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예쁘다 - 육아의 블랙홀에 빠진 엄마들을 위한 힐링 에세이
김미나 지음 / 지식너머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우물 안 개구리"라는 말이 있다. 세상은 넓고 뛰어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지도 못한채 작은 우물에서 자기 자신이 제일 잘난 양 개굴거리는 것. 어렸을 때부터 "우물 안 개구리"가 되기 싫어 그렇게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배우면 배울 수록 내가 얼마나 아는 것이 적은지 깨닫게 되어 부끄러워졌고, 사람들을 만나면 만날 수록 그들이 삶이라는 바운더리 안에서 다채롭고 개성있게 스스로를 개척해나가는 것을 보며 도전도 많이 받았었다. 어떻게 보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되고 싶지 않아 바둥거렸기에 쉴 새 없는 자극속에 그토록 앞만 바라보며 살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아기를 낳고 내 삶은 그야말로 정적에 들어섰다. 11월 중순 출산하고 조리원에서 퇴소하니 12월 초. 다른 때 같았으면 연말연시 공연이네, 교회 행사네, 크리스마스네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숨가빴을텐데, 나의 생활이라고는 오로지 집 안에서 쉴 새 없이 소리질러 우는 아기와의 24시간이 전부였다. 때가 되면 밥을 먹고, 양심상 하루에 한 번은 씻기도 했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매일 매일이 같은 날이었다. 아니, 사실 밤잠을 제대로 자본 적이 없기에 하루가 어떻게 끝나고 언제 시작되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아기가 백일 때까지는 (지금 돌이켜보면) 지독한 산후우울증을 앓았다. 그냥 우울했던 것이 아니라, 가끔 창밖을 보며 '뛰어내려버릴까?'하는 무서운 생각이 드는 진짜 우울증이었다. 눈 앞에 있는 아기가 사랑스럽지 않은 것도 아니었고, 신랑이 의지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냥 그랬다. 생각해보면 그래서 우울증이 어떤 정신적 나약함의 상태가 아닌 "병"이라고 하는 것 같다. 정말 감사하게도 떠올리기조차 싫은 산후우울증은 아들이 백일이 지날 무렵 씻은듯이 깨끗하게 사라졌다 (대신 산후탈모가 시작되었지만 ㅎㅎ).



갑작스레 장황스럽게 내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밖에 없었던 건 "엄마는 예쁘다"를 읽으며 연신 지금까지의 육아를 돌이켜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책 뒷면에 수록된 누군가의 감상평이 가슴에 와닿는다.


"왜 슬픈 이야기가 아닌데 눈물이 펑펑 날까요?"


정말 그랬다. 슬픈 이야기도 아니고 결국 두 딸의 엄마로 성장해나가는 저자의 이야기를 읽는 것인데 왜 이렇게 눈물이 쏟아지는지. 아이들이 예뻐서 눈물이 나고, 내 이야기 같아서 눈물이 나고, 앞으로 다가올 일들에 행복해서 눈물이 났다. 그러다가도 깔깔 거리며 웃고... 책 한 권을 읽으면서 이렇게 복잡한 감정들이 뒤엉켜 울고 웃은 적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소위 명문고, 명문대를 나와 잘 나가는 워킹우먼이었던 저자가 결혼 후 전업주부에 취직(!)하게 되면서 느꼈을 감정이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의미있는 일이지만 막상 현실이 되고 나면 그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죽어라고 해도 티안나고 안하면 티가 팍팍 나는게 바로 육아와 집안일이 아닐까.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피로하기 그지 없는 상황에서 하루하루를 감사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큰 도전이다. 


이 책은 아기를 키우는 엄마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며 무릎을 칠 수 밖에 없는 이야기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아가씨들이나 결혼을 했더라도 아이가 없는 예비엄마들은 "정말 이럴까?" 하고 고개를 갸우뚱할지 몰라도. 정말 그렇다. 정도의 차이가 있어서 그렇지, 정말 그렇다. 오죽하면 이 글을 읽은 엄마들이 자기 이야기를 읽는줄 알았다고 입을 모았을까. 나 역시 "이거 딱 내 이야기잖아!" 하고 탄성을 지를 수 밖에 없었다. 

엄마가 되면 뭐든지 할 수 있을줄 알았다. 아기를 낳는 순간 마법처럼 "엄마"로 레벨업 할 줄 알았다. 아기가 아무리 힘들게 해도(?) 사랑으로 극복하며 뭐든 할 수 있을줄 알았고, 아무리 답답한 상황이 와도 엄마라는 이름으로 꿋꿋이 견고하게 서있을 줄 알았다. 물론 아들이 8개월이 지난 지금은 어느 정도 멘탈이 성장한 것을 느끼지만 당장 아기를 낳은 생초보 엄마였을땐 내 앞에 닥친 상황에 멘붕이 왔고, 내가 멘붕이라는 사실에 더 멘붕이 되어버렸다. 저자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깊게 공감한 것은 "아기가 한 살이니 엄마도 한 살이다"는 것이다.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 조금씩 하지만 확실히 세상에 적응해나가듯, 엄마 또한 그러하다. 마법처럼 짠! 하고 엄마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눈물과 땀 그리고 웃음이 켜켜이 쌓여 천천히 엄마가 되는 것이다. '은이와 원이 엄마'의 이야기가 감동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이 때문이 아닐까.



앞서 "우물 안 개구리" 이야기를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며 다시금 나 자신이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씁쓸한 현실과 마주했다. 부끄럽지만 솔직히 털어놓자면, 산후우울증을 극복하고 아들에 대한 본격적인 쏟아지는 사랑이 시작될 무렵 블로그에 육아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지금 이 순간의 기억을 더 생생하게 잡아두고 싶었기 때문이지만 (여담이지만 블로그에 일기를 쓰는 것이 우울증 극복에도 꽤나 효과적이라고 한다), 일 년, 이 년이 지나 일기가 충분히 쌓이면 내가 경험한 육아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내보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모르긴 몰라도 모든 육아맘들의 로망일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예쁘다"를 읽으면서 '아, 글은 이렇게 쓰는 거구나', '이 정도는 되어야 책으로 내는 거지!'라는 큰 깨달음(?)에 씁쓸한 웃음이 났다. 맞춤법과 띄어쓰기도 헷갈리면서 한때나마 육아일기 출간을 꿈꾸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오랜 시간 독서와 공부로 쌓인 해박한 지식으로 부드럽고 우아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저자의 글에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궁금함에 책에 적힌 블로그로 한걸음에 달려갔는데, 책에서 뿐만 아니라 며칠 간격으로 올라오는 블로그 포스팅의 문체 역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담백한 것에 다시한번 놀랐다. 

아마 이것이 "엄마는 예쁘다"가 다른 육아일기와 다른 점이 아닐까? 저자가 경험한 육아 이야기는 그렇게 특별하지 않을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우리와 함께 육아를 하는 대부분의 엄마들이 겪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리고 그 중 (나를 포함한) 수많은 엄마들이 블로그에 육아일기를 쓰곤 한다. 하지만 지나치게 평범할지도 모르는 이야기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것은 읽으면 읽을 수록 더욱 빠져들게 되는 저자의 필력이 아닐까. 담담한 듯이 풀어내면서도 공감과 감성을 끌어내는 글이라니... 부럽다!



주변에 출산을 앞둔 후배맘(!)들에게 주저없이 선물할 책이다. 아기를 낳기 전이나 낳은 후 곧장 이 책을 읽으면 공감이 가지 않을 수 있지만 반 년만 지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눈물을 흘리다가도 낄낄거리며 웃지 않을까. "아이를 이렇게 키워야 한다!"고 가르쳐주는 육아서보다 더 큰 힐링을 줄 (그리고 사실 엄마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이것이다!) 그런 책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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