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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정현종 지음 / 미래사 / 1991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시집은 같은 제목의 영화로도 유명했는데, 나는 아직 그 영화는 보지 못했다. 어떤 내용인지 잘 모르겠지만, 보고 싶은 생각도 별로 없다. 대개 유명한 글의 제목이나 한 구절을 따와 만든 작품은 엉성하고, 더러는 그 구절과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구절이 영화 제목으로까지 등장한다는 것은 시인의 글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냐는 것을 반증한다고 할 수 있겠다.
정현종 시인은 내가 첫시집 <사물의 꿈>(1972)을 펴냈을 때부터 좋아했다. 이후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1984)이나 시론집 <숨과 꿈>(1982) 등에서 그의 글을 종종 접하였는데, 나에게 정현종 시인에 대한 인상은 좋게 남았다. 여기서 '좋다'는 것은 그의 詩가 철학적으로 읽혔다는 뜻이다.
물론, 무엇이 철학적으로 읽혀서 좋은 것이 아니라, 다른 시인들의 시와 달리 철학적인 문제와 밑그림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시인이 詩를 쓰면서 얼마나 많이 고심하였고, 노력을 들였는가를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신대철 시인 풍으로 이야기하면, 투명한 닻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라고 할까?
그런데 정현종 시인의 詩가 가지는 중요한 이마쥬를 하나 꼽자면 운동성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이 돛은 먼 바다까지 나아가는 원양어선 쯤에 걸맞는다고 볼 수 있겠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는 그런 정현종 시인의 시선집이다. 물론, 이 책을 수능이나 다른 시험을 위해 사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의 시는 아름답다. 첫 시인 '獨舞'부터 시작되는 저 투명한 운동성. '事物'에 대한 집요한 성찰이나, '공중에 떠 있는 것들' 연작은 이런 운동성을 한껏 도드라지게 한다.
해제에 김치수 선생조차 그의 시들을 '움직임과 바라봄'으로 규정하지 않는가! 그런 의미에서 그의 시는 철학적이다. 그러나 서양철학에서는 사물이나 이마쥬는 '동일성'이 없는 판타즈마(환각)으로 치부하고 무시한다. 운동성 또한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는다. 그래서 시인은 시를 썼는가보다. 이것은 거의 정확하게 보인다. 끝없이, 그러나 가만히 사물과 그 움직임을 바라보는 시인의 맑은 눈. 그 풍경을 생각하고 이 시선집을 읽으면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