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뮬라시옹 현대사상의 모험 5
장 보드리야르 지음, 하태환 옮김 / 민음사 / 200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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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옥 선생님이 TV에 나와 그렇게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던 화이트헤드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서양철학사는 플라톤 철학의 각주에 지나지 않는다고. 물론, 나는 화이트헤드의 유기체 철학에 상당히 공감한다. 특히, 그가 아직도 스콜라철학의 가능태 개념을 사용한다는 점(그것도 생물학적인 이마쥬를 팍팍 떠올리게 하면서)에 있어서 더욱 그렇다.

아울러, 화이트헤드의 위의 지적은 옳다. 적어도 철학사를 조금 아는 분이라면 전적으로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의 생각으로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길항의 과정이라고 수정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플라톤은 마치 서양사를 기독교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는 것처럼, 절대적이었다.

플라톤 철학은 알다시피 영원불멸의 이데아계를 긍정하고, 현실계의 판타즈마와 시뮬라크르와 같은 찰나적인 것들을 부정했다. 가치-존재론적인 등급이 영 하위의 것들이었던 것이다. 왜? 그것은 영속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한마다로 믿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시대는 바뀌었다. 기술문명을 등에 업고 컴퓨터와 인터넷을 곁에 두고 세상은 바뀌었다. 담론과 언표(혹은 미디어), 가상공간 속에서 우리들은 끊임없이 살아간다. 전자결제를 하며, 증시를 확인하고, 미디어를 비평한다. 이것들은 플라톤이 보기에 전혀 존재론적 실제가 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세상이 뒤바뀐 것은 아니다. 비록 기술문명이 우리의 감각과 우리의 행위를 조금 더 신기루와 같은 것으로 착색시키기는 했지만, 세상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 보부르 효과도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이렇게 다른 이론이 만들어져 있는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보라. 진리란 무엇인가? 아니 그것은 어떤 효과를 일으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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