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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은 이렇게 말했다 - 인생을 바꾸는 위대한 예술가들의 한마디!
함정임.원경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18년 2월
평점 :
품절
뼈아픈 이야기지만 대학에서 음악과 관련된 학과는 그리 환영받지 못하곤 합니다. 대학 입장에서는 대학평가와 수익성(?)이 가장 중요한데, 중요한 지표로 여겨지는 "졸업 후 취업률"에 있어 음악전공은 그야말로 바닥을 치기 때문이죠. 사실 음악가로서 취업하기에 (그리고 그것으로 먹고 살기에) 대한민국은 정말 빡센 나라입니다. 상위 몇 퍼센트를 제외하고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싶을 정도로요. 그나마 강단에 서서 학생을 가르치는 것이 가장 쉬운 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다 4차 산업혁명이 이슈가 되고, 앞으로 인공지능으로 인해 수많은 직업들이 사라질 것이 예고되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달하더라도 "예술적" 직업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제자들이 이 말을 전하며 "정말 다행이죠?" 하고 물었을 때, 제 마음은 좀 더 착잡해졌습니다.
과연 우리는 지금 예술을 하고 있는가?
나는 예술가인가?
나는 예술인인가, 기능인인가?
나는 정말 창의적인 예술적 기량을 가지고 있는가?
이렇게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죠.
그러던 중 이 책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제법 두꺼운 분량의 이 책은 "세계 최고의 예술가들이 말하는 짧지만 강력한 문장들!"이라고 설명이 되어있었습니다. 두 저자( 소설가 함정임과 건축가 원경)는 1년이 조금 못되는 시간동안 총 318명의 예술가들과 "대화를 나누며" 이 책을 만들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한 사람은 베를린에, 다른 한 사람은 부산에 살고 있었지만 예술, 그리고 예술가라는 매개를 통해 함께 집필을 한 것이라고 해요.
이 책은 318명 예술가들의 칼날 같은 지침서이자,
그들의 가장 내밀한 곳에서
건져 올린 뜨거운 고백록입니다.
(프롤로그 중, 6페이지)
책은 조언, 예술, 미술 시장, 미술 학교, 예술가, 관객, 아름다움, 기회, 어린 시절, 공동 작업, 색, 창작 과정, 생업, 수련, 드로잉, 마약+술, 전시회, 실패, 프레임, 독자성, 영향, 영감, 목적, 및, 한계, 재료, 돈, 자연, 독창성, 철학, 사진, 일과, 규모, 조각, 성(Sex), 작업실, 주제, 성공, 기술, 제목, 도구, 날씨 등 총 42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챕터의 주제와 관련있는 인용문(Quote)이 영어와 한국어 번역으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름다움"이라고 한다면 여러 예술가들이 정의하는 아름다움이라던가 아름다움에 관한 그들의 의견을 찾아볼 수 있어요. 주관적일 수밖에 없는 아름다움에 대해 존 컨스터블(영국의 낭만주의 화가, 1776~1837)은 "나는 평생 추한 것을 본 적이 없다(I never saw an ugly thing in my life, 71 페이지)"라고 주장하는 한편, 우리와 동시대의 미국의 행위예술가 시에스터 게이츠(1973~)는 "나는 아름다운 물건을 만드는 것에 관심이 없다(I am not interested in Making beautiful objects, 66 페이지)"라고 말하죠. 시대에 따른 미학의 변화와 예술적 철학의 역사도 함께 엿볼 수 있는 것이 이 책이 가진 또 하나의 매력입니다.
특별히 저에게 울림을 주었던 문장은 독일의 조작가 토마스 데만트(Thomas Demand, 1964~)의 말이었어요.
물론 당신은 언제나 작품의 수준을 향상시킬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놓아야 한다. 왜냐하면 너무 완벽하고
너무 과도한 작업은 시체와 같은 모습일 수 있기 때문이다.
(124 페이지)
자꾸 작품에 대해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저에게 필요한 말 같아서 따로 표시해두었답니다.
재미있던 건, 이 책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시각예술가이거나 작가라는 점이었어요. 음악가들은 별말이 없었던 걸까요? 세계적인 음악가들이 남긴 많은 주옥같은 명언들이 있는데 이 책에서 많이 소개되지 않는 게 아쉬웠네요.
다른 아쉬웠던 점을 꼽으라면 아티스트와 함께 그가 어떤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지(활동했는지), 어느 시대 사람이었는지 함께 소개해주었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 저는 시각예술에는 영 젬병이라 일일히 찾아봐야 했거든요 ㅎㅎ 뭐 공부할 수 있는 기회라 좋긴 했지만요. 마지막으로 어차피 두 가지 언어로 문장을 소개하려면 영어가 아닌 원문(original language)으로 소개하면 어땠을까 싶어요. 영어를 공부하기 위한 책도 아니고, 원어를 찾아 읽는 재미도 있었을 것 같아서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훌륭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이 책은, 제 책상 바로 옆 좋은 자리에 꽃아두려고 합니다. 힘이 들 때마다, 뭔가 막힐 때마다 조용히 앉아 다시 한 번 예술가들의 말에서 울림을 찾으려고요. "기능인"이 아닌 "예술인"이 되고 싶을 때, 펼쳐보고 싶은 그런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