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든 반려견을 돌보는 중입니다 - 노견 케어법과 남겨진 이들을 위한 위로법
권혁필 지음 / 팜파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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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살았던 친동생이 일본으로 가게 되면서 정성껏 키웠던 햄스터를 제게 맡겼답니다. 연한 베이지색 털과 몽실몽실한 엉덩이가 참 귀여웠던, "코코리"였어요. 

지금은 동생과 할 얘기 안 할 얘기 다 하며 친하게 지내지만, 그때만 해도 참 다른 취향과 라이프스타일로 서먹했어요. 그래서 동생이 일본으로 가면 비엔나에 혼자 남게 되는 것에 걱정하지 않았는데 막상 닥치고 나니 그렇게 허전할 수가 없더라고요. 넓은 집에 혼자 살면서 코코리에게 온갖 애착을 쏟기 시작한 이유가 되었답니다. 


한 살 반 밖에 되지 않은 나이었지만, 많은 햄스터가 그렇듯 코코리도 엉덩이 쪽에 종양이 생겨 부풀어 올랐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왠지 모르게 코코리가 떠났음을 '알았어요'. 떨리는 손으로 코코리의 집을 열어보니 동그랗게 몸을 말고 톱밥에 몸을 숨긴 채 딱딱하게 굳어있었답니다. 일어날 일인 걸 알았지만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몰랐어요. 밤낮없이 울고 또 울고... 너무도 괴로워하다가 그만(?) 강아지를 입양하기로 덜컥 마음먹었답니다. 그렇게해서 가족이 된 강아지가 바로 우리집의 "나이 든 반려견" 미아에요.

영화 "우리 개 이야기(All About my Dog)"의 마지막 에피소드 "마리모"가 잘 표현해 준 것처럼, 강아지의 시간은 사람의 시간보다 정말 빨리 지나가는 것 같아요. 10년동안 크고 작은 일을 함께 겪은 미아는 어느덧 "노견"이 되었답니다. 스튜디오에서 함께 믹싱 작업을 하고, 비행기를 타고 파리 공항에서 노숙(!)의 위험도 겪어보고, 백 만원 주고 산 중고차로 독일까지 하루종일 달리기도 하고, 빈 근교에서 열린 공연에는 같이 가기도 했죠. 결혼을 하고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미아와 신랑과 저, 셋이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저와 마찬가지로) 한국에 들어온 후 알레르기성 질환이 생긴 것 빼고는 10년 동안 아픈 곳 없이 건강하게 말썽 안 피우고 잘 살아준 미아지만, 확실히 노견이 되면서 예전에는 하지 않던 행동을 하곤 해요. 물론 아들 키우랴 일하랴 정신이 없어 잘 돌봐주지 못하는 제 잘못이 가장 크지만, 평생 하지 않던 화장실 실수라던가, 외출하면 심술을 부린다던가... 그렇지 않던 아이가 말썽을 피우니 타격이(?) 더 크더라고요. 혼을 내봤자 뭐가 좋겠냐는 마음에 그냥 수습하고 있지만, 이대로 계속 말썽을 피우면 어쩌나 고민을 할 때 이 책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어요. 분홍색 책 표지와 너무도 순해 보이는 리트리버의 표정 때문인가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와 함께 사는 것이 행복하니?"
이 한 마디의 질문에 반려견의 삶의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반려견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하고 싶어 하고, 당신과 함께 추억을 만들어 가고 싶어 합니다. 당신이 어떤 직업을 가졌든, 어떤 집에 살든 그것은 반려견의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습니다. 반려견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가장 큰 요인은 바로, '함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으로 인해 달라질 반려견의 삶도 정성껏 돌봐주시길 바랍니다. (55 페이지)


아들이 태어난 후, 조용하고 얌전한 미아는 어쩔 수 없이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였어요. 사람이 참 간사한것이, 못되게 행동하면 화를 내고 혼을 내면서 얌전히 잘 있으면 칭찬해주는 것이 아니라 잊어버리게 되더라고요. 그전까지는 딸처럼 온갖 사랑을 독차지했는데, 하루종일 그저 얌전히 있는듯 없는듯 "존재했던" 미아에게 너무도 칭찬에 인색했던 것 같았답니다. 거창한 것도 아닌, 너무도 작은 것인데 그마저도 줄 줄 몰랐던 것 같아요. 그리고 간혹 말썽을 피우는 이제서야 '그동안 미아가 참 착하게 잘 견뎌주었구나. 많이 외로웠겠다' 생각하게 되네요. 

이 책에서 말하길 강아지는 사람보다 훨씬 짧은 수명을 가지고 있지만, 그에 비해 잠을 자는 시간의 비율이 훨씬 높다고 해요. 때문에 강아지가 깨어있는 시간은 정말 소중한,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이라는 거죠. 사람의 하루가 강아지에게는 일주일 정도라고 하니 하루라도 산책을 나가지 않거나 놀아주지 않으면 사람으로 따지자면 일주일동안 무료하게 보내는 것과 비슷하겠네요. 
그나마 교하로 이사온 뒤에 가끔 산책을 나가며 바깥공기를 쐬지만, 난개발로 인해 도로 뿐이던 오포에 살 땐 길게는 몇 개월 동안 단 한 번도 나가지 않았던 걸 생각하니 더없이 미안해진답니다. 사람이었으면 거의 "올드보이"의 감금 수준이었을까나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햇살같이 해맑았던 미아였는데 말이죠.

나이 든 반려견을 "반려견"이 아닌 "나이 든 반려견"으로 보는 법. 그리고 그 자체를 인정하고 행복한 노년, 그러니까 마지막 시간들을 보낼 수 있게 해주는 것. 이 책은 억지로 눈물을 짜내거나 죄책감을 불러 일으켜 혼을 내는 책이 아니에요. 그저 담담하게 "이러이러합니다. 이렇게 해주시면 좋습니다"라고 설명하고 있는데도 가슴 한 켠이 아려오는 것은 정말 오랜 시간을 함께했던 미아의 모래시계가 어느덧 절반을 넘어 막바지로 가고 있다는 게 실감이 나서인 것 같아요. 늦었지만 그래도 이 책을 읽게 되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10년동안 강아지도 키우고, 아들램도 키우고, 엉망이지만 크고 작은 식물도 함께 키우다보니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생명을 키운다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가장 많은 책임감이 따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소중하지 않은 생명은 없다고 믿고 있다면 더더욱 그렇죠. 오히려 아들은 언젠가 성장해 엄마아빠의 품을 떠나가겠지만 강아지는 영원히 주인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고 주인의 행동에 따라 운명이(?) 달라지게 됩니다. 조금 더 책임감과 사랑을 가지고 돌봐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요. 

어렸을 때의 귀여운 얼굴과 빠릿빠릿하고 장난기 가득한 모습 대신, 듬성듬성 빠진 털과 입냄새, 한껏 느려진 움직임과 건조한 발바닥만 남은 노견 미아. 노견을 키우는 것은 처음인지라 너무 많이 몰랐던 것 같아요. 이젠 더이상 "반려견"이 아닌 "나이 든 반려견"으로 미아를 바라보고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고 편하게 마지막 날들을 함께할 수 있도록 배웠던 소중한 시간이랍니다. 열 살 이상의 강아지와 함께 사는 분들께 꼭 추천해드리고픈 책이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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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부작침 - 국민성우 안지환의 도끼 갈아 바늘 만들기
안지환 지음 / 코스모스하우스(Cosmos House)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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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유학 생활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얼마 되지 않았던 어느 날. 저희 부부와 친한 베이시스트 오빠가 고맙게도 참여중이던 뮤지컬 공연에 초대해주었답니다. 그 공연을 정말 꼭 보고싶었던 건, 이미 영화를 마르고 닳게(?) 보며 좋아했던 뮤지컬 <헤어스프레이>였기 때문이에요. 


한국 뮤지컬 씬에 아는 사람이 없었으니 대부분 생소한 이름이었어요. 그중 먼저 눈길이 갔던 배역은 역시 트레이시의 엄마인 에드나였죠. 통상적으로 에드나는 엄마지만 남성 배우가 연기하는 데다가 소위 "유명하거나 이슈가 되는" 셀럽들이 연기하는 캐릭터니까요.
2012년 공연 에드나는 배우 공형진 씨와 "국민성우"로 불리우는 안지환 씨의 더블캐스팅이었어요. 저희가 갔던 공연은 안지환 씨가 출연하는 공연이었답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나, 안지환 씨가 자전적 에세이를 출간했다는 소식을 듣고 내심 반가웠어요. 성우 안지환의 이름은 잘 알지 못했는데 6년 전 즐거웠던 뮤지컬 공연에 출연했던 배우이기도 하고, <TV 동물농장>, <위기탈출 넘버원>의 목소리로 이미 정말 친숙한 성우였으니까요.

마부작침(磨斧作針). 도끼를 알아서 바늘을 만든다는 뜻이라네요. 예화는 저도 어렸을 때 들었던 적이 있었어요. 당나라의 시인 이태백이 공부하기 싫어 선생님 몰래 산을 빠져나오다가 돌에 도끼를 갈고 있던 할머니를 만났다고 해요. 궁금하게 여긴 이태백이 묻자 할머니는 "중간에 그만두지 않고 계속 하면 도끼로 바늘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답하죠. "중간에 그만두지 않고 계속 하면"이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던 이태백은 이내 산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안지환 씨는 자신의 주머니에 있던 것이 송곳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부터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드는 심정으로 노력에 매진했다고 해요.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했는데, 어렸을 때는 자신이 주머니에 송곳을 가지고 있어서 굳이 나타내지 않아도 어느 순간 송곳이(자신의 재능이)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세상을 살다보니 피나는 노력 없이는 아무 것도 되지 않음을 깨달았다는 뜻이었어요. 그때부터는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드는 심정으로 한 시도 쉬지 않고 목표를 향해 달려왔다고 하니 정말 멋진 청춘을 보내신 것 같네요. 


한 때 나는 스스로를 주머니 속의 송곳이라고 생각했다.
애써 숨기고 감춰도 탁월한 재능이 저절로 드러날 줄 알았다.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때부터는 할 수 있는 일이 노력밖에 없었다. 
도끼가 바늘이 되도록 스스로를 갈고 또 갈아야 했다. 
(프롤로그 중, 11 페이지)

유복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가난하지도 않았고, 불행하지는 않았지만 인생의 고저를 경험하며 여러 번 좌절을 맛본 안지환 씨의 에세이는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그는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걸까... 이 책을 읽으면서 수시로 느꼈던 감정이었답니다. 그는 스스로 이 책을 "도끼를 갈아 바늘로 만들어가는 긴 여정의 중간기록(프롤로그 중)"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래서인가 책을 읽다보면 간혹 "이 이야기가 여기서 왜 나오지?" 할만한 에피소드들이 등장하곤 해요. 아마 본인의 기억을 완전히 보존하고 싶었던 저자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봅니다. 

만 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하고, 셀 수 없는 많은 방송을 진행했지만 이전 히딩크 감독의 "나는 아직 배고프다"는 말처럼, 안지환 씨는 자신이 이룬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이루고 (유명해지고 ㅎㅎ) 더 높은 것에 도달하기를 갈망하는 듯합니다. 또한 하나뿐인 딸을 응원하며, 힘든 한국 연예계에서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마음이 참 멋진 것 같아요. 올해 그는 한국나이로 50세가 되셨다고 하네요. 반 백년이라는 세월동안 쉬지 않고 앞만 바라보고 달려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취감보다는 아쉬움이, 과거보다는 미래에 대한 기대가 큰 것 같은 그의 인생이 엿보이는 책이었답니다. 

딱히 글을 잘 쓰려고 한다거나, 멋지게 표현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담담하게 옆의 사람에게 이야기하듯 쓰여진 글이라 단번에 끝까지 읽어버렸어요. 문장 사이사이에, 줄과 줄 사이에 지난 세월에 대한 자부심과 앞으로 다가올 더 멋진 시간에 대한 기대감이 묻어나오는 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했죠. "노력한 사람이야말로 진짜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그런 면에서 안지환 씨는 마음놓고(?) 자랑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할 수 있는 게 노력밖에 없었다"는 그의 말이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답니다. 
지금 당장 닥친 부족함과 쉽사리 풀리지 않는 앞길. 하지만 자꾸 다른 곳으로 탓을 돌리려 하는 우리들에게 "노력하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아무튼 그의 삶을 엿보며 다시금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성우를 꿈꾸는 지망생들이 짧게나마 읽을 수 있도록 마지막 챕터를 비롯하여 책 곳곳에 노하우를 공개하고 있답니다. 조만간 이 내용을 더 보충하여 전공서적으로 출간할 계획이라니 기대가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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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은 이렇게 말했다 - 인생을 바꾸는 위대한 예술가들의 한마디!
함정임.원경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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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아픈 이야기지만 대학에서 음악과 관련된 학과는 그리 환영받지 못하곤 합니다. 대학 입장에서는 대학평가와 수익성(?)이 가장 중요한데, 중요한 지표로 여겨지는 "졸업 후 취업률"에 있어 음악전공은 그야말로 바닥을 치기 때문이죠. 사실 음악가로서 취업하기에 (그리고 그것으로 먹고 살기에) 대한민국은 정말 빡센 나라입니다. 상위 몇 퍼센트를 제외하고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싶을 정도로요. 그나마 강단에 서서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 가장 쉬운 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다 4차 산업혁명이 이슈가 되고, 앞으로 인공지능으로 인해 수많은 직업들이 사라질 것이 예고되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달하더라도 "예술적" 직업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제자들이 이 말을 전하며 "정말 다행이죠?" 하고 물었을 때, 제 마음은 좀 더 착잡해졌습니다. 

과연 우리는 지금 예술을 하고 있는가?
나는 예술가인가?
나는 예술인인가, 기능인인가?
나는 정말 창의적인 예술적 기량을 가지고 있는가?

이렇게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죠.

그러던 중 이 책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제법 두꺼운 분량의 이 책은 "세계 최고의 예술가들이 말하는 짧지만 강력한 문장들!"이라고 설명이 되어있었습니다. 두 저자( 소설가 함정임과 건축가 원경)는 1년이 조금 못되는 시간동안 총 318명의 예술가들과 "대화를 나누며" 이 책을 만들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한 사람은 베를린에, 다른 한 사람은 부산에 살고 있었지만 예술, 그리고 예술가라는 매개를 통해 함께 집필을 한 것이라고 해요.


이 책은 318명 예술가들의 칼날 같은 지침서이자,
그들의 가장 내밀한 곳에서
건져 올린 뜨거운 고백록입니다.
(프롤로그 중, 6페이지)

책은 조언, 예술, 미술 시장, 미술 학교, 예술가, 관객, 아름다움, 기회, 어린 시절, 공동 작업, 색, 창작 과정, 생업, 수련, 드로잉, 마약+술, 전시회, 실패, 프레임, 독자성, 영향, 영감, 목적, 및, 한계, 재료, 돈, 자연, 독창성, 철학, 사진, 일과, 규모, 조각, 성(Sex), 작업실, 주제, 성공, 기술, 제목, 도구, 날씨 등 총 42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챕터의 주제와 관련있는 인용문(Quote)이 영어와 한국어 번역으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름다움"이라고 한다면 여러 예술가들이 정의하는 아름다움이라던가 아름다움에 관한 그들의 의견을 찾아볼 수 있어요.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아름다움에 대해 존 컨스터블(영국의 낭만주의 화가, 1776~1837)은 "나는 평생 추한 것을 본 적이 없다(I never saw an ugly thing in my life, 71 페이지)"라고 주장하는 한편, 우리와 동시대의 미국의 행위예술가 시에스터 게이츠(1973~)는 "나는 아름다운 물건을 만드는 것에 관심이 없다(I am not interested in Making beautiful objects, 66 페이지)"라고 말하죠. 시대에 따른 미학의 변화와 예술적 철학의 역사도 함께 엿볼 수 있는 것이 이 책이 가진 또 하나의 매력입니다. 

특별히 저에게 울림을 주었던 문장은 독일의 조작가 토마스 데만트(Thomas Demand, 1964~)의 말이었어요. 

물론 당신은 언제나 작품의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놓아야 한다. 왜냐하면 너무 완벽하고
너무 과도한 작업은 시체와 같은 모습일 수 있기 때문이다.
(124 페이지)

자꾸 작품에 대해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저에게 필요한 말 같아서 따로 표시해두었답니다. 

재미있던 건, 이 책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시각예술가이거나 작가라는 점이었어요. 음악가들은 별말이 없었던 걸까요?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남긴 많은 주옥같은 명언들이 있는데 이 책에서 많이 소개되지 않는 게 아쉬웠네요. 
다른 아쉬웠던 점을 꼽으라면 아티스트와 함께 그가 어떤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지(활동했는지), 어느 시대 사람이었는지 함께 소개해주었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 저는 시각예술에는 영 젬병이라 일일히 찾아봐야 했거든요 ㅎㅎ 뭐 공부할 수 있는 기회라 좋긴 했지만요. 마지막으로 어차피 두 가지 언어로 문장을 소개하려면 영어가 아닌 원문(original language)으로 소개하면 어땠을까 싶어요. 영어를 공부하기 위한 책도 아니고, 원어를 찾아 읽는 재미도 있었을 것 같아서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훌륭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이 책은, 제 책상 바로 옆 좋은 자리에 꽃아두려고 합니다. 힘이 들 때마다, 뭔가 막힐 때마다 조용히 앉아 다시 한 번 예술가들의 말에서 울림을 찾으려고요. "기능인"이 아닌 "예술인"이 되고 싶을 때, 펼쳐보고 싶은 그런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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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메이커스 - K팝의 숨은 보석, 히든 프로듀서
민경원 지음 / 북노마드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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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들어와 우연찮은 기회에 대중음악 쪽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제가 전공한 건 대중음악이라기 보다는 영화음악과 재즈, 그리고 클래식이었지만 "많이 달라도 극복할 수 있겠지!" 하며 섣부르게(?) 뛰어들었던 것이 실수였던 것 같아요. 5년 정도 지난 뒤 미련없이 그만두고 나니 정말 홀가분해지더라고요. 그동안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맞지 않는 구두를 신은 채 격한 춤을 추고 있었던 것 같았답니다. 

대중음악, 그러니까 K-Pop을 하는게 가장 어려웠던 이유가 있어요. 밀라노나 파리, 뉴욕의 패션위크를 보면서 "이야, 하이패션은 정말 난해하고 이해가 안가네!"라고 하듯 K-Pop의 트렌드와 미학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거든요. 조금 과장을 보태 이야기하자면 "어제 다르고 오늘 또 다른"트렌드에 아주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니까 말이죠. 실시간 차트를 1위에서 100위까지도 들어보고, 소위 "잘 나가는" 작곡가의 곡들을 연구해도 그닥 나아지는 게 없었던 것 같아요. 참 막막하고 힘든 시간이었죠. 

그렇게 대중음악에서 나와 이제 제 음악이라고 생각되는 분야에 들어오고 나니 한결 살 것(?) 같았답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우스갯소리로 "내 인생은 아이폰에서 멜론은 지운 후 몇 계단 윤택해졌어"라고 말할 정도로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년동안이나 이해할 수 없었던 K-Pop의 세계. 뭔가 미련이 남은건지 <K팝 메이커스>라는 책을 보자마자 "어머, 이건 읽어야 해!"하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K팝을 이끌고 있다는, K팝의 중심에 서있는 프로듀서들의 이야기 말이에요.


피독, 런던 노이즈, 포스티노, 이우민, 정용화, 권순일, 진보, 진영, 그리고 김형석까지. 
사실 씨엔블루 정용화 씨와 B1A4 진영 씨, 그리고 몇 번 뵌 적이 있는 김형석 선생님을 제외하고는 낯선이름들이었어요. 대중음악관련 프로그램은 물론 TV도 라디오도 음원사이트도 이용하지 않던 지난 2년, 정말 많은 것이 변했다는 게 실감이 나더라고요.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특히 가요와 방송을 담당하고 있다는 저자가 아홉 명의 K팝 프로듀서들을 만나 인터뷰 한 것을 정리한 것이 이 책이랍니다. 책의 레이아웃에도 굉장히 심혈을 기울인 것이 느껴질 정도로 예쁜 책이에요. 읽다보면 책인지 잡지인지 구분이 안 가게 사진과 텍스트의 배열과 조합이 돋보인답니다. 트렌드에 민감한 주제답게 책도 (심지어 폰트도!) 감각적으로 만드신 것 같아요.

각 프로듀서와의 인터뷰가 끝나면 저자가 느낀 점을 간추려 Review를 하는데, 이 책이 나오기 직전 특혜 논란으로 구설수에 올랐던 정용화 씨의 경우, 논란까지도 거리낌없이 언급하는 등 진솔하고 편안하게, 꾸미지 않고 책을 엮었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독자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말이죠. 

아무래도 가장 궁금했던 부분은 마지막으로 소개된 김형석 선생님의 인터뷰였는데요, 다른 프로듀서들과는 세대 자체가 다른 프로듀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현역"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시기 때문이었어요. 1966년 생이시니 올해 벌써 만 52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쉴 새 없이 일하시는 모습을 보니 부끄럽기도 하고 많은 도전이 되었답니다. 8,90년대 제가 좋아하던 많은 노래가 김형석 선생님의 펜에서 나온 노래인지라 더욱 친근하기도 했고요. 

아무리 생각해도 성공에 대한 공식은 없는 것 같아요. 그런게 있다면 처음 알게된 사람은 벼락부자가 되었겠죠. 
이 책에 등장하는 각각의 프로듀서도 그저 자신이 걸어온 길과 자신이 했던 선택에 대해 이야기할 뿐이에요. 어쩌면 넘사벽처럼 대단하게만 들릴 수 있고, 어쩌면 가식처럼 들릴 수도 있죠. 하지만 이들이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는 "도전" 그리고 "(자신의 음악에 대한)정직", 이 두 가지는 마음에 꼭 새겨두어야 할것 같습니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될 때까지 도전하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자신을 속이지 말고뜻한 것을 묵묵히 쌓아나가는 것. 이것이 이들이 공통적으로 말한 "비결"이 아닐까 싶네요. 물론 이 비결은 음악 뿐만 아닌 많은 분야에 유효한 것이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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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찾은 평생직업, 인포프래너
송숙희 지음 / 다차원북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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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한 고백으로 시작하자면, 이 책의 전반부를 읽을 때는 당장 책을 덮고 더이상 읽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가득했답니다. 읽으면 읽을 수록 속이 메스꺼울 정도로 거북했거든요. 
저자인 송숙희 씨는 이미 이름만으로도 꽤나 알려진 분이고, 쉴 새 없이 출간을 하며 활발한 강의와 워크숍 활동을 하고 계신 분이에요. 스스로 "원조 인포프래너"라고 부르는 그녀는 16년차 "인포프래너"로서 자신이 원하는 만큼 일하고, 원하는 대로 일상을 구성하며, 그러면서도 절대 부족하지 않게 (오히려 넘치게) 돈을 벌고 있는 "꿈의 1인 기업가"라고 합니다. 

책의 전반부를 읽으면서 걸렸던 것은 그녀가 너무도 쉽게, 말도 안되게 간단하게 엄청난 성공을 보장하고 있었는데, 그녀의 주장을 살펴보면 결국 모든 것이 "인포프래너로서 인포프래너를 양성하는" 그녀의 직업에 귀결될 수 밖에 없는 구조였기 때문이랍니다. 그녀는 누구나 그동안 자신이 일한 것을 바탕으로 (혹은 새로운 관심 분야에서) 강의를 하고, 지식을 전하며 돈을 벌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마사지사를 "지친 에너지를 회복시켜 주는 리차저(Recharger)"라고, 비서를 "CEO 디자이너"라고, 영업사원을 "바이어도우미"라고 재정의하며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고 격려하고 있죠. 
문제는 이거에요. 우리가 뻔히 알고 있는 것들을 그럴싸하게 이름만 바꾸어 이것 저것 첨가하면 "새로운 전문분야"가 되는 것인지. 이미 십몇 년 넘게 다이어트 보조제로 쓰이던 가르니시아를 그럴싸하게 이름만 바꾸어 "이건 정말 혁명"이라 외치는 일반인들(과연?)의 후기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인스타그램 상술과 다른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더라고요(뭐 그래서 잘 팔리긴 합디다). 누구나 인포프래너로 성공할 수 있다? 누구나 전문가니까? 문득 비슷비슷한 이름을 가진 수많은 기관들이 유망한 직종이라며 몇십, 몇백 개의 근본을 모를 자격증을 선전하던 게 떠올랐어요(마지막으로 봤던 최고의 자격증은 "커피감별사자격증"인가 뭐 비슷한 거였던 것 같은데...). 과연 이 책을 끝까지 읽어야 하나, 그냥 여기서 그만두어야 하나 고민까지 했답니다. 저자의 논리가 결국 "모두가 인포프래너로 성공할 수 있다....고 믿어야 내가 이 사업을 영위하고 돈을 벌고 계속 많은 인포프래너들을 키울 수 있다"일까봐요. 

서론이 길었는데, 본론으로 넘어가자면 책 중반에 들어서야 제 생각이 오해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인포프래너가 되는 길을 선택했으면 하는 마음에(?) 책 초반에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누구나"를 외쳤던 저자가, 중반에 들어서부터는 "그렇다고 아무나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핵심 메시지를 꺼냈기 때문이죠. 책을 끝까지 읽고 나니 "진짜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구나"란 생각이 들었답니다. 저자의 말처럼 "평생현역"이 보장되어 있는 일이다보니 평생현역으로 살 수 있을만큼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이 필요한 일이니 말이죠.



꼼꼼한 사업계획이 없어도 인포프래너의 길을 떠날 수 있다. 
궁극적으로 갖춰야 할 단 하나, 절대 빠뜨려선 안 되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고객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자신만의 특화된 능력이다.

당신은 고객의 어떤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가? 
당신의 고객이 당신에게 해결해달라고 청하는 문제들은 어떤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단숨에 말할 수 있다면, 
당신은 지금 당장 인포프래너로 출발해도 된다. 
그런데 경험을 통해 솔루션을 만들던 단계와 
가치를 교환하며 서비스를 제공하는 차원의 솔루션은 동일한 것이 아니다. 

인포프래너로 출발할 당시의 솔루션은 
고객경험이라는 요소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인포프래너가 상품으로 제시한 솔루션이 
과연 고객의 문제를 해결해주는가는 
실제 고객을 대상으로 그 솔루션을 적용해보고, 
고객이 원하는 결과를 창출했을 때 비로소 증명된다. 
그런 경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고객 만족도가 올라가고 
입소문도 기대할 수 있다. 
(167 페이지)


챕터가 넘어갈 수록 저자는 16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인포프래너의 다양한 모습과, 그것들을 관통하는 핵심가치를 설명합니다. 인포프래너의 특성상 같은 분야에서 여러 성공사례가 나오기 어렵죠. 자신만의 분야가 있고 고유의 솔루션이 있어야 경쟁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 개인적이고, 집중된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마음에 와닿았던 부분은 선택과 집중에 대한 부분이었어요. 사실 선택과 집중은 벌써 몇 년 째 생각하고 또 노력하는 부분이었는데, 저자의 따끔한 지적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답니다. 또한 눈앞의 가시적인 성과를 위해 애초의 계획에서 벗어나 이것 저것 하게 되면, 결국 경쟁력을 잃고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것에 크게 공감했어요. 사소하게 보여도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 들이는 에너지와 노력, 시간은 결국 보상받을 수 없는 매몰비용이 될 때가 대부분이니까요. 


신생사업을 시작하면서 여러 가지 시행착오도 하고, 후회도 하고 아쉬움도 많았었는데 사업 전반적인 것을 생각해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 되었던 것 같아요.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려고 합니다. 저처럼 쓸데없는 오해를 하지 않도록 꼭 끝까지 읽어보라고 해야겠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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