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래빗 시리즈 전집
베아트릭스 포터 지음, 윤후남 옮김 / 현대지성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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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이 지나고 만 4개월에 들어서던 아들에게 첫 유아전집을 사주면서 얼마나 뿌듯하고 행복했는지 모른다. 물론 어마어마한 가격에 입이 떡 벌어졌지만 그 때부터 꾸준히 책을 읽어주고 책과 함께 놀게 해주어서인가, 다른 장난감보다도 책에 흥미를 가지고 오랫동안 가지고 놀곤 한다. 물론 그래봤자 지금은 물고 빨고 이리저리 굴리는 것이 전부이지만 ㅎㅎ.

아직 손가락이 베이거나 찢어질 염려가 없는 보드북을 봐야 하는 아기인데도 그 때 중고시장에 "곰돌이 푸 전집"이 나오자 냉큼 샀었다. 물론 새 책으로 사주었으면야 더 좋았겠지만, 극악의 가격을 자랑하는 프뢰벨 전집인지라 열 일곱 권 세트에 20만원이다보니 선뜻 사주기가 쉽지 않았다. AA급의 중고를 찾았을 때 얼마나 기쁘던지! 받아보고 나니 정말 진열 수준의 책이었던지라 더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곰돌이 푸" 전집을 집에 들인 이상 내게 남은 목표(?)는 단 하나! (아이러니하게도 역시 프뢰벨의) 피터 래빗 전집이었다. 역시 비슷한 가격대의 전집이었는데 중고 시장에서조차 찾을 수 없는 레어 아이템(?)이었다. 어차피 읽게 될 때는 빨라봐야 네다섯 살 정도일테니 그 전까지 꼭 마련해두겠다고 생각했었던 찰나,


한 권으로 만나는 <피터 래빗 시리즈 전집>의 출간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뻤던지!!!


게다가 국내 유일의 완역본이라고 하니 이건 더이상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그리고 며칠 후, 감사하게 받아볼 수 있었던 피터 래빗 시리즈 전집!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자^^



피터 래빗 시리즈 전집 

작가
베아트릭스 포터
출판
현대지성
발매
2015.07.13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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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앞날개에는 이 책에 수록된 베아트릭스 포터의 모든 작품이 정리되어 있다. 실린 이야기는 모두 스물 세 편. 참고로 프뢰벨에서 발간된 피터 래빗 전집은 모두 17권으로 다섯 개의 이야기가 빠져있다. 
 


 



어렸을 때부터 피터 래빗 캐릭터를 좋아했기에 학용품부터 심지어는 욕실용품까지(!) 피터 래빗 캐릭터 상품을 쓰고 있었지만 정작 피터 래빗 시리즈를 읽어본 적은 없었다. 때문에 더더욱 아들과 함께 보고 싶었던 피터 래빗 이야기!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귀여운 토끼들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된 사실은 "피터 래빗 시리즈"가 "피터 래빗 시리즈"가 아니라는 충격적인(?) 사실이다. 

 

이른바 "피터 래빗 시리즈"는 베아트릭스 포터가 쓴 어린이를 위한 동화를 엮은 것으로서, 이름만으로는 주인공처럼 느껴지는 "피터 래빗"은 오직 "피터 래빗 이야기"에만 등장한다. 각 이야기에는 새로운 주인공들이 등장하고, 연계성 없이 독립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동화 전집"이다. 아무래도 가장 익숙하고 친근한 "피터 래빗"인지라 단 한 번 밖에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조금 아쉽기도 했지만, 이내 각 이야기의 매력만점 주인공들에 푹 빠질 수 있었다. 




 

1866년 생인 베아트릭스 포터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학교가 아닌 가정에서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이 시대의 여성들에게는 일반적인 일이었다고 하는데, 그로 인해 작가로써, 삽화가로써 뛰어난 소질을 가지고 있던 베아트릭스는 시골의 농장에서 다양한 동물들과 시간을 보내며 살았고, 그녀의 이런 어린 시절이 바탕이 되어 "피터 래빗 시리즈"가 탄생하게 되었다. 그녀의 여섯 살 아래 남동생 버트램에게 어릴 적부터 들려주던 동물 이야기는 세월이 흘러 그녀가 서른 여섯 살이 된 때에서야 세상의 빛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 이후 전세계적으로 퍼져나간 "피터 래빗 시리즈"는 지금까지 누적 판매량이 무려 1억 5천만 부가 넘었다고 한다. 


 



이제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아이들이 즐겁게 읽을 수 있을만한 내용과 분량에서부터 조금 더 큰 아이들이 읽을만한 소위 "글밥 많은" 이야기들도 있다. 그 중 "꼬마 돼지 로빈슨 이야기"는 무려 여덟 장(Chapter)으로 구성된 긴 동화다. 사실 이 작품은 그녀의 초기 작품 중 하나였지만 60대가 넘어서야 처음 출간하게 되었다고 한다. 젊었을 때의 작품들은 모두 컬러로 출판되었지만 60대에 들어서 악화된 시력 탓에 "꼬마 돼지 로빈슨"의 그림에은 예전과는 다른 흑백의 간소화 된 삽화가 많다. 그 외의 이야기에도 흑백의 삽화는 곳곳에 등장하는데 중요한 장면은 어김없이 정성스럽게 완성된 컬러 삽화로 묘사되어 있기에 마치 한 편의 만화 영화를 본 듯한 느낌이 들곤 한다. 



 



토실토실하고 귀여운 캐릭터들과는 달리 베아트릭스 포터의 동화들은 한결같이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는데, 어린 아이들이 읽는다고 해서 그 메시지를 순화하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물론 그림 동화나 안데르센 동화의 놀랄만한 잔인성(!)에는 가까이 가지도 못하지만, 생각해보면 나름 그로테스크(?)한 부분들이 눈에 띈다. 무서운 아저씨의 정원에 들어갔다가 토끼 파이(!!!)가 되어버린 피터 래빗의 아빠가 그렇고 (심지어 친절하게 삽화로 파이를 먹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올빼미 할아버지에게 버릇없이 굴다가 그 대가로 꼬리가 두동강(!!!!) 나버린 다람쥐 넛킨이 그렇다. 새끼고양이 톰 키튼은 엄마의 말을 듣지 않다 매번 곤경에 처해 혼쭐이 나곤 한다. 

베아트릭스 포터가 동화에 담고 있는 핵심 메시지는 이처럼 "적합하지 않거나 금지된 행동을 하면 혼쭐이 난다"가 대부분인데 보수적인 시대를 살아가는 뛰어난 재능의 여성으로써 그녀 자신에게 "금지"되어 있던 많은 것을 스스로 포기하기 위한 어떤 주문같다고까지 느껴질 정도다. "착한 아이가 되어야지" 정도가 아니라 "네 운명을 수긍하고 살아라"는 다소 비관적인(?) 메시지가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일까.



 

 



좀 더 어린 아이들을 위해 쓰여진 동화는 글밥이 적고 원색의 삽화로 구성되어 있다. 가끔 그녀는 "착한 동물"들에게 질린 나머지 "착하지 않은 동물들의 이야기"를 썼다고 하는데 귀결되는 메시지는 앞서 언급한 핵심 메시지와 같다. 하지만 비슷한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더라도 이야기 자체가 흥미롭고 신선하기 때문에 몇십 편의 동화를 더 읽는다 하더라도 질리거나 지루하지 않을 것 같았다. 기회가 된다면 원문으로도 꼭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이 좀 더 크기까지는 (적어도 책장을 구기거나 찢어버리거나 먹어버리지 않을 때까지는)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가 나중에 하나씩 하나씩 함께 읽어봐야겠다. 사랑스러운 동물 친구들과 그들의 (전혀 동물스럽지 않은) 이야기. 억압된 사회 속에서 자신의 본분을 지켜야 하는 배경은 사실 백년이 넘는 시간이 지난 오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주위를 둘러보면 쉽게 찾을 수 있을만큼 친근한 캐릭터들이 반기는 동화를 읽으면서 가장 행복했던 사람은 나 자신이 아니었나 싶다. 언젠가는 아들도 함께 이야기의 내용을 이해하며 키득거릴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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