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징폭력과 문화재생산
삐에르 부르디외 지음 / 새물결 / 1995년 7월
평점 :
절판


나는 21세기를 접어들면서, 가장 논의되어야 할 문제는 계급 및 계층 개념에 대한 연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한 축에는 부르디외가 서 있다. 물론, 그가 최근에 경주에 왔을 때, 스스로 자신은 맑스주의자가 아니라고 밝혔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가 계급 및 계층 개념에 대해서 불평등 구조의 입장에 서 있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내가 생각하기로 그는 맑스가 사용하는 계급 개념과 스스로를 분명히 구별하기 위해서 그렇게 답했던 것으로 보인다.

즉, 맑스의 계급 개념은 대자/즉자라는 적대적 양식과 의식적 양식을 통해서 파악되는 것으로 보지만, 부르디외는 계급 개념이 문화 전체의 영역에서 분석되어야 하는 것으로 본다. 그래서, 문화양식이나 학력자본 등을 아비투스라는 개념으로 파악하려고 한다. 나는 이런 부르디외의 논의가, 새로운 사회상에 대한 모습이 사라져버린 현대에 아주 중요하다고 본다. 아리에스나 하비, 동즐로, 엘리아스, 푸코 등과 부르디외를 함께 공부하면 아마 미래사회의 이행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사회학 논의는 정보사회와 같은 기술결정론적 입장에 너무 가까이 가 있다. 그러나, 기술을 수용하는 것도, 거부하는 것도 인간이다. 특히,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어떤 결정이 있는 계급 및 계층들이 그것을 수행할 것이라는 점에서 부르디외의 계급 논의를 살펴보는 것은 중요한 함의를 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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