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부작침 - 국민성우 안지환의 도끼 갈아 바늘 만들기
안지환 지음 / 코스모스하우스(Cosmos House) / 2018년 4월
평점 :
품절


오랜 유학 생활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얼마 되지 않았던 어느 날. 저희 부부와 친한 베이시스트 오빠가 고맙게도 참여중이던 뮤지컬 공연에 초대해주었답니다. 그 공연을 정말 꼭 보고싶었던 건, 이미 영화를 마르고 닳게(?) 보며 좋아했던 뮤지컬 <헤어스프레이>였기 때문이에요. 


한국 뮤지컬 씬에 아는 사람이 없었으니 대부분 생소한 이름이었어요. 그중 먼저 눈길이 갔던 배역은 역시 트레이시의 엄마인 에드나였죠. 통상적으로 에드나는 엄마지만 남성 배우가 연기하는 데다가 소위 "유명하거나 이슈가 되는" 셀럽들이 연기하는 캐릭터니까요.
2012년 공연 에드나는 배우 공형진 씨와 "국민성우"로 불리우는 안지환 씨의 더블캐스팅이었어요. 저희가 갔던 공연은 안지환 씨가 출연하는 공연이었답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나, 안지환 씨가 자전적 에세이를 출간했다는 소식을 듣고 내심 반가웠어요. 성우 안지환의 이름은 잘 알지 못했는데 6년 전 즐거웠던 뮤지컬 공연에 출연했던 배우이기도 하고, <TV 동물농장>, <위기탈출 넘버원>의 목소리로 이미 정말 친숙한 성우였으니까요.

마부작침(磨斧作針). 도끼를 알아서 바늘을 만든다는 뜻이라네요. 예화는 저도 어렸을 때 들었던 적이 있었어요. 당나라의 시인 이태백이 공부하기 싫어 선생님 몰래 산을 빠져나오다가 돌에 도끼를 갈고 있던 할머니를 만났다고 해요. 궁금하게 여긴 이태백이 묻자 할머니는 "중간에 그만두지 않고 계속 하면 도끼로 바늘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답하죠. "중간에 그만두지 않고 계속 하면"이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던 이태백은 이내 산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안지환 씨는 자신의 주머니에 있던 것이 송곳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순간부터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드는 심정으로 노력에 매진했다고 해요.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했는데, 어렸을 때는 자신이 주머니에 송곳을 가지고 있어서 굳이 나타내지 않아도 어느 순간 송곳이(자신의 재능이) 드러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세상을 살다보니 피나는 노력 없이는 아무 것도 되지 않음을 깨달았다는 뜻이었어요. 그때부터는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드는 심정으로 한 시도 쉬지 않고 목표를 향해 달려왔다고 하니 정말 멋진 청춘을 보내신 것 같네요. 


한 때 나는 스스로를 주머니 속의 송곳이라고 생각했다.
애써 숨기고 감춰도 탁월한 재능이 저절로 드러날 줄 알았다.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때부터는 할 수 있는 일이 노력밖에 없었다. 
도끼가 바늘이 되도록 스스로를 갈고 또 갈아야 했다. 
(프롤로그 중, 11 페이지)

유복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가난하지도 않았고, 불행하지는 않았지만 인생의 고저를 경험하며 여러 번 좌절을 맛본 안지환 씨의 에세이는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그는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걸까... 이 책을 읽으면서 수시로 느꼈던 감정이었답니다. 그는 스스로 이 책을 "도끼를 갈아 바늘로 만들어가는 긴 여정의 중간기록(프롤로그 중)"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래서인가 책을 읽다보면 간혹 "이 이야기가 여기서 왜 나오지?" 할만한 에피소드들이 등장하곤 해요. 아마 본인의 기억을 완전히 보존하고 싶었던 저자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봅니다. 

만 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하고, 셀 수 없는 많은 방송을 진행했지만 이전 히딩크 감독의 "나는 아직 배고프다"는 말처럼, 안지환 씨는 자신이 이룬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이루고 (유명해지고 ㅎㅎ) 더 높은 것에 도달하기를 갈망하는 듯합니다. 또한 하나뿐인 딸을 응원하며, 힘든 한국 연예계에서 꿈을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마음이 참 멋진 것 같아요. 올해 그는 한국나이로 50세가 되셨다고 하네요. 반 백년이라는 세월동안 쉬지 않고 앞만 바라보고 달려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취감보다는 아쉬움이, 과거보다는 미래에 대한 기대가 큰 것 같은 그의 인생이 엿보이는 책이었답니다. 

딱히 글을 잘 쓰려고 한다거나, 멋지게 표현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담담하게 옆의 사람에게 이야기하듯 쓰여진 글이라 단번에 끝까지 읽어버렸어요. 문장 사이사이에, 줄과 줄 사이에 지난 세월에 대한 자부심과 앞으로 다가올 더 멋진 시간에 대한 기대감이 묻어나오는 책이었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그렇게 말했죠. "노력한 사람이야말로 진짜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그런 면에서 안지환 씨는 마음놓고(?) 자랑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할 수 있는 게 노력밖에 없었다"는 그의 말이 깊은 울림으로 다가왔답니다. 
지금 당장 닥친 부족함과 쉽사리 풀리지 않는 앞길. 하지만 자꾸 다른 곳으로 탓을 돌리려 하는 우리들에게 "노력하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아무튼 그의 삶을 엿보며 다시금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성우를 꿈꾸는 지망생들이 짧게나마 읽을 수 있도록 마지막 챕터를 비롯하여 책 곳곳에 노하우를 공개하고 있답니다. 조만간 이 내용을 더 보충하여 전공서적으로 출간할 계획이라니 기대가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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