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경계하지 않는 자는 결코 남을 벨 수 없다 ㅣ 한국철학전집 1
이순신 지음 / 결 / 202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스로를 경계하지 않는 자는 결코 남을 벨 수 없다』- 흔들리지 않았던 사람이 아니라, 흔들림을 다루었던 사람의 기록 


🔺 저자 : 이순신

🔺 출판사 : 결



🎯 이순신을 다룬 책이라고 했을 때 먼저 떠오른 것은 열두 척의 배, 명량의 물살, 죽음을 앞두고도 흐트러지지 않은 장수. 이미 너무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한 인물이어서, 처음에는 낯선 이야기를 만나리라는 기대가 크지 않았다. 그런데 책은 승리의 장면 대신 옥문을 나서는 한 사람을 세웠다. 직위도 명예도 곁의 사람도 없이, 자기 몸 하나만 남은 이순신. 그 자리에서 나는 영웅보다 먼저 한 인간의 맨바닥을 보게 될 것 같았다.



🔖 “울분과 분노는 적을 찌르기 전 나의 시야를 먼저 마비시킨다.” 나는 감정을 참는 것과 다스리는 일을 자주 같은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이순신은 분노도 슬픔도 없던 사람이 아니었다. 낮 동안 삼킨 마음을 밤마다 일기에 옮겼고, 종이에 내려놓은 뒤 다시 바다를 보았다. 감정을 지우지 않고 전장 밖에 잠시 세워 두는 방식. 내게도 그런 자리가 있었는지 문득 돌아보게 된다.


🔹 🔹 🔹 🔹 🔹 🔹 


🔖 지원이 끊긴 자리에서 그는 원망부터 키우지 않았다. 둔전을 일구고, 갯벌에서 소금을 굽고, 모자란 군량의 숫자를 다시 셌다. “곳간이 조금 채워졌다. 그뿐이었다.” 대단한 선언도 없고 스스로를 치켜세우는 말도 없다. 나는 이 짧은 기록이 오히려 묵직했다. 고립은 누군가 없는 상태만이 아니라, 내 살림을 누구 손에 맡겨 두었는지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외로운데도 다음 동작은 있었다. 호미를 들든 장부를 펴든.


🔹 🔹 🔹 🔹 🔹 🔹 


🔖 이순신의 준비는 불안을 과장하는 습관과 달랐다. 적이 오기 전에 진을 정비하고, 굶기 전에 곡식을 모았으며, 무뎌지기 전에 칼을 살폈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내가 쉼이라고 불렀던 몇몇 시간을 생각했다. 정말 다시 움직이기 위한 쉼이었을까. 아니면 해야 할 일을 잠시 보이지 않게 덮어 둔 것이었을까. 편안함 자체가 잘못은 아니지만, 무엇을 대가로 얻은 편안함인지는 물어야 한다. 그 질문을 미루는 동안 자리는 조용히 무너질 수도 있으니까.


🔹 🔹 🔹 🔹 🔹 🔹 


🔖 책의 제목에서 ‘남을 벤다’는 말은 적을 쓰러뜨리는 기술보다 자기 안의 군더더기를 덜어 내는 일에 가까웠다. 직함, 억울함, 평판,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 이순신이 마지막까지 붙든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라 자기 자리의 책임이었다. 어깨의 피가 발꿈치까지 흘러도 먼저 전장을 보고 나중에 상처를 살핀 장면은 쉽게 감탄으로 정리되지 않았다. 나는 과연 내 일이 흔들릴 때 무엇부터 바라보는가. 상처인가, 핑계인가, 아니면 아직 지켜야 할 자리인가.


🔹 🔹 🔹 🔹 🔹 🔹 


📌 이 책은 이순신을 높이 세우기보다, 그가 매일 무엇을 내려놓았는지 따라간다. 그래서 읽는 동안 마음이 뜨거워지기보다 자주 불편해졌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을 탓하면서 정작 손에 쥔 작은 일은 미뤄 둔 순간들이 떠올랐다. 거창한 결단보다 오늘 밤 한 줄을 적는 일, 부족함을 확인하고 다음 계획을 다시 짜는 일. 몇몇 문장은 독자를 몰아붙이는 힘이 세서, 그의 복잡한 내면이 하나의 단단한 교훈으로만 정리되는 듯한 순간도 있다. 자기 확신이 자주 무너지는 사람, 감정에 휩쓸린 뒤 뒤늦게 후회하는 사람, 누구도 돕지 않는다는 생각 앞에서 멈춰 선 사람이라면 이 책의 문장 몇 개를 자기 자리로 가져갈 수 있을 것이다. 이른 독자가 꼭 읽어주길 바란다. 영웅의 승리를 배우기보다, 한 사람이 매일 자신을 경계하며 자리를 지킨 흔적을 보고 싶은 독자라면 더 그렇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너의 이름을 꽃이라 부르고 싶다
인향만리 지음 / 하늘아래 / 202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너의 이름을 꽃이라 부르고 싶다』- 꽃을 읽다가 내 마음의 색을 보았다 


🔺 저자 : 인향만리

🔺 출판사 :  하늘아래



🎯 꽃을 좋아하지만 꽃말을 일부러 찾아보는 편은 아니었다. 예쁜 것은 예쁜 것으로 두고 싶었고, 감정을 색으로 구분하는 일도 조금 단순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이 책은 꽃의 이름을 외우게 하기보다 지금 내 안에 무엇이 머무는지 묻고 있었다. 읽고, 한 문장을 따라 쓰고, 빈 꽃잎에 색을 입히는 동안 마음이 먼저 대답할 것 같다.



🔖 글라디올러스 “진정한 강인함은 넘어지지 않는 데 있지 않습니다.” 강함을 바라보던 내 기준을 조금 비켜 세웠다.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단단한 줄 알았는데, 두려움을 안고도 다시 일어나는 쪽이 오히려 더 어렵다. 곧게 선 꽃줄기 아래에도 바람을 견딘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동안 흔들린 흔적을 실패처럼 감추려 했는지도 모른다.

인향만리는 사람마다 고유한 향기를 지녔다고 믿으며 글과 책 사이를 걷는 사람이다. 그 시선은 꽃을 해석하는 방식에도 묻어난다. 꽃의 생김새를 설명하다가 어느 순간 인간의 태도로 건너가는데, 그 이동이 억지스럽지 않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용기는 버티는 표정일까, 다시 시작하는 한 걸음일까.


🔹 🔹 🔹 🔹 🔹 🔹 


🔖 블루세이지의 푸른빛은 크게 말하지 않는다. “마음이 스스로 잔잔해질 때까지 곁에 머물러 주는 일”. 빨리 괜찮아지라는 말, 좋은 쪽으로 생각하라는 말. 다정하다고 믿었던 문장들이 누군가의 아픔을 서둘러 닫으려 했을 수도 있겠다. 아무 말 없이 차를 내어 주고, 괜찮아질 시간을 기다리는 일. 위로는 말보다 태도에 가까웠다.사랑과 설렘 뒤에 그리움과 이별이 오고, 다시 회복과 용기로 이어지는 구성도 삶의 순서를 닮았다. 푸른색이 평온일 수도 있고 외로움일 수도 있다는 여백. 색을 고르는 손이 잠시 망설이는 순간까지도 이 책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 🔹 🔹 🔹 🔹 🔹 


🔖 “진정한 회복은 무너진 자신을 다시 다정하게 바라보는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회복을 이전 상태로 돌아가는 일이라 생각했던 내게는 방향을 바꾸는 말이다. 무너진 시간을 지우지 않고, 그 시간을 지난 나를 함부로 탓하지 않는 것. 작은 흰 꽃잎들이 노란 중심을 감싸는 모습처럼 나도 지친 마음 둘레에 잠시 여백을 두어야 했다.필사와 채색 공간은 장식이 아니라 독자가 책 안으로 들어가는 통로다. 읽기만 할 때는 지나쳤을 감정도 손으로 옮겨 적으면 다른 무게가 생긴다.


🔹 🔹 🔹 🔹 🔹 🔹 


🔖 백일홍은 빠르게 피는 삶보다 자기 색을 지키는 삶을 바라보게 했다. “비교의 소음 속에서도 제 리듬을 잃지 않는 일”. 나는 남의 속도를 보느라 내 걸음의 감각을 놓칠 때가 많다. 늦다는 생각이 들면 과정 전체를 초라하게 여기기도 했다. 그러나 백일홍은 눈에 띄는 순간보다 제 빛을 지켜 내는 시간이 한 사람의 결을 만든다고 말한다.빨강, 주황, 초록, 보라, 흰색, 푸른색, 검은색을 따라가다 보면 색은 취향이 아니라 마음을 비추는 언어가 된다. 오늘 내가 고른 색이 내일은 달라질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정답을 알려 주지 않는다는 점이 좋았다. 꽃을 읽는 동안 결국 마주하게 되는 것은 꽃이 아니라 나였다. 지금의 나는 어느 계절에 머물러 있는지, 쉽게 이름 붙이지 못한 채 잠시 들여다보게 된다.


🔹 🔹 🔹 🔹 🔹 🔹 


📌『너의 이름을 꽃이라 부르고 싶다』는 꽃말 사전보다 마음을 기록하는 작은 정원에 가깝다. 문장을 읽고, 마음에 걸린 부분을 옮겨 쓰고, 그날의 색으로 꽃잎을 채우는 동안 독자는 자기 감정의 결을 천천히 확인하게 된다. 설명이 반복되는 몇몇 대목은 아쉽지만, 서두르지 않고 자신을 바라보게 만드는 힘은 분명하다.마음이 복잡한데 무슨 감정인지 설명하기 어려운 사람, 위로의 문장보다 조용히 머물 자리가 필요한 사람, 자신의 색을 다시 찾아보고 싶은 이른 독자가 꼭 읽어주길 바란다. 

그 망설임까지도 지금의 나일 테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뇌를 바꾸면 통증이 사라진다 - 뇌과학이 밝혀낸 만성 통증의 진짜 원인
다니엘 G. 에이멘 지음, 김성훈 옮김 / 흐름출판 / 202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뇌를 바꾸면 통증이 사라진다』- 아픈 곳보다 먼저, 아픔을 받아들이는 뇌를 바라보다

Change Your Brain, Change Your Pain 


🔺 저자 : 다니엘 G. 에이멘 Daniel G. Amen 

🔺 옮긴이 : 김성훈 

🔺출판사 : 흐름출판


🎯 뇌를 바꾸면 통증이 사라진다니, 오래 아파본 사람에게는 쉽게 건넬 수 없는 말처럼 보였다. 약을 먹고 검사를 받고도 이유를 찾지 못한 통증 앞에서 이런 문장은 희망이 되기도 하지만, 잘못하면 또 하나의 부담이 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책장을 넘기며 나는 저자가 통증을 가볍게 다루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천천히 알게 됐다. 오히려 통증을 몸 한 부위의 고장으로만 보아온 익숙한 시선부터 다시 살펴보자는 제안에 가까웠다.


🔖“통증은 신체의 경보 시스템이다.” 나는 통증을 없애야 할 적으로만 생각해왔다는 걸 돌아보게 됐다. 통증은 무언가 잘못됐다고 알리는 몸의 언어인데, 문제는 위험이 사라진 뒤에도 경보가 꺼지지 않을 때다. 저자는 통증 없는 사람의 MRI에서도 이상 소견이 발견될 수 있고, 반대로 뚜렷한 손상이 없어도 심하게 아플 수 있다고 말한다. 몸의 영상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간극, 그 안에 뇌의 해석이 있다.


🔹 🔹 🔹 🔹 🔹 🔹 


🔖 통증이 시작되면 두려움이 따라오고, 두려움은 근육을 긴장시키며, 긴장은 다시 통증을 키운다. 저자가 ‘파멸의 고리’라고 부른 흐름은 낯설지 않았다. ‘계속 아프면 어떡하지’라는 생각 하나가 몸을 더 굳게 만들고, 움직임을 피하게 하고, 결국 통증이 삶의 중심으로 들어오는 과정. 아픔 그 자체보다 아픔을 예상하는 시간이 더 길어지는 순간도 있다. 나는 이 고리가 의지 부족이 아니라 뇌가 학습한 반응이라는 설명에서 잠시 멈추었다.


🔹 🔹 🔹 🔹 🔹 🔹 


🔖 복식 호흡, 수면, 식사, 운동, 감정 기록, 부정적 사고 다루기처럼 여러 실천법이 나온다. 처음에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보였다. 하지만 저자는 모든 방법을 한꺼번에 완벽하게 수행하라고 하지 않는다. 자기 전 오늘 잘 풀린 일 하나를 떠올리는 것, 아침에 물 한 잔을 더 마시는 것, 잠시 호흡을 길게 내쉬는 것. 뇌는 생각보다 작은 반복에도 반응한다고 한다. 거창한 결심보다 오늘 가능한 행동 하나가 먼저였다.수치가 모든 사람의 회복을 보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약과 수술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느꼈던 사람에게 선택지가 하나 더 생긴다는 의미는 작지 않다. 


🔹 🔹 🔹 🔹 🔹 🔹 


🔖 희망을 막연히 좋은 기분이나 낙관적인 성격으로 보지 않고, 목표를 세우고 경로를 찾으며 스스로 움직일 힘을 기르는 기술이라고 말한다. “희망은 회복으로 가는 여정에 동승한 승객이 아니다.” 나는 희망이 기다리는 마음이 아니라 방향을 다시 잡는 행동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프지 않을 미래를 믿는 것만이 아니라, 그 미래로 가는 작은 길을 오늘 만드는 일.물론 모든 통증이 책 한 권과 몇 가지 습관만으로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당신이라면 통증이 찾아왔을 때 ‘또 시작이네’라고 체념하는 대신, ‘지금 내 뇌가 무엇을 말하고 있지?’라고 물어볼 수 있을까. 그 질문부터 이미 다른 길일지 모른다.


🔹 🔹 🔹 🔹 🔹 🔹 


📌 다니엘 G. 에이멘은 40년이 넘는 임상 경험과 방대한 뇌 영상 자료를 바탕으로 통증을 뇌 건강의 관점에서 풀어낸다. 사례와 실천법이 풍부해 읽는 동안 막연했던 개념이 비교적 구체적으로 잡힌다. 다만 일부 대목은 저자의 치료 접근과 성과가 강하게 제시되어, 독자에 따라 확신이 앞선다고 느낄 수 있다. 몸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그 신호가 내 삶 전체를 차지하게 두지 않는 법. 오래 아파서 자신의 몸을 믿기 어려워진 사람, 검사 결과와 실제 통증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 사람, 가까운 이의 만성 통증을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주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테오
앨런 레비 지음, 노지양 옮김 / 오팬하우스 / 202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테오』- 사람의 얼굴을 끝까지 바라본다는 것


Theo of Golden 


🔺 저자 : 앨런 레비 Allen Levi 

🔺옮긴이 : 노지양 

🔺출판사 : 오팬하우스



🎯  낯선 노인이 초상화 아흔두 점을 사서 그림 속 사람들에게 돌려준다는 이야기라니, 너무 선하고 반듯해서 현실과 멀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몇 장을 넘기자 그 의심은 금세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다른 모양, 반전으로 남았다. 나는 왜 이렇게 조용한 친절을 쉽게 믿지 못하게 되었을까. 책보다 내 쪽이 먼저 들여다보게 된다.


🔖 테오가 골든의 작은 카페에서 마주한 것은 흑백 연필로 그려진 아흔두 개의 얼굴이었다. 그는 그것을 장식품으로 보지 않는다. 한 사람의 시간과 상처가 잠시 액자 안에 머물러 있다고 여긴다. “모든 얼굴은 하나의 이야기”라는 생각이 그의 발걸음을 움직인다. 그림을 산 뒤 원래 얼굴의 주인을 찾아가는 일. 대단한 사건은 아닌데, 이상하게 그 조용한 시작 앞에서 오래 머물었었다


🔹 🔹 🔹 🔹 🔹 🔹 


🔖 테오는 자신의 성과 과거를 쉽게 밝히지 않는다. 그 대신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하고, 손편지를 쓰고, 약속한 시간에 직접 찾아간다. 선물보다 더 크게 다가온 것은 그가 상대의 말을 듣는 태도였다. 우리는 만나지 않고도 누군가를 안다고 생각하지만, 테오는 얼굴을 마주해야만 보이는 것이 있다고 믿는다. 그가 사람들을 자신의 흐름 안으로 불러들이는 동안 골든의 주민들도 서로를 다시 보기 시작한다. 친절은 그렇게 한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았다. 


🔹 🔹 🔹 🔹 🔹 🔹 


🔖 미네트가 감춰둔 슬픔을 털어놓을 때 테오는 성급하게 위로하지 않는다. 그는 기다린다. 숨이 돌아올 때까지, 말이 다시 이어질 때까지. 그리고 슬픔이 한심한 경우는 드물며 좋은 슬픔은 중요한 무언가를 알려준다고 말한다. 나는 그 대목에서 위로란 적절한 답을 내놓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아픔을 고치려 들지 않고 그 자리에 함께 앉아 있는 것. 쉽지 않은 친절이다.


🔹 🔹 🔹 🔹 🔹 🔹 


🔖 테오의 하루에는 스마트폰도 앱도 없고, 해가 지기 전에 앉는 벤치와 느린 산책이 있다. 처음에는 조금 옛날식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낡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의 내가 잃어버린 속도에 가까웠다. 떨어진 깃털 하나와 지나가는 사람의 말 한마디를 놓치지 않는 태도. 사람을 발견하고 싶다는 마음. 책을 읽는 동안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하기보다, 오늘 마주친 얼굴 하나라도 제대로 보았는지 생각하게 됐다.


🔹 🔹 🔹 🔹 🔹 🔹 


📌 앨런 레비가 일흔에 가까운 나이에 쓴 첫 장편이라는 사실은 이 이야기의 결을 설명해준다. 변호사와 음악가로 여러 삶을 거친 사람이 마지막에 붙잡은 것은 거대한 성공담이 아니라,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건네는 작은 관심이었다. 문장은 노래처럼 부드럽고, 골든을 흐르는 강처럼 천천히 사람들을 한곳으로 데려간다.세상이 실제로 그렇다고 우기는 대신, 적어도 이렇게 살아보는 사람 하나는 있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날카로운 말과 빠른 판단에 지친 사람, 누군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는 일이 왜 중요한지 다시 생각해보고 싶은 사람, 존경할 만한 어른의 얼굴을 그리워한 독자가 꼭 읽어주길 바란다. 무표정한 사람을 보며 아무것도 없는 얼굴이라고 단정하지 않게 되었다. 어쩌면 그 정도면, 테오가 건넨 초상화 한 장을 나도 받은 셈인지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김경미의 김치 레시피북
김경미 지음 / 행복우물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경미의 김치 레시피북』- 오늘도 결국 손이 가는 건 기본이었다.


🔺 저자 : 김경미

🔺 출판사 : 행복우물



🎯 처음에는 '김치 레시피를 굳이 책으로 볼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검색하면 수많은 레시피가 나오고 영상도 넘쳐나는 시대니까. 그런데 몇 장 넘기다 보니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이 책은 레시피를 모아놓은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다듬어 온 손맛의 기준을 한 권에 담아낸 기록에 더 가까웠다.


🔖 무켜 통배추김치부터 백김치, 동치미, 돌산갓김치까지 익숙한 김치는 물론 토마토김치와 참외김치처럼 색다른 레시피도 함께 담겨 있다. 절이는 시간과 양념 비율, 숙성의 흐름까지 세심하게 설명되어 있어 따라가기 어렵지 않았다.


🔹 🔹 🔹 🔹 🔹 🔹 


🔖 김치만 소개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 점도 좋았다. 겉절이와 생채, 김치찌개, 김치만두, 김치죽 같은 활용 요리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져 한 권으로 식탁을 완성할 수 있다는 느낌이 든다.


🔹 🔹 🔹 🔹 🔹 🔹 


🔖 김경미 저자는 반가음식을 연구해 온 전통음식 연구가이자 대통령상 수상 김치명인답게 화려한 설명보다 기본을 더 중요하게 이야기한다. 그래서 레시피 하나에도 오랜 경험이 담겨 있다는 점이 자연스럽게 전해졌다.


🔹 🔹 🔹 🔹 🔹 🔹 


📌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레시피와는 조금 다른 결의 책이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까지 차분하게 알려주는 덕분에 한 번 만들어 보고 끝나는 책이 아니라, 김치를 담글 때마다 다시 펼쳐보게 될것 같. 김치를 처음 배우는 사람은 물론 기본을 제대로 익히고 싶은 사람에게도 든든한 길잡이가 되어줄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