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이념의 구현이다. 인간 이성, 특히 일반 의지(common will)의 현실화이다. 비록 삶은 질곡이며, 그것에 핍박받지만, 그래도 살아있는 이유는 새로운 세상의 도래를 믿기 때문이다. 러시아 혁명은 그런 점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정신이다. 억압받는 민중이 스스로 권력을 쟁취하고 정권을 쟁취했기 때문이다. 미시적 개인들이 그들 스스로 집합화 했고, 그 발현적 속성이 거시적인 체제 변동을 일으켰다. 비록 훗날의 역사는 맑시즘의 실패, 공산주의 이론의 실패를 이야기하지만, 역사적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바로 민중이 혁명을 일으켰다는 그 사실. 소련의 붕괴는 그 성격상 실제로는 '국가 사회주의'니 '국가 자본주의'로 규정될 수 있다. 그만큼 혁명 이후의 상황은 혁명의 원래 의도대로 전개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실패는 단 하나의 이념의 구현이 결국 실패한 것이지, 모든 이념과 혁명의 실패는 아니다. 민중은 언제라도 다시 억압이 도래한다면 일어설 것이다. 책 자체는 주로 사료로 짜여 있다. 그러나 보통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가 보여줬던 내용+화보의 적절한 균형보다 사진 위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좀 아쉬운 감이 있다.
책 자체가 번역이나 삽화, 구성 등에 있어서 다소 껄끄러운 점이 있음은 인정할 수밖에 없을 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의 외적 중요성을 더 말해두고 싶다. 비단 나만의 감수성인지는 모르겠지만, 수 족 출신 아메리카 인디언으로서 특별한 삶을 살았던 저자의 경험이 담겨 있기 때문에, 나는 책을 읽는 동안 마음이 편치 못했다. 내가 만약 그런 운명에 놓였다면...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또한 '운디드 니 학살'을 분기점으로 완전히 단절된 아메리카 인디언과 미국 백인 사이의 역사도 그렇거니와, 그 속에서 자신의 터전을 잃어버리고 목숨을 빼앗긴 인디언들, 그리고 또 그들의 사라져버린 문명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가 인디언의 삶을 책으로 말해주는 것은 커다란 가치가 있다고 본다. 그것은 인디언들이 스스로 말하지 않으면 완전히 묻혀버릴 역사를 복원하는 소중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제목처럼 우리는 한번쯤 인디언 숲을 방문해봐야 한다. 우리 역시 식민지 시대와 또 수많은 학살의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들도 끊임없이 우리의 역사에 대해서 분명히 마음 속에 각인하고 있어야 한다. 복수를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그것이 '우리'이기 때문이다.
두말 할 필요가 없는 최고의 저작입니다. 트로츠키의 그 명성을 가장 잘 반영해주는 저작이라고도 할 수 있구요. 그는 이 책에서 자신의 사상을 드러내면서도 또한 방대한 자료와 아주 미시적인 내용도 놓치지 않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인류의 역사에서 인간의 이념을 가장 극적으로 구현하려 했던 사건이 러시아 혁명입니다. 트로츠키는 그 중심에 있었구요. 그러니 당연히 이 책은 중요하죠. 책 속에서, 그가 보여주는 계급의식과 낡은 사회관계 형태 사이의 모순에 대한 서술은 정말 멋집니다. 저는 그래서 이 책으로 맑시즘과 공산주의를 공부해보려 합니다. 그런데, 하나의 문제는 이 책이 총 7권으로 번역될 저작인데, 이제 1권이 출판되었다는 점이죠. 우리나라의 출판 현실을 보면 과거에 출판사의 사정이나 역자의 사정으로 시리즈물이 중간에서 중단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부디 이 책은 그런 경우가 없기를 바랍니다. 간곡히. 참고로 책의 원본은 The History of the Russian Revolution, Pluto Press, 1977입니다. 영어로 읽든 번역본을 보시든, 꼭 읽어보세요.
현대 산업사회 속에서 계급과 계층의 의미를 공부하고 있는 학생으로써 이 책을 흥미롭게 읽었다. 저자의 날카로운 주장이 돋보이는 책이다. 그런데, 과연 그가 말하는 보보스, 즉 베이비부머 세대는 실재하는가? 그의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좀 사회학적 접근을 통해서 신뢰있는 자료를 제시했어야 하지 않나 싶다. 게다가 그가 주장하는 새로운 모델은 극소수의 선진국에서만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에 과연 전지구적인 인간형을 대표해줄 수 있는지가 의문스럽다. 그럼 역사결정론처럼, 후진국 사회도 사회경제적 제반시설을 갖추면 보보스가 등장하나? 잘 모르겠다. 단지 나의 생각은 개인의 SES(socio-economic status)만을 봐서 그 계층을 정의할 수 있을지는 의문스럽다는것이다. 물질적 배경이 지배적인 원인이라도 모든 필연적 원인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새로운 유형에 대한 느낌과 소개보다는 신뢰성을 가진 구체적 주장이 필요할 것 같다.
물론 나는 문화에 대해서 문외한이나 다름 없지만, 그래도 책을 읽었으니 느낌이나 생각이 있어서 몇 자 적는다. 일단 쓴소리부터. 세 가지 점에서 이 책이 마음에 안 들었다. 첫째는 당시 유행이었던 들뢰즈-가타리를 이론적 분석틀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 둘째는 당시의 이슈거리나 서울 중심의 문화만을 포착하고 있다는 점. 셋째는 이론과 미시적 차원의 현상이 잘 어우러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책을 다 읽어도 도대체 나의 문화적 안목-대체로 시니컬한-에는 전혀 변화가 없다. 태도는 그렇다쳐도 더 아는 것이 생겼다는 그런 느낌도 별로 들지 않는다. 아마 그 가장 큰 이유는 보이는 문제를 보이지 않는 이론으로 단지 접합만 했을 뿐, 그에 대한 성찰은 부족했다는 점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오늘날 중요한 문제이다. 그 문화가 사회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며 또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이 다양성의 시대 속에서 현재와 미래를 이해하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일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