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컨스피러시 -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겨냥한 대 테러 전쟁
에이드리언 다게 지음, 정탄 옮김 / 끌림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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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베이징 올림픽을 겨냥한 이슬람분리주의자들의 생화학테러 공격을 막기 위한 미국 CIA와 과학자들의 사투를 그린 어찌보면 관습적인 내용의 소설이다. 여느 할리우드의 미국만세 영화들과 별반 공식이 다를바 없는 전형적인 '미국은 우렁각시' 이야기다.

하지만 스릴러소설로서 '재미'는 보장할 수 있는 내용이다. 대척점에 서있는 악의 세력들이 있다. 그리고 이들 사이에 합리적이고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정의의 세력이 있다. 결국 악의 세력들은 오만떨다가 자기들끼리 분열하고 정의의 세력은 서로 힘을 합해 으쌰으쌰 적들을 소탕한다. '빼어난' 외모를 자랑하는 남녀 주인공은 눈이 맞는다. 그쯤에서 농도짙은 베드씬 한번 붐붐해주시고.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 '공식'있지 않은가. 거기에 책의 이야기를 대입하면 내용정리 끝!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알카에다와 탈레반, 아프가니스탄은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다. 중동의 이권(利權)에 발을 깊게 담그고 있는 미국을 몰아내기 위해 이슬람분리주의자들은 '알라'의 이름으로 지하드(성전)를 벌인다. 미쿡식으로는 '테러'라고 부르는. 저들의 방식은 미국과 '티'나게 뜻을 같이 하는 나라들에 테러를 자행하는 것이다. 이 싸움은 끝이 없어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베이징 컨스피러시>에서 사예드 교수가 얘기하는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평화적으로 좋게좋게"같은 원론적인 얘기는 조금 공허하게 들린다. 현실은 이미 너무 멀리 왔다. 미국은 정권이 바뀌어도 중동에 대한 대외정책은 크게 바뀌지 않을 거라고 본다. 이란과 시리아같은 몇몇 나라들은 여전히 미국과의 관계에 냉랭하게 반응할 것이고 부시가 벌여놓은 일의 뒤치다꺼리를 다음 대통령은 반드시 해야할 것이다. 무기사업으로 해외에서 거액을 벌어들이는 미국의 군수산업체들에게는 반드시 세계의 '적'이 있어야 한다. 피 묻은 달러를 세면서도 능청스럽게 웃음짓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미국은 여전히 오만하고 독선적이고 일방적이다. 'UN' 머리 위에 엉덩이 깔고 호기롭게 앉아서 뭉개고 있는 게 미국이다.

그리고 새롭게 범지구적인 염려를 한 몸에 받고 있는 나라가 있다. 이번에 올림픽을 개최하는 귀한 몸 되신 '중국'이다. 유례없는 물가상승, 유가상승, 곡물값 상승, 환경 오염을 비롯한 지구온난화등 범지구적인 문제의 '핵심'으로 주목받고 있는 요즘이다. 돈 쓰는 재미를 알게 된 중국인들은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듯 물쓰듯 돈을 쓰고 있다. 중국이 잘 먹고 잘 쓰고 잘 싸는 바람에 요즘 전세계는 휘청거리고 있다. <베이징 컨스피러시>는 최근에 중국이 안고 있는 인권문제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많은 부분이 이슬람분리주의자들과의 테러전쟁에 할애하고 있어 내용이 깊이는 없지만 신선한 접근이었다. 이제 중국의 인권에 대해 말해야 한다. '현재'의 중국 땅에 있었던 모든 민족의 역사를 자기들 역사라고 떼쓰고 있는 '천상천하 중국띵오아~'식 똥배짱 똥고집에 태클을 마구마구 걸고 싶은 요즘이다.  

사린가스를 도쿄지하철에서 터뜨린 오옴진리교같은 막장종교단체가 다시는 없으리라고 보장할 수 없다. 마드리드와 런던에서 대중교통을 겨냥했던 '폭탄'이 지구촌 어딘가에서 다시는 터질 일이 없을 거라고 말할 수 없다. 부시정권이 임기내내 읍소했던 테러와의 전쟁은 아직도 유효하다. <베이징 컨스피러시>는 민감한 생화학테러를 소재로 긴장감 있게 이야기를 그려낸다. 작가의 전작인 <오메가 스크롤>에 대한 평이 좋지 않아서 <베이징 컨스피러시>를 읽기 전에 큰 기대를 하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꽤 현장감 있는 내용이었다. 중국이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할지는 미지수지만 오사마 빈 라덴과 그의 추종자들이 건재한 지금, 꼭 소설적 상상력에 지나지 않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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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Che, 회상 - 체 게바라의 부인이자 혁명동지 알레이다 마치 회고록
일레이다 마치 지음, 박채연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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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늘날 전세계 젊은이들의 우상이 된 라틴 아메리카의 전설적인 혁명가 '체 게바라', 이 책은 체의 부인인 알레이다 마치의 남편 '체'에 대한 회고록이다. 덤덤하기만 했던 체와의 첫만남에서, 독재정권을 몰아내고 쿠바의 혁명을 이룬 뒤 체와의 결혼생활, 이별 뒤의 남은 이야기를 담았다.

<체Che, 회상>에서는 한 남자를 사랑했던 여인의 그리움의 감정이 절절하게 흐르고 있다. 어느덧, 그녀는 손자손녀가 여덟이나 되는 할머니가 되었다. 체와 그녀의 사랑의 결실로 태어난 네 아이는 장성해서 의사와 변호사로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 체 게바라 평전>을 읽었을 때 평면적 나열 방식에 적응하지 못한 나는 내용을 소화하지 못했었다. 결국 체에 대한 텍스트는 나의 감성에 그 어떤 울림도 남기지 못했다. <체Che, 회상>을 읽은 지금 다시 평전을 손에 들었다. 좀더 느긋하게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거, 무척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다. 체는 아름다운 인간이었다. <체Che, 회상>은 인간 체를 회상하는 책이었다. 특히 사랑을 가득 담아 꿈같은 키스를 날리는 자상한 남편의 편지들은 알레이다 마치가 체가 죽고 난 후 그리움을 견딜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그녀에게 남편 체는 그녀가 온전히 품에 안기에는 큰사람이었다. 체는 라틴 아메리카의 굶주리고 고통받는 민중을 위해 몸을 던졌다. 체의 그런 신념과 결심은 결혼 후 아이들이 태어나고 쿠바의 혁명을 목도하고 있는 와중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체는 다시 콩고로, 그리고 그의 마지막 숨결이 남게 될 볼리비아로 떠난다. 어린 네 아이와 서른중반도 안된 고운 아내를 남겨두고. 떠나있는 와중에도 그는 절절한 안타까움과 미안함을 담은 편지를 아내에게 썼다. 알레이다에게는 평생 잊지못할 남편과의 마지막 만남에서는 체는 그토록 입에서만 맴돌던 아내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시로 남겼다. 시에는 홀로 남을 아내에 대한 걱정과 가족을 남기고 떠나야만 하는 혁명가가 스스로의 어깨에 짊어진 희생이 담보된 고통스런 삶에 대한 번민과 슬픔이 서려있었다

체 게바라를 가장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나라는 체가 그토록 싫어했던 미국이다. 체는 볼리비아에서 미국 CIA에 의해 암살당했다. 그리고 미국의 고도의 자본주의가 녹아있는 할리우드에서 현재 체를 소재로 한 '게릴라'라는 영화가 본격적인 개봉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도 체는 티셔츠, 각종 출판물, 영화, 다양한 상표명, 그리고 트레이드마크인 베레모를 쓴 모습으로 많은 이들에게 하나의 이미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영웅은 자본주의사회에서 흔한 '상품'이 되었다. 아이러니한 현실을 보며 체는 지하에서 웃고 있을까, 울고 있을까.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 불가능한 꿈을 간직하자!"라고 외친 이 위대한 영웅의 특별한 희생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누렸다. 짧지만 뜨겁게 살다간 인간 '체'를 만나볼 수 있는 책이다. 상사이자 동료, 남편이자 위대한 혁명가였던 '인간' 체를 향한 존경과 그리움이 이제는 노인이 된 알레이다 미치의 도도한 세월을 견뎌낸 덤덤함 속에 묻어있다. 그리고 그녀의 기억 속에서도, 우리의 기억 속에서도 이 젊은 혁명영웅은 베레모를 쓰고 비스듬하게 서있는 자세로 시가를 물고 녹색군복을 입고 있는 누구보다 선한 눈을 가진 '휴머니스트'로 기억 될 것이다. 체, 그는 늙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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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트 버틀러의 사람들
도널드 맥카이그 지음, 박아람 옮김 / 레드박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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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레트 버틀러의 사람들>은 마거릿 미첼의<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다. '마거릿 미첼 위원회'의 공식승인을 받은 '속편'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남자주인공 레트 버틀러를 주인공으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는 다뤄지지 않은 레트의 주변인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명예는 갖지 않았지만 넘치는 부를 가졌고 스칼렛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그녀에게 도움의 손길을 주었던 남자 레트 버틀러. <레트 버틀러의 사람들>은 본편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큰 줄거리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레트 버틀러'라는 인물을 좀더 자세하고 본편과는 또다른 느낌의 매력적인 캐릭터로 부활시켰다.

'뱀발'이겠지만 영화<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TV에서 방영해줄 때마다 보고 DVD까지 소장하고 있어서 굉장히 많이 본 영화다. 영화의 매력적인 여주인공 스칼렛 역의 비비안 리가 말년에는 굉장히 외롭고 불행해서 결국 우울증을 앓다가 아파트에서 쓸쓸하게 죽었다는 얘기를 듣고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팬으로서 안타까움을 크게 느꼈었고 다큐에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뒷얘기를 틀어줄 때는 리모컨을 내려놓고 TV에 집중했다. 레트 역의 클라크 게이블이 실제로는 구취가 심해서 영화의 백미였던 키스씬을 찍는 데 비비안 리가 무척 고생했었더라는 뒷이야기를 듣고는 영화의 환상이 조금 깨지기도 했지만.

같은 사건을 관점을 조금 달리해서 보면 굉장히 새롭게 느껴진다. <레트 버틀러의 사람들>은 그런 재미를 느끼게 해준 소설이다. 나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소설은 읽지 못했기 때문에 소설은 어떤 시점을 취하고 있고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는 잘 모른다. 영화와 비교해서 말할 수밖에 없는데 대부분의 장면들이 스칼렛을 중심에 놓고 진행됐다면 이 소설에서는 주요장면에서 '레트 버클러'의 입장이 되어볼 수 있다. 또한 레트의 어린시절과 청년시절을 통해 레트의 캐릭터가 왜 그런 성격을 갖게 됐는지에 대한 배경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새롭게 등장한 레트 주변의 인물들도 비교적 개성있게 그려져 있으며 영화에서도 주요등장인물로 나온 애슐리 윌크스와 멜라니 윌크스를 다시 등장시켜 그들의 속마음을 조금더 깊게 엿볼 수 있다. 작가의 원작에 대한 풍부하고 해박한 이해, 캐릭터에 대한 정확한 성격파악이 선행되어야 본편의 팬들도 공감할 수 있는 '속편'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레트 버틀러의 사람들>의 작가 도널드 매케이그는 원작에 대해서는 겸손하게, 그렇지만 새롭게 등장시킨 인물들에는 과감하고 적극적으로 캐릭터성을 부여한다.

소설은 남북전쟁과 인종과 사상, 집단간의 갈등을 자세하고 깊게 그리고 있다. 전쟁이 끝난 후 남부연합군으로 참전했던 찰스턴 남성들의 패배감과, 폐허 속에서 그들이 겪었을 공허함과 무기력, 절망을 설득력있게 보여주며 한편으로는 전쟁 후 남편과 자식들을 잃은 찰스턴 여인들이 치열하고 진취적인 여성으로 변화하는 삶의 모습을 서사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저 '속편'이라는 작은 틀에 묶어 두기에는 소설의 완성도가 조금 아깝다. 중간중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내용을 잘 기억하고 있지 못한다면 전후 맥락이 와닿지 않을 내용들이 있지만 그런 건 차치하고서라도 레트 버틀러와 새롭게 탄생한 캐릭터들의 개성있는 삶을 엿보는 재미가 있다. 만만치 않은 두께지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옥같은 장면들을 떠올려 보면서 소설의 내용을 새롭게 음미하며 읽어나간다면 색다른 맛이 나는 개성 강한 소설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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촐라체
박범신 지음 / 푸른숲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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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간 데 없이 차갑기만 한 눈으로 둘러싸인 히말라야 한가운데서 삶과 사투를 벌이는 산사나이들의 이야기가 내게는 뜨겁게 다가온다. 촐라체에 오르기 위해 제 발로 산으로 갔지만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는 산은 날카로운 얼음으로 사내의 살을 찢고 차가운 바람으로 희망을 도려내고 예고없는 눈사태로 절망을 부채질한다.

그들은 죽으러 간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살아갈 이유도 없었다. 어찌보면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촐라체로 뛰어든 것이고 산과의 대결을 위한 출발은 공정했을 것이다. 처음부터 내어줄 것이 없었던 산도, 처음부터 얻을 것을 기대하지 않은 형제와의 대결이. 하지만 산이 주는 시련과 절망 속에서 형제는 오기가 생긴다. 끝모를 분노가 얇아진 가슴을 뚫고 형제에게 오기를 불어넣는다.  형제를 떠난 사람들과 형제가 떠난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 아버지가 다른 형제가 태생적으로 품고 있었던 애증들, 실패의 연속인 지루한 삶 속에서 그들을 일어나게 한 것은 삶에 대한 복수였고 서로에 대한 미움이었고 트라우마로 남은 과거의 것들에 대한 원망이었다.

옷에 묻은 눈처럼 그저 털어버릴 수만 있는 거라면 후련하겠건만 그럴 수 없는 마음의 짐들이었기에 촐라체에 오르는 동안 형제는 그렇게 고통스러웠나 보다. 막상 오른 정상은 기대보다 훨씬 아니었고 기쁨보다는 실망에 마음을 내주었다. 상민과 영교의 마음에 쌓인 서로에 대한 원망과 오해는 쌓이고 쌓여 그들을 결국 산에서 헤어지게 만든다. 상처의 근원이 다른 형제는 마음의 짐을 더는 과정에서 혹독한 피맛을 보게 된다. 과거의 망령들을 떨쳐버리지 못한 형 상민은 과거의 인물들과 다시 조우하면서 무거웠던 짐을 내려놓고 형에 대한 실망감과 빚만 남기고 죽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 가까웠던 아저씨에 대한 분노에 마음을 다쳤던 동생 영교는 형을 이해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원망의 끈을 놓으면서 비로소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촐라체 한가운데서 형제가 싸운 건 산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었다. 그리고 최후에 그들은 웃을 수 있었다.

내 앞에도 촐라체가 우뚝 서있다. 외모적으로 훌륭하지 않음은 분명하다. 내가 밟고 넘어가야 하니까. 어쩌면 넘는 동안의 고통스러운 과정 때문에 잔인하게 짓이길지도 모르겠다. 올라가다 방향을 잘못 틀어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도 있고 같은 자리만 빙빙돌다 가는 세월 잡기에는 너무 늦어버릴 수도 있다. 그래도 나는 참 다행이다. 한창 힘들고 제자리 걸음일 때 이 책을 만났으니. 고통의 무게를 잴 수는 없겠지만, 살아간다는 게 참 힘든 거구나라는 걸 느끼게 되는 요즘이다. 앞서 간 사람들이 세워놓은 벽이 내게는 너무 높다. 보고 있으면 답답하고 답을 찾는 것도 너무 힘들어서 가끔 너무 오랫동안 쉴 때도 있다. 그래도 요즘은 조금 앞으로 걷고 있다. 또 언제 헤매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함부로 방향을 돌리지는 않으려 한다. 우선 나를 믿고, 나의 친구들을 신뢰한다. 하지만 내가 아닌 타인에게 '의지'하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내 일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감당해야 한다. 이런 과정 속에서의 고통과 희생은 쓰게 삼켜 넘기고 멋지게 성장하고 싶다.        

상처입은 조개는 고통을 감싸고 인고의 세월을 견텨야만 비로소 진주를 잉태할 수 있다. 추한 것을 보지 못한 아름다움은 진부하다 했다. 희망은 절망 속에서 꽃핀다. 조금 힘들다. 하지만 알 것 같다. 내가 이 촐라체를 넘으면 그 어떤 생크림 케이크보다 부드럽고 달콤한 선물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걸. 그래서 뛰어가지는 못하더라도 천천히라도 걸어갈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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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티볼리의 고백
앤드루 손 그리어 지음, 윤희기 옮김 / 시공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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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된 시간을 살아야했던 한 남자의 지독한 사랑 이야기다. 막스 티볼리는 태어날 때 축복 속에서 태어나지 못했다. 부유한 집안의 아이였지만 아이의 모습이 일흔살 노인의 모습처럼 주름투성이였기 때문이다. 아이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아이의 몸이 저주를 받은 거라 했다. 부모님은 그런 막스를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어린 막스에게는 조금 가혹한 인생의 지침을 알려주었다. "사람들이 네 나이가 얼마쯤이라고 생각하면 그에 맞춰 행동해야 한다."

점점 어려지는 운명을 살아야하는 그에게도 어느날 사랑이 찾아온다. 말벌에 쏘여 고통스러워하는 또래의 10대 여학생이 운명처럼 막스의 마음에 콕 박힌 것이다. 그녀, 앨리스는 막스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이었고 그는 그의 인생을 바쳐 앨리스를 사랑했다. 하지만 처음 만남에서 막스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다. 나이든 50대 중년남성의 모습인 막스는 앨리스가 자신을 아저씨로 바라본다면 그녀에게 아저씨가 되어야했다. 그러다 찾아온 가슴 떨린 첫키스. 그리고 막스는 앨리스를 떠나보내게 된다. 아주 오랫동안.

막스는 첫사랑인 앨리스와 그의 인생을 통틀어 세번의 사랑을 한다. 한여인과 세번의 사랑을 한다는 건 어찌보면 로맨틱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또 다르게 본다면 지독한 집착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막스의 사랑은 그랬다. 그는 앨리스를 놓아줄 수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그녀와 함께 하기 위해 그는 자신의 정체를 숨겼고 친구와 가족의 존재를 숨겨야 했다. 거꾸로 된 시간을 살아가는 그는 자신의 진실을 밝히지 않는한 그녀와 오래오래 행복할 수 없음을 알았지만 사랑 앞에서 그는 그런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지 않았다. 단 한번이라도 좋으니 사랑하는 앨리스와 꿈같은 사랑을 나누고 싶었으리라. 하지만 진실이 드러나지 않은 앨리스와의 사랑은 그래서 점점 비극으로 가고 있었던 거다. 어쨌든 막스는 앨리스를 가면무도회의 주인공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막스에게는 사랑이었다. 사랑하는 연인과 영원히 함께 할 수 없는 운명이라도 그에게는 기회가 별로 없다. 대신 그녀가 웃을 수 있게 함께 하는 동안이라도 그녀에게 최선을 다하기를 소망할 뿐이다. 앨리스가 웃는다. 그것이 바로 막스의 행복이었다.

크리스틴을 사랑한 팬텀도 결국 그 사랑을 포기했다. 누구보다 사랑하는 크리스틴을 위해서. 노틀담의 종지기 콰지모도도 사랑하는 에스메랄다에게 모든 것을 바쳤지만 그 사랑은 결국 그가 죽어서야 이룰 수 있었다. 평범하지 못함이 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누구에겐 어렵고 쉽게 닿을 수 없는 귀한 걸 누군가는 질리도록 리플레이하면서 반복할 수 있다. 진실한 사랑을 만나기까지의 시행착오라고 봐도 그 사랑은 이들의 비극적인 사랑의 엔딩앞에 조금 초라해 보인다.

막스가 보여준 사랑도 팬텀이나 콰지모도가 보여주는 사랑만큼 비극적이고 마음 아프다. 그들이 연인들에게 향한 한없이 넓은 사랑은 연인들에게는 집착이었고 사랑은 아니었다. 막스도 알고 있었다. 앨리스가 막스에게 보여준 사랑은 막스의 그것보다는 얕고 짧았다. 하지만 그런 앨리스를 미워할 수 없다. 그가 사랑하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끝끝내 자신의 진실을 듣지 못했다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고백을 멈추지 않았다. 아직 그녀에게 한번도 진실을 제대로 말한 적이 없었기에, 아니 말할 수 없었기에 죽음을 목전에 두고 힘겨운 글을 써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그의 말처럼,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겉모습이 괴물은 아니었지만 막스도 괴물과 같은 인생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인생을 살았다. 그에게는 고독과 비극이 필연적으로 옆에 있었다. 진심으로 평범하게 늙어가고 싶었던 막스 티볼리의 고백이 그래서 이렇게 아련하고 슬프게 들리나보다.

막스는 고백의 가장 끝 언저리에 이런 말을 했다. "밝게 빛나는 성좌가 내 위로 미끄러져 흐를 것이오. 난 울지 않을 거요. 그 모든 죽음에 슬퍼하지 않을 거요. 세상이 그립다고 울지도 않을 거요." 아마 많이 외로웠을 거다. 낡은 나룻배에 누워 세상과 멀어지고 있다해도 밤 하늘 높게 떠있는 새벽 별을 바라보며 부디 외롭지 않게, 평온하게, 행복하게 그 두눈이 감겼기를 진심으로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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