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래빗 시리즈 전집
베아트릭스 포터 지음, 윤후남 옮김 / 현대지성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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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이 지나고 만 4개월에 들어서던 아들에게 첫 유아전집을 사주면서 얼마나 뿌듯하고 행복했는지 모른다. 물론 어마어마한 가격에 입이 떡 벌어졌지만 그 때부터 꾸준히 책을 읽어주고 책과 함께 놀게 해주어서인가, 다른 장난감보다도 책에 흥미를 가지고 오랫동안 가지고 놀곤 한다. 물론 그래봤자 지금은 물고 빨고 이리저리 굴리는 것이 전부이지만 ㅎㅎ.

아직 손가락이 베이거나 찢어질 염려가 없는 보드북을 봐야 하는 아기인데도 그 때 중고시장에 "곰돌이 푸 전집"이 나오자 냉큼 샀었다. 물론 새 책으로 사주었으면야 더 좋았겠지만, 극악의 가격을 자랑하는 프뢰벨 전집인지라 열 일곱 권 세트에 20만원이다보니 선뜻 사주기가 쉽지 않았다. AA급의 중고를 찾았을 때 얼마나 기쁘던지! 받아보고 나니 정말 진열 수준의 책이었던지라 더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곰돌이 푸" 전집을 집에 들인 이상 내게 남은 목표(?)는 단 하나! (아이러니하게도 역시 프뢰벨의) 피터 래빗 전집이었다. 역시 비슷한 가격대의 전집이었는데 중고 시장에서조차 찾을 수 없는 레어 아이템(?)이었다. 어차피 읽게 될 때는 빨라봐야 네다섯 살 정도일테니 그 전까지 꼭 마련해두겠다고 생각했었던 찰나,


한 권으로 만나는 <피터 래빗 시리즈 전집>의 출간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뻤던지!!!


게다가 국내 유일의 완역본이라고 하니 이건 더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그리고 며칠 후, 감사하게 받아볼 수 있었던 피터 래빗 시리즈 전집!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자^^



피터 래빗 시리즈 전집 

작가
베아트릭스 포터
출판
현대지성
발매
2015.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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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앞날개에는 이 책에 수록된 베아트릭스 포터의 모든 작품이 정리되어 있다. 실린 이야기는 모두 스물 세 편. 참고로 프뢰벨에서 발간된 피터 래빗 전집은 모두 17권으로 다섯 개의 이야기가 빠져있다. 
 


 



어렸을 때부터 피터 래빗 캐릭터를 좋아했기에 학용품부터 심지어는 욕실용품까지(!) 피터 래빗 캐릭터 상품을 쓰고 있었지만 정작 피터 래빗 시리즈를 읽어본 적은 없었다. 때문에 더더욱 아들과 함께 보고 싶었던 피터 래빗 이야기!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귀여운 토끼들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된 사실은 "피터 래빗 시리즈"가 "피터 래빗 시리즈"가 아니라는 충격적인(?) 사실이다. 

 

이른바 "피터 래빗 시리즈"는 베아트릭스 포터가 쓴 어린이를 위한 동화를 엮은 것으로서, 이름만으로는 주인공처럼 느껴지는 "피터 래빗"은 오직 "피터 래빗 이야기"에만 등장한다. 각 이야기에는 새로운 주인공들이 등장하고, 연계성 없이 독립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동화 전집"이다. 아무래도 가장 익숙하고 친근한 "피터 래빗"인지라 단 한 번 밖에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조금 아쉽기도 했지만, 이내 각 이야기의 매력만점 주인공들에 푹 빠질 수 있었다. 




 

1866년 생인 베아트릭스 포터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학교가 아닌 가정에서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이 시대의 여성들에게는 일반적인 일이었다고 하는데, 그로 인해 작가로써, 삽화가로써 뛰어난 소질을 가지고 있던 베아트릭스는 시골의 농장에서 다양한 동물들과 시간을 보내며 살았고, 그녀의 이런 어린 시절이 바탕이 되어 "피터 래빗 시리즈"가 탄생하게 되었다. 그녀의 여섯 살 아래 남동생 버트램에게 어릴 적부터 들려주던 동물 이야기는 세월이 흘러 그녀가 서른 여섯 살이 된 때에서야 세상의 빛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이후 전세계적으로 퍼져나간 "피터 래빗 시리즈"는 지금까지 누적 판매량이 무려 1억 5천만 부가 넘었다고 한다. 


 



이제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들이 즐겁게 읽을 수 있을만한 내용과 분량에서부터 조금 더 큰 아이들이 읽을만한 소위 "글밥 많은" 이야기들도 있다. 그 중 "꼬마 돼지 로빈슨 이야기"는 무려 여덟 장(Chapter)으로 구성된 긴 동화다. 사실 이 작품은 그녀의 초기 작품 중 하나였지만 60대가 넘어서야 처음 출간하게 되었다고 한다. 젊었을 때의 작품들은 모두 컬러로 출판되었지만 60대에 들어서 악화된 시력 탓에 "꼬마 돼지 로빈슨"의 그림에은 예전과는 다른 흑백의 간소화 된 삽화가 많다. 그 외의 이야기에도 흑백의 삽화는 곳곳에 등장하는데 중요한 장면은 어김없이 정성스럽게 완성된 컬러 삽화로 묘사되어 있기에 마치 한 편의 만화 영화를 본 듯한 느낌이 들곤 한다. 



 



토실토실하고 귀여운 캐릭터들과는 달리 베아트릭스 포터의 동화들은 한결같이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는데, 어린 아이들이 읽는다고 해서 그 메시지를 순화하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물론 그림 동화나 안데르센 동화의 놀랄만한 잔인성(!)에는 가까이 가지도 못하지만, 생각해보면 나름 그로테스크(?)한 부분들이 눈에 띈다. 무서운 아저씨의 정원에 들어갔다가 토끼 파이(!!!)가 되어버린 피터 래빗의 아빠가 그렇고 (심지어 친절하게 삽화로 파이를 먹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올빼미 할아버지에게 버릇없이 굴다가 그 대가로 꼬리가 두동강(!!!!) 나버린 다람쥐 넛킨이 그렇다. 새끼고양이 톰 키튼은 엄마의 말을 듣지 않다 매번 곤경에 처해 혼쭐이 나곤 한다. 

베아트릭스 포터가 동화에 담고 있는 핵심 메시지는 이처럼 "적합하지 않거나 금지된 행동을 하면 혼쭐이 난다"가 대부분인데 보수적인 시대를 살아가는 뛰어난 재능의 여성으로써 그녀 자신에게 "금지"되어 있던 많은 것을 스스로 포기하기 위한 어떤 주문같다고까지 느껴질 정도다. "착한 아이가 되어야지" 정도가 아니라 "네 운명을 수긍하고 살아라"는 다소 비관적인(?) 메시지가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일까.



 

 



좀 더 어린 아이들을 위해 쓰여진 동화는 글밥이 적고 원색의 삽화로 구성되어 있다. 가끔 그녀는 "착한 동물"들에게 질린 나머지 "착하지 않은 동물들의 이야기"를 썼다고 하는데 귀결되는 메시지는 앞서 언급한 핵심 메시지와 같다. 하지만 비슷한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더라도 이야기 자체가 흥미롭고 신선하기 때문에 몇십 편의 동화를 더 읽는다 하더라도 질리거나 지루하지 않을 것 같았다. 기회가 된다면 원문으로도 꼭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이 좀 더 크기까지는 (적어도 책장을 구기거나 찢어버리거나 먹어버리지 않을 때까지는)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가 나중에 하나씩 하나씩 함께 읽어봐야겠다. 사랑스러운 동물 친구들과 그들의 (전혀 동물스럽지 않은) 이야기. 억압된 사회 속에서 자신의 본분을 지켜야 하는 배경은 사실 백년이 넘는 시간이 지난 오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주위를 둘러보면 쉽게 찾을 수 있을만큼 친근한 캐릭터들이 반기는 동화를 읽으면서 가장 행복했던 사람은 나 자신이 아니었나 싶다. 언젠가는 아들도 함께 이야기의 내용을 이해하며 키득거릴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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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적으로 건강한 영성 - 진정한 삶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영성의 비밀 Emotionally Healthy 시리즈 1
피터 스카지로 지음, 강소희 옮김 / 두란노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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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에 다닐 때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은 "너네 아빠 목사님이라며?"였다. 
아빠가 목사님이라는 것이 싫었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오히려 강단 위에서 말씀을 전하시는 아빠의 모습이 멋지고 자랑스러웠다. 교회에서나 집에서나 한결같은 아빠를 존경하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유독 "너네 아빠 목사님이라며?"라는 말이 싫었다. 누군가 이렇게 물었을 때면 백이면 백 우리 아빠가 어떤 일을 하시는지 궁금해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너네 아빠 목사님이시라며? 완전 멋지다!"는 더더욱 아니었다. 이 말에는 언제나 숨은 뒷문장이 존재했다. 실제로 말하건 말하지 않건 내포하는 의미는 같았다. "너네 아빠 목사님이라며? 근데 넌 왜그래?" 바로 이 뜻이었다. 

우리 아빠가 목사님이라는 말은 마치 어떤 문도 열 수 있는 "열려라 참깨" 정도였던 것 같다. 
"너네 아빠 목사님이라며? 근데 너 왜 나한테 지우개 안빌려줘?"
"너네 아빠 목사님이라며? 그럼 너 나한테 숙제 보여줘야지." 
"너네 아빠 목사님이라며? 근데 넌 왜 이런거 가지고 화내?" 등등
지금 생각해보면 당최 우리 아빠가 목사님인 것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알지 못할 일들이 어린 마음에 하나둘 상처로 남았었다. 몇 번은 급식에서 맛있는 메뉴가 나오면 "우리 아빠가 목사님이니까" 당연히 다른 아이들에게 내 것을 양보하기도 했었다. 

비엔나로 떠난 후 본격적으로 한국 사람들과 멀리(?) 지내게 되면서 나는 "아빠가 목사님" 주문에서 해방되었다. 더이상 아무도 내게 크리스천인 것을 들먹이며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았다. 크리스천이라는 사실이 나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하나의 약점처럼 악용되지 않았다.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는데도 그제서야 짜릿하고 아름다운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시 한국으로 들어오자 예전같지는 않아도 비슷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정도 봉사는 해야하는 거 아니야? 게다가 아버지가 목사님이시잖아"라고 당연하게 말하는 사람들.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하여 1억 상당의 피아노를 부상으로 받았을 때 그에 상응하는 십일조를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은근한 압박(?)을 주던 사람들. '1억 상당'의 피아노를 받았던 거지 수중에는 돈 한 푼 없었는데 어디서 천만원을 헌금할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피아노 무게가 약 300킬로이니 30킬로 정도 나무를 떼어(??) 드려야 하나 하는 억하심정(???) 마저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요즘들어 기독교와 크리스천들이 끝없는 증오와 심지어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을 보면서 착잡하고 갑갑한 마음을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무턱대고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욕을 해대는 사람들의 인성과 수준이 의심되면서도, 그들이 욕할만한 빌미를 제공한 것은 누구도 아닌 (어쨌든 자칭) 크리스천들이라는 생각에 뭐라 대꾸할 수 없었다. 내가 봐도 욕먹을 수 밖에 없는 한심한 일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나오고 있었으니까. 굳이 그것이 아니더라도 일반적인 크리스천의 모습 역시 자랑스럽지 못한 것이 많았다. 교회에서 사기치고, 음해하고, 이간질하며 심지어 주먹까지 오고가는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하랴? 

그렇다고 그들에게 "교회 다니는 사람이 왜그래요?"라고 해봤자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마음에 찔림을 받고 회개하는 사람도 더러 있을지 모르지만 대부분은 반발심을 갖고 더 목소리를 높이거나 나처럼 위축된 채로 살아갈테니 말이다. 도대체 무엇을 어디서부터 고쳐나가야 하는걸까? 왜 예수 믿고 거듭났다는 사람들에게서 그에 맞는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걸까? 아니, 다른 사람에 대해 왈가왈부할 것이 아니라, 나부터 왜 이러는걸까 생각하던 도중 만나게 된 책이 있다. 바로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정서적으로 건강한 영성>이다. 

 

정서적으로 건강한 영성 

작가
피터 스카지로
출판
두란노
발매
2015.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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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하면 요즘 유행하는 제자도 모델들은 대부분 성도들이 정서적으로 성장하는 데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한다. 사람들은 예배나 기도, 성경 공부, 성도 간의 교제를 통해 실제적인 도움과 유익을 얻고 있다. 따라서 관계의 문제나 내면세계가 잘못되어 있어도 자신이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착각하기 쉽다. 사람들이 성숙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이유는 자신이 성장하고 있다고 철썩 같이 믿기 때문이다. (26 페이지)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땐 그저(?) 정체된 신앙생활을 스스로 반성하고 다시금 자극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사실 "정서"와 "영성"은 보수적이다 못해 폐쇄적이기까지 했던 내 어린시절 신앙환경에 비추어보면 결코 한 문장에 등장하지 못하는 단어였다. 지극히 인본주의적이고 세속적으로 들리는 "정서"는 "영성"을 강조하는 일부 신앙인들에게는 오히려 신앙생활의 걸림돌이 되기 십상이라는 의견이 팽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스스로 신앙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게 되면서 어렸을 때 일방적으로 받아들였던 신앙생활의 모습을 다각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A가 B니까 그런 줄 알아"라고 생각했던 부분들을 짚어가면서 왜 A가 B인지 스스로 체험해보길 원했다. 내 안에 있는 아주 작은 신앙의 부분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강요받거나 일방적으로 교육받은 것이 아닌, 나 스스로가 체험하여 고백하는 신앙이 되길 바랐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이 크게 바뀌지 않는 것에 실망하고 화가 날 때가 많았다. 점점 더 견고해지며 자라나야 할 믿음인데 오히려 퇴화하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커졌다. 차라리 어렸을 때처럼 무조건 "그렇다면 그런 줄 알고" 믿는 것이 나은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성경과 상극관계인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도대체 어디까지 허용하고 타협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 그것보다도 더 궁금했던 것이 있다. 소위 "모두가 인정하는(?)" 신앙인들의 이중적인 모습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누구보다도 열심히 하나님의 일에 힘쓰고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면서도 불평과 짜증, 시기, 질투에 가득차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괴로운 그런 사람들 말이다. 

저자인 피터 스카지로 목사는 뉴욕 퀸즈에 위치한 뉴 라이프 펠로우쉽 교회의 설립자로써 미국에서는 이미 강사로써, 작가로써 대단한 평가를 받고 있다고 한다. 열 아홉살에 진정으로 예수님을 만나 회심한 그는 평생을 복음을 전파하는데 바치기로 결심하고 쉴 새 없이 사역을 위해 힘써오던 중, 도무지 스스로의 힘으로는 벗어날 수 없는 엄청난 위기를 맞게 된다. 그동안 최선을 다해 일구어왔다고 생각했던 가족과 교회가 붕괴될 상황에 놓이자, 그의 신앙생활은 그때까지와는 전혀 다른 국면을 맞이하였다. 그는 이것을 그의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책은 우리가 그와 같은 극단적 상황에 가지 않고도 자신의 영적 생활을 돌이켜볼 수 있도록 쓰여진 책인 것이다. 

안타깝게도 하나님을 사모하고, 교회를 열심히 섬기고, 성경을 읽고, 예배하고, 기도하고, 주일학교와 소그룹 모임에 참석하면서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아름다운 삶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 건강한 감정이 빠진 영성, 곧 내면 깊숙한 곳에 하나님의 손길이 닿지 않은 층이 그대로 있다는 것은 영적 이혼 상태와 흡사한 것이다. (34 페이지)

신앙생활에 감정이라니! 흔히 감정이라고 하면 영적 생활을 가장 방해하는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영적 생활에 감정이 등장한다는 것은 대략 "마귀가 감정을 뒤흔들어 역사하고 있어" 정도라고 해야할까. 심지어는 외로움, 고독, 분노 등의 부정적인 감정뿐만 아니라 기쁨, 설레임, 환호 등의 긍정적인 감정까지 경계의 대상으로 삼는 신앙인들도 있다. 주님께서 주신 은혜에 대해서 기뻐하려면 뭔가 조신하고(??) 잔잔하게(??) 기뻐해야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소리질러서는 안될 것처럼 말이다. 누군가 자신의 감정을 이렇게 적극적으로 표현한다면 십중팔구 믿음이 아닌 "자기 감정"이 앞서는 것이기에 얼마 안가(?) 변질될 것이라는 악담을 하기도 한다. (여담이지만 하나님께서 사랑하셨던 다윗 왕은 여호와의 궤를 되찾고 성안으로 들여올 때 너무도 기쁜 나머지 백성들 앞에서 자신의 아랫도리가 다 보일 정도로 덩실덩실 춤을 추기도 했다, 사무엘하 6:14)
여기에는 세 가지 맹점이 있다. 첫째는 신앙과 감정이 공존할 수 없는 상극 관계인지 누가 단언할 수 있을 것이며, 둘째는 "올바른" 신앙의 표현이 어떤 것인지 누가 정했냐는 것이다. 마지막 세번째는 판단할 권세는 하나님께 있을 뿐 우리에게 주어진 적이 없는데 (야고보서 4:12) 다른 사람의 신앙이 올바른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 무슨 권리로 판단하냐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판단하시기 전까지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라고 강조하고 있다 (고린도전서 4:5).

스스로 이렇게 말하면서도 나 역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데 익숙해있었음을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남을 판단하는 것은 너무도 쉬웠고, 그 유혹은 너무나 컸다. '그 사람은 도대체 왜 그러는거야' 하며 가볍게(?) 시작할 때도 있었지만 '그 사람은 안되겠어. 영 글러먹었어.'라며 스스로 선고를(??) 내리기도 했다. 저자가 말하는 "정서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영성의 10가지 징후"는 충격적이었지만 내 신앙생활을 되돌아보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1. 내 만족을 위해 하나님의 일을 한다.
2. 분노, 슬픔, 두려움의 감정은 즉시 억누른다.
3. 음악, 미술, 기쁨 같은 욕구는 왠지 사치라고 생각한다.
4. 발목을 잡는 과거를 덮어 두려고만 한다.
5. '속된 것'과 '거룩한 것'을 칼같이 나눈다.
6. 하나님과 동행하기보다 사역에만 바쁘다.
7. 사람과의 갈등은 무조건 피한다.
8. 상처, 약점, 실패는 철저히 은폐하다.
9. 내 한계를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10. 다른 사람을 쉽게 평가하고 판단한다.

내 마음을 꿰뚫어보기라도 했던걸까? 하나 하나 읽어내려가는데 가슴이 쿡쿡 찔려왔다. 정말 그랬다. 부정적인 것을 모두 감추고 겉으로는 "모든 것이 최고인양" 가면을 쓰고 있을 때가 많았을 뿐더러 분명히 시시비비를 가리고 대응해야 했을 때도 일방적으로 갈등을 피하고 도망가기 일쑤였다. 어쩌면 단 몇 번의 대화로 풀렸을 수 있을 갈등으로 인해 수많은 관계를 단절했고 나 스스로의 감정도 정리하지 못한 채 그저 잊어버리려고만 했던 것 같다. 비엔나에 있었을 때는 일이 년에 한번씩은 전화번호를 바꿨고, 새로운 전화번호를 극소수의 지인들에게만 알려준 것은 물론이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고, 내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수없이 입으로 고백하고 알면서 정작 왜 내 생활에서의 부족함, 모자람은 인정하려 하지 않을까? 죄인들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께서 인격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흠잡을 데 없는 지식인들을 기대하셨을리 없는데 말이다. 흔히들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울까봐"라고 변명을 하는데, 정말 나처럼 미미한 존재의 부족함으로 인해 가리워질만한 것이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애초에 나 같은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내가 잘나서 혹은 잘 행동해서가 아니라 100% 은혜로 가능했던 것인데 말이다. 

저자는 믿음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기 자신을 완전히 부정해야 한다고 억압하는 오늘날의 제자도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하나님의 사역에 힘쓰고 교회를 위해 헌신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오직 그것에만 무게를 두고 그것이 마치 '구원받기 위한 속건제'인 것마냥 집착하기 때문에 그것을 통해 도달할 수 있는 아름다운 삶을 경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마음 속으로는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으면서도 "이게 옳은 것이고 나는 옳은 일을 하니까 분명 좋은 일이 일어날거야"라는 모순적인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에 힘쓰기 때문에 언젠가는 결국 넘어질 수 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열심을 다해 앞으로 나아갈 땐 어떻게 서있을 수 있을진 몰라도,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거두지 못했을 땐 "하나님, 어째서 저에게 이러십니까!"를 외치며 교회를 떠날 수도 있다고 저자는 경고한다. 사실, 오늘날 교회에서 정말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신앙생활은 "관계"이고 하나님과의 "인간적인 만남"이 중요하다는 말씀을 참 좋아한다. 처음엔 "인간적"이라는 수식어 때문에 뭔가 거부감이 들었다. 뭔가 말만 그럴싸한 관념적 신앙이 아닐까 의구심도 들었다. 하지만 몇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신앙생활의 본질에 있어 중요한 포인트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주의 형상을 따라 지으신 것이 인간이고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비유로써 설명해주시기 위해 인간적인 관계를 주셨다.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 되심을 알려주시려 가족이라는 거울을 허락하셨고 말이다. 
물론 사람의 부모는 결코 하나님일 수 없다. 이러한 부모-자식 관계의 모형은 나 스스로가 아이를 낳고 나니 더 잘 이해가 갔다. 부족한 나라 하더라도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어떠실까 하는 마음에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했다. 배은망덕하기 짝이 없는 인간을 사랑하실까 싶었는데, 아이가 생기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부모가 아무리 아이를 사랑한다 한들 "인간적인 관계"가 형성되지 않으면 아이는 그 사랑을 느낄 수가 없다. 아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은 "관계"라는 채널을 통해 아이에게 전달된다. 아무리 큰 사랑도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 사랑을 이해하고, 느끼고, 누릴 수 있으려면 연결고리가 필요하다. 하나님의 사랑도 마찬가지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은, 곧 자신만의 "인간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고, 그렇게 할 때 비로소 그 사랑으로 인한 아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다고 강조한다. 여기에 필요한 것이 바로 "관상적 영성"이다.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차리고 의식하려면 건강한 정서 위에 관상적 전통과 훈련이 더해져야 한다. 관상적 영성은 우리가 더욱 성숙하게 하나님과 교제하도록 이끌어 준다. "해 주세요, 해 주세요, 해 주세요"하는 유아적 태도에서 보다 성숙한 길로, 곧 "아빠 아버지"(롬8:15-17)와 함께하며 기뻐하는 자리로 나아가게 한다. (82 페이지)


모순적이고 가식으로 병든 영성에서 벗어나 건강한 영성에 이르기 위해 저자는 책의 후반부에서 일곱 가지 명확하고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앞서 소개한 "정서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영성의 징후 10가지"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방법들이다. 그 내용이 좋고 그렇지 않고를 따지기 이전에 하나하나 나에게 너무나도 필요한 말들이었기에 감사함으로 읽어내려갔다. 정말이지 이런 책을 만나는 것은 엄청난 축복이다. 그것도 내가 가장 필요로 하는 그 절묘한 시점에 말이다. 물론 이 책을 한 번 읽은 것만으로는 정서적으로 건강한 영성을 가질 수 없기에 몇 번 더 차근차근 읽고 날마다 깨어있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이 책을 읽고 나니 "깨어있는 삶"의 정의가 조금은 달라졌다. 

마음같아서는 대량으로 구매하여 소중한 사람들에게 모두 한 권씩 나누어주고 싶은 책이다. 조금 더 드라마틱하게 표현하자면 인생을 바꾸어놓을 책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보다 많은 신앙인들이 이 책을 읽고 자신의 가면을 벗어버리고 건강하고 감사로 가득찬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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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엄마로 산다는 것 - 사랑에 서툰 엄마를 위한 어머니다움 공부
이옥경 지음 / 좋은날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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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을 확인하자마자 다짐한 것이 있다. 내 아이에게만큼은 정말 좋은 엄마가 되어줄 것. 세상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고, 다른 아이와 비교하지 않고, 아이 그 자체로 감사하며 행복해할 것. 그리고 어떤 일이 있더라도 마지막까지 아이의 편에 서 줄 것. 


폭풍 같았던 신생아 시기가 지나고 어느정도 안정기(?)로 접어든 요즘, 아들은 드디어 '자유 의지'가 생기기 시작한 듯 하다. 그저 배고프거나, 불편하거나, 졸릴 때 울었던 예전과는 달리 이제는 원하는 것이 생기고 그것을 가지지 못할 때 울음을 터뜨린다. 그것도 얼마나 서럽게 우는지 옆에서 지켜보면 안쓰럽기도 하고 웃음이 나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게 되다보니 육아의 어려움이 조금은 달라졌다. 잠을 자지 않아 괴로웠던 예전이었다면, 이젠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을 때마다 짜증을 내며 우는 아들과 마주하게 된다. 아직까지는 모든 의사소통을 울음과 웃음으로 하는 아들이기에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대성통곡을 겪어야 한다. 기분좋게 푹 자고 컨디션이 좋은 날이라면 상관없지만 잠도 부족하고 집안일은 밀려 있는데다 당장 오늘까지 마감해야 하는 원고가 있다면 전혀 괜찮지 못하다. '그냥 낮잠 좀 자주면 안되니?'라는 원망이 혀끝까지 밀려나온다. 


그래서 피식 웃음이 나온다. 예전에는 아들과 말만 통하면 만사 오케이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히려 말이 통하면 더 화가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에야 많은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들이기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다 알아듣고 이해하면서도 안 따라준다면? 더 화내기 쉬워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엄마가 되고 싶지 않다. 물론 어떤 엄마가 자식에게 화내고, 짜증내고, 매를 드는 엄마가 되고싶겠냐만은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다해 그에 맞서 싸울 작정이다. 화를 내는 것도, 짜증을 내는 것도 모두 습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나는 짜증을 내지 않겠다"라는 원칙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체벌은 더 당연한 이야기고. 아동복지법에 따르면 단 한 대의 매도 아동학대로 규정된다. 체벌 자체가 금지되어있다는 뜻이다. 그것이 아니고서라도 절대, 어떤 경우에도 아이를 때릴 생각은 없다. 야만적이고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가르쳐야 행동을 바로잡을 수 있다면, 인간이 다른 짐승과 다른 게 무엇일까? 하다못해 우리집 강아지에게도 매를 들지 않는다. 예전에 몇 번 엉덩이를 때렸던 적이 있었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다. 아무리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 한들, 휘두른 폭력은 강아지와 나의 마음에 상처로 남았을 뿐이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해야할까? 엄마도 인간인지라 인내력에는 한계가 있다. 자식이 크면 클 수록 오히려 참을성은 고갈되어 가는 것 같다. '알 만한 녀석이 도대체 왜 이래!' 하며 금새 분통을 터뜨리기 쉽다. 화를 내고 싶어서 내는 엄마가 없듯이 말썽부리고 싶어서 말썽부리는 자식도 없을텐데 둘 사이의 관계에는 점점 깊은 골짜기가 패여간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만나게 된 책이 바로 <좋은 엄마로 산다는 것>이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해집니다'라는 문구를 담고 있는 겉표지. '느긋하게 사랑하고 따뜻하게 보듬는 어머니 되어보기'라니 내가 가장 바라던 그림이었다. 억척같이 자식의 미래를 위해 사방팔방 뛰어다니는 엄마가 아니라 조금은 뒤쳐지고 조금은 늦어지더라도 인내와 여유를 가지고 한결같이 아이를 보듬는 엄마... 바로 내가 꿈꾸는 엄마의 모습이다. 


맑은샘심리상담소의 대표인 저자 이옥경 씨는 상담전문가로 수많은 부모와 자녀 관계를 회복시키는데 힘써왔다고 한다. 실제로 책에 등장하는 사례들은 그녀가 그동안 만나왔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저자의 이론을 뒷받침하기 위해 억지로 껴맞춘 이야기가 아니라, 직접 만나서 보고 듣고 경험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이기에 더욱 가슴에 깊이 와닿는다. 조금 큰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라면 한두번은 꼭 고개를 끄덕일만한 이야기일 것이다. 


성적 문제로 갈등을 빚는 엄마와 아이, 거짓말 하는 아이, 방문을 잠그고 엄마와 단절된 아이 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례들로 시작하는 이 책이 전하는 핵심 메시지는 '건강한 부모의 건강한 사랑'이다. 자기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세상에 어디 있을까. 목숨이라도 내어줄 수 있다면 기꺼이 내어줄 것이 부모의 사랑일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자식들에게 그런 부모의 사랑을 이해하냐고 물을 때 몇 명이나 '네'라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을까? 오히려 "세상에 자기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도 있더라고요" 하며 씁쓸한 표정을 지을지도 모른다. 그렇게까진 하지 않더라도 "엄마는 날 사랑하는 것 같은데 전 별로 그렇게 느껴지지 않아요"가 대부분의 대답이 아닐까? 어찌됐든간에 한평생 자식의 미래를 위해 앞만 보고 뛰어온 부모님들은 뒷목잡고 쓰러질 형국이다.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느 시절에나 똑같겠지만, 아이의 본성을 외면한 채 부모의 의욕이나 욕심을 덧씌우려고만 한다면 그것은 자식을 양육하는 게 아니라 소유하는 것입니다 - 84 페이지 

그만 놀고 들어가서 공부하라고 닥달하는 엄마들이 하나같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있다. "내가 나 좋으라고 이러니? 다 너 잘되라고 그러는거야!" 저자는 묻는다. 과연 정말, 진짜 자식이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그러는 것이냐고. 공부를 잘하고 명문대를 졸업해 내노라하는 직장에 취직하는 것이 정말 자식의 행복을 위해서인가 말이다. '내 자식은 당연히 남들보다 뛰어나야 해'라는 부모의 욕심은 아닌가 돌아봐야 한다고 저자는 조언한다.


예전에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에 한 청년 실업가가 출연한 적이 있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좁은 바늘구멍같은 취업의 길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평소 자신이 관심을 가졌던 분야를 개발하여 창업을 한 뒤, 생계를 걱정하지 않을만큼 이윤을 남기고 있었다. 아니, 걱정하지 않을 정도가 아니라 월매출이 무려 900만원에 육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해 출연한 그가 털어놓은 고민인즉슨 자신의 아버지가 끝까지 자신의 일을 인정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버젓한 직장이 아니기때문에 아버지의 눈에는 아직도 '쓸데없는 창피한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아버지는 그에게 취업을 못했으니 실패한 인생이라고까지 했다. 


비단 청년실업가의 이야기가 아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부모님과 비슷한 대립중인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심지어는 중년에 들어선 나이에도 부모님 말에 이리저리 휘둘리며 자기 인생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의 한결같은 변명은 '부모님이 다 나 잘되라고 하시는 이야기니까'다. 유럽에서 자라 다 큰 후에야 한국에 들어온 내게는 정말 생소한 이야기다. 결혼할 사람과 헤어지기도 하고, 이미 결혼한 부인이나 남편과 사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심지어는 자기 자식의 앞날이 부모님 손에 좌지우지 되기도 한다. 스스로도 정체성을 찾지 못한 부모라면, 어떻게 아이에게 올바른 정체성과 독립심을 찾아줄 수 있을까.


물고기는 물에서 살아야 가장 행복한 법이다. 반면 두더지는 땅에 있어야 하고 새는 하늘을 높이 날아야 한다. 이처럼 아이들은 스스로가 가지고 개척해나가는 그들만의 본성이 있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에 쏙 든다면야 더할나위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사실 여기서부터 대부분의 문제가 시작된다. 공부에는 도통 관심이 없는 아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아이, 외모를 가꾸지 않는 아이, 외모를 너무 가꾸는 아이, 성적이 좋지 않은 아이, 너무 뚱뚱하거나 너무 마른 아이, 심지어는 목소리가 너무 걸걸하다고 혼나는 아이도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한가지다. 무엇이 되었든 아이는 아이 자체가 아닌 부모가 들이댄 잣대로 판단받고 있다는 것이다. 부모가 원하는 만큼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이고, 부모가 원하는 만큼 외모를 가꾸지 않는 것이지, 진짜 모자르거나 못생긴 것이 아니다. 



처음 아들이 태어났을 때를 기억한다.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흠도 없는 새하얀 도화지를 선물받은 느낌이었다. 너무 깨끗하고 새하얗기에 내 손을 내려놓기도 부담스러운, 행여나 더러운 손에서 때가 묻을까 걱정되는 그런 아이었다. 내가 하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이 아이의 도화지에 어떤 모습으로건 새겨질 것이다. 내가 느끼는 감정과 표현하는 방식이 나이테처럼 아이의 마음과 성격에 기록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묵직한 두 어깨의 책임감이 유난히 더 무겁게 느껴졌다. 참을성 없고 감정적이며 제멋대로였던 내 성격을 강제로라도 고삐채울 이유가 생겼다. 이 세상 누구보다도 행복하고 자존감 있는 아이로 키우고 싶었기에 그에 있어 내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치 않았다. 이유없이 하루종일 보채고 울 때면 내가 더 목놓아 울고 싶었고, 먹어야 하는데 먹지 않고 버팅길 때면 온몸이 땀에 젖어 성질이 나기도 했다. 지금 충분히 먹어야 잘 자고 하루를 제대로 보낼 수 있는데 한사코 먹기를 거부하고 엉엉 우는 아들에게 억지로 젖병을 물리고 싶을 때도 있었다. 분명 낮잠을 자야 하는 시간이고 두 눈이 시뻘개지도록 부비면서도 절대 잠은 자지 않으려는양 고개를 세차게 흔들면 인내심이 뚝! 하고 끊어지는 것도 같았다. 그럴때면 어김없이 신랑에게 불만을 토로하곤 했다. 먹을 시간이 되어서 먹이는 건데 왜 안먹는건지 모르겠다는 둥, 그냥 자면 좋을텐데 나까지 너무 힘들다는둥... 신랑은 언제나 아무말 없이 끝까지 들어주며 어깨를 토닥여주었지만 그렇게 원망섞인 말을 한참 쏟아내고 나면 왠지 모를 미안함만 밀려왔다.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내가 느꼈던 감정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동안 내 소신껏 잘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나부터 '건강한 부모'로써 '건강한 사랑'을 주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건강한 사랑은 원리원칙이나 객관적으로 좋은 것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 가장 아이가 원하는 것을 주며 사랑으로 보듬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물론 아이가 옳지 않은 것을 원하거나 잘못된 길로 들어서려 한다면 단호히 꾸짖고 막아야겠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그게 아니다. 지금은 먹고 싶지 않다는 것, 피곤하지만 지금은 자고 싶지 않다는 것, 친구와 좀 더 놀고 싶고, 숙제는 좀 이따 하고 싶은 그런 사소하기 그지없는 작은 소망들이다. 


생각해보면 이 모든 규칙을 만들어낸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엄마다. 그렇다고 엄마가 그 규칙을 일년 사시사철 칼처럼 지키는고 하니 별로 그렇지도 않다. 아이 입장에서는 엄마가 하라고 하면 해야 하고 엄마가 안하면 안해도 되는 이상한 기준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아이가 조금 더 크면 자신의 의견은 무시당하는 것 같아 반항심이 생기곤 한다. 다른 육아서에서 읽은 내용이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부모와 자식 관계는 수직관계가 아니다. 물론 자식은 부모를 위하고 순종해야 겠지만, 그것은 강요에 의해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에 기꺼이 해야 하는 것이다. 즉, 내가 네 엄마니까 넌 당연히 나를 사랑하고 내 말에 순종해야 해! 는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과연 이렇게까지 해서 억지 사랑을 받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다시 아들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면, 책을 읽은 이후 나는 내가 아들을 대할 때 단지 엄마라는 이유로 강요하는 것이 있었나 생각해보았다. 8개월 아기에게 무슨 강요?라고 생각했었는데, 내가 일방적으로 행동하는 경우는 놀랄만큼 많았다. 

먼저, 먹어야 할 시간이기에 이유식을 주면 울면서 먹지 않는 경우, 먹고싶지 않아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냥 식사를 중단했다.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지금 제대로 먹지 않으면 얼마 안가 배고프다고 보챌 것이 분명하고 그렇게 되면 낮잠 시간마저 어그러지니 말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먹고 싶지 않아할 때 식사를 중단하자 아들은 배가 고프다고 보채지 않았고, 낮잠도 잘 잤다. 수유텀도 한 시간 더 길어졌다. 생각해보니 아들이 성장하며 자연스럽게 수유텀이 늘어났는데도 나는 (책에서 나온대로) 예전 수유텀을 고집하고 있었던 것이다. 잘 먹던 아이가 요즘 왜이렇게 투정을 부리지 걱정했었는데 이젠 다시 규칙적으로 자기 양을 뚝딱 비우곤 한다.


두번째로, 낮잠을 재울 때 좀처럼 잠들지 않으면 피곤해하는 것 같아도 데리고 나와 더 놀게 해주었다. 눈이 시뻘개지도록 부비고 연신 하품을 하면서도 잠들지 않는 아들을 한 시간이 넘게 재우고 있을 때면 내 인생의 반 이상을 아기 재우는데 쓰고 있는 것 같아 한숨이 절로 나왔다. 시간이 지나갈 수록 나의 분노 게이지(?)도 올라갔고, 나중에는 자장가를 불러줄 마음이 도무지 들지 않았다.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버린 것은 물론이다. 

아무리 피곤해보인다 하더라도 아들이 잠들지 않는다면 "아직 자고 싶지 않은거구나"라고 부드럽게 말한 뒤 다시 데리고 나와 놀게 해주었다. 우습게도 이렇게 아들의 의견을 존중해 데리고 나오려 하면 뭔가 자꾸 "지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히 피곤한데, 분명히 자야 하는데 왜 안 자는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아들이 원하는 만큼 더 놀게 해주었다. 피곤을 이기고(?) 놀던 아들은 이내 다시 칭얼거리기 시작했고, 그 때 다시 재우려고 침대에 눕히면 힘들이지 않고 잠이 들었다. 한 시간이 넘게 고전했던 것을 생각하면 황당할만큼 놀라운 결과였다. 


이렇게 내 생각을 바꾸고 나니 마음의 평안을 찾은 것은 아들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노느라고 목욕 시간이 늦어져도 '지금 즐겁게 노는 이 순간이 더 중요한걸'이라는 생각에 여유롭게 준비할 수 있었고, 수유텀이 흐트러진다 한들 '내일 다시 잘 해보지 뭐. 나도 가끔은 안먹고 싶을 때가 있는데'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밤에 푹 자지 않을 땐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었지만 '낮잠을 잘 자려나보다'했고 실제로 다음날 낮잠을 오래 자주어 쉴 수 있기도 했다. 


이 책을 끝까지 읽으면서 다짐한 한가지가 있다면 "내가 엄마라는 이유로 권력을 남용하지 말자"다. 아들에게도 선택할 권리가 있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존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아들이 크면 클 수록 그 권리라는 것이 점점 늘어나 뒷목을 잡으며 가슴을 치는 때도 있을지 모르지만, 기본적으로 아들은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며 그래서도 안되고, 엄마로서의 내 역할은 이 아이가 육체적, 정서적으로 건강하게 자라 독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임을 기억하자고 다짐했다. 그런 마음으로 진심을 담아 아들을 존중하고 매일 매일 감사와 행복으로 살아간다면, 적어도 이 책에 등장하는 엄마와 아이들이 겪어야 했던 힘든 시간들을 절약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한 일일 것이다. 



저자의 말은 따뜻하다. 가끔은 단호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따뜻하고 친절하다. 내 아들에게 이렇게 말해주는 엄마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그러고 싶지, 근데 누가 그렇게 할 수 있어?"라는 말 따위는 무시해버리고. 하나뿐인 사랑하는 아이를 위해서라도 나 자신을 가꾸고 발전시켜나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매일 매일 새로운 도전과제가 기다리고 있기에 절대 쉽지 않을 결심이지만, 그런만큼 이 책을 항상 눈에 보이는 곳에 두고 잊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 작심삼일이라도 사흘마다 새롭게 시작한다면 될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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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예쁘다 - 육아의 블랙홀에 빠진 엄마들을 위한 힐링 에세이
김미나 지음 / 지식너머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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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안 개구리"라는 말이 있다. 세상은 넓고 뛰어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지도 못한채 작은 우물에서 자기 자신이 제일 잘난 양 개굴거리는 것. 어렸을 때부터 "우물 안 개구리"가 되기 싫어 그렇게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배우면 배울 수록 내가 얼마나 아는 것이 적은지 깨닫게 되어 부끄러워졌고, 사람들을 만나면 만날 수록 그들이 삶이라는 바운더리 안에서 다채롭고 개성있게 스스로를 개척해나가는 것을 보며 도전도 많이 받았었다. 어떻게 보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되고 싶지 않아 바둥거렸기에 쉴 새 없는 자극속에 그토록 앞만 바라보며 살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아기를 낳고 내 삶은 그야말로 정적에 들어섰다. 11월 중순 출산하고 조리원에서 퇴소하니 12월 초. 다른 때 같았으면 연말연시 공연이네, 교회 행사네, 크리스마스네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숨가빴을텐데, 나의 생활이라고는 오로지 집 안에서 쉴 새 없이 소리질러 우는 아기와의 24시간이 전부였다. 때가 되면 밥을 먹고, 양심상 하루에 한 번은 씻기도 했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매일 매일이 같은 날이었다. 아니, 사실 밤잠을 제대로 자본 적이 없기에 하루가 어떻게 끝나고 언제 시작되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아기가 백일 때까지는 (지금 돌이켜보면) 지독한 산후우울증을 앓았다. 그냥 우울했던 것이 아니라, 가끔 창밖을 보며 '뛰어내려버릴까?'하는 무서운 생각이 드는 진짜 우울증이었다. 눈 앞에 있는 아기가 사랑스럽지 않은 것도 아니었고, 신랑이 의지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냥 그랬다. 생각해보면 그래서 우울증이 어떤 정신적 나약함의 상태가 아닌 "병"이라고 하는 것 같다. 정말 감사하게도 떠올리기조차 싫은 산후우울증은 아들이 백일이 지날 무렵 씻은듯이 깨끗하게 사라졌다 (대신 산후탈모가 시작되었지만 ㅎㅎ).



갑작스레 장황스럽게 내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밖에 없었던 건 "엄마는 예쁘다"를 읽으며 연신 지금까지의 육아를 돌이켜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책 뒷면에 수록된 누군가의 감상평이 가슴에 와닿는다.


"왜 슬픈 이야기가 아닌데 눈물이 펑펑 날까요?"


정말 그랬다. 슬픈 이야기도 아니고 결국 두 딸의 엄마로 성장해나가는 저자의 이야기를 읽는 것인데 왜 이렇게 눈물이 쏟아지는지. 아이들이 예뻐서 눈물이 나고, 내 이야기 같아서 눈물이 나고, 앞으로 다가올 일들에 행복해서 눈물이 났다. 그러다가도 깔깔 거리며 웃고... 책 한 권을 읽으면서 이렇게 복잡한 감정들이 뒤엉켜 울고 웃은 적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소위 명문고, 명문대를 나와 잘 나가는 워킹우먼이었던 저자가 결혼 후 전업주부에 취직(!)하게 되면서 느꼈을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의미있는 일이지만 막상 현실이 되고 나면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죽어라고 해도 티안나고 안하면 티가 팍팍 나는게 바로 육아와 집안일이 아닐까.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피로하기 그지 없는 상황에서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큰 도전이다. 


이 책은 아기를 키우는 엄마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며 무릎을 칠 수 밖에 없는 이야기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아가씨들이나 결혼을 했더라도 아이가 없는 예비엄마들은 "정말 이럴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할지 몰라도. 정말 그렇다. 정도의 차이가 있어서 그렇지, 정말 그렇다. 오죽하면 이 글을 읽은 엄마들이 자기 이야기를 읽는줄 알았다고 입을 모았을까. 나 역시 "이거 딱 내 이야기잖아!" 하고 탄성을 지를 수 밖에 없었다. 

엄마가 되면 뭐든지 할 수 있을줄 알았다. 아기를 낳는 순간 마법처럼 "엄마"로 레벨업 할 줄 알았다. 아기가 아무리 힘들게 해도(?) 사랑으로 극복하며 뭐든 할 수 있을줄 알았고, 아무리 답답한 상황이 와도 엄마라는 이름으로 꿋꿋이 견고하게 서있을 줄 알았다. 물론 아들이 8개월이 지난 지금은 어느 정도 멘탈이 성장한 것을 느끼지만 당장 아기를 낳은 생초보 엄마였을땐 내 앞에 닥친 상황에 멘붕이 왔고, 내가 멘붕이라는 사실에 더 멘붕이 되어버렸다. 저자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깊게 공감한 것은 "아기가 한 살이니 엄마도 한 살이다"는 것이다.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 조금씩 하지만 확실히 세상에 적응해나가듯, 엄마 또한 그러하다. 마법처럼 짠! 하고 엄마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눈물과 땀 그리고 웃음이 켜켜이 쌓여 천천히 엄마가 되는 것이다. '은이와 원이 엄마'의 이야기가 감동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이 때문이 아닐까.



앞서 "우물 안 개구리" 이야기를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다시금 나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씁쓸한 현실과 마주했다. 부끄럽지만 솔직히 털어놓자면, 산후우울증을 극복하고 아들에 대한 본격적인 쏟아지는 사랑이 시작될 무렵 블로그에 육아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의 기억을 더 생생하게 잡아두고 싶었기 때문이지만 (여담이지만 블로그에 일기를 쓰는 것이 우울증 극복에도 꽤나 효과적이라고 한다), 일 년, 이 년이 지나 일기가 충분히 쌓이면 내가 경험한 육아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내보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모르긴 몰라도 모든 육아맘들의 로망일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예쁘다"를 읽으면서 '아, 글은 이렇게 쓰는 거구나', '이 정도는 되어야 책으로 내는 거지!'라는 큰 깨달음(?)에 씁쓸한 웃음이 났다. 맞춤법과 띄어쓰기도 헷갈리면서 한때나마 육아일기 출간을 꿈꾸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오랜 시간 독서와 공부로 쌓인 해박한 지식으로 부드럽고 우아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저자의 글에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궁금함에 책에 적힌 블로그로 한걸음에 달려갔는데, 책에서 뿐만 아니라 며칠 간격으로 올라오는 블로그 포스팅의 문체 역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담백한 것에 다시한번 놀랐다. 

아마 이것이 "엄마는 예쁘다"가 다른 육아일기와 다른 점이 아닐까? 저자가 경험한 육아 이야기는 그렇게 특별하지 않을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우리와 함께 육아를 하는 대부분의 엄마들이 겪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리고 그 중 (나를 포함한) 수많은 엄마들이 블로그에 육아일기를 쓰곤 한다. 하지만 지나치게 평범할지도 모르는 이야기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것은 읽으면 읽을 수록 더욱 빠져들게 되는 저자의 필력이 아닐까. 담담한 듯이 풀어내면서도 공감과 감성을 끌어내는 글이라니... 부럽다!



주변에 출산을 앞둔 후배맘(!)들에게 주저없이 선물할 책이다. 아기를 낳기 전이나 낳은 후 곧장 이 책을 읽으면 공감이 가지 않을 수 있지만 반 년만 지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리다가도 낄낄거리며 웃지 않을까. "아이를 이렇게 키워야 한다!"고 가르쳐주는 육아서보다 더 큰 힐링을 줄 (그리고 사실 엄마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이것이다!) 그런 책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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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장 생태 도감 - 온 가족이 함께 보는 자연 백과사전
우종영 외 지음, 김종민 그림 / 스콜라(위즈덤하우스)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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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캠핑은 일부 레저를 즐기는 사람들의 고급스런(?) 취미였는데 이젠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두루두루 사랑받는 여가생활이 된 것 같다. 특히 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한번쯤은 꼭 다녀온다는 캠핑. 그렇지 않고선 아이들에게 자연을 보여주기 힘들어진 슬픈 시대여서일까. 여하튼간 주위 엄마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캠핑의 c와도 관계 없을 것 같은) 나조차도 아들이 조금 더 크면 캠핑을 다녀와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캠핑족이 많아진 요새야 캠핑장의 시설도 편의도 잘 갖추어져있지만 무작정 떠났다간 낭패가 되기 십상! 특히 아이와 함께 떠나는 캠핑이라면 짧은 기간이라도 좀 더 알차게 보내고 싶은게 엄마 마음인만큼 미리미리 준비하고 공부해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두고두고 유용하게 읽을만한 책 <캠핑장 생태 도감>. 이번에 스콜라에서 발간된 신간이다. 캠핑장에 갈 때면 꼭 챙겨가야 한다는 자연 백과사전이라니. 도대체 어떻게 구성되어 있을까 궁금했다.


일단 이 책의 구성은 본 책과 관찰 노트, 그리고 카드형 돋보기로 되어있는데, 처음 카드형 돋보기를 보고 정말 신기했더랬다. 휴대가 편할 뿐더러 유리가 아니라서 쉽게 깨지거나 망가지지도 않으니 아이들이 정말 좋아할 것 같았다 (왠지 캠핑을 가지 않더라도 꼭 가지고 다닐 것만 같은 ㅋㅋ).

부록으로 들어있는 돋보기라고 하기에는 평상시에도 유용해보여 괜히 내가 탐이 나기도 했다. 내가 어렸을 때 가지고 다니던 유리 돋보기보다 가볍기도 가볍고 아마도 이것으로는 햇빛을 모아 곤충을 태워죽이는(...) 불상사를 저지르지 못할 것 같아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생명의 존엄과 윤리를 배우기 전의 아이들이란............). 휴대가 간편하다는 건 대단한 장점! 모르긴 몰라도 캠핑갈 때 뿐만 아니라 학교갈 때나 놀러다닐 때도 가지고 다닐 것 같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백과사전 겸 도감과 자연동화, 캠핑장에 대한 정보가 한 권으로 묶여있다는 것이다. 이르면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읽힐 수 있을텐데 바로 이맘때가 어떤 자연전집을 사줘야 하는지 엄마들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는 시기라는 걸 감안하면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한 권 한 권 각기 다른 테마에 헌정된 자연전집도 훌륭하지만 직접 보고 관찰할 수 있는(!) 동물과 식물, 곤충 위주로 구성된 도감이다보니 아이가 더욱 관심을 가지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상상 속의 가족인 핑이 가족. 엄마 아빠가 캠핑장에서 만나 결혼했다는 설정이 귀엽다. 캠핑장에서 지켜야 할 일이나 자연관찰을 할 때 알아야 할 점 등 중요한 내용을 동화로 풀어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이야기해주고 있기 때문에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자칫하면 교과서처럼 딱딱해질 수 있는 내용도 핑이 가족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재미있는 놀이가 된다.

곤충과 물고기, 새, 파충류, 야생동물 등 다양한 생물들의 소개와 함께 도감이 수록되어 있어 찾아보기 좋다. 근데 왜 곤충의 비율이 이렇게 높은건지... 곤충을 엄청나게 무서워하는(?) 나로서는 아들이 쑥쑥 자라 장수풍뎅이를 가져오며 "우와 엄마 나 이거 잡았어 만져봐!"라고 하는 날이 제발 오지 않기를 바랄 뿐... 어른이 되면 곤충공포증도 자연스럽게 없어질 줄 알았건만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나보다 ㅠㅠ 이젠 모성애로 극복해야만 하나? 이제 8개월이 다 된 아들은 벌써부터 곤충도감을 펼쳐주니 읽겠다며 (아니 먹겠다며) 관심을 보인다.

온 가족을 위한 자연 백과사전이라니 정말 맞는 말이었다. 무심코 읽기 시작했는데 동화와 도감, 여러가지 팁이 어우러지니 즐겁게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나도 이렇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데 한참 자연에 관심을 갖는 아이들이라면 오죽할까. 물론 더이상 앞마당이나 아파트 정원에서 이런 생태계를 관찰하는 것은 어렵게 되었지만 캠핑이라는 훌륭한 대안으로 아이들에게 자연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펼쳐든 관찰 노트. 스크랩과 그리기를 할 수 있고, 관찰한 것을 빠지지 않고 기록할 수 있는 가이드라인으로 구성되어 있어 노트 대로만 기록한다면 훌륭한 일지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작성할 때도, 나중에 펼쳐볼 때도 성취감을 느끼며 즐거워하겠지. 캠핑장에서 보고 느낀 것을 기록하면서 아이는 얻은 지식과 경험을 진정 자기의 것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책에 나온 곤충과 물고기, 새들을 찾아 캠핑 장소를 정한다면 마치 포켓몬의 주인공이라도 된 것처럼 캠핑 모험을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래성을 쌓기 위해 이젠 집에 모래까지 사와야 하는 요즘, 자연을 좀 더 가까이 관찰하고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풍부한 지식의 자연도감과 누구나 도전해볼 법한 캠핑을 접목시킨 아이디어가 정말 마음에 든다. 아들이 조금 더 크면 정말 캠핑을 떠나 자연관찰을 해봐야지. 물론 그 전에 (아들을 위해서라도) 곤충공포증을 극복해야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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