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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열 교수의 유가윤리강의 ㅣ 예문서원 강의총서 1
김충열 / 예문서원 / 1994년 3월
평점 :
'규범은 행위를 구속하지 않는다.' 김충열 교수의 이 책에 나오는 말이다. 그렇다. 동양철학은 규범이 행위를 구속하지 않는다. 서양의 사상은 자유주의의 토대 아래에서 합리적인 규범을 만든다. 즉,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지만 방임이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에 외재적인 수단인 법으로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다. 즉, 자유를 주되 제한을 가한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자유와 제한이 모두 개인의 내면에 있다. 스스로 사회생활을 통해 자유와 그 제한을 익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동양에서 仁, 義, 禮는 하나의 當爲처럼 형성되어 있다. 쉽게 말해, 부모에게 효도하고, 어른에게 공경하고, 친구와 의리로서 지내는 것 등은 법적으로 강제된 것이 아니라, 그것을 권장하는 사회생활을 통해 내면에서 형성되어 우러나오는 것이다. 이런 동양철학은 서양철학과 비교할 때, 두드러지는 차이들이 있다. 그래서, 김충열 교수의 <유가윤리강의>를 읽으면 칸트의 <실천이성비판>과는 다른 동양의 윤리학을 맛볼 수 있다.
이 책은 저자의 명성만큼이나 전문적이지만 또한 쉽다. 그래서 부담이 가지 않는다. 생명에서 시작해 나, 가정, 사회, 역사로 확대되는 유가윤리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는 참 쉽다. 내가 四書를 강독하면서 漢字를 한자씩 찾아가던 그런 어려움은 없다. 그러나, 서양인은 잘 이해되지 않을 그런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쉽게 이해된다. 그런 윤리의 환경에서 커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쉽지만 실천이 되지 않는다. 우리에게도 근대화의 바람을 타고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의 물결이 밀려 들어왔고, 그에 앞서 자본주의의 파편화된 논리가 우리의 몸을 지배했다. 그러면서, 수천년을 간직해온 동양의 윤리가 몸에서 떨어져 나가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얼마전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식의 책이 유행했었다. 나는 이 책을 읽지 않았지만, 우리나라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동양의 윤리를 버려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옳지 않다. 서양의 윤리학이 극복하지 못하는 문제를 우리는 이미 많이 넘어서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컨데, 정의주의(emotivism)와 같은 문제가 우리에겐 없다. 이론과 실천이 따로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김충렬 교수 역시 본문의 서두에 '생명보다 귀한 것은 없다'고 밝힘으로서 나와 전체가 하나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 이것이 동양철학의 강점이다. 노자의 사상 역시 플라톤이나 하이데거의 철학에 뒤지지 않는다. 나는 우리의 '근대화'가 동양의 것을 버리고 서양의 것만을 추구하는 '서양화'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안타까운 점이 많다. 이 책을 읽으면서 더욱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동양의 정체성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