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몸에 독이 쌓이고 있다
임종한 지음 / 예담Friend / 2016년 7월
평점 :
품절


비엔나에 살 때 나는 입버릇처럼 "사람들이 몰라서 그렇지, 진짜 살기 좋은 나라는 한국이다"라고 말하고 다녔다. 지금은 2~3위에 머물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매 년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에 비엔나가 선정되곤 했다.
하지만 이 사실은 어린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 병원 예약 후 진료 받기까지 기본 일주일이 넘게 걸리고, 냉장고가 망가졌다고 서비스에 전화하면 무려 3주 뒤에 간신히 나타나서는 "고칠 수 없습니다" 한 마디 던지고 출장비 10만원을 받아가는 곳이 어떻게 가장 살기 좋은 곳이란 말인가! 먹는 것은 더하다. 과자 종류는 몇 가지 되지도 않는데다 (당시의 내가 주로 이용하던) 인스턴트 식품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집 앞 편의점만 나가도 수십 가지의 라면과 어묵탕, 핫바, 도시락, 죽 그리고 심지어 족발(!)까지 구비되어 있는 한국과는 도무지 비교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것들이 비싸냐? 전혀 아니다. 오히려 절반도 안되는 가격으로 두 배 이상의 양을 먹을 수 있을 정도였으니 말 다했다. 그런데 비엔나가 더 살기 좋다니? 정말 몰라도 한참 모른다고, 이십 대의 어린 나는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한국으로 들어온지도 만 5년이 지났고, 어느덧 나는 30대의 아기엄마가 되었다. 그간 가장 크게 변한 것이 있다면 인스턴트 음식을 향한 극도의(?) 경계심이 생겼고(물론 가끔 먹긴 한다), 첨가제와 화학물질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것들인지 알게 되었으며, 심지어 얼마 전부터는 시중에서 판매하는 각종 세제들과 비누를 집 밖으로 추방하기도 했다. 잘 먹고 천 년 만 년 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끔찍한 독성 물질에서 내 아이와 남편을 지키고자 시작한 일이다.

굳이 옥시 대학살(!) 사건까지 가지 않더라도 합성세제와 각종 화학물질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깨닫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너무나 많은 아이들이 태어날 때부터 아토피로 고생하고 있고, 각종 알레르기 질환과 비염, 발달장애, 성조숙증으로 고통받고 있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상상조차 못할 일이다. 하긴. 나 어렸을 땐 한강에서 수영도 할 수 있었고, 냇가에서 송사리와 개구리를 잡기도 했으며, 아무 걱정 없이 흙바닥에서 뒹굴며 마음껏 흙장난을 치기도 했으니... 세상이 20년만에 어찌 이렇게 변할 수 있는지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저 외면하고 싶었던 현실을 마주하고 용기를 내 친환경적 삶을 본격적으로 추구하기 시작한지 몇 개월이 지나간다. 의외로 실천할 수 있는 것이 많았고, 어렵지 않았으며, 재미있기까지 했다. 손빨래와 애벌빨래도 익숙해졌고, 세제 없이 설거지를 한 후 건조기에 더이상 비누 잔여물이 흘러나오지 않는 것만으로도 뿌듯했다. 물론 손이 더 가고 기억해야 할 것이 많지만 이정도는 일도 아니다.

그러던 중 이 책을 만났다. 어머나 세상에. 이 책은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된 책이다. 지금까지의 실천이 비누와 세제, 라이프스타일에 집중되어 있었다면, 이젠 먹는 것을 포함한 삶 전체가 바뀌어야 한다는 경고장을 받은 느낌이다. '과연 나는 이 책을 읽고 싶을까?' 끝까지 고민했었다. 그냥 모르고 사는 것이 나을 것 같기도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무조건 읽어야겠다, 아니, 몇 번이고 읽고 공부하고 정리하며 달달 외어야겠다 결심한 건, 이젠 나 혼자가 아닌 아들과 남편이 있기 때문이었다.



먹을 게 없다!
할 게 없다!
즐길 게 없다!!!

이 책을 읽은 뒤 짧은 감상평을 쓰라면 이 정도일까나.
세상에. 현실은 상상한 것보다 더 충격적이다. 끔찍하다. 도무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오죽하면 그냥 세상이 확 망해버려 없어졌으면 하는 생각마저 들었을까.

책을 읽으며 깊이 깨닫게 된 것이 한 가지 더 있었다. 왜 (그따구로 살기 불편했던) 비엔나가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였는지 말이다. 한국에서 내가 당연히(?) 누리고 있는 편리함과 혜택들은 공짜로 오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엄청난 이기주의와 물질만능주의에 우리의 건강을 담보잡혀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면 모든 것은 이기주의에서 시작한다.
유통기한 없이 거의 영원히(!) 즐길 수 있는 각종 화학물질 범벅 먹거리도,
싼 값에 만들어 다량으로 판매하는 플라스틱 장난감도,
자극적인 맛으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식당 음식도,
예뻐지고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사용하는 각종 화장품과 향수, 그리고 생필품까지...

그것을 쓰는 사람들의 건강을 생각했다면 과연 이렇게 만들 수 있었을까?
당장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을, 환경을, 우리 사회를 생각했으면 정말 그럴 수 있었을까?

도대체 얼마나 이기적이면 다른 사람들의 안전을 담보잡고 그런 장사를 할 수 있는걸까. 환경이 오염될 것을 알면서도 그런 짓을 할 수 있는걸까.

비엔나의 물가가 비쌌던 것도, 가난한 학생에겐 인건비가 지나치게 비쌌던 것도, 원하는 상품을 당장 구할 수 없었던 것도 너무 당연하고 옳은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철 과일이 아니면 구하기 힘들었기에 각종 화학물과 농약에 찌든 과일들을 피할 수 있었고, 정당한 보수를 받아가며 일하는 엔지니어들은 보다 높은 자존감과 책임감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더욱 많은 시간을 할애해 주었기에 내가 조금 더 기다려야 했던 것이고, 인스턴트 식품의 종류가 적어 그나마 집에서 밥 다운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중국식당에 배달주문을 하면 한 시간이 다 되어서야 요리를 구경할 수 있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배달원들이 그나마 안전하게 다닐 수 있지 않았을까. 불편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하나같이 "당연한" 일이었다.


이 책을 읽고 당장 아들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 중 수상한 냄새가 나는 것 같은 플라스틱 장난감을 내다버렸다. 너무 좋아해서 매일 가지고 놀던 야채놀이 장난감은 원목으로 다시 사주었다. 몇 푼 차이도 안 나는걸 진작 이렇게 해줬어야 하는데 후회가 되었다.

그리고 부엌에서 아까워 못 버리고 있던 플라스틱 그릇들을 모조리 정리했다. 아무리 친환경이라지만 얼마 쓰지 않았는데 균열이 가고 휘어지던 옥수수 식기도 버리고 스테인리스로 새로 구입했다.

마지막으로 책에서 소개된 생협에 가입하고 한 달에 두 번 제철꾸러미를 받기로 했다. 지금까지 장 본 것에 비하면 두 배가 넘는 후덜덜한 가격이었지만 적어도 부분적으로나마 건강한 음식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미련없이 주문했다.

문제는 이게 끝이 아니라는 거다. 아니, 시작도 아닐지 모른다. 당장 이사를 가고 생활환경을 바꿀 순 없으니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라도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귀찮다고, 어떻게 그렇게 사냐고 넘기기엔 너무 위험하고 끔찍했다. 어차피 나의 능력은 슬플 정도로 한정되어 있지만 적어도 내가 공부하고 실천하는 범위 안에서라도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이 책을 꼭 읽었으면 좋겠다. 나처럼 실천하는 사람이 하나 둘 더 생겼으면 좋겠다. 내가 편한 것, 나에게 유리한 것만 이기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장기적인 안목으로 가족과 나아가 환경 그리고 사회를 생각할 수 있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저자의 말처럼, 그것을 통해 이러한 생활 방식과 수단들이 언젠가 당연시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
너무 오버하는 것 같다고?
그럼 이 책을 한 번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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