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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고요 - 자연의 지혜와 경이로움을 담은 그림 에세이
보 헌터 지음, 캐스린 헌터 그림, 김가원 옮김 / 책장속북스 / 2025년 10월
평점 :
낯선 고요 - 숲과 별빛 사이에서 배우는 자연의 지혜와 그림의 언어

🔺 저자 : 보 헌터
🔺 그림 : 캐스린 헌터
🔺 옮긴이 : 김가원
🔺 출판사 : 책장속북스
🎯 비행과 일상 사이의 틈에서 이 책을 펼쳤다. 숲의 숨결과 별빛의 리듬이 페이지 위로 번져왔다. 『낯선 고요』는 자연을 설명하지 않으면서 자연이 먼저 말을 걸게 한다. 나는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속도를 늦추는 법을 배웠다. 그림은 손바닥만 한 우주였고, 문장은 그 우주로 들어가는 문이었다. 책장을 덮고 나면, 도시의 소음 사이로도 새들의 가느다란 선율이 들린다.

🔖 작은 생명들의 거대한 협정, 생물다양성의 얼굴
곤충들을 향한 시선은 이 책의 심장이다. ‘약 1경 마리의 개미’가 지구의 순환을 떠받치는 장면을 상상할 때, 숫자는 갑자기 체온을 얻는다. 헌터의 그림은 현미경을 닮았지만 결코 냉혹하지 않다. 미세한 질감을 층층이 올려 작은 날갯짓의 떨림을 시각화하고, 점묘와 해칭으로 흙의 숨결을 들린다. 보 헌터의 문장은 그 리듬 위에 앉아 조용히 말을 건다.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고 서로 보살피며 살아갑니다.” 이 단정한 진술은 이 책 전체의 윤리이자 방식이다.

🔖 신성한 기하와 숲의 문법, 패턴으로 읽는 우주
책은 ‘신성한 기하’를 멀리 있는 신비가 아니라, 꽃잎과 솔방울, 조개껍데기에 새겨진 생활의 문법으로 보여준다. 피보나치 수열과 프랙탈 패턴이 자연의 반복과 변주를 묵묵히 증언하고, 우리는 그 질서에 시선을 오래 머무는 동안 알파파가 잔잔히 깔리는 것을 체감한다. 여기서 캐스린 헌터의 그림은 결정적이다. 판화와 혼합 매체의 결로 만들어진 선은 과잉을 모른다. 여백이 호흡을 만들고, 단정한 형태가 스스로 빛난다. 잉크가 종이에 스미는 질감, 누르거나 들어올린 압력의 차이가 주는 명암과 결의 층위, 절제된 색의 선택까지 헌터는 선을 긋지 않고 ‘숨을 놓는다’. 그 호흡이 페이지를 지나 내 눈동자에 닿을 때, 패턴은 교과서가 아니라 기도문이 된다.
“세상엔 그저 존재하는 것들이 있어요.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채로, 있는 그대로 머무는 것들.”

🔖 하늘과 현재, 변화의 윤리와 ‘지금 여기’
“고개를 들어요!”로 대표되는 하늘의 장면과 “변화는 자연스러운 일이에요”의 사유는 이 책이 단지 위안을 넘어 윤리로 도달함을 보여준다. 드문드문 박힌 별과 질서의 은유, 헤라클레이토스와 불교의 무상 사유가 한 페이지에 나란히 앉아 있다. 텍스트가 변화를 이야기할 때, 헌터의 그림은 구름과 바람, 흐르는 물의 선형을 간결하게 반복한다. 방향을 잃지 않은 반복은 안정을 낳고, 미세하게 달라지는 두께는 변화의 리듬을 알려준다.

🔖 감각을 깨우는 채집의 시간, 듣고 맛보고 멈추기
무엇을 먹는가가 아니라, 무엇에 귀를 기울이며 먹는가를 묻는다. “채집은 우리를 자연 속으로 이끄는 초대장”이라는 문장을 따라가면, 냄새·촉감·소리·빛의 온도까지 하나의 감각 악보처럼 배치된다. 헌터의 정물적 구도는 사물의 실루엣을 도려내듯 명료한데, 그 명료함이 차갑지 않은 이유는 재료의 질감과 종이의 숨결을 끝까지 남겨두기 때문이다. 눌린 잎맥, 거칠게 잘린 가장자리, 두꺼운 잉크의 얇은 마감.보 헌터는 “자연이 먼저 말하게 두라”고 말하며, 번역가 김가원은 그 낮은 목소리의 어조를 한국어의 부드러운 호흡으로 이식한다. 독자는 읽는 동안 듣고, 맛보고, 멈춘다. 멈춤은 결핍이 아니라 회복의 장치가 된다.

💬 밤하늘의 얇은 빛, 숲의 서늘한 냄새, 종이에 스민 잉크의 촉감이 하나의 언어가 된다. 고요는 비어 있지 않았다. 그것은 우리를 지탱하는 충만이었다.
📌 이 책은 자연 앞에서 속도를 늦추고 싶은 당신에게 건네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