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연을 모방하기 보다는 자연과 일치하기를 원한다."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


그가 남긴 말 중 하나다.브라크에게 회화는 자연을 복제하는 일이 아니었다. 자연과 화음을 남기는 일이었다. 그 차이가 그의 생애 전체를 관통한다.

화가의 단상집이라는 장르는 낯설었다. 파울 클레(Paul Klee),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같은 예술가들은 자신의 예술 이론을 글로 남겼다. 브라크는 이론을 쓴 것이 아니라 단상을 남겼다. 다른 의도다. 시스템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진지하게, 보이는 진실 하나하나를 고정하려는 의지였다. 그 35년의 직무가 『낮과 밤(Le jour et la nuit)』이다.


1882년 5월 13일, 브라크는 파리 근교 아르장퇴유(Argenteuil)에서 태어났다. 르아브르에서 성장했다. 조부와 부친이 건물 도장업을 하면서 아마추어 화가로 활동한 집안이었다. 브라크는 르아브르 에콜 데 보자르(Ecole des Beaux-Arts)에서 오통 프리에즈(Othon Friesz), 라울 뒤피(Raoul Dufy)와 함께 미술을 배웠다. 이 시절의 훈련, 즉 장인의 눈으로 타일을 다루고 표면을 가공하는 습력이 후일 그의 회화에 직접 반영됐다는 평이 프랑스 미술계에서 공통적 견해다.


1900년 파리로 이주한 브라크는 아카데미 앙베르(Academie Humbert)에서 마리 로랑생(Marie Laurencin), 프랑시스 피카비아(Francis Picabia)를 만났다. 1906년 에스타크(L'Estaque) 해안 풍경화로 야수파(Fauve) 스타일에 진입했다가, 1907년이 그의 회화 인생의 분기점이 된다. 엑스(Aix)에서 폴 세잔(Paul Cezanne)의 회고전을 보고, 기욤 아폴리네르(Guillaume Apollinaire)의 소개로 피카소(Pablo Picasso)의 아틀리에에서 『아비뇽의 처녀들(Les Demoiselles d'Avignon)』을 목격했다. 이 조우가 브라크의 경로를 완전히 바꿨다.



큐비즘의 탄생 — 피카소와의 시절

1907년 11월, 아폴리네르의 소개로 피카소를 만났다. 브라크는 에스타크에서 시도한 풍경화 연작을 보여주는 것으로 대화에 반응했다. 1908년 가을, 드니엘-앙리 카날바일러(Daniel-Henry Kahnweiler) 갤러리에서 브라크의 첫 전시가 열렸다. 비평가 루이 보셀(Louis Vauxcelles)은 브라크의 건물 피사체들을 "작은 큐브들(petits cubes)의 집합"이라 평했다. 큐비즘(Cubisme)이라는 명칭이 여기서 비롯된다.


피카소와 브라크는 스스로 자신들의 협업을 "로프로 연결된 등반자들(La Cordee)"에 비유했다. 1908년부터 1914년까지, 두 사람은 여름을 세레(Ceret)와 소르그(Sorgues)에서 함께 작업하며 큐비즘 분석기를 전개했다. 1912년 브라크는 파피에 콜레(papier colle), 즉 신문지나 인쇄 종이를 화면에 직접 붙이는 기법을 최초로 도입했다. 이것이 현대 콜라주 기법의 기원으로 평가받는다. 피카소는 훗날 편지에서 브라크를 "나를 가장 많이 사랑한 여성(la femme qui m'a le plus aime)"이라고 표현했다. 이 말은 두 사람의 관계의 깊이를 전하는 동시에, 큐비즘 혁명에서 브라크의 기여가 피카소에 비해 과소평가되는 경향에 대한 미묘한 인정이기도 했다.



일상으로 돌아오지 않은 전쟁 — 두개골 천공 수술과 35년의 준비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브라크는 보병 제224연대로 징집됐다. 피카소는 아비뇽 역에서 군복 차림의 브라크를 전송했다. 두 사람이 수년간 이어온 대화는 그 순간 끊겼다.

1915년 5월 11일, 브라크는 뇌빌-생-바스트(Neuville-Saint-Vaast) 전투에서 두부에 중상을 입었다. 전사한 것으로 여겨져 방치됐다가 다음 날 들것병들에게 발견됐다. 두개골 천공 수술(trepanation)을 받고 이틀간의 혼수상태 끝에 의식을 되찾았다. 회복에 1917년까지 걸렸다.


바로 이 1917년, 시인 피에르 르베르디(Pierre Reverdy)와 함께 평상의 단상들을 정리해 문학 잡지 『노르-쉬드(Nord-Sud)』 제10호에 발표했다. 제목은 「회화에 대한 사상과 성찰(Pensees et reflexions sur la peinture)」. 이 글이 이후 35년간 작성된 단상들의 출발점이 된다. 전쟁이 붓을 빼앗았지만, 성찰은 계속됐다.


전후 브라크의 회화는 큰 변화를 거쳤다. 큐비즘의 납작한 기하학에서 점차 곡선으로 돌아오고, 단일한 색채로 화면을 통일하는 대상을 고집했다. 인물, 정물, 비둘기. 같은 대상을 수년간 반복해 그렸다. 브라크에게 싫증은 없었다. 다음 단계는 언제나 안에서 발견해야 했다.


그의 단상들도 같은 방식으로 성장했다. 1917년부터 단상을 쓰기 시작한 브라크는 1952년까지 35년 동안 이 작업을 이어갔다. 하루에 하나를 쓰기도 하고, 몇 달에 하나를 쓰기도 했다. 시간을 정하지 않았다. 단상들은 노트에 쌓이는 것이 아니라, 임리에서 나온 것을 다듬고 완성하는 방식으로 겹쳐졌다.

주제도 회화에만 한정되지 않았다. 보이는 것에서 숨겨진 것으로, 지식에서 감성으로, 단순에서 복잡으로. 브라크의 단상은 회화의 주제와 거의 하나로 이어진다. 색, 구도, 관점, 언어, 자연, 시간, 남기는 것과 사라지는 것. 판단하지 않는다. 단정짓지 않는다. 하나의 주제를 여러 개의 신중한 문장으로 접근한다.


『낮과 밤』 

브라크는 정식 논문이나 에세이를 쓰지 않았다. 손에 잡히는 짤막한 노트에 문장을 적었다. 대부분은 한 단락 안에 담겼다. 그 중 일부를 선별해 갈리마르(Gallimard) 출판사를 통해 있는 그대로 내놓았다. 브라크 스스로 고른 제목 '낮과 밤(le jour et la nuit)'에 주제 정의가 담겨 있다. 내려앉는 것과 떠오르는 것, 보이는 것과 숨은 것, 시작과 끝, 있는 것과 없는 것.​


쪽 수는 초판 기준 56쪽이다. 형태는 인-12판(In-12)으로 손안에 들어오는 소형 판본이다. 작가의 드로잉 2점이 수록되어 있다. 1952년 8월 4일 인쇄를 마쳐 발행됐다. 라피마-나바르(Lafuma-Navarre) 순지 100부 한정판(tirage de tete)과 일반지 판 두 종으로 발행됐다. 현재도 갈리마르 파리 서점 공식 판매 목록에 올라 있다.


브라크의 아포리즘은 두 가지 구조를 가진다. 

첫째, 개념들을 반의의 쌍으로 충돌시킨다. 

"언제나 두 가지 생각, 하나를 무너뜨릴 또 하나의 생각을 가져야 한다.(Il faut toujours avoir deux idees, l'une pour detruire l'autre.)" 

둘째, 직접적인 관찰로 곧장 들어간다.

 "감정은 덧붙여지거나 모방할 수 없다. 감정은 배아고 작품은 부화(l'eclosion)다."


프랑스 아포리즘 전문 매체 Aphorismundi의 평가다. "브라크는 17세기 모랄리스트들의 진정한 계승자로, 리듬감 있고 종종 이분법적인 아포리즘 안에서 인간과 세계 표상에 연관된 복잡한 개념들을 정의하려 한다." 이 평은 브라크의 글쓰기가 단순한 화가의 메모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짚는다.


​루브르로 — 생애 말년의 영예

​1937년 카네기 국제 미술전 카네기상(Prix Carnegie), 1948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1952년에는 루브르 박물관 관장 조르주 살레(Georges Salles)의 의뢰로 루브르 앙리 2세 홀(salle Henri-II) 천장에 새(Oiseaux) 테마의 장식화 작업을 맡았다. 1953년 제막식이 열렸다. 피카소는 자신이 선택되지 않은 것에 불쾌해하며 브라크가 자신의 비둘기(colombes)를 베꼈다고 비난했다. 브라크는 피카소에게 답하지 않았다.


1961년, 루브르에서 회고전 「브라크의 아틀리에(L'Atelier de Braque)」가 열렸다. 살아 있는 화가로서 루브르에서 개인전을 연 최초의 예술가였다. 사망 2년 전의 일이었다. 1963년 8월 31일, 브라크는 파리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1세였다. 그가 살던 파리 거리명은 훗날 조르주-브라크(rue Georges-Braque)가로 바뀌었다.


1963년 9월 3일, 루브르 콜로나드 앞에서 국장이 열렸다. 앙드레 말로(Andre Malraux) 문화부 장관이 추도사를 낭독했다. 말로는 이렇게 말했다. "현대의 어떤 국가도 자국에서 세상을 떠난 화가에게 이러한 성격의 헌사를 바친 적이 없다. 프랑스의 명예에 빅토르 위고라는 이름이 있다. 이제 브라크라는 이름이 있다는 것을 프랑스인들에게 말해야 한다. 한 국가의 명예는 무엇보다 그 국가가 세계에 무엇을 주는가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말로의 추도사 전문은 현재 malraux.org 공식 아카이브에서 열람할 수 있다.


​화가의 글을 읽는다는 것

​『낮과 밤』은 순서대로 읽히지 않는다. 어떤 페이지를 열어도 된다. 다음 페이지의 단상이 앞의 페이지와 논리적으로 연결되지 않아도 상관없다. 브라크 스스로도 선형적으로 이어지도록 쓴 텍스트가 아니다. 단상들은 여러 주제를 오가면서 반복하고, 서로 충돌하고, 때로는 돌고 돌아 출발점으로 되돌아온다.


브라크에게는 천천히 읽는 독자가 더 잘 맞는다. 하나의 단락을 읽고 잠시 멈추는 시간이 필요하다. 매일 5단락씩 읽어도 되고, 집어들고 필요할 때 열어봐도 된다. 추상적인 것도 많지만, 직접적인 것이 더 많다. 브라크는 주제를 열어 놓고 미끄러져 들어가는 일을 독자에게 넘기는 편이다.


단상은 스케치보다 짧다. 그 압축이 브라크만의 언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871년 12월, 베르사유 군사법원에서 루이즈 미셸(Louise Michel)은 피고석에 섰다. 파리 코뮌(Paris Commune) 가담 혐의였다. 판사가 형량을 선고하기 전, 미셸이 먼저 말했다. 당신들이 나를 죽이길 거부한다면 내가 먼저 요구하겠다고. 종신 유형이 선고됐다. 미셸은 이 선고에 저항하지 않았다. 동료들이 총살당하는 마당에 자신만 가벼운 벌을 받는 것이 오히려 부당하다고 여겼다.


이 장면 하나가 루이즈 미셸이라는 인간을 압축한다. 두려움보다 원칙이 앞서고, 살아남는 것보다 신념을 지키는 것이 먼저였다. 그 원칙이 교사로서의 삶에서, 바리케이드에서, 유형지에서, 그리고 감옥 안에서 쓴 회고록에서 일관되게 이어진다.


사생아로 태어나 교사가 되다

1830년 5월 29일, 프랑스 북동부 오트-마른(Haute-Marne)의 브롱쿠르-라-코트(Vroncourt-la-Côte)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성주 집안의 하녀였고, 아버지는 그 집의 아들이었다. 미셸은 사생아였다. 성주인 조부모가 그녀를 거두어 길렀다. 조부모는 당시 기준으로 드문 자유주의적 교육을 미셸에게 제공했다. 그 교육이 이후 그녀의 모든 것을 결정했다.


어린 시절부터 빅토르 위고(Victor Hugo)에게 편지를 보냈다. 위고는 답장을 보냈고, 두 사람의 교류는 이후에도 이어졌다. 위고는 미셸의 재판 과정을 보고 나서 용기를 ‘비로 마조르(Viro Major, 남자보다 위대한)’이라는 시로 기렸다. 1853년부터 교사 생활을 시작했다. 1865년에는 파리 몽마르트르(Montmartre)에 직접 학교를 열었다. 수업료를 낼 수 없는 노동자 자녀들을 받았다. 미셸에게 교육은 직업이 아니라 혁명의 준비였다.

파리에서 미셸은 혁명가들과 접촉했다. 1870년에는 여성권리협회(Association pour les droits des femmes) 창설에 참여했다. 보불전쟁(Franco-Prussian War, 1870~1871) 당시에는 파리 포위전에서 부상병 구호와 여성 위원회 활동을 이어갔다. 그리고 1871년 3월, 코뮌이 시작됐다.


73일의 코뮌 — 바리케이드 위의 교사

파리 코뮌은 1871년 3월 18일 시작돼 5월 28일 진압됐다. 73일이었다. 미셸은 이 73일 동안 전선에 있었다. 몽마르트르 18구. 국민군(National Guard) 61대대와 함께 이시(Issy), 몽마르트르, 클라마르(Clamar) 전투에 참가했다. 남성 군복을 입고 바리케이드에 섰다.


프랑스 언론은 그녀에게 ‘라 비에르주 루주(La Vierge Rouge)’, 붉은 처녀라는 이름을 붙였다. 경멸과 공포가 섞인 호칭이었다. 미셸은 그 이름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5월 24일, 어머니가 자신 대신 체포됐다는 소식을 듣자 직접 경찰에 출두했다. 어머니를 풀어주는 조건으로. 이것이 그녀가 체포된 경위였다. 경찰은 비열하게도 어머니를 인질로 삼아 루이즈 미셸을 검거한 것이다.


군사법원의 기소장은 미셸이 “군중의 열정을 자극하고, 무자비한 전쟁을 선동하며, 지옥의 음모로 인질들을 죽음으로 몰았다”고 적었다. 미셸은 이 기소 내용을 부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진술했다. 종신 유형이 확정됐다. 사형을 면한 것에 대해서도 미셸은 감사를 표하지 않았다.


뉴칼레도니아 — 유형지에서 카낙 편에 서다

1873년 8월, 미셸은 유형선 비르지니(Virginie)호에 올랐다. 함께 탄 사람 중에는 아나키스트 나탈리 르멜(Nathalie Lemel)이 있었다. 르멜은 항해 중 미셸에게 아나키즘 이론을 전했다. 뉴칼레도니아 유형 시절, 그녀는 아나키즘으로 사상적 전환을 이룬다.


유형지에서 미셸은 카낙(Kanak) 원주민과 교류했다. 그들의 언어와 문화를 배우고 기록했다. 1878년 카낙 봉기가 일어났을 때, 미셸은 프랑스 식민 당국이 아니라 카낙 편에 섰다. 유형수 신분으로 식민지 원주민의 저항을 지지한 것이다. 미셸은 카낙 어휘 수집 작업에도 참여했으며, 이 자료는 이후 프랑스-카낙 어휘 연구의 기초가 됐다.


유형지에서도 미셸은 아이들을 가르쳤다. 유형수 자녀들을 가르치고, 원주민 아이들을 가르쳤다. 식물 실험을 통해 열대 기후에 적합한 밀 품종을 개발하는 시도도 했고 식물의 전염병을 백신을 연구하기도 했다. 유형이 그녀의 삶을 멈추게 할 수는 없없다. 1880년 코뮌 참여자 전체에 대한 사면이 선포됐다. 미셸은 11월 9일 파리로 돌아왔다. 엄청난 군중이 마중을 나왔다.


감옥에서 쓴 책 — 회고록의 탄생

귀국 후 미셸은 강연과 저술을 이어갔다. 1883년 1월, 파리 앵발리드(Les Invalides) 광장 시위에서 군중을 이끌고 빵집 약탈을 주도했다는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에서 6년 형을 선고받았다. 3년 복역 후 사면됐다. 이 복역 기간인 1883년에서 1886년 사이, 미셸은 회고록(Mémoires)을 집필했다.


책은 1886년 2월 11일, 출판사 루아(Roy)에서 출간됐다. “제1권”으로 표기됐다. 후속 권이 이어질 것을 예고한 것이었다. 그러나 단행본 형태의 제2권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대신 1890년, 사회주의 신문에 69회 연재의 형태로 그 내용이 발표됐다. 이 연재분은 오랫동안 ‘실종된 제2권’으로 불렸다가 뒤늦게 발굴돼 <죽음을 향해: 미출판 회고록 1886~1890(A travers la mort: Mémoires inédits, 1886-1890)>으로 별도 출간됐다.


2021년에는 갈리마르(Gallimard) 출판사가 CNRS 연구원 클로드 레타(Claude Rétat)의 편집·주석 작업을 거친 폴리오 역사(Folio Histoire) 시리즈 304번으로 <회고록>(1886)을 재출간했다. 576쪽 분량이었다. 파리 코뮌 150주년을 맞아 다시 꺼내든 텍스트였다. 원래 출판 당시 협상 과정에서 미셸이 자신의 문체를 지키고 동료들의 기억을 보호하는 방식을 편집자와 직접 조율했다는 사실도 이 시기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루이즈 미셸 회고록 — 선형이 아닌 기억의 구조

회고록은 자서전의 관습을 따르지 않는다. 시간 순서대로 삶을 서술하지 않는다. 독자가 이미 알고 있다고 전제한 사건들 — 코뮌, 재판, 유형 — 을 비선형적으로 교차시킨다. 현재와 과거가 뒤섞이고, 회상과 선언이 한 문단 안에 공존한다. 독자 주석 없이 읽기 어려운 밀도다. 이것은 결함이 아니라 선택이었다.


미셸의 문체는 ‘불타오르는(enflamé)’ 것으로 당대 독자들에게 묘사됐다. 부드럽지 않고, 완충재가 없다. 페미니즘 사상, 아나키즘, 빈자에 대한 연대가 동시에 터져 나온다. 여성 교육에 대한 분노, 생라자르 감옥 여성 수감자들과의 대화, 코뮌 동료들에 대한 기억이 섞인다. 회고록은 개인의 삶을 집단의 싸움과 분리하지 않는다.


루이즈 미셸 회고록 안에 미셸의 페미니즘 선언이 압축된 문장이 있다. “노동자는 노예다. 그러나 노동자의 아내는 노예들 중의 노예다.” 이것은 수사가 아니었다. 미셸은 여성의 해방을 계급 해방과 분리된 별도의 과제로 보지 않았다. 두 가지가 동시에 실현되지 않으면 둘 다 불완전하다는 입장이었다. 이 때문에 그녀는 당대 여성 참정권 운동과는 다른 거리를 두었다. 의회 정치 자체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회고록>이 출판됐을 때 독자들이 놀란 것은 정치적 내용 때문이 아니었다. 서사의 신선함 때문이었다. 격식 있는 자서전도 아니었고, 정치 팸플릿도 아니었다. 혁명가의 내면과 일상이, 분노와 서정이, 이론과 기억이 하나의 목소리로 흘렀다. 1886년 당시 이런 형식의 여성 자서전은 거의 없었다.


빅토르 위고, 폴 베를렌 — 동시대가 그녀를 기린 방식

빅토르 위고는 미셸의 용기를 시로 남겼다. ‘비로 마조르(Viro Major)’라는 제목의 시에서 위고는 미셸을 이렇게 썼다. 그녀의 날들, 밤들, 모든 이에게 내준 걱정과 눈물, 타인을 돕는 가운데 자신을 잊어버리는 것. 위고는 아나키스트가 아니었다. 그러나 미셸에 대해서는 시인으로서의 판단을 내렸다. 이 여성은 영웅적이지 않은 것을 할 수 없다고.


시인 폴 베를렌(Paul Verlaine)은 1883년 재판 이후 미셸에게 시를 바쳤다. 1888년에는 샤를 기르(Charles Guyé)가 르아브르(Le Havre) 강연장에서 미셸에게 총을 쐈다. 두 발을 맞았다. 미셸은 부상 이후 법원에 출석해 가해자를 옹호하는 진술을 했다. 그는 정신적으로 아픈 사람이므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이 진술이 당대 신문들에 크게 보도됐다. 미셸이 생산한 가장 강력한 정치적 발언은 연설이나 글이 아니라 이런 행동들이었다.


런던 망명, 그리고 마지막 강연

1890년, 미셸은 런던으로 거처를 옮겼다. 자발적 망명이었다. 경찰의 지속적인 감시와 프랑스 당국의 압박을 피해 런던을 거점으로 삼았다. 그러나 완전히 떠나지는 않았다. 1890년부터 1905년 사망 직전까지, 미셸은 프랑스와 유럽 각지를 돌며 강연을 이어갔다. 아나키즘, 여성의 권리, 노동자 연대가 강연의 중심 주제였다.


1905년 1월, 미셸은 마르세유(Marseille) 강연 중 쓰러졌다. 1월 9일, 마르세유에서 사망했다. 향년 74세였다. 장례식은 파리에서 열렸다. 세 세대에 걸친 혁명가들이 운집했다. 그 자체가 하나의 정치 집회였다.

2020년에는 뱅크시(Banksy)가 지중해 난민 구조선에 미셸의 이름을 붙였다. 루이즈 미셸호. 여성 선장이 이끌고, 페미니즘·반인종차별·반파시즘 가치를 내건 배였다. 미셸이 1878년 카낙 봉기를 지지했던 것, 그리고 』회고록『에서 아랍 유형수들에 대해 쓴 것과 같은 결이었다. 억압받는 자들의 편이라는 원칙은 국적과 시대를 가리지 않았다.


회고록을 읽는다는 것

루이즈 미셀 회고록은 한 혁명가의 자기 서술이다. 그러나 자기 서술이기만 한 책은 아니다. 미셸이 기억하는 것은 개인의 삶이 아니라 집단의 싸움이다. 코뮌에서 함께 싸운 사람들, 유형지에서 함께 살아남은 사람들, 감옥에서 함께 복역한 사람들의 이름이 이 책을 채운다. 미셸 자신은 오히려 뒤로 물러난다.


독자가 시대적 맥락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읽는다면 이 책은 더 소중하게 다가설 것이다. 코뮌이 무엇이었는지, 등장하는 여러 인물이 누구인지, 뉴칼레도니아 유형이 어떤 조건이었는지. 그 맥락 없이 읽으면 인명과 지명과 사건이 연달아 쏟아지는 텍스트로 읽힌다.(한국어 번역본은 원본에 없는 이런 배경에 관한 주, 인물에 관한 주를 충실히 달아두었다) 그러나 그 맥락 안에서 읽으면, 이 책은 19세기 프랑스 하층 민중의 삶과 싸움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서술한 기록이 된다.

미셸이 재판정에서 한 말이 회고록을 읽는 기준이 된다. “우리가 원한 것은 사회혁명이었다. 사회혁명은 내 가장 소중한 소망이다.” 이 소망은 책 전체에 걸쳐 반복된다. 분노로, 애도로, 서정으로, 때로는 구체적인 교육 방법론으로. 미셸에게 글쓰기는 싸움의 연장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인이 영화를 본다는 것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가장 시적인 영화 에세이, 시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가장 영화적인 시집이 될 것이라는 소개 문구가 이 책의 성격을 가장 정확하게 압축한다. 강정은 1992년 등단 이래 독자적인 시세계를 구축해온 시인이다. 록밴드 '엘리펀트 슬리브'의 보컬이기도 하고, 연극 무대까지 넘나든 이 경계 없는 예술가가 이번엔 영화 에세이를 냈다. 244쪽의 이 책은, 영화를 이해하거나 설명하기 위한 책이 아니다.


시인이자 음악가인 저자는, 세상의 빛보다 어둠에서 더 선명하게 타오르는 영화들의 초상을 에세이로 써 내려간다. 영화가 남긴 진동과 침묵을 붙잡는 저자에게 영화의 모든 장면은 몸으로 기록된다. 꿈처럼, 혹은 고백처럼. 그에게 영화란 체험에 가깝다. 


스크린 앞에 앉아 무언가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그 잔상과 진동을 언어로 옮겨 적은 것이 이 책이다. 영화 '비평'도 아니고, 영화 '소개'도 아니다. 시인이 영화를 통과한 흔적, 그 체험의 기록이다. 강정의 글은 영화 앞에서 분석자의 자리가 아니라 목격자의 자리에 선다. 그 차이가 이 책을 여타의 영화 에세이와 다르게 만드는 출발점이다.


이 책이 다루는 영화들의 목록을 보면 강정이 어디를 향하는지가 단번에 선명해진다. 타르코프스키의 〈거울〉을 시작으로, 줄랍스키의 〈포제션〉, 레오 카락스의 〈홀리 모터스〉를 비롯해 유럽과 할리우드의 장르 영화들 그리고 한국 영화 〈발레리나〉를 거쳐 마침내 〈조커〉에 이르기까지, 그가 선택한 영화들은 모두 인간의 내면을 투명하게 드러내는 어둠의 이야기들이다. 


〈포제션〉의 안제이 줄랍스키, 〈홀리 모터스〉의 레오 카락스, 〈거울〉의 타르코프스키. 이들은 모두 불편하고 낯설고 보기 쉽지 않은 영화를 만든 감독들이다. 강정은 이 어둡고 거친 영화들을 의도적으로 고른다. 그 의도는 단순한 취향의 표명이 아니다.


"세상에도, 그리고 누군가의 마음속에도 '어둠'은 항상 존재한다는 근본 사실을 상기"하며 그 어둠 속에서 인간 존재의 상처, 욕망, 구원, 사랑을 시인의 언어로 다시 써 내려간다. 여기서 '어둠'은 단순히 암울하거나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영화라는 매체의 본질을 "어둠을 먹고 사는 물질적 환영"으로 정의하는 저자에게 '어둠'은 단순한 물리적 암흑을 넘어서 현실이 감추고 있는 것, 진짜 현실을 숨기고 있는 베일이며, 영화는 그 어둠 속에 빛을 비추어 인간의 얼굴을 다시 본다. 


어둠이 없으면 영화도 없다. 스크린의 빛은 언제나 어둠을 배경으로만 존재한다. 극장의 암전, 필름의 공백, 프레임과 프레임 사이의 어둠 — 강정은 이 물리적 사실을 영화 미학의 핵심으로 끌어올린다. 빛을 말하기 위해 어둠을 먼저 이야기하는 것, 그것이 이 책의 논리다.


책에 수록된 영화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킬러, 조커, 괴물, 혁명가, 정신병자다. 이들은 사회의 정상 테두리 밖에 있거나, 그 테두리 자체의 모순을 폭로한다. 강정이 이 인물들에게 매혹되는 것은, 이들이야말로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진실을 가장 정면으로, 가장 적나라하게 살아내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정상성 바깥에 놓인 인물들을 통해, 정상성 안에 갇힌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된다. 


거울 앞에 선 관객


이 책을 관통하는 가장 강렬한 이미지는 '거울'이다. 강정이 타르코프스키의 〈거울〉에서 길어올린 이 이미지는 책 전체를 지배하는 메타포가 된다.

타르코프스키의 〈거울〉을 보고 저자는 "거울은 고요한 평면이나 그 안엔 온갖 시간과 사물과 사람의 잔영들로 요란스럽다. '사랑'을 비추면 '증오'가 튀어나오기도 하고, '슬픔'을 던지면 '욕망'이 반사되기도 한다"고 기록했다. 저자는 영화 자체를 거울로 본다. 거울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우리 내면의 가장 어두운 부분과 맞닥뜨리는 것이다.


영화를 거울로 보는 시선은, 영화를 단순한 오락이나 예술 감상의 대상으로 보는 시선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오락으로서의 영화 앞에서 관객은 편안하게 수용하는 쪽에 선다. 거울로서의 영화 앞에서 관객은 자신을 마주해야 한다. 거울 앞에 서면 나를 보게 된다. 강정에게 영화 보기는 그래서 하나의 자기 대면이다. 독자는 어느 순간, 스크린이 아니라 거울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강정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어느 순간 영화 이야기를 읽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것이 이 책이 단순한 영화 감상문과 구별되는 가장 핵심적인 지점이다. 영화에 대한 글이지만, 결국 그것은 인간에 대한 글이고, 더 좁혀 말하면 나에 대한 글이다.


조커라는 핵심, 그리고 질문


이 책의 심장부는 〈조커〉와 〈조커: 폴리 아 되〉를 다룬 두 편의 글이다. 강정은 이 두 편에서 책 전체의 논지를 가장 날카롭게 벼린다.

조커는 "사회적 인습 바깥으로 배제되어야 할 존재"이지만 "바로 그렇기에 사회적 인습과 규율 및 편견 등을 뒤엎는 예상치 못한 대중적 역린"이다. 

조커는 '나쁜 놈'이 아니다. 혹은 단순히 나쁜 놈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는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것이자, 우리 사회가 감추고 싶어 하는 것이다. 강정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관객을 향해 직접 질문을 겨냥한다.

"거기, 판결의 총신을 겨누며 슬며시 웃거나 화내고 있는 자, 당신 또한 조커가 아니라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한다. 


이것은 도발이 아니라 진지한 물음이다. 우리가 스크린 위의 조커를 보며 공감하거나 두려워한다면, 그 공감과 두려움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것은 외부의 무언가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내부의 무언가를 건드린 반응이 아닌가.


일관된 주제를 반복하면서 명확해지는 것은 "영화 자체가 조커"라는 저자의 깨우침이다. 영화는 관객을 유혹하고, 허구로 현실을 뒤바꾸며, 스스로 가면을 쓴다. 영화가 보여주는 환상은 단순한 엔터테인먼트를 넘어, 우리가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 자체를 지배한다. 

영화가 조커라는 명제는 이 책에서 가장 도발적이고 동시에 가장 설득력 있는 통찰이다. 영화는 우리를 웃기고 울리고 흥분시키면서, 동시에 현실에 대한 우리의 감각을 조금씩 재구성한다. 우리는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영화에 의해 보이는 것이기도 하다. 강정은 이 역설을 시인의 언어로 날카롭게 포착한다.

더 나아가, 영화와 현실 사이의 경계가 무너졌다는 것은 무대가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허구와 현실의 경계, 스크린 안과 밖의 경계가 흐릿해진 세계에서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이 질문이 이 책의 마지막 울림이다. 


음악과 자본주의, 이기 팝과 자무시


이 책은 순수한 영화 미학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는다. 강정이 뮤지션이기도 하다는 사실은 이 책 곳곳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펑크록 대부 이기 팝의 삶과 음악을 다룬 짐 자무시 다큐멘터리 〈김미 데인저〉를 보며 자본주의 사회의 절박한 문제들을 새로운 각으로 예리하게 설파하기도 한다.


이기 팝은 주류 바깥에서 스스로를 태워온 예술가다. 자무시는 그런 이기 팝의 삶을 카메라로 응시한 감독이다. 강정이 이 교차점에서 자본주의 사회를 읽는 방식은, 영화와 음악과 사회가 하나의 텍스트 안에서 얽히는 강정 특유의 방법론을 보여준다. 어느 챕터에서도 강정의 글은 영화 이야기로 시작해 그보다 훨씬 넓은 곳에서 끝난다.


'죽지 않는 시인'의 의미


책 제목 『죽지 않는 시인의 영화』는 여러 겹으로 읽힌다. 영화 속 인물들은 죽는다. 조커도, 〈포제션〉의 인물들도, 〈발레리나〉의 킬러도. 그러나 그들이 필름 위에 새겨진 이미지는 죽지 않는다. 상영이 끝나도, 극장 불이 켜져도, 그 잔상은 관객의 몸 어딘가에 남아 계속 진동한다.


"영화는 망상의 거울이고, 그 거울은 결국 나 자신이다"라고 정의하는 필자는 스크린 위 죽지 않는 영혼들의 이야기 속에서 '죽지 않는 시인'으로서의 자신을 책 곳곳에 투시하고 있다. khan

죽지 않는 시인은 강정 자신이기도 하다. 글이 살아 있는 한, 시인도 살아 있다. 강정은 영화를 씀으로써 자신을 쓴다. 이 책은 영화 에세이의 형식을 빌린 시인의 자화상이다.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인간 존재의 어둠을 들여다보고, 그 어둠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그것을 언어로 붙잡으려는 한 시인의 치열한 작업이다.


 『죽지 않는 시인의 영화』에는 영화가 지나간 자리에 남은 잔광과 여운, 그 흔적이 한 편의 시처럼 놓여있다. 영화를 사랑하되 그 어두운 면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싶은 독자, 시인의 언어로 영화를 읽는 경험을 원하는 독자에게 이 책은 오래 남는 책이 될 것이다. 읽고 나면 영화관 불이 꺼지는 순간, 이제 조금 다른 무언가를 기다리게 될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네필의 일기장


봉준호 감독은 이 책을 추천하며 '시네필의 일기장'이라고 불렀다. 이 표현이 책을 정확하게 해석해준다. 한상훈은 30여 년간 극장을 제집 드나들듯 다닌 인물이다. 영화계 종사자도 아니고, 비평으로 밥을 먹는 사람도 아니다. 그냥 영화가 좋아서, 극장이 없으면 살 수 없어서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다. 그에게 극장은 직장이 아니라 집이었다. 살아가는 이유였고, 버텨내는 방식이었다. 이 책은 그 30년의 흔적이다. 


책은 네 개의 파트로 구성된다. 1부 「극장전」, 2부 「미치광이 같은 사랑」, 3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4부 「어느 가족」이 그것이다. 각 파트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영화와 저자의 삶이 맞닿는 지점을 기록한다. 학술적 분석도 아니고, 세련된 영화 에세이도 아니다. 저자는 이를 일기 같은 문체로 풀어내며 독자에게 "왜 우리는 영화를 보는가, 영화의 힘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1부 「극장전」 극장에서 일어난 일들을 다룬다.


1부는 말 그대로 극장을 무대로 한 사건과 감정의 기록이다. 제목들이 이미 흥미롭다. '어느 걸작주의자의 강박증', '눈물이 주룩주룩 나, 스코티 그리고 매들린', '영화광은 어떻게 뱀파이어가 되는가'. 이 소제목들에서 이미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가 드러난다. 걸작에 집착하고, 히치콕의 〈현기증〉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영화에 피를 빨린다.


1부에는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감독들이 대거 등장한다. 홍상수, 나루세 미키오, 존 포드. 특히 인상적인 것은 홍상수 감독과의 우연한 조우, 류이치 사카모토를 찾아서, 페드로 코스타 감독의 조언, 박찬욱 감독과의 인연 같은 챕터들이다. 세계적인 감독들과 우연히, 혹은 필연처럼 마주치는 이 일화들은 저자가 극장을 얼마나 집요하게 다녔는지를 방증한다. 극장에 항상 있었으니까 그들과 만날 수 있었다. 그것이 이 에피소드들의 진짜 의미다. 


'할머니와 〈미나리〉' 챕터도 주목할 만하다. 영화를 가족과 함께 보는 경험이 어떻게 전혀 다른 감각을 만들어내는지를, 저자 특유의 솔직한 문체로 담아낸다. 이 1부 전반에 흐르는 정서는 '강박'에 가깝다. 좋은 영화를 봐야 한다는 강박, 좋아하는 감독을 한 번이라도 봐야 한다는 강박. 그가 남긴 글에는 멋진 미사여구가 없다. 때로는 너무 솔직하고, 때로는 벅차게 무너진다. 그 솔직함이 오히려 이 파트를 읽히게 만든다.


2부 「미치광이 같은 사랑」 영화와 자신을 동일시하다


2부는 저자가 가장 깊이 사랑하는 영화들에 대한 글을 모았다. 특히 저자가 자신과 동일시하다시피 하는 히치콕의 〈현기증〉과 주인공 '스코티', 그리고 저자의 인생 영화인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이 저자의 삶으로 분석된다. 


〈현기증〉을 다룬 챕터 '현실과 환상 사이에서 영원히 헤매다'는 이 책에서 가장 강렬한 글 중 하나다. 저자는 히치콕의 주인공 스코티가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 그 환상을 쫓는 이야기를 자신의 삶과 겹쳐 읽는다. 영화와 현실의 경계가 무너지는 경험, 스크린 속 인물에게서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 — 이것이 저자에게 영화란 무엇인지를 드러내는 핵심 장면이다.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을 다룬 '간절한 기도'는 또 다른 결이다. 핵전쟁의 공포 앞에서 한 남자가 신과 거래를 하는 이 영화를, 저자는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자신의 실존적 절망과 연결 짓는다. 영화가 어떻게 삶의 어떤 감각을 대신 표현해주는지, 그 체험이 얼마나 강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글이다.

나루세 미키오를 다룬 '흐르는 강물처럼', 스필버그의 〈파벨만스〉를 다룬 '진실과 마주하는 법', 후侯孝賢(허우 샤오시엔)의 〈안녕, 용문객잔〉을 다룬 '극장의 유령', 그리고 〈시계태엽 오렌지〉에서 〈기생충〉까지를 아우르는 '내 기억 속의 영화 음악들'까지 이어지는 2부는, 저자의 시네필리아가 얼마나 넓고 깊은지를 보여준다. 일본 고전 영화의 정서, 타이완 뉴웨이브의 공간감, 러시아 영화의 영성, 헐리우드의 자기고백 — 이 모든 것을 저자는 자신의 삶으로 흡수해 다시 언어로 내놓는다. 


3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떠난 이들에게 보내는 편지


3부는 추모의 글들이다. 근래 세상을 떠난 배우들과 감독을 위한 추모의 글로 채웠다. 알랭 들롱, 지나 롤랜즈 등 기라성 같은 배우와 오시마 나기사, 데이빗 린치 같은 독보적인 감독들을 위한 존경과 감사를 담았다. 


오시마 나기사를 추모하는 '영원히 젊은 영화를 만든 거장', 장 폴 벨몽도를 기리는 '내 기억 속에 〈네 멋대로 해라〉로 박제된 배우', 엔니오 모리꼬네에게 바치는 '포에버 시네마 천국', 존 카사베츠의 〈오프닝 나이트〉와 함께 지나 롤랜즈를 추모하는 글, 알랭 들롱을 향한 '그는 시네마였다', 그리고 데이빗 린치를 추모하는 '〈스트레이트 스토리〉, 나 그리고 어머니'까지, 추모의 대상은 다양하지만 글의 온도는 한결같다. 


이 챕터들에서 주목할 것은 추모와 더불어 저자의 삶을 꺼낸다는 점이다. 데이빗 린치를 추모하는 글에 어머니가 등장하고, 장 폴 벨몽도에 대한 글에 저자 자신의 젊은 시절이 겹쳐진다. 추모는 결국 기억이고, 기억은 결국 자신의 이야기다. 이 파트를 통해 저자는 영화와 삶이 얼마나 촘촘하게 얽혀 있는지를, 간접적이지만 가장 감각적으로 보여준다.


4부 「어느 가족」 책의 심장

가장 밀도 있고 저자의 진솔함이 묻어나는 4부는, 영화를 주제로 삼은 글 중에서 독보적이라 할 만큼 독자의 심금을 울릴 만한 글을 모았다. 이 파트가 이 책의 진짜 핵심이다. 

영화와 저자의 삶이 가족사 안에서 어떻게 관계를 맺어왔는지, 평생 소원했던 아버지와의 첫 화해, 그리고 어머니와 아버지를 떠나보내는 순간마저 영화로 기록되는 놀라운 광경, 그리운 어머니와의 애틋한 사연도 영화와 함께 펼쳐진다. 


'아버지와의 첫 포옹' — 이 챕터 제목만으로도 이미 무언가가 밀려온다. 평생 어색하고 먼 관계였던 아버지와, 영화라는 매개를 통해 처음으로 무언가 닿는 순간을 저자는 담담하게 기록한다. '어머니를 떠나보내며', '어머니의 16mm 필름'은 떠나보냄의 슬픔을 필름과 이미지의 언어로 풀어낸다.

영화 〈벌새〉를 통해 청년기를 다시 바라본 이야기도 실렸다. '02호에 살았던 내가 1002호에 살았던 은희에게'라는 긴 제목의 이 챕터에서, 저자는 〈벌새〉의 주인공 은희를 통해 자신의 젊은 시절을 소환한다. 영화가 타인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이해하게 해주는 그 경험 — 이것이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감각이다. 


4부에서 이 책은 단순한 영화 에세이를 넘어선다. 영화가 어떻게 한 인간의 가장 내밀한 삶 속으로 들어와 상처를 보여주고, 화해를 이끌고, 이별을 견디게 해주는지를 — 이론이 아니라 실제 경험으로 — 써내려간다.


봉준호 감독의 말처럼 이 책은 '시네필의 일기장'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일들이 적잖게 담겨 있다. 그것이 이 책의 한계이면서 동시에 강점이다. 영화에 대한 보편적인 통찰을 기대한다면 다소 좁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한 인간이 영화와 맺어온 30년의 관계를, 이렇게 날것 그대로 담아낸 책은 흔치 않다. 


그는 스크린 속 땀과 고통을 자신의 삶에 포개어 읽었고, 그렇게 체화된 고통과 숨결은 그의 문장 속에 차분히 각인되어 있다. "영화가 삶을 바꿨다"는 익숙한 말보다, "삶이 끝까지 영화를 놓지 않았다"라는 문장이 더 어울리는 사람. 


시네필이라면 자신을 보는 것 같아 불편할 만큼 솔직한 책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정도의 독자라면, 한 인간의 사랑이 이렇게까지 깊어질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책이다. 어느 쪽이든, 읽고 나면 극장에 가고 싶어진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제 역할을 다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화라는 '존재'


영화란 무엇인가? 이 단순해 보이는 질문은 사실 철학사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까다로운 물음 중 하나다. 우리는 영화를 본다. 그러나 영화를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 영화가 어떤 존재인지를 묻는 사람은 드물다. 김성태의 『영화 — 존재의 이해를 위하여』는 바로 그 드문 질문 앞에 정면으로 선다. 개별 영화 작품의 분석이나 특정 감독론이 아니라, 영화라는 표현 형식 자체를 존재론적으로 파고드는 이 책은 한국어로 쓰인 영화 이론서 중 보기 드물게 영화의 존재론적 문제에 깊이 침잠하는 저작이다. 


저자 김성태는 프랑스 파리 3대학 영화학과 박사로, 12년간 리용 2대학과 파리 3대학에서 수학했으며 자크 오몽 교수의 지도 아래 장-뤽 고다르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씨네21, 필름2.0 등에 영화 비평을 기고하고, 중앙대·한예종·서강대 등에서 후학을 가르쳤으며, 〈서울의 봄〉 원안 작업 등 창작 현장에도 직접 발을 담근 실천적 영화학자다. 이 책의 무게감은 그 두꺼운 학문적 배경에서 비롯된다. 단순히 서양 이론을 소개하고 나열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자신의 언어로 재구성하고 영화라는 매체의 본질에 대한 독자적인 사유를 전개한다.


이 책은 크게 네 개의 축으로 구성된다. 1부 「'영화'라는 존재 I — 다른 이미지」는 영화의 탄생과 특수성을, 2부 「존재의 진화 — 첨가되는 개념들」은 영화가 포착하는 세계의 다양한 양태를, 3부 「'영화'라는 존재 II — 영화들을 생산하는 기계」는 관객과 영화의 관계를, 4부 「'영화'와 현실 — 현실을 다루는 두 가지 방법」은 영화와 현실의 관계를 다룬다. 


책의 출발점은 명확하다. 1895년 탄생한 '영화'는 기계도 상품도 이야기도 아니라 '움직이는 이미지'였다는 것이다. 영화들은 모두 '움직이는 이미지'를 만드는 '영화(시네마)'라는 형식에 의해 만들어진 생산품이다. 저자는 이로부터 시작해, 영화의 고유한 표현 양식이 무엇이며 그것이 어떻게 세계를 구성하고 관객과 관계 맺는지를 단계적으로 해명해 나간다. 


논지의 핵심은 하나다. 저자 김성태는 영화를 "움직이는 철학"으로 간주하며, 영화를 통해 베르그송의 지속, 들뢰즈의 시간, 라캉의 주체 등을 관통한다. 이것은 철학 개념을 영화에 단순히 '적용'하는 방식이 아니다. 오히려 영화라는 매체가 철학이 구체적 형상으로 실험되고 재현되는 장임을 밝히는 일이다. 철학과 영화가 서로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 자체가 하나의 사유 방식이라는 주장이다. 


이미지의 존재론: 보이는 것과 있는 것 사이


1부의 논의는 영화 이미지의 특수성에서 출발한다. 1부에서 김성태는 영화가 현실을 모사한다기보다 다르게 재현하고, 다르게 보여주는 이미지라는 전제를 세운다. 특히 '움직임과 근대'라는 장에서 영화가 이미지와 움직임을 통해 근대를 구현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영화는 근대 시공간의 감각과 속도를 수용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재배치하고 재조립하는 시간-운동 기계로 해석된다. 


이는 단순한 기술사나 미디어론이 아니다. 영화의 탄생이 왜 19세기 후반이었는가, 왜 그 시기 인류는 운동하는 이미지를 포착하고자 했는가를 묻는 질문이다. 저자는 사진과 영화의 차이, 회화와 영화의 차이를 단순한 기술적 차이로 환원하지 않고,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로 읽어낸다. 영화는 움직임을 담은 것이 아니라, 움직임 자체가 되고자 했다. 이 미세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책 전체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의 씨앗이다.


영화의 네 가지 얼굴: 세계를 포착하는 방식들


2부에서 저자는 영화가 세계를 보여주는 방식을 네 가지로 나누어 분석한다. 일상을 보여주는 영화(리얼리즘 전통의 카메라 시선), 조작된 상황을 보여주는 영화(서사적 개입과 연출의 정치성), 편집을 보여주는 영화(몽타주를 통한 인식 구조의 생성), 이야기를 보여주는 영화(시간성과 이야기성의 결합)가 그것이다.


이 구분이 의미 있는 것은, 단순히 장르나 스타일의 차이를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를 통해 영화가 조망하는 측면에 따라 세계의 양태 자체가 달라진다는 점을 보여주려 한다. 같은 거리, 같은 사람, 같은 사건도 카메라가 어디에 서서, 어떤 리듬으로, 어떤 편집의 논리로 포착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존재로 드러난다. 김성태는 영화가 단순한 스토리텔링 장치가 아니라, 세계를 감각하고 구성하는 복합적인 지각 기계라는 존재임을 강조한다. 


이 대목에서 책은 특히 영화 문법의 존재론적 의미를 깊이 파고든다. 몽타주와 롱테이크, 데꾸빠쥬, 플랑-세껑스 같은 개념들이 단순한 기술적 도구가 아니라 인식의 틀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저자 김성태는 영화가 '어떻게' 보여주는가에 존재의 의미가 숨어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관객의 시선을 조직하고 현실을 분절하는 카메라의 움직임은 세계의 존재 조건 자체를 바꾸는 기술적-미학적 개입으로 읽힌다. 에이젠슈타인의 충돌 몽타주와 바쟁의 롱테이크 미학이 단순히 취향의 차이가 아니라, 세계와 현실에 대한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론적 입장이라는 독해는 설득력이 있다. 


관객과 영화: 관계적 존재로서의 영화


3부는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다. 여기서 저자는 영화가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관객과의 관계 속에서만 실재한다는 명제를 전개한다. 영화는 보는 이 없이 존재할 수 없으며, 그 의미는 관객과의 관계 안에서 생성된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영화가 단지 '표현된 존재'가 아닌, '관계적 존재'로 이해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영화관과 관객', '영화적 일루전', '영화적 상태', '영화적 공간과 최면' 등의 장은 영화 수용의 심리적·지각적 구조를 분석한다. 특히 '영화적 공간과 최면'에서는 영화가 감각적 설계와 편집을 통해 심리적·지각적 교란 상태를 어떻게 유도하는지를 분석한다. 어두운 극장, 스크린의 빛, 사운드의 포위, 편집의 리듬 — 이 모든 장치가 하나의 유사-최면 상태를 만들어내며, 관객은 그 속에서 영화적 현실을 실재처럼 경험하게 된다. 저자는 이 과정이 단순한 심리적 반응이 아니라 존재론적 변환임을 주장한다. 영화를 본다는 것은, 잠시 다른 존재 방식을 경험하는 일이다. 


라캉의 주체 이론이 이 지점에서 개입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영화는 시선을 조직하고 주체의 위치를 구성한다. 카메라의 눈과 관객의 눈이 일치하는 순간, 관객은 영화 속 세계의 한 주체가 된다. 이 경험이 단순한 허구와 몰입을 넘어,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감각 자체를 잠시 재구성한다는 것이 저자의 통찰이다.


현실과 영화: 두 가지 전략의 대결


4부는 영화와 현실의 관계라는 가장 고전적인 논쟁으로 돌아온다. 여기서 김성태는 "현실"이란 단일한 것이 아니며, 영화는 이를 여러 층위로 분할하고 새롭게 조직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려는 전략과, 편집과 몽타주를 통해 현실을 재구성하려는 전략이 영화사에서 어떻게 경합해 왔는지를 추적한다. 


바쟁에게 영화가 '현실을 보존하는 기술'이라면, 김성태에게 영화는 "현실을 낯설게 만들고, 재구성하는 사유의 매체"가 된다. 이 대립은 리얼리즘 대 형식주의의 오래된 논쟁처럼 보이지만, 저자는 그보다 더 근본적인 층위에서 이 문제를 다룬다. 현실이란 무엇인가, 이미지는 현실을 담을 수 있는가, 아니면 이미지는 필연적으로 현실을 변형하는가. 이 질문들은 영화론의 범주를 넘어 인식론, 나아가 존재론의 영역으로 진입한다. 


개정판에서 새롭게 추가된 마지막 장 '몽타주 이후'는 이 모든 논의의 귀결점이다. 들뢰즈의 시간-이미지론을 떠올리게 하며, 영화는 재현이 아니라 존재 자체의 구성 장치라는 점에서 이 책의 사유는 다시 정점에 도달한다. 몽타주 이후의 영화는 어디로 가는가. 디지털 이미지, 스트리밍, 가상현실의 시대에도 '영화적인 것'은 여전히 유효한가. 이 질문에 저자는 직접적인 답을 내놓기보다, 독자 스스로 사유하게 만드는 열린 결말을 선택한다. 그 열린 공간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베르그송의 지속, 들뢰즈의 운동-이미지와 시간-이미지, 라캉의 주체론, 바쟁의 리얼리즘 이론 등 20세기 영화철학의 핵심 개념들이 빠른 호흡으로 등장한다. 영화를 진지하게 사유하고자 하는 독자에게 하나의 지적 자극이 될 것이다.


초판 절판 이후 22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영화에 관한 질문과 사유를 다시 제기하는 이 책은, 영화라는 이미지-기술의 집합체가 어떤 존재이며 어떤 세계를 보여주고 어떻게 관객과 관계 맺는지에 대해 심층적으로 탐구한다. 2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개정판이 나온 데는 이유가 있다. 영화의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은 기술이 아무리 바뀌어도 낡지 않는다. 필름에서 디지털로, 극장에서 OTT로 변해도, 이미지가 움직인다는 사실, 그것이 누군가의 시선과 만난다는 사실, 그 만남이 현실에 대한 감각을 흔든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영화를 단순히 즐기는 것을 넘어 이해하고 싶은 이들, 영화가 왜 우리에게 이렇게 강렬한 경험인지를 철학적으로 묻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은 좋은 안내자가 된다. 영화학, 철학, 미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한 번 읽고 끝낼 책이 아니다. 책 자체가 하나의 몽타주처럼 — 처음 볼 때와 두 번째 볼 때 전혀 다른 것이 보이는 — 여러 번 다시 읽힐 텍스트다.


영화를 보는 행위는 단순한 오락이 아니다. 그것은 잠시 다른 시간, 다른 공간, 다른 존재 방식을 경험하는 일이다. 김성태의 이 책은 우리가 왜 어두운 방에 앉아 빛의 움직임을 응시하는지, 그 오래된 물음 앞에 다시 서게 만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