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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티볼리의 고백
앤드루 손 그리어 지음, 윤희기 옮김 / 시공사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거꾸로 된 시간을 살아야했던 한 남자의 지독한 사랑 이야기다. 막스 티볼리는 태어날 때 축복 속에서 태어나지 못했다. 부유한 집안의 아이였지만 아이의 모습이 일흔살 노인의 모습처럼 주름투성이였기 때문이다. 아이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아이의 몸이 저주를 받은 거라 했다. 부모님은 그런 막스를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어린 막스에게는 조금 가혹한 인생의 지침을 알려주었다. "사람들이 네 나이가 얼마쯤이라고 생각하면 그에 맞춰 행동해야 한다."
점점 어려지는 운명을 살아야하는 그에게도 어느날 사랑이 찾아온다. 말벌에 쏘여 고통스러워하는 또래의 10대 여학생이 운명처럼 막스의 마음에 콕 박힌 것이다. 그녀, 앨리스는 막스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이었고 그는 그의 인생을 바쳐 앨리스를 사랑했다. 하지만 처음 만남에서 막스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다. 나이든 50대 중년남성의 모습인 막스는 앨리스가 자신을 아저씨로 바라본다면 그녀에게 아저씨가 되어야했다. 그러다 찾아온 가슴 떨린 첫키스. 그리고 막스는 앨리스를 떠나보내게 된다. 아주 오랫동안.
막스는 첫사랑인 앨리스와 그의 인생을 통틀어 세번의 사랑을 한다. 한여인과 세번의 사랑을 한다는 건 어찌보면 로맨틱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또 다르게 본다면 지독한 집착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막스의 사랑은 그랬다. 그는 앨리스를 놓아줄 수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그녀와 함께 하기 위해 그는 자신의 정체를 숨겼고 친구와 가족의 존재를 숨겨야 했다. 거꾸로 된 시간을 살아가는 그는 자신의 진실을 밝히지 않는한 그녀와 오래오래 행복할 수 없음을 알았지만 사랑 앞에서 그는 그런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지 않았다. 단 한번이라도 좋으니 사랑하는 앨리스와 꿈같은 사랑을 나누고 싶었으리라. 하지만 진실이 드러나지 않은 앨리스와의 사랑은 그래서 점점 비극으로 가고 있었던 거다. 어쨌든 막스는 앨리스를 가면무도회의 주인공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막스에게는 사랑이었다. 사랑하는 연인과 영원히 함께 할 수 없는 운명이라도 그에게는 기회가 별로 없다. 대신 그녀가 웃을 수 있게 함께 하는 동안이라도 그녀에게 최선을 다하기를 소망할 뿐이다. 앨리스가 웃는다. 그것이 바로 막스의 행복이었다.
크리스틴을 사랑한 팬텀도 결국 그 사랑을 포기했다. 누구보다 사랑하는 크리스틴을 위해서. 노틀담의 종지기 콰지모도도 사랑하는 에스메랄다에게 모든 것을 바쳤지만 그 사랑은 결국 그가 죽어서야 이룰 수 있었다. 평범하지 못함이 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누구에겐 어렵고 쉽게 닿을 수 없는 귀한 걸 누군가는 질리도록 리플레이하면서 반복할 수 있다. 진실한 사랑을 만나기까지의 시행착오라고 봐도 그 사랑은 이들의 비극적인 사랑의 엔딩앞에 조금 초라해 보인다.
막스가 보여준 사랑도 팬텀이나 콰지모도가 보여주는 사랑만큼 비극적이고 마음 아프다. 그들이 연인들에게 향한 한없이 넓은 사랑은 연인들에게는 집착이었고 사랑은 아니었다. 막스도 알고 있었다. 앨리스가 막스에게 보여준 사랑은 막스의 그것보다는 얕고 짧았다. 하지만 그런 앨리스를 미워할 수 없다. 그가 사랑하는 유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끝끝내 자신의 진실을 듣지 못했다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고백을 멈추지 않았다. 아직 그녀에게 한번도 진실을 제대로 말한 적이 없었기에, 아니 말할 수 없었기에 죽음을 목전에 두고 힘겨운 글을 써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그의 말처럼,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겉모습이 괴물은 아니었지만 막스도 괴물과 같은 인생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인생을 살았다. 그에게는 고독과 비극이 필연적으로 옆에 있었다. 진심으로 평범하게 늙어가고 싶었던 막스 티볼리의 고백이 그래서 이렇게 아련하고 슬프게 들리나보다.
막스는 고백의 가장 끝 언저리에 이런 말을 했다. "밝게 빛나는 성좌가 내 위로 미끄러져 흐를 것이오. 난 울지 않을 거요. 그 모든 죽음에 슬퍼하지 않을 거요. 세상이 그립다고 울지도 않을 거요." 아마 많이 외로웠을 거다. 낡은 나룻배에 누워 세상과 멀어지고 있다해도 밤 하늘 높게 떠있는 새벽 별을 바라보며 부디 외롭지 않게, 평온하게, 행복하게 그 두눈이 감겼기를 진심으로 바래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