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역사적 자본주의 / 자본주의 문명 ㅣ 창비신서 119
이매뉴엘 월러스틴 지음 / 창비 / 1993년 4월
평점 :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이 작은 소책자는 '근대세계체제' 및 '자본주의 세계경제'와 '세계경제의 정치학' 등 일련의 작업의 이론적 뼈대가 되는 중요한 저작이다. 그의 관점은 자본주의를 역사적 실체로써 규정함으로서 특이하게 형성되는데, 이 과정 안에서 자본이 스스로를 증식하여 만물을 상품화하고, 그에 따라 부르주아 간의 이익 축적을 통한 투쟁의 과정이 생겨나며, 이후엔 진리가 권력의 시녀로서 기득권을 쥐고있는 당대의 담론을 합리화하는 도구로 전락하는 과정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구체적 과정으로서 생산적 노동과 비생산적 노동(26p)이 어떻게 분리되고, 그 과정에서 노동의 상품화가 진행되는가를 살폈고, 그것이 수요와 공급이 지배하는 시장논리에까지 확대되는 인과적 흐름을 보여주었다. (결국 이렇게 됨으로서 역사적 자본주의는 세계체제 내의 여러 지역에서 엄청난 임금수준의 차이들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상품화 및 자본화의 편재적 논리는 자본가들 내에서도 조장된 경쟁을 만연시켰는데, 그 승리자는 오직 자본 자체였을뿐, 시장경제를 실재적으로 담당했던 모든 사람들은 피해자였다.
이 이상한 자본 자체와 근대적 지식의 담론체계가 가지는 결연관계는 결국 물질문명 내에, 비반성적인 토대를 넘어 반성 자체가 가능하지 않은 무반성적인 이윤투쟁으로 나아갔다. 결국 자본주의는 그 자체의 구조상 자본 자체의 증식에만 눈이 멀 뿐, 역사적인 항로설정에는 속수무책인 과정에로까지 전락한다. 적어도 필자에게는 자본주의가 '부르조아 내부의 투쟁'(67p)이 되고마는 자본의 보편적 내성화의 과정에서, 맑스의 구호마저 전도되고마는 참담함을 느꼈다.
지식인의 진리와 신념체계도 상품화되는 그 역사적 자본주의의 체계는 어떤 실질적 권력자도 없이, 자본 자체의 자기증식만을 산출한다는 점에서 자르지 않고는 풀 수 없는 실타래와 같았다. 그러나 무엇을 자른단 말인가? 우리에겐 길로틴에 처형시켜야 할 어떤 이데올로기나 체제의 권력자가 없다. 그래서 월러스틴의 '역사적인 사회주의'(116p)는 내게 너무 막연한 대항구조로 여겨질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