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세상의 법칙 - 잡학 다식한 사람들의 "히든카드!"
이영직 지음 / 스마트비즈니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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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을 읽으면서 맨처음 들었던 생각. 


김구라씨가 이 책을 읽으면 참 좋아하겠다. 

물론 난 김구라씨를 개인적으로 알지 못하고 솔직히는 그렇게 좋아하거나 관심이 있지도 않기 때문에 확언할 순 없어도, 책을 읽는 동안 몇 번이나 그가 생각난 것을 보니 확실히 예능계의 대표적인 박학다식한 사람인가보다 싶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또다른 생각은, 

지식이라고 다 같은 지식이 아니다.

...는 것이었는데, 자칫 진부하게 들릴지 몰라도 현실이 그러했다. "세상을 지배하는 법칙을 총망라"했다는 이 책의 문구가 (약간 오버스럽게 느껴지긴 해도) 무슨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일단 이 책은 총 여섯 개의 챕터로 나뉘어져 있는데,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집중한 "사회의 법칙 1,2 (Society Laws I, II)", 우리 시대의 경제 역사를 덤으로 배울 수 있는 "경제의 법칙 1,2 (Economy Laws I, II)", 몰랐던 내용이 가득한 "과학의 법칙 (Science Laws)", 그리고 역시 쉽지 않았던 "수학의 법칙 (Mathematic Laws)"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 이 순서 역시 참 적절하다 느껴졌던 것이 읽는 사람의 흥미를 유발할만한 (비교적 간단한) 법칙들이 먼저 소개되고 점점 전문적인 분야로 들어가다보니, 평소 그닥 관심이 많지 않았던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만약 이 모든 법칙들이 거꾸로 나열되어 있었다면 과연 이렇게 쉽게(?) 읽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이것 역시 저자가 여러 법칙을 연구하면서 깨달은 하나의 "비기"인 것일까? 


대부분의 법칙들은 재미있게 읽으면서 눈에 담고,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몇 가지 법칙은 교훈 정도로 머리에 담고, '바로 이거다!'라고 생각되는 한두 가지의 법칙은 가슴에 깊이 담고 반드시 실천하기를 바란다." (머리말 중)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실천적 지식"의 개념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 역시 세상에는 나보다 훨씬 똑똑한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구나 실감했다. 어떠한 현상을 보고 그 본질을 궁금해하는 것이 문제의 해결에 있어 핵심요소가 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누군가는 그저 "우연의 일치" 혹은 "실패" 정도로 생각했다면 다른 누군가는 그 안에 숨어있는 법칙을 찾아낸다니... 역시 배움에는 끝이 없는가보다. 

특히 재미있었던 것은 이 책을 통해 뉴스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도 세상의 모든 것에는 이면이 있고 겉으로 드러나는 것을 맹신해서는 안된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이 책을 읽고나니 그 사람이 어째서 어느 특정한 상황에서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에이, 빈 말 하고 있네" 혹은 "이 상황이 이해가 안가나?" 하고 쉽게 말을 내뱉기가 어려워졌달까 ㅋㅋ 문득 그러고 보니 도대체 나는 이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의 몇 퍼센트나 제대로 이해하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1%는 되려나... 

아무튼! 
교과서 같은 책이다. 
저자의 말처럼 일독하며 내게 필요한 법칙들을 가슴에 새기고, 교훈으로 삼을만한 책이다. 

사람에 따라 그닥 마음에 와닿지 않거나 크게 도움을 받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감히 확신하건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좀 더 이해하고 좀 더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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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몸에 독이 쌓이고 있다
임종한 지음 / 예담Friend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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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에 살 때 나는 입버릇처럼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진짜 살기 좋은 나라는 한국이다"라고 말하고 다녔다. 지금은 2~3위에 머물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매 년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에 비엔나가 선정되곤 했다.
하지만 이 사실은 어린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병원 예약 후 진료 받기까지 기본 일주일이 넘게 걸리고, 냉장고가 망가졌다고 서비스에 전화하면 무려 3주 뒤에 간신히 나타나서는 "고칠 수 없습니다" 한 마디 던지고 출장비 10만원을 받아가는 곳이 어떻게 가장 살기 좋은 곳이란 말인가! 먹는 것은 더하다. 과자 종류는 몇 가지 되지도 않는데다 (당시의 내가 주로 이용하던) 인스턴트 식품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집 앞 편의점만 나가도 수십 가지의 라면과 어묵탕, 핫바, 도시락, 죽 그리고 심지어 족발(!)까지 구비되어 있는 한국과는 도무지 비교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것들이 비싸냐? 전혀 아니다. 오히려 절반도 안되는 가격으로 두 배 이상의 양을 먹을 수 있을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그런데 비엔나가 더 살기 좋다니? 정말 몰라도 한참 모른다고, 이십 대의 어린 나는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한국으로 들어온지도 만 5년이 지났고, 어느덧 나는 30대의 아기엄마가 되었다. 그간 가장 크게 변한 것이 있다면 인스턴트 음식을 향한 극도의(?) 경계심이 생겼고(물론 가끔 먹긴 한다), 첨가제와 화학물질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것들인지 알게 되었으며, 심지어 얼마 전부터는 시중에서 판매하는 각종 세제들과 비누를 집 밖으로 추방하기도 했다. 잘 먹고 천 년 만 년 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끔찍한 독성 물질에서 내 아이와 남편을 지키고자 시작한 일이다.

굳이 옥시 대학살(!) 사건까지 가지 않더라도 합성세제와 각종 화학물질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깨닫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너무나 많은 아이들이 태어날 때부터 아토피로 고생하고 있고, 각종 알레르기 질환과 비염, 발달장애, 성조숙증으로 고통받고 있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상상조차 못할 일이다. 하긴. 나 어렸을 땐 한강에서 수영도 할 수 있었고, 냇가에서 송사리와 개구리를 잡기도 했으며, 아무 걱정 없이 흙바닥에서 뒹굴며 마음껏 흙장난을 치기도 했으니... 세상이 20년만에 어찌 이렇게 변할 수 있는지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저 외면하고 싶었던 현실을 마주하고 용기를 내 친환경적 삶을 본격적으로 추구하기 시작한지 몇 개월이 지나간다. 의외로 실천할 수 있는 것이 많았고, 어렵지 않았으며, 재미있기까지 했다. 손빨래와 애벌빨래도 익숙해졌고, 세제 없이 설거지를 한 후 건조기에 더이상 비누 잔여물이 흘러나오지 않는 것만으로도 뿌듯했다. 물론 손이 더 가고 기억해야 할 것이 많지만 이정도는 일도 아니다.

그러던 중 이 책을 만났다. 어머나 세상에. 이 책은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된 책이다. 지금까지의 실천이 비누와 세제, 라이프스타일에 집중되어 있었다면, 이젠 먹는 것을 포함한 삶 전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경고장을 받은 느낌이다. '과연 나는 이 책을 읽고 싶을까?' 끝까지 고민했었다. 그냥 모르고 사는 것이 나을 것 같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무조건 읽어야겠다, 아니, 몇 번이고 읽고 공부하고 정리하며 달달 외어야겠다 결심한 건, 이젠 나 혼자가 아닌 아들과 남편이 있기 때문이었다.



먹을 게 없다!
할 게 없다!
즐길 게 없다!!!

이 책을 읽은 뒤 짧은 감상평을 쓰라면 이 정도일까나.
세상에. 현실은 상상한 것보다 더 충격적이다. 끔찍하다. 도무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오죽하면 그냥 세상이 확 망해버려 없어졌으면 하는 생각마저 들었을까.

책을 읽으며 깊이 깨닫게 된 것이 한 가지 더 있었다. 왜 (그따구로 살기 불편했던) 비엔나가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였는지 말이다. 한국에서 내가 당연히(?) 누리고 있는 편리함과 혜택들은 공짜로 오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엄청난 이기주의와 물질만능주의에 우리의 건강을 담보잡혀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면 모든 것은 이기주의에서 시작한다.
유통기한 없이 거의 영원히(!) 즐길 수 있는 각종 화학물질 범벅 먹거리도,
싼 값에 만들어 다량으로 판매하는 플라스틱 장난감도,
자극적인 맛으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식당 음식도,
예뻐지고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사용하는 각종 화장품과 향수, 그리고 생필품까지...

그것을 쓰는 사람들의 건강을 생각했다면 과연 이렇게 만들 수 있었을까?
당장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을, 환경을, 우리 사회를 생각했으면 정말 그럴 수 있었을까?

도대체 얼마나 이기적이면 다른 사람들의 안전을 담보잡고 그런 장사를 할 수 있는걸까. 환경이 오염될 것을 알면서도 그런 짓을 할 수 있는걸까.

비엔나의 물가가 비쌌던 것도, 가난한 학생에겐 인건비가 지나치게 비쌌던 것도, 원하는 상품을 당장 구할 수 없었던 것도 너무 당연하고 옳은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철 과일이 아니면 구하기 힘들었기에 각종 화학물과 농약에 찌든 과일들을 피할 수 있었고, 정당한 보수를 받아가며 일하는 엔지니어들은 보다 높은 자존감과 책임감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더욱 많은 시간을 할애해 주었기에 내가 조금 더 기다려야 했던 것이고, 인스턴트 식품의 종류가 적어 그나마 집에서 밥 다운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중국식당에 배달주문을 하면 한 시간이 다 되어서야 요리를 구경할 수 있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배달원들이 그나마 안전하게 다닐 수 있지 않았을까. 불편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하나같이 "당연한" 일이었다.


이 책을 읽고 당장 아들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 중 수상한 냄새가 나는 것 같은 플라스틱 장난감을 내다버렸다. 너무 좋아해서 매일 가지고 놀던 야채놀이 장난감은 원목으로 다시 사주었다. 몇 푼 차이도 안 나는걸 진작 이렇게 해줬어야 하는데 후회가 되었다.

그리고 부엌에서 아까워 못 버리고 있던 플라스틱 그릇들을 모조리 정리했다. 아무리 친환경이라지만 얼마 쓰지 않았는데 균열이 가고 휘어지던 옥수수 식기도 버리고 스테인리스로 새로 구입했다.

마지막으로 책에서 소개된 생협에 가입하고 한 달에 두 번 제철꾸러미를 받기로 했다. 지금까지 장 본 것에 비하면 두 배가 넘는 후덜덜한 가격이었지만 적어도 부분적으로나마 건강한 음식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미련없이 주문했다.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라는 거다. 아니, 시작도 아닐지 모른다. 당장 이사를 가고 생활환경을 바꿀 순 없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라도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귀찮다고, 어떻게 그렇게 사냐고 넘기기엔 너무 위험하고 끔찍했다. 어차피 나의 능력은 슬플 정도로 한정되어 있지만 적어도 내가 공부하고 실천하는 범위 안에서라도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이 책을 꼭 읽었으면 좋겠다. 나처럼 실천하는 사람이 하나 둘 더 생겼으면 좋겠다. 내가 편한 것, 나에게 유리한 것만 이기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장기적인 안목으로 가족과 나아가 환경 그리고 사회를 생각할 수 있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저자의 말처럼, 그것을 통해 이러한 생활 방식과 수단들이 언젠가 당연시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
너무 오버하는 것 같다고?
그럼 이 책을 한 번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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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0분, 셀룰라이트 zero 마사지 - ‘신의 손’ 박혜정 원장이 알려주는 완벽한 몸매의 비밀
박혜정 지음 / 비타북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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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쌓여있는(!) 다이어트 책만큼 살이 빠졌으면 이미 44 사이즈 모델 몸매가 되었겠지만, 현실은 그리 아름답지가 않다. 연애는 물론 육아까지 책으로 배운 나는 당연하게도(?) 다이어트 역시 책으로 배우려고 했으나 백날 읽어봤자 꾸준히 실천하지 않는 한 살은 절.대.로 빠지지 않으니 말이다. 

얼마 전 한 친구가 스쿼트 하나만으로 꽤 멋진 감량에 성공했다. 한편으로는 친구의 성공이 부럽고 대단하다 싶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제대로 안할 거 하질 말자"하며 차일피일 다이어트를 미루던 내 모습이 한심했다. 하나라도 매일매일 꾸준히 했으면 될 것을 무슨 백과사전 모으는 것처럼 정보만 모아댔으니 원...
이런 저런 생각이 많던 중 만나게 된 책이 바로
 <하루 10분, 셀룰라이트 Zero 마사지>다. 


"집에 있는 책만으로 족해. 당분간 절대 다이어트 책은 새로 읽지 않겠어"라던 다짐이 무색하게 뭔가에 홀린 듯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건 바로 이 키워드, 
셀룰라이트 때문이었다. 
나이가 들면 살빼기 힘들다는 말은 익히 들었지만 임신과 출산, 그리고 육아를 지나가며 나이를 먹다보니 이건 뭐 장난이 아니다. 배 조금 나오고 팔다리가 좀 굵어졌다고 우는 소리를 했었는데, 이젠 그 정도는 애교로 느껴진달까? 몸 전체에 걸쳐 살이 찌면서 라인은 엉망으로 흐트러졌고 구석구석 자리를 꿰찬 셀룰라이트 덕분에 좀처럼 사이즈가 줄지 않는다. 그것도 모자라 힘없이 흘러내리는 탄력잃은 팔다리엉덩이뱃살은 옷으로 커버할 수 있는 경계를 이미 넘어섰는데, 이러다보니 
아무리 화장을 예쁘게 하고 예쁜 옷을 입어도 그저 아줌마로밖에 보이지 않는 참사(?)가 일어나고 있었다. 

물론 출산했다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주위에도 막달까지 배만 쏙 나오더니 출산 후 금방 예전 몸매로 돌아오는 사기 캐릭터같은 엄마들이 충분히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워낙 살이 잘 찌는 
체질인데다 탄력이 부족했던 내게는 임신과 출산, 그리고 20개월에 달하는 "꾸미는게 뭐야 살아남기 바빠 죽겠는데" 육아전쟁은, 이러다가 영영 여자답지 못하게 살 것 같은 공포감을 조성하는 몸매를 선사하고 말았다. 


서론이 길었지만, 이러다보니 웬만한 다이어트 책은 더이상 마음에 와닿질 않았다. "얼른 살빼고 하이힐 신고 나가삼", "올 여름 트렌디한 메이크업에 맞는 몸매 만들기" 등의 문구는 먼나라 딴나라 이야기처럼 들렸으니까. 뭔가 내 상황에 맞는 방법이 필요했다. 이미 흐트러질대로 흐트러진 아줌마(...)도 으쌰으쌰 힘을 내 도전하고픈 욕구가 샘솟는 그런 책 말이다 (
그런면에서 헬스클럽 가서 3-40분 유산소 운동을 먼저 하라는 따위의 책들은 이미 모두 불합격이다). 

"죽어도 빠지지 않는 셀룰라이트와의 전쟁"을 선포한 이 책은 먼저 셀룰라이트의 정체를 파악하고, 자신의 상태를 스스로 진단한 뒤 그에 맞는 관리법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까지 보면 다른 책들과 그닥 다르지 않다. 하지만 그 방법에 있어 조금 특이한 것이 
특정 부위를 자극하고 감량함에 있어 (운동이 아닌) 스트레칭과 마사지를 병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집에 있는 수많은 다이어트 책들을 활용하면서 운동할 때면 마사지가, 마사지 할 때면 스트레칭이, 스트레칭 할 때면 다시 운동이 중요해보이는 바람에 어느 것 하나에도 집중하지 못하곤 했는데(
공부 못하는 애들의 전형적인 특징인 건 안비밀) 이 책은 아예 스트레칭과 마사지를 연결해놓은 프로그램인지라 몰입하기 쉬웠다. 원치않는 셀룰라이트에 적절한 자극을 주고 곧장 마사지로 풀어버리는 느낌이랄까. 책을 바꿔보지 않고 원스탑으로 끝낼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고민이 되었던 건 오히려 운동할 부위를 정하는 부분이었는데, 
1) 팔뚝 2) 종아리 3) 엉덩이&허벅지 4) 복부&등 으로 프로그램이 나뉘어져 있어 한 부위를 집중하여 4주간 꾸준히 관리하면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책의 자가진단 테스트 결과, 내 몸은 70%가 수분이 아니라 셀룰라이트로 가득차 있는 것만 같은데 도대체 어디부터 시작하란 말인지... 물론 시간(과 열정)이 넉넉해 모든 부위에 집중할 수 있다면 이상적이겠지만 하루 10분이라도 꾸준히 하려면 너무 높은 목표를 잡는 것은 노노! 욕심내지 말고 한 부분 한 부분 차근차근 진행해야겠다. 

스트레칭과 마사지는 부위에 따라 세 개에서 여덟 가지 단계로 나뉘어져 있는데 이정도면 4주 동안 순서와 방법을 외울수 있을 것 같았다. 책으로 배우는 다이어트 운동법의 가장 큰 약점은 웬만한 의지가 아니면 동작들을 제대로 익히기가 어렵다는 것인데, 그러다보니 아무리 좋은 동작이 많아도 틈틈히 실천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하지만 한 부위를 집중적으로 공략하며 4주 동안 반복한다면 스트레칭 자세와 마사지 방법을 외워서 틈날 때마다 해줄 수 있지 않을까? 굳이 따로 시간을 내지 않아도 매일매일 실천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셀룰라이트가 쉽게 분해된다", "빠른 시간 안에 라인이 살아나고 탄력이 생긴다", "학처럼 곧고 긴 다리를 가질 수 있다" 등 다소 과장광고같은(?) 문구가 등장하는지라 보는 사람에 따라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처음엔 피식 하고 웃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더욱 열심히 하게 되었다(이걸 노린건가??). 직접 따라해보니 생각보다 힘도 많이 들고, 아프기도 많이 아팠지만... 살이 빠진다는데 이정도야...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아무래도 마사지 방법을 그림만으로 배우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게가 옆으로 걸어가듯 엄지, 검지, 중지를 사용해 마사지 하는 테크닉은 끝까지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상상력 부족인가... 기본기라도 체크할 수 있는 짧은 동영상이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딱 필요했던 바로 이 책!! 
마음붙이고 진득하게 한 번 실천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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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
오은영 지음 / 코리아닷컴(Korea.com)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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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영 선생님은 도대체 어느 별에서 오신 분일까!

검증도 안된 별의별 육아정보가 홍수처럼 넘쳐나는 요즘, 오히려 인터넷이 엄마들을 더 혼미하게 한다. 무슨 패션도 아니고 육아방식도 어찌나 유행에 민감한지 언제는 북유럽식 육아였다가, 전통육아였다가, 언제는 또 프랑스식 육아법이란다. '새로운 트렌드가 좀 더 좋겠지' 하는 심정으로 여기저기 기웃기웃거리다 보면 일관성은 고사하고 아이는 커녕 엄마까지도 정체파악이 어려운 짬뽕 육아가 탄생한다. 어쩔 때는 이랬다가, 이게 아닌가 싶으면 금방 다른 곳으로 갈아탄다. 엄마들이 모자라거나 변덕이 심해서가 아니다(물론 그럴수도 있다). 내가 지금 잘 하고 있다는 확신이 없어서이다.


남 이야기하듯 잘난척 하며 썼지만, 내가 바로 줏대없는 초보 엄마다. 아들이 태어나기 전까지 합치면 약 7-80권의 육아서를 읽었지만(사실 이렇게 육아서가 많은줄도 몰랐다!) 그 중 95%는 차라리 읽지 말았어야 했던 것 같다. 책이 나쁘거나 내용이 틀려서라기보다는 그것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없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신생아 아기에게 규칙적인 생활리듬을 가르쳐주는 베이비 위스퍼는 안 읽는 편이 나았다. 특히 "평균 월령대 아이들의 수유량" 따위는 눈길도 주지 말았어야 했다. 그저 잘 먹이고, 잘 재우고, 최대한 쉬면서 편안하게 키우는 데 집중했어야 했다. 지나고 보니 책의 내용 중 틀린 것이 없었지만, 그 당시 나에겐 그 자체가 고통이었다. 왜 네 시간마다 수유가 되지 않는지, 왜 정해진 양을 다 먹지 못하는건지, 하루 수면량을 채울 수 없는건지 고민하다보니, 정작 내 아이와 교감하고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여유는 없었다. 돌이켜보았을 때 가장 후회되는 일 중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아의 "제2장"으로 들어섰을 때, 내가 다시 가장 간절히 바랐던 것이 바로 육아서였다. 누군가 내게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옳은지 알려주었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까지는 잘 먹이고, 잘 재우고, 잘 놀리는 것이 전부였다면 18개월에 들어선 아들은 새로운 시기로 들어서고 있었다. 소위 "첫 반항"이 시작된 것이다.


주위 엄마들의 반응은 크게 세 가지다.

대부분은 "그 땐 욕이 바가지로 나올 수 밖에 없는 시기니(그래서 이맘때를 욕개월이라고 한다고) 냅두는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요즘엔 "미운 세 살, 죽이고 싶은 네 살, 왜 안죽였나 싶은 일곱 살"이라고 한댄다. 엄마들 입에서 나오기엔 너무 살벌한 말이 아닐까.

두 번째로 많은 부류가 "초장에 아주 확 잡아야지, 아니면 평생 끌려다닌다"이다. 이 부류의 엄마들은 특전사를 방불케 하는 표정과 목소리로 아이들을 "잡는다". 아이가 복종하는 것이 전쟁에서 승리한 것인것마냥 자랑스러워 하는 것 같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요즘에 그 비율이 점점 늘어나는) "아이를 무조건 이해해주세요. 냅두세요. 사랑해주세요" 부류가 있다. 내 나이 또래의 엄마들에게서 크게 유행하는(?) 육아방식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상대적으로 억압받고 많은 것을 제한당한 세대인만큼 자기 자식은 다르게 키우겠다는 마음이 큰 것 같다.

뭐가 됐든 이 세 가지 방법은 모두 마음에 들지 않는다. 너무 극단적이다. 아이와의 갈등을 무조건 덮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고, 아이를 억압하고 싶지도, 그렇다고 무조건 오냐오냐하며 스스로 깨닫길(?) 기다리고 싶지도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하루하루 아들의 고집이 커가는 것을 느끼며 앞으로 닥칠 어마어마한 미래에(?) 걱정 역시 커지던 그 때,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




350쪽에 육박하는, 묵직한 이 책을 얼마나 읽고 또 읽었는지. 가볍게 읽기를 시작했다가 한참 눈물을 흘리며 읽고, 밑줄 쳐가며 읽고, 여백에 나의 느낌과 책내용을 정리하며 반복해 읽었다. 중요한 건, 앞으로 이 책을 적어도 두 번 이상 더 읽을 예정이라는 것이다.

서론과 첫 장을 읽었을 땐 그저 이 책이 내게 정말 필요한 책이라는 생각이었다. 내 상황과 대부분 맞아들어갔고, 내게 필요한 조언들이 있었다. 지금과 앞으로의 육아 인생(?)에 있어 내가 명심해야 할 부분들이 참 많았다. 그러다가 마주하게 된 "욱 지수 테스트"는 지금 내 상태를 단적으로 알려주었다.

스스로 (나름) 유쾌하고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믿었는데 실상은 그렇지가 않았다. 표현하지 않을 뿐 내 안에서는 수시로 욱이 치밀어올랐다. 너무 사소해서 전혀 그럴 일이 아닌데도 온갖 감정이 쏟아져나왔다. 억울하고, 분노가 치밀고, 화가 났다. 너무 속이 상하고 원망스러워 어쩔 줄 모를 때도 많았다. 책 속의 인물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겉으로(심지어 내 가족에게도) 그것을 표현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난 큰 소리를 내거나, 욕설을 하거나, 가족 혹은 남들 앞에서 이성을 잃을 정도로 화를 내는 것을 가장 끔찍해했다. 때문에 표현하진 않았지만 수많은 욱 덩어리들이 내 안에 켜켜이 쌓여 썩어들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그럴만한 상황이 아닌데도 난데없이 우울증에 괴로워했고 그 시기가 끝나면 다시 긍정적인 파이팅이 시작됐다. 나도 내 감정을 이해하거나 감당하기 어려웠다.

사실 하루가 다르게 자기 주장이 강해지고 사사건건 나와 부딪히는 아들과의 관계를 위해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해결해야 할 것은 아들이 아닌 나 자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면 아들의 고집이나 짜증은 너무도 미미하고 사소한 것이어서 신경쓸 이유조차 없었다. 오히려 월령대의 다른 아이들보다 순하기 짝이없는 고마운 아들이었다.


문제는 나 자신이었다. 아들의 (당연하기 그지없는) 행동에 조급해지고, 짜증이 나고, 조바심이 났다. 다행스럽게도(?) 단 한 번도 아들을 때리거나, 윽박지르거나 한 적은 없지만 속으로 치솟는 화를 삼킨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내가 너무 오냐오냐 하는 것은 아닐까', '이러다가 버릇이 없어지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문제는 이런 막연한 걱정이 아이에게 건설적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 치미는 화로 귀결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스스로 '오늘도 화가 났지만 난 잘 참았어. 난 나름 괜찮은 엄마야'라고 생각하곤 했다. 내 안에 있는 욱은 뚜껑만 덮어버린 상태인데 말이다.

누구나 욱하고 있어서 우리는 서로 묘하게(?) 이해한다. '욱'은 감정 조절이 미숙한 것이고, 심하면 반드시 치료받아야 하는 분노조절장애임에도, 그것이 보편적인 감정인 양 이상스러운 이해(?)를 하고, 욱한 자신에게도 면죄부를 준다. (43 페이지)

그러고보니 주위에서 심심찮게 아이를 때리거나 화가 나서 혼냈다는 이야기를 듣곤 했다. 비슷한 월령대의 아기들을 키우는 엄마들이 많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100% 내가 보살펴주고 돌봐주어야 했던시절은 지나고, 이제 이 녀석들이 스스로 고집을 부리고 의견을 표시하기 시작한 이 시기에 말이다.


대부분 그렇게 혼을 낸 뒤에 엄마들은 미안한 마음이 큰 것 같았다. 소리 질러서, 이해해주지 못해서, 혹은 때려서, 화를 내서 미안하다고 했다. 심지어는 자신에게 실망했다, 자괴감이 느껴졌다 말하기도 했다. 만약 정당한(?) 이유로 화를 내고 훈육을 한거라면 이런 감정이 들어서는 안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내가 옳았는데(?) 아이에게 화를 낸 뒤엔 끝없이 미안하고 가슴이 아팠다. '엄마라서 그런가보다'라고 애써 합리화하며 넘기려 했지만 상황이 반복될 수록 점점 더 답답해졌다. 이건 아니지 않을까?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걸까? ... 그리고 이 책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제대로 된 훈육은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화가 나지 않는다. 아이를 때리지 않는다. (218-219 페이지)

어쩌면 이 책의 가장 중요한 내용을 담은 문장이 아닐까 싶다. 진짜 그랬다. 훈육은 감정적인 폭발과는 다르다. 엄밀히 말하자면 아이는 혼을 내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가르쳐야 하는 존재이다. 이렇게 간단한데도 불구하고 현실은 도무지 이상대로 가질 않는다. 아이가 작으면 작은 대로, 크면 큰 대로, 엄마들은 하루종일 잔소리를 입에 달고, 소리지르고, 윽박지르게 된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지만 흔히들 "훈육"이라고 하면 소위 "아이를 잡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이가 꼬리를 내리고 복종하는 것이 엄마의 권위가 서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자기가 얼마나 아이에게 영향력이 있고 잘 "잡고 있는지" 자랑하는 엄마들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그런 엄마를 바라보는 아이는 무엇을 느끼고 있을까? 세상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마지막까지 날 지켜주고 보호해주어야 하는 엄마가 나를 굴복시키려 하는 것은 과연 무슨 의미일까? "다 널 위해서야"라는 말로 모든 것을 합리화할 수있는 것일까? 오늘도 나는 "더럽게 말 안듣는 아이"를 훈육하기 위해 소리지르고, 때리고, 욕을 하는 엄마를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그저 엄마들의 잘못일까? 나름대로 희생하고, 애쓰고, 자신을 내어주며 육아를 한다고 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틀렸다고 한다면 너무 가혹하지 않을까. 엄마들 입장에선 억울할 뿐더러 눈물나는노릇이다. 그토록 치열하게 육아를 하며 어떻게 이성적으로, 이론적으로 아이를 훈육할 수 있단 말인가. 글로 읽으면 이해가 되는데 실제상황과 마주하면 피가 거꾸로 치솟는 느낌이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역사적 배경이나 사회적인 분위기로 인해 우리 사회 전반에 '욱'이 만연해 있다고 해도, 정말 내 아이에게만큼은 욱하고 싶지 않은 간절한 마음이 있다. 그럼에도 욱하게 되는 이유가 뭘까?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잘 안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원부모와의 문제' 때문이다. (46 페이지)

원부모와의 갈등과 해결되지 않는 상처는 이 책에서 아주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한 가지 희소식(?)이 있다면 원부모와의 문제는 자신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슴속에 간직하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물론 부모님을 생각하면 그저 감사하고 행복한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어렸을 적부터 켜켜히 쌓인 서운함과 원망을 안고 살아간다. 문제는 평소엔 별 탈 없이 잘 살다가 유독 자식을 키울 때 쌓여왔던 감정이 아이를 향해 폭발한다는 것이다. 원부모의 싫은 모습으로 인해 무조건 반대로 한다던가, 자신도 모르게 원부모의 잘못을 되풀이하기도 한다. 아이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대부분이 여기에 속한다.

엄마 (그리고 아빠)가 이를 깨닫고 인정하지 않으면 엄마는 엄마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점점 더 극대화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 이렇게 치닫는 관계는 결국 사춘기가 들어서며 넘기 힘든 담을 쌓게되기도 한다.

욱을 다스리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가장 먼저 나의 예민함과 불안함, 감정 조절의 어려움을 인정해야 한다. 또한 이것이 화살이 되어서 내 자신에게도 상처를 입히고, 내 가까이에 있는 사랑하는 가족들한테도 상처를 입힐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오롯이 나에게서 나온 것이다. 원인을 다른 사람에게 돌려서는 안된다. 타인에게 자극을 받아 더 예민해질 수는 있다. 그래도 그 출발은 내 안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인정해야 한다. (290 페이지)

밑줄치며 읽어야 할 내용이 너무나도 많은지라 일일히 다 언급할 수가 없는 책이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과연 어떻게 서평을 써야할까 막막하기도(?) 했다. 그리고 우려는 현실이 되어 엄청나게 길기만 한 두서없는 글이 탄생한 것 같은 불길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긴 글의 결론은 이것이다. <못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는 할 수만 있다면 아이를 키우는 모든 엄마아빠들에게 강제로라도 읽게 하고 싶은 책이다. 내가 그랬듯,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스스로 치유받고, 가족 안의 여러 문제를 완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참 많은 육아책을 읽었지만 책을 읽으며 나 자신이 변화했던 적은 처음이다. 그리고 나의 변화는 곧바로 아들의 변화로, 우리 둘 사이의 관계의 변화로 이어졌다. 더이상 아들의 징징거림에 감정이 요동치지 않았다. 실제로 아들의 징징거림도 줄었고, 혼자 육아를 할 때도 더이상 하루가 힘겹지 않았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것이 편하고 즐거운 것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매일매일 새로운 것을 배운다. 무엇보다도 하루가 지나가는 동안 한번도 화가 나지 않는다. 분명 이전에는 온갖 서러운 것과 서운한 것, 짜증나는 것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화를 삼키고 분을 삭혀야 했는데 말이다.

"아이가 좀 크면 괜찮겠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돌 좀 지나면 나아지겠지, 세 살 되면 괜찮다던데... 막상 그 때가 되어 나아지지 않으면 엄청난 실망감이 밀려오곤 했다. 백일의 기적, 6개월만 지나면, 걸을 수 있게 되면, 말을 하기 시작하면... 엄마들은 다른 엄마들에게서 들은 좌표를 정해두고 그날이 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린다. 언젠가는 수유텀도 벌어질 것이고, 아기가 더 크면 혼자 밥도 먹을 수있을 것이다. 분명 일리있는 말이다.

하지만 18개월동안 질풍노도의(?) 육아를 하면서 확실히 알게 된 것은 "아이가 아니라 엄마가 커야 한다"는 사실이다. 내 욕심과 아이에게 필요한 훈육을 구분할 수 있게 되고, 원부모에게서 비롯된 나의 상처를 아이에게 투영시키지 않으며, 생활 가운데 일어나는 크고 작은 해프닝으로 인해 변덕스럽게 행동하지않는 것. 이 모든 것이 끊임없는 자각과 노력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엄마가 성장할 때 아이는 그 모습을 보고 함께 성장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길기만 하고 참 두서없는 서평이지만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내용은 미리 정해두었다. 오은영 선생님이 강조하는 세 가지 도덕적 가치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이 세 가지만 아이에게 성공적으로 가르칠 수 있다면 성공한 육아가 아닐까 싶다. 적어도 우리 세대가 가진 미숙한 자아와 분노, 욱으로 인해 다음 세대가 더 각박해질 일은 없을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명문대나 특별한 재능, 명예와 부귀영화보다도 더 간절히, 더 열심히 가르쳐주어야 할 것들이다.

이 책을 만난 것은 정말로 감사한 일이다. 읽고, 또 읽으면서 내가 더 변해야겠다. 아들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만큼, 두 번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조만간 오은영 선생님의 다른 저서도 꼭 읽어보아야 겠다.


[세 가지 도덕적 가치]

1.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을 때릴 권리는 없다.
2. 어느 누구도 자신의 해결되지 않은 격한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표현할 권리는 없다.

3. 타인의 권리도 소중하다. 그것이 나의 손해와 이익에 위배된다고 해도 받아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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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마우마 2016-07-20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부터 끝까지 제 이야긴가 싶을 정도로 공감되는 리뷰예요. ㅠㅠ 얼른 책을 읽고 싶어지네요 !
 
작가는 왜 쓰는가
제임스 A. 미치너 지음, 이종인 옮김 / 예담 / 2016년 4월
평점 :
절판


첫 번째 작품으로 퓰리처 상을 수상한 제임스 미치너는 타고난 작가이자 글을 쓸 수 밖에 없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머나먼 길을 돌고 돌아 마흔 살에야 첫 작품을 내놓게 되었지만 말이다. 부끄럽게도현대작가는 커녕 고전문학도 어렸을 때 (그래도 나름 부지런히) 읽었던 것이 거의 전부인지라, 미치너의 책 역시 <작가는 왜 쓰는가>가 처음이었다. "작가들의 작가"로 불리운다는 그가, 그의 필력이 궁금해서 펼쳐든 책이다. 

사실 이 책의 원제는 Literary Reflection으로 "작가는 왜 쓰는가"라는 의역이 조금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은 뒤에는 더욱 더 그 생각이 강해져, 제목이 책의 내용을 올바르게 대표하고 있지 않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뭐가 됐든 "문학적 성찰" 따위의 직역보다는 "작가는 왜 쓰는가"가 훨씬 부드럽기도 하고 독자로 하여금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을 들게한다는데 이의는 없지만, 확실히 책의 내용과는 거리감이 있어 보였다. 

책을 읽으며 가장 궁금했던 것은 역시 "왜 미치너는 이 책을 썼는가"였는데, 

1) 축적된 수많은 경험들을 말하지 않고는 입이 간지러웠기 때문에 
2) 노년에 접어들어 이제는 눈치 안보고 뭔 이야기든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3) 문학에 젖어든 젊은 세대에게 작가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고 싶어서 

등의 이유가 떠올랐다. 

읽으면 읽을수록 1번이 유력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이에 대해서는 조금 후 더 자세히), 2번의 가능성은 조금 희박하게 느껴졌다. 그의 문장에 드러나는 성격으로 미루어 짐작했을 때, 굳이 나이가 들지 않더라도 아닌 건 아니라고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말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세상을 떠나기 4년 전 이 책을 완성했는데, 인생의 마지막으로써 더할나위 없는 멋진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3번 역시 상당히 신빙성이 있어보였다. 언제나 그렇지만 시대를 이끌어간 작가가 어떤 과정을 거쳐 누구에게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아는 것은 후대에게 크나큰 도움이자 자극이 된다. 미치너는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이 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가 이 책에서 그는 앞으로의 작가들에게 여러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작가의 세계와 필력에 대해 문외한 수준인 나지만, 미치너의 책을 읽는 순간 그의 팬이라도 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의 담백한 문체와 카리스마 넘치는 표현력, 놀라운 호흡 때문이 아니라 (그걸 판단할만한 입장이 안 된다),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 그가 보여주는 놀라운 주관과 신념 때문이었다 (비록 도덕관념 역시 상당히 주관적이고 편협적이지만). 책을 읽는 동안 그가 마치 '작가라면 이래야지, 그렇게 남들과 타협하고 남들 눈치 보고 살면서 너 자신을 작가라고 할 수 있냐'고 말하는 것 같았다. 젠장. 선택할 수만 있다면 미치너 같은 작가가 되고 싶다.

나는 오랫동안 예술을 접해오면서 어떤 예술품을 만나면 그 당시의 지적 수준대로 솔직하게 반응했다. (44 페이지)

어느 누구도 모든 것을 완벽하게 알지 못한다. 중심을 꿰뚫어볼 수도 없다. 때문에 우리는 겸손함을 유지하라고 배운다. 벼는 익을 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이 말해주듯, 알면 알수록 더욱 겸손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는 것이다. 

미치너는 정반대의 입장을 취한다. 그는 겸손함이나 미덕보다는 솔직함을 최우선으로 보았던 것 같다. 때문에 경솔하고 건방지더라도 그 당시의 가장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기를 서슴치 않았다. 후에 자신이 생각했을 때 자신의 관점이 틀렸다고 인정할지언정 그 당시만큼은 스스로의 판단과 생각을 굽히지 않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그가 당대 최고의 영향력을 과시하던 사람들 앞에서 이런 신념을 굽히지 않았던 것이다, 주위 사람들이나 친한 사람들에게 소신껏 살기는 그나마 어렵지 않다. 하지만 어느 방면으로 보나 자신이 불리한 입장에 서있는 "대단한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반대되는 의견을 말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왠지 모르게 미치너는 이러한 사람들과 상황에 거의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 듯했다.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역시 앨버트 C. 반스와의 관계였다. 제3자가 보기엔 희대의 고집불통 두 사람의 만남이 아닐 수 없다. 끊임없이 자신의 의견만 주장하는 단호박 노인네와 그 노인네를 보기좋게 속여먹고 끊임없이 고통받는 고집불통이라니... 왜 진작 이 이야기가 영화로 나오지 않았나 의아할 정도였다. 정말 남부럽지 않게 스펙터클하게 연출할 수 있을텐데 말이다. 

그다음부터 반스가 트럭에 치여 죽을 때까지 그와 나 사이에는 끊임없는 싸움이 전개되었다. 내가 어디로 가나 그의 부하들이 따라와 애를 먹였다. (81 페이지) 

온갖 편법을 써가며 반스를 속여먹은 에피소드부터 보기좋게 실패한 자신의 연애담, 다른 작가들에 대한 서슬퍼런 비판까지. 미치너에게 "성역"은 없는 것 같았다. 도대체 이렇게 적나라하게 난도질을 해놓는데 두려움은 없는 것인지,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과는 아예 죽기 전까지 안 볼 생각으로 쓴 건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도대체 이 사람은 어떻게 이렇게나 솔직하고 당당할 수 있는 것일까? 

출판사에서 원고를 의뢰받게 되면 제안한 분량보다 훨씬 많은 분량을 보냈다는 미치너는 어느 날 출판사에게 자신의 원고를 보내며 이렇게 적었다고 한다. 

"원고가 좀 긴데 필요한 공간에 따라 편집을 하세요.
당신들은 유능한 편집자니까 쳐내는 것도 잘하잖아요."

그 원고에 대한 답은 아니지만, 그의 다른 원고를 본 한 편집자는 맨 아래 이렇게 적었다고 한다. 

"이 개자식은 백과사전용 원고와 잡지 원고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구먼." (174 페이지)

그 누구를 막론하고 미치너의 펜의 표적이 되면 빠져나올 틈새가 없어보였다. 그건 미치너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거나 겸손하게 숙이는 법이 없는 것 같았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덤덤하게 숨김없이 드러내보이는 과감함에 오히려 읽는 사람이 놀라지 않을까. 

예상 못했던 유쾌함과 즐거움으로 가득했던 책. 할 수만 있다면 미치너 같은 작가가 되고 싶었다. 남을 비판하는 데도, 비판받는 데도 어떤 걱정이나 두려움이 없는 그런 작가 말이다. 온갖 해프닝 끝에 법정을 빠져나오던 갈릴레이가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중얼거렸던 것처럼 주변 사람들의 말에는 콧털 만큼의 신경도 쓰지 않는 멘탈은 어떻게 가질 수 있는걸까? 어떠한 비판도 웃어넘길 수 있는 패기가 부러웠고, 뭐가 됐든 그 당시만큼은 살벌하게 솔직할 수 있는 능력이 부러웠다. 지금이라도 이렇게 살겠다고 결심한다면 이렇게 살 수 있을까?

다시 아까로 돌아가서 1번 이유를 생각해볼 때, 그는 확실히 타고난 이야기꾼이자 펜을 멈출 수 없는 작가였던 것 같다. 도무지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야기들이 많은 사람 말이다. 그래서 그는 상당히 늦은 나이에 등단했음에도 불구하고 무려 사십여 권의 책을 쓸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근성이 있음은 물론이고. 


책을 읽으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창작자로써, 예술가(가 되고싶은 사람으)로써 어떤 모습인지. 어중간하게 내 이상과 다른 사람들의 시선 그리고 기대에 끼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진 않은지. 지금 이대로의 모습이 후의 나에게 부끄럽지는 않은지 말이다. 쓸데없는 겸손과 배려, 잘못된 "착한 마음"에 빠져 스스로를 기만하고 있진 않은지 잘 돌이켜봐야 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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