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왜 쓰는가
제임스 A. 미치너 지음, 이종인 옮김 / 예담 / 2016년 4월
평점 :
절판


첫 번째 작품으로 퓰리처 상을 수상한 제임스 미치너는 타고난 작가이자 글을 쓸 수 밖에 없는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머나먼 길을 돌고 돌아 마흔 살에야 첫 작품을 내놓게 되었지만 말이다. 부끄럽게도현대작가는 커녕 고전문학도 어렸을 때 (그래도 나름 부지런히) 읽었던 것이 거의 전부인지라, 미치너의 책 역시 <작가는 왜 쓰는가>가 처음이었다. "작가들의 작가"로 불리운다는 그가, 그의 필력이 궁금해서 펼쳐든 책이다. 

사실 이 책의 원제는 Literary Reflection으로 "작가는 왜 쓰는가"라는 의역이 조금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은 뒤에는 더욱 더 그 생각이 강해져, 제목이 책의 내용을 올바르게 대표하고 있지 않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뭐가 됐든 "문학적 성찰" 따위의 직역보다는 "작가는 왜 쓰는가"가 훨씬 부드럽기도 하고 독자로 하여금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을 들게한다는데 이의는 없지만, 확실히 책의 내용과는 거리감이 있어 보였다. 

책을 읽으며 가장 궁금했던 것은 역시 "왜 미치너는 이 책을 썼는가"였는데, 

1) 축적된 수많은 경험들을 말하지 않고는 입이 간지러웠기 때문에 
2) 노년에 접어들어 이제는 눈치 안보고 뭔 이야기든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3) 문학에 젖어든 젊은 세대에게 작가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고 싶어서 

등의 이유가 떠올랐다. 

읽으면 읽을수록 1번이 유력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이에 대해서는 조금 후 더 자세히), 2번의 가능성은 조금 희박하게 느껴졌다. 그의 문장에 드러나는 성격으로 미루어 짐작했을 때, 굳이 나이가 들지 않더라도 아닌 건 아니라고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말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세상을 떠나기 4년 전 이 책을 완성했는데, 인생의 마지막으로써 더할나위 없는 멋진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3번 역시 상당히 신빙성이 있어보였다. 언제나 그렇지만 시대를 이끌어간 작가가 어떤 과정을 거쳐 누구에게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아는 것은 후대에게 크나큰 도움이자 자극이 된다. 미치너는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이 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가 이 책에서 그는 앞으로의 작가들에게 여러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작가의 세계와 필력에 대해 문외한 수준인 나지만, 미치너의 책을 읽는 순간 그의 팬이라도 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의 담백한 문체와 카리스마 넘치는 표현력, 놀라운 호흡 때문이 아니라 (그걸 판단할만한 입장이 안 된다),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 그가 보여주는 놀라운 주관과 신념 때문이었다 (비록 도덕관념 역시 상당히 주관적이고 편협적이지만). 책을 읽는 동안 그가 마치 '작가라면 이래야지, 그렇게 남들과 타협하고 남들 눈치 보고 살면서 너 자신을 작가라고 할 수 있냐'고 말하는 것 같았다. 젠장. 선택할 수만 있다면 미치너 같은 작가가 되고 싶다.

나는 오랫동안 예술을 접해오면서 어떤 예술품을 만나면 그 당시의 지적 수준대로 솔직하게 반응했다. (44 페이지)

어느 누구도 모든 것을 완벽하게 알지 못한다. 중심을 꿰뚫어볼 수도 없다. 때문에 우리는 겸손함을 유지하라고 배운다. 벼는 익을 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이 말해주듯, 알면 알수록 더욱 겸손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는 것이다. 

미치너는 정반대의 입장을 취한다. 그는 겸손함이나 미덕보다는 솔직함을 최우선으로 보았던 것 같다. 때문에 경솔하고 건방지더라도 그 당시의 가장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기를 서슴치 않았다. 후에 자신이 생각했을 때 자신의 관점이 틀렸다고 인정할지언정 그 당시만큼은 스스로의 판단과 생각을 굽히지 않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그가 당대 최고의 영향력을 과시하던 사람들 앞에서 이런 신념을 굽히지 않았던 것이다, 주위 사람들이나 친한 사람들에게 소신껏 살기는 그나마 어렵지 않다. 하지만 어느 방면으로 보나 자신이 불리한 입장에 서있는 "대단한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반대되는 의견을 말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왠지 모르게 미치너는 이러한 사람들과 상황에 거의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 듯했다.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역시 앨버트 C. 반스와의 관계였다. 제3자가 보기엔 희대의 고집불통 두 사람의 만남이 아닐 수 없다. 끊임없이 자신의 의견만 주장하는 단호박 노인네와 그 노인네를 보기좋게 속여먹고 끊임없이 고통받는 고집불통이라니... 왜 진작 이 이야기가 영화로 나오지 않았나 의아할 정도였다. 정말 남부럽지 않게 스펙터클하게 연출할 수 있을텐데 말이다. 

그다음부터 반스가 트럭에 치여 죽을 때까지 그와 나 사이에는 끊임없는 싸움이 전개되었다. 내가 어디로 가나 그의 부하들이 따라와 애를 먹였다. (81 페이지) 

온갖 편법을 써가며 반스를 속여먹은 에피소드부터 보기좋게 실패한 자신의 연애담, 다른 작가들에 대한 서슬퍼런 비판까지. 미치너에게 "성역"은 없는 것 같았다. 도대체 이렇게 적나라하게 난도질을 해놓는데 두려움은 없는 것인지,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과는 아예 죽기 전까지 안 볼 생각으로 쓴 건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도대체 이 사람은 어떻게 이렇게나 솔직하고 당당할 수 있는 것일까? 

출판사에서 원고를 의뢰받게 되면 제안한 분량보다 훨씬 많은 분량을 보냈다는 미치너는 어느 날 출판사에게 자신의 원고를 보내며 이렇게 적었다고 한다. 

"원고가 좀 긴데 필요한 공간에 따라 편집을 하세요.
당신들은 유능한 편집자니까 쳐내는 것도 잘하잖아요."

그 원고에 대한 답은 아니지만, 그의 다른 원고를 본 한 편집자는 맨 아래 이렇게 적었다고 한다. 

"이 개자식은 백과사전용 원고와 잡지 원고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는구먼." (174 페이지)

그 누구를 막론하고 미치너의 펜의 표적이 되면 빠져나올 틈새가 없어보였다. 그건 미치너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거나 겸손하게 숙이는 법이 없는 것 같았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덤덤하게 숨김없이 드러내보이는 과감함에 오히려 읽는 사람이 놀라지 않을까. 

예상 못했던 유쾌함과 즐거움으로 가득했던 책. 할 수만 있다면 미치너 같은 작가가 되고 싶었다. 남을 비판하는 데도, 비판받는 데도 어떤 걱정이나 두려움이 없는 그런 작가 말이다. 온갖 해프닝 끝에 법정을 빠져나오던 갈릴레이가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중얼거렸던 것처럼 주변 사람들의 말에는 콧털 만큼의 신경도 쓰지 않는 멘탈은 어떻게 가질 수 있는걸까? 어떠한 비판도 웃어넘길 수 있는 패기가 부러웠고, 뭐가 됐든 그 당시만큼은 살벌하게 솔직할 수 있는 능력이 부러웠다. 지금이라도 이렇게 살겠다고 결심한다면 이렇게 살 수 있을까?

다시 아까로 돌아가서 1번 이유를 생각해볼 때, 그는 확실히 타고난 이야기꾼이자 펜을 멈출 수 없는 작가였던 것 같다. 도무지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야기들이 많은 사람 말이다. 그래서 그는 상당히 늦은 나이에 등단했음에도 불구하고 무려 사십여 권의 책을 쓸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누구보다 부지런하고 근성이 있음은 물론이고. 


책을 읽으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창작자로써, 예술가(가 되고싶은 사람으)로써 어떤 모습인지. 어중간하게 내 이상과 다른 사람들의 시선 그리고 기대에 끼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진 않은지. 지금 이대로의 모습이 후의 나에게 부끄럽지는 않은지 말이다. 쓸데없는 겸손과 배려, 잘못된 "착한 마음"에 빠져 스스로를 기만하고 있진 않은지 잘 돌이켜봐야 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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