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가는 먼 집 문학과지성 시인선 118
허수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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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경 시인은 살아있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시인이다. 마치 박상륭 선생이 '내가 살아있었다는 울음을 내 귀에라도 육성으로 들려주려는 것'이 삶이라고 생각했듯이, 허수경 시인은 삶에 대한 깊이있는 천착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은 박상륭처럼 독특하고 한편으로 다른 깊이를 지닌다. 그는 우리의 마음이 역사의 운명 속에 자리잡지 않기를 바란다. 아니, 오히려 역사의 운명이 마음에 대상화(gegenstandlichung)하는 것을 거부한다. 즉 세상의 삶에 대해 울음을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에 울음을 들려주는 것이다. 그래서 내 마음에로 돌아가는 것이 한 삶, 한 思惟의 道程이다.

'봄그늘 아래 얼굴을 묻고/나 울었던가/울기를 그만두고 다시 걸었던가/나 마음을 놓아보낸 기억만 없다(「不醉不歸」)' '잠드는 것처럼', '죽는다는 것처럼' 혼자가는 먼 집으로 달려가는 各各의 마음들이 서로 나그네되어 어루만져 주는 황량한 道程. 그래서 허수경 시인의 유리걸식을 읽으면 조용히 눈물이 흐른다.

새랑 살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닌 것. 속량되면서 이 지상 끝나도록 울음을 토하는 반복된 연습뿐. 결국은 나만이 들어줄 나의 울음소리를 질러내기 위해서. 나의 마음은 오늘도 지친 걸음을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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