질환의 위험요소가 예측된다고 하여 그 사람을 "위험군"으로 분류하는 것은 무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반대쪽에서 생각해보면 "정서 유형"을 파악하는 것은 확실히 정서적으로 안정된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중요한 요소입니다. 특히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의 경우, 자신만이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세상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뇌의 장애 혹은 오류라고 생각을 전환하게 되면 보다 긍정적으로 치료에 임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과학과 가장 동떨어진 것처럼 보였던 "명상"에 대한 저자의 예찬은 기대 이상입니다. 저자는 달라이 라마와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며 동양 명상에 관심을 가졌고, 그것이 정서 생활에 있어서 중요한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가 오랜 기간 다양한 명상 연구를 걸쳐 알게 된 결과는 (동양인으로써) 예측은 했지만 그래도 상당히 놀라웠습니다. 명상훈련을 통해 주의 실종이나 선택정 주의 집중 등 기초적인 정신 기능이 향상될 수 있다는 것은, 저자가 궁극적으로 "명상을 통해 더 나은 정서건강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은 뒤, 정서를 파악함으로 인해 보다 나은 정신적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에는 더 이상 의문을 품지 않게 되었습니다만, 확실히 아직 상당한 의문이 남는 것이 사실입니다.
데이비드슨 박사의 연구 결과를 보면서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것들에 얼마나 많은 맹점과 모순이 있는지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신경과학의 깊은 연구를 담고 있지만 앞서 말했다시피 비전문가 역시 함께 이해하고 따라갈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대중적입니다. 또한 다루고 있는 분야 자체도 현대인들이 가장 궁금해한다는 "핫"테마 심리학과 교차하고 있기 때문에 누구나 즐겁게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단 이 책의 원제인 "The Emotional Life of your Brain (당신의 뇌의 정서적 삶)"을 "너무 다른 사람들"이라고 의역한 것은 조금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인데요, 제목 때문에 원서의 과학적인 측면이 부각되기 어렵지 않나 하는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인간의 차이를 만드는 여섯 가지 정서적 유형의 차원. 이 연구가 계속되어 날마다 새로운 진실에 다가서게 된다면 언젠가 심리학과 신경과학이 한 곳에서 만나는 날이 올까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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