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엄마로 산다는 것 - 사랑에 서툰 엄마를 위한 어머니다움 공부
이옥경 지음 / 좋은날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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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을 확인하자마자 다짐한 것이 있다. 내 아이에게만큼은 정말 좋은 엄마가 되어줄 것. 세상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고, 다른 아이와 비교하지 않고, 아이 그 자체로 감사하며 행복해할 것. 그리고 어떤 일이 있더라도 마지막까지 아이의 편에 서 줄 것. 


폭풍 같았던 신생아 시기가 지나고 어느정도 안정기(?)로 접어든 요즘, 아들은 드디어 '자유 의지'가 생기기 시작한 듯 하다. 그저 배고프거나, 불편하거나, 졸릴 때 울었던 예전과는 달리 이제는 원하는 것이 생기고 그것을 가지지 못할 때 울음을 터뜨린다. 그것도 얼마나 서럽게 우는지 옆에서 지켜보면 안쓰럽기도 하고 웃음이 나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게 되다보니 육아의 어려움이 조금은 달라졌다. 잠을 자지 않아 괴로웠던 예전이었다면, 이젠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을 때마다 짜증을 내며 우는 아들과 마주하게 된다. 아직까지는 모든 의사소통을 울음과 웃음으로 하는 아들이기에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대성통곡을 겪어야 한다. 기분좋게 푹 자고 컨디션이 좋은 날이라면 상관없지만 잠도 부족하고 집안일은 밀려 있는데다 당장 오늘까지 마감해야 하는 원고가 있다면 전혀 괜찮지 못하다. '그냥 낮잠 좀 자주면 안되니?'라는 원망이 혀끝까지 밀려나온다. 


그래서 피식 웃음이 나온다. 예전에는 아들과 말만 통하면 만사 오케이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히려 말이 통하면 더 화가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에야 많은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들이기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지만, 다 알아듣고 이해하면서도 안 따라준다면? 더 화내기 쉬워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엄마가 되고 싶지 않다. 물론 어떤 엄마가 자식에게 화내고, 짜증내고, 매를 드는 엄마가 되고싶겠냐만은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능력을 다해 그에 맞서 싸울 작정이다. 화를 내는 것도, 짜증을 내는 것도 모두 습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나는 짜증을 내지 않겠다"라는 원칙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체벌은 더 당연한 이야기고. 아동복지법에 따르면 단 한 대의 매도 아동학대로 규정된다. 체벌 자체가 금지되어있다는 뜻이다. 그것이 아니고서라도 절대, 어떤 경우에도 아이를 때릴 생각은 없다. 야만적이고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가르쳐야 행동을 바로잡을 수 있다면, 인간이 다른 짐승과 다른 게 무엇일까? 하다못해 우리집 강아지에게도 매를 들지 않는다. 예전에 몇 번 엉덩이를 때렸던 적이 있었지만 전혀 효과가 없었다. 아무리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 한들, 휘두른 폭력은 강아지와 나의 마음에 상처로 남았을 뿐이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해야할까? 엄마도 인간인지라 인내력에는 한계가 있다. 자식이 크면 클 수록 오히려 참을성은 고갈되어 가는 것 같다. '알 만한 녀석이 도대체 왜 이래!' 하며 금새 분통을 터뜨리기 쉽다. 화를 내고 싶어서 내는 엄마가 없듯이 말썽부리고 싶어서 말썽부리는 자식도 없을텐데 둘 사이의 관계에는 점점 깊은 골짜기가 패여간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만나게 된 책이 바로 <좋은 엄마로 산다는 것>이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해집니다'라는 문구를 담고 있는 겉표지. '느긋하게 사랑하고 따뜻하게 보듬는 어머니 되어보기'라니 내가 가장 바라던 그림이었다. 억척같이 자식의 미래를 위해 사방팔방 뛰어다니는 엄마가 아니라 조금은 뒤쳐지고 조금은 늦어지더라도 인내와 여유를 가지고 한결같이 아이를 보듬는 엄마... 바로 내가 꿈꾸는 엄마의 모습이다. 


맑은샘심리상담소의 대표인 저자 이옥경 씨는 상담전문가로 수많은 부모와 자녀 관계를 회복시키는데 힘써왔다고 한다. 실제로 책에 등장하는 사례들은 그녀가 그동안 만나왔던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저자의 이론을 뒷받침하기 위해 억지로 껴맞춘 이야기가 아니라, 직접 만나서 보고 듣고 경험했던 사람들의 이야기이기에 더욱 가슴에 깊이 와닿는다. 조금 큰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라면 한두번은 꼭 고개를 끄덕일만한 이야기일 것이다. 


성적 문제로 갈등을 빚는 엄마와 아이, 거짓말 하는 아이, 방문을 잠그고 엄마와 단절된 아이 등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례들로 시작하는 이 책이 전하는 핵심 메시지는 '건강한 부모의 건강한 사랑'이다. 자기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세상에 어디 있을까. 목숨이라도 내어줄 수 있다면 기꺼이 내어줄 것이 부모의 사랑일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자식들에게 그런 부모의 사랑을 이해하냐고 물을 때 몇 명이나 '네'라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을까? 오히려 "세상에 자기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도 있더라고요" 하며 씁쓸한 표정을 지을지도 모른다. 그렇게까진 하지 않더라도 "엄마는 날 사랑하는 것 같은데 전 별로 그렇게 느껴지지 않아요"가 대부분의 대답이 아닐까? 어찌됐든간에 한평생 자식의 미래를 위해 앞만 보고 뛰어온 부모님들은 뒷목잡고 쓰러질 형국이다.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느 시절에나 똑같겠지만, 아이의 본성을 외면한 채 부모의 의욕이나 욕심을 덧씌우려고만 한다면 그것은 자식을 양육하는 게 아니라 소유하는 것입니다 - 84 페이지 

그만 놀고 들어가서 공부하라고 닥달하는 엄마들이 하나같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 있다. "내가 나 좋으라고 이러니? 다 너 잘되라고 그러는거야!" 저자는 묻는다. 과연 정말, 진짜 자식이 잘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그러는 것이냐고. 공부를 잘하고 명문대를 졸업해 내노라하는 직장에 취직하는 것이 정말 자식의 행복을 위해서인가 말이다. '내 자식은 당연히 남들보다 뛰어나야 해'라는 부모의 욕심은 아닌가 돌아봐야 한다고 저자는 조언한다.


예전에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에 한 청년 실업가가 출연한 적이 있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좁은 바늘구멍같은 취업의 길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평소 자신이 관심을 가졌던 분야를 개발하여 창업을 한 뒤, 생계를 걱정하지 않을만큼 이윤을 남기고 있었다. 아니, 걱정하지 않을 정도가 아니라 월매출이 무려 900만원에 육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해 출연한 그가 털어놓은 고민인즉슨 자신의 아버지가 끝까지 자신의 일을 인정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버젓한 직장이 아니기때문에 아버지의 눈에는 아직도 '쓸데없는 창피한 일'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아버지는 그에게 취업을 못했으니 실패한 인생이라고까지 했다. 


비단 청년실업가의 이야기가 아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부모님과 비슷한 대립중인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심지어는 중년에 들어선 나이에도 부모님 말에 이리저리 휘둘리며 자기 인생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의 한결같은 변명은 '부모님이 다 나 잘되라고 하시는 이야기니까'다. 유럽에서 자라 다 큰 후에야 한국에 들어온 내게는 정말 생소한 이야기다. 결혼할 사람과 헤어지기도 하고, 이미 결혼한 부인이나 남편과 사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심지어는 자기 자식의 앞날이 부모님 손에 좌지우지 되기도 한다. 스스로도 정체성을 찾지 못한 부모라면, 어떻게 아이에게 올바른 정체성과 독립심을 찾아줄 수 있을까.


물고기는 물에서 살아야 가장 행복한 법이다. 반면 두더지는 땅에 있어야 하고 새는 하늘을 높이 날아야 한다. 이처럼 아이들은 스스로가 가지고 개척해나가는 그들만의 본성이 있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에 쏙 든다면야 더할나위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사실 여기서부터 대부분의 문제가 시작된다. 공부에는 도통 관심이 없는 아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아이, 외모를 가꾸지 않는 아이, 외모를 너무 가꾸는 아이, 성적이 좋지 않은 아이, 너무 뚱뚱하거나 너무 마른 아이, 심지어는 목소리가 너무 걸걸하다고 혼나는 아이도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한가지다. 무엇이 되었든 아이는 아이 자체가 아닌 부모가 들이댄 잣대로 판단받고 있다는 것이다. 부모가 원하는 만큼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이고, 부모가 원하는 만큼 외모를 가꾸지 않는 것이지, 진짜 모자르거나 못생긴 것이 아니다. 



처음 아들이 태어났을 때를 기억한다.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흠도 없는 새하얀 도화지를 선물받은 느낌이었다. 너무 깨끗하고 새하얗기에 내 손을 내려놓기도 부담스러운, 행여나 더러운 손에서 때가 묻을까 걱정되는 그런 아이었다. 내가 하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이 아이의 도화지에 어떤 모습으로건 새겨질 것이다. 내가 느끼는 감정과 표현하는 방식이 나이테처럼 아이의 마음과 성격에 기록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묵직한 두 어깨의 책임감이 유난히 더 무겁게 느껴졌다. 참을성 없고 감정적이며 제멋대로였던 내 성격을 강제로라도 고삐채울 이유가 생겼다. 이 세상 누구보다도 행복하고 자존감 있는 아이로 키우고 싶었기에 그에 있어 내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치 않았다. 이유없이 하루종일 보채고 울 때면 내가 더 목놓아 울고 싶었고, 먹어야 하는데 먹지 않고 버팅길 때면 온몸이 땀에 젖어 성질이 나기도 했다. 지금 충분히 먹어야 잘 자고 하루를 제대로 보낼 수 있는데 한사코 먹기를 거부하고 엉엉 우는 아들에게 억지로 젖병을 물리고 싶을 때도 있었다. 분명 낮잠을 자야 하는 시간이고 두 눈이 시뻘개지도록 부비면서도 절대 잠은 자지 않으려는양 고개를 세차게 흔들면 인내심이 뚝! 하고 끊어지는 것도 같았다. 그럴때면 어김없이 신랑에게 불만을 토로하곤 했다. 먹을 시간이 되어서 먹이는 건데 왜 안먹는건지 모르겠다는 둥, 그냥 자면 좋을텐데 나까지 너무 힘들다는둥... 신랑은 언제나 아무말 없이 끝까지 들어주며 어깨를 토닥여주었지만 그렇게 원망섞인 말을 한참 쏟아내고 나면 왠지 모를 미안함만 밀려왔다. 


이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내가 느꼈던 감정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동안 내 소신껏 잘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나부터 '건강한 부모'로써 '건강한 사랑'을 주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건강한 사랑은 원리원칙이나 객관적으로 좋은 것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 가장 아이가 원하는 것을 주며 사랑으로 보듬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물론 아이가 옳지 않은 것을 원하거나 잘못된 길로 들어서려 한다면 단호히 꾸짖고 막아야겠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그게 아니다. 지금은 먹고 싶지 않다는 것, 피곤하지만 지금은 자고 싶지 않다는 것, 친구와 좀 더 놀고 싶고, 숙제는 좀 이따 하고 싶은 그런 사소하기 그지없는 작은 소망들이다. 


생각해보면 이 모든 규칙을 만들어낸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엄마다. 그렇다고 엄마가 그 규칙을 일년 사시사철 칼처럼 지키는고 하니 별로 그렇지도 않다. 아이 입장에서는 엄마가 하라고 하면 해야 하고 엄마가 안하면 안해도 되는 이상한 기준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아이가 조금 더 크면 자신의 의견은 무시당하는 것 같아 반항심이 생기곤 한다. 다른 육아서에서 읽은 내용이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부모와 자식 관계는 수직관계가 아니다. 물론 자식은 부모를 위하고 순종해야 겠지만, 그것은 강요에 의해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에 기꺼이 해야 하는 것이다. 즉, 내가 네 엄마니까 넌 당연히 나를 사랑하고 내 말에 순종해야 해! 는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과연 이렇게까지 해서 억지 사랑을 받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다시 아들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면, 책을 읽은 이후 나는 내가 아들을 대할 때 단지 엄마라는 이유로 강요하는 것이 있었나 생각해보았다. 8개월 아기에게 무슨 강요?라고 생각했었는데, 내가 일방적으로 행동하는 경우는 놀랄만큼 많았다. 

먼저, 먹어야 할 시간이기에 이유식을 주면 울면서 먹지 않는 경우, 먹고싶지 않아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냥 식사를 중단했다.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지금 제대로 먹지 않으면 얼마 안가 배고프다고 보챌 것이 분명하고 그렇게 되면 낮잠 시간마저 어그러지니 말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먹고 싶지 않아할 때 식사를 중단하자 아들은 배가 고프다고 보채지 않았고, 낮잠도 잘 잤다. 수유텀도 한 시간 더 길어졌다. 생각해보니 아들이 성장하며 자연스럽게 수유텀이 늘어났는데도 나는 (책에서 나온대로) 예전 수유텀을 고집하고 있었던 것이다. 잘 먹던 아이가 요즘 왜이렇게 투정을 부리지 걱정했었는데 이젠 다시 규칙적으로 자기 양을 뚝딱 비우곤 한다.


두번째로, 낮잠을 재울 때 좀처럼 잠들지 않으면 피곤해하는 것 같아도 데리고 나와 더 놀게 해주었다. 눈이 시뻘개지도록 부비고 연신 하품을 하면서도 잠들지 않는 아들을 한 시간이 넘게 재우고 있을 때면 내 인생의 반 이상을 아기 재우는데 쓰고 있는 것 같아 한숨이 절로 나왔다. 시간이 지나갈 수록 나의 분노 게이지(?)도 올라갔고, 나중에는 자장가를 불러줄 마음이 도무지 들지 않았다.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버린 것은 물론이다. 

아무리 피곤해보인다 하더라도 아들이 잠들지 않는다면 "아직 자고 싶지 않은거구나"라고 부드럽게 말한 뒤 다시 데리고 나와 놀게 해주었다. 우습게도 이렇게 아들의 의견을 존중해 데리고 나오려 하면 뭔가 자꾸 "지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히 피곤한데, 분명히 자야 하는데 왜 안 자는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아들이 원하는 만큼 더 놀게 해주었다. 피곤을 이기고(?) 놀던 아들은 이내 다시 칭얼거리기 시작했고, 그 때 다시 재우려고 침대에 눕히면 힘들이지 않고 잠이 들었다. 한 시간이 넘게 고전했던 것을 생각하면 황당할만큼 놀라운 결과였다. 


이렇게 내 생각을 바꾸고 나니 마음의 평안을 찾은 것은 아들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노느라고 목욕 시간이 늦어져도 '지금 즐겁게 노는 이 순간이 더 중요한걸'이라는 생각에 여유롭게 준비할 수 있었고, 수유텀이 흐트러진다 한들 '내일 다시 잘 해보지 뭐. 나도 가끔은 안먹고 싶을 때가 있는데'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밤에 푹 자지 않을 땐 육체적으로 많이 힘들었지만 '낮잠을 잘 자려나보다'했고 실제로 다음날 낮잠을 오래 자주어 쉴 수 있기도 했다. 


이 책을 끝까지 읽으면서 다짐한 한가지가 있다면 "내가 엄마라는 이유로 권력을 남용하지 말자"다. 아들에게도 선택할 권리가 있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존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아들이 크면 클 수록 그 권리라는 것이 점점 늘어나 뒷목을 잡으며 가슴을 치는 때도 있을지 모르지만, 기본적으로 아들은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며 그래서도 안되고, 엄마로서의 내 역할은 이 아이가 육체적, 정서적으로 건강하게 자라 독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임을 기억하자고 다짐했다. 그런 마음으로 진심을 담아 아들을 존중하고 매일 매일 감사와 행복으로 살아간다면, 적어도 이 책에 등장하는 엄마와 아이들이 겪어야 했던 힘든 시간들을 절약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한 일일 것이다. 



저자의 말은 따뜻하다. 가끔은 단호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따뜻하고 친절하다. 내 아들에게 이렇게 말해주는 엄마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그러고 싶지, 근데 누가 그렇게 할 수 있어?"라는 말 따위는 무시해버리고. 하나뿐인 사랑하는 아이를 위해서라도 나 자신을 가꾸고 발전시켜나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매일 매일 새로운 도전과제가 기다리고 있기에 절대 쉽지 않을 결심이지만, 그런만큼 이 책을 항상 눈에 보이는 곳에 두고 잊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 작심삼일이라도 사흘마다 새롭게 시작한다면 될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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