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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혁명
빌헬름 라이히 지음, 윤수종 옮김 / 새길아카데미 / 2000년 3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그 제목으로 절대 오인받아서는 안된다. 책의 표지가 그러한 오해를 더 가중시키는 듯 하다. 그러나 이 책은 결코 그러한 흥미위주의 책이 아니라, 철저한 이론서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빌헬름 라이히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한다. 따라서, 이 책을 읽기 이전에 심리학과 수업에서 간혹 등장하는 <파시즘의 대중심리>라든지, <문화적 투쟁으로서의 性>과 같은 라이히의 책을 미리 읽어야 한다. 사실, 이 책은 <문화적 투쟁으로서의 性>의 2부이다. (그래서, 번역상 조금 겹치는 부분도 있었다) 책의 번역에 있어서는 이 주변에 있어서 많은 번역서를 냈던 윤수종 교수가 했기 때문에 믿음이 간다.
라이히의 이론은 프로이트와 좋은 대척점을 이룬다. 즉, 내가 생각하기로 현대 심리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프로이트와 융, 그리고 라이히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가운데, 프로이트가 전통 심리학자라면, 라이히는 심리학의 경계를 넘어 정치학과의 조우를 시도했다는 점에 있어서 가히 혁명적이다. 그 이름하여, 경제학적 심리학이다. 즉, 그는 프로이트의 심리학에 마르크시즘을 도입하여 性경제학을 주장한다. 거칠게 말하자면 마르크스의 이론에 있어서 자본이나 노동 대신 性과 리비도를 대입하면 된다.
즉, 그는 프로이트와 같이 性을 편재적이고 중요한 것으로 다루지만, 그것이 권력과 사회구조에 의해 정치적으로 억압당함으로서 여러 가지 병리학적 문제를 야기한다고 주장했다. 비록 그 자신은 망명과 더불어 미국에서 오르곤 축적기 등의 작업이 사회적 제지로 완전히 금지되어 불우한 생을 마감했다. 또한 현대의 학자들도 모두 오르곤 축적기를 상상 속의 연구로 치부한다. 그것은 맞을지 모른다. 그러나, 라이히의 사상은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다. 검증되지 않아서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프로이트의 '무의식'과 6세 이전 아동기의 성 고착에 대한 주장 모두가 증명될 수 없기 때문이다.
심리학이 그렇듯이 라이히의 이론은 그렇게 편협한 것이 아니다. 특히 라이히가 국내에서도 이제 유명해진 들뢰즈와 가타리에게 아주 중요하게 다루어지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그들의 <앙띠 오이디푸스>를 읽어본다면 여러분은 라이히의 폭발적인 이론적 가능성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을 읽어보면 그가 얼마나 진지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이론은 상당부분 타당하다. 마르크시즘이 확장되어 이제는 노동 뿐만 아니라 많은 영역에서 '착취' 개념을 다루고 있다. 이제 여러분은 라이히의 욕망 해방 담론을 만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