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부르며 살았다 - 마종기 시작詩作 에세이
마종기 지음 / 비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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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쳇바퀴같은 하루를 보내고 있는 직장인이 된지 이제 1년이 조금 넘어간다. 반복되는 일상, 반복되는 사람들, 불과 몇년 전만 해도 난 다를 것이라고. 시간은 쓰기 나름이라고. 나에게 1시간의 시간이 주어져도 낭비없이 쓸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얼마나 즐길 게 많은데, 얼마나 할 게 많은데 그 시간들을 저렇게 계획없이 쓰는 걸까. 난 다를 거라 믿었다. 하지만 나라고 별 수 없다는 게 나의 깨달음이다. 피곤에 지친 몸, 조금이라도 일찍 뉘이는 것이 건강에 좋을 것이라고 믿게 됐고 계획과는 다르게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을 살고 있다. 그 사이 얼마나 경이롭고 신비한 것이 나의 곁을 스쳤는지 아둔한 나는 깨닫지 못한다.


일기를 전혀 쓰지 않는 나는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해도 일주일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 못한다. 시간의 무덤에 내 기억과 일상을 고스란히 묻어버리고 있다. 숨가쁘게 달려가는 일상에 젖어 있다가 문득 깨닫는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지나버린 걸까. 그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잠시 멈춰서 내 주위를 돌아보는 여유를 난 사치라 여기고 있었나보다. 나 스스로에게 그런 일상의 작은 쉼마저 주지 않는다면 누가 나에게 그런 시간을 줄 것인가. 안타깝다. 벌써 이렇게 지나왔다. 난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잃었는지. 누구를 알았고 누구를 놓쳤는지.

마종기님은 일상 속에서 보고 느꼈던 감정과 아쉬움, 설렘들을 시의 언어로 기록해 놓았다. 시 안에 숨겨 놓은 그의 일상 속 깨달음들에 대한 술회가 고스란히 이 책 한권에 담겨 있다. 치열했을 것 같고 숨가빴을 것 같다.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을 담았고 떠난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이 담겨 있다. 그의 삶은 시를 통해 그의 시를 읽는 많은 독자와 함께 공유되고 있다. 더 이상 일상이나 삶에 대해 신비함이 없을 거라 여긴 노년의 눈을 통한 자연의 경이로움, 사람 관계와의 아쉬움, 결국 사람이란 나이와는 상관없이 늘 비슷한 고민과 아쉬움을 옆에 두고 사는가 보다.

하지만 소망한다. 나에게도 그처럼 맑은 눈이 있기를. 무심코 지나온 풍경에서 아름다움을 보기를. 아름답다 여기기를. 닿을 수 없을 것 같던 희망을 유치하다 여기지 말고 기쁜 마음으로 소망하기를. 믿음이 있기를. 닮고 싶다. 그의 문학에 대한 열정과 글에 담은 아름다움을. 내 삶이 잠시 누군가에게 빌린 인생이라 믿게 된다면 이렇게 허투루 낭비하며 버려지는 일상을 살지는 않을 텐데. 좀더 신중하게 나를 바라보고 주변을 소중하게 담은다면 내 인생, 조금은 향기나지 않을까. 그런 믿음을 얻었다. 감성적인 언어로 쉬운 듯 하면서도 깊이 있는 시들이었지만 작가의 해설과 함께 읽어보니 오히려 친근하지만 더 깊게 마음에 와닿았다. 그러한 일상을 이런 언어로 쓸 수 있다는 건, 역시 시인의 언어는 다른가 보다. 나도 이렇게 쓸 수 있을까 질투해 본다.



우리가 모두 떠난 뒤
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
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
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

나 오늘 그대 알았던
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
꽃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
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
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 거야.

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
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
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
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바람의 말 / 마종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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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킬러 덱스터 모중석 스릴러 클럽 24
제프 린제이 지음, 김효설 옮김 / 비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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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킬러 덱스터는 제목과는 다르게 절대 친절하지 않다. 입가엔 가식을 띄고 속으로는 인간에 대한 조롱을 품고 오늘도 평범하고 조금은 어리버리한 인간을 연기하며 사이코패스임을 들키지 않기 위해 부던히 애를 쓰고 있는 중이다. 자신의 취미이자 유일한 흥미인 살인을 마이애미를 부유하는 인간 쓰레기들을 처리하는데 열심히 봉사중이다. 물론 나라의 녹을 먹는 경찰서의 혈흔분석가로서도 맹활약 중이시지만.


책을 읽으며 드라마 덱스터 시즌 4를 막 끝낸터라 드라마의 음울한 시즌 결말에 너무 충격을 받은 나머지 인간 덱스터에 대한 연민을 품는 사치를 범했다. 그동안 내가 알아온 덱스터는 이렇게 동정적인 인간이 아닌데. 상처와는 안드로메다급 거리를 갖고 있는 "괴물"인데. 왜 그렇게 불쌍하고 안돼 보였을까. 드라마에서 덱스터는 큰 상처를 입었다. 그에게 가정을 꾸리고 여우같은 마누라와 토깽이같은 아이들과 알콩달콩 사는 것은 맨손으로 연기를 잡는 것과 다를 것이 없었나보다. 그에게 닿을 수 없는, 만질 수 없는 요원한 일들.

인간을 누구보다 조롱하고 비웃는 덱스터지만 그 누구보다 인간이고 싶어하는 인간 아닌 인간, 덱스터는 그렇게 조금씩 인간이 느끼는 상처에 다가가고 있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인간을 연기하며 조금씩 인간과 닮아가고 있다. 어찌보면 소설 덱스터는 완성되지 못한 한 인간의 자아찾기이며 성장기라고 할 수 있다. 덱스터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성숙해 가고 독특한 방식으로 상처를 극복해 가고 있다.

 인간이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 놀라울 정도로 집중력을 발휘하고 분석한다. 얄궂을 정도로 체계적인 습득을 하며 평범한 겉모습에 회색빛 일상을 덧칠하려는 남자. 그런 덱스터는 늘 험한 사람들과 경계를 두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발을 잘못 디디면 바로 사냥감으로 전락할 수 있는 아슬아슬한 인생. 좋은 직장. 남부러울 것 없는 가정. 그가 위장한 평범한 겉모습 속에서 보란듯이 위장된 행복을 보여줄 수 있겠지만 그런 겉모습 속에도 주체할 수 없는 살인 본능을 품고 있다.

검은 승객이 인도하는 그곳에는 덱스터의 밤사냥감이 있고 그는 시즌이 거듭 될수록 아니 시리즈가 이어질수록 더 강력해지고 영악해진다. 덱스터가 맺고 있는 사회적인 관계들이 복잡해질수록 소설에서 느껴지는 긴장감 또한 더해진다. 아이들 눈치 보랴, 한창 신혼의 단꿈에 빠져 있는 마눌님 진정시키랴. 남부럽지 않은 직감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경찰서가 덱스터의 직장이다. 그들보다 한발 앞서가야 하고 흔적을 남기지 않고 밤사냥을 마무리지어야 하는 미션을 스스로에게 부여한다. 덱스터가 갖는 캐릭터적인 색깔은 점점 뚜렷해지고 진해진다. 조금씩 완성되어 간다. 덱스터가 깨닫고 이해하게 되는 인간 본성에 대한 감정들을 쓰게 곱씹어 볼 수 있는 것이 덱스터 소설을 읽는 백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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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행록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2
누쿠이 도쿠로 지음, 이기웅 옮김 / 비채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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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자면, 나는 말이 좀 많다. 내면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거다. 한때, 조용하고 유능하고 성실해 보이는 인상을 주고자 의도적으로 말을 거의 안 하고 살아본 적이 있었다. 결과를 말하자면 남들은 내가 화났는 줄 알고 나에게 의도적으로 말을 안 걸었고 덕분에 한동안 외롭게 살았다. 사람이 이미지라는 것이 중요하구나라는 걸 그때 다시 한번 느꼈다. ‘나는 안 되는구나라는 씁쓸한 깨달음과 함께.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사람은 자신이 한 행동은 정당화하는 경향이 짙지만 타인의 비슷한 행동에는 너그럽지 못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발끈하고 분노한다. 나도 그런 성향에서 자유롭지 않다. 속 마음을 털어놓았던 걸 후회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분위기상, 기분상, 또 다시 그 같은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 뻔하다. 그러고 또 후회할 것이다. 반복되는 기시감을 느끼면서도


사람이 죽으면 그를 누가 평가하는가. 그를 알았던 세인들의 보고 들은 바에 의해 평가된다. 역사도 그렇고 한 사람의 족적도 마찬가지로 결국 남아 있는 사람들에 의해 기록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본능적으로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살 수 없는 게 아닐까.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나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건 아닌지. 앞에서 잘 해주면서 뒤에서 나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는 건 아닐까. 술자리에서 가장 맛있는 안주가 "뒷담화"라는 우스갯 소리도 있듯이 사람은 참 남말 하는 걸 좋아한다. 누가 어떻다더라. 요즘 그런 일이 있다더라식의 타인이 하는 타인의 얘기들. 돌아서면 남는 거 하나 없을 영양가 없는 얘기들.  


<우행록> 말 그대로 어리석은 행동을 적은 글이다. 도쿄 외곽의 신흥 주거지에서 벌어진 단란한 일가족이 괴한에 의해 잔인하게 살해당한다. 사건은 1년 뒤 르포라이터에 기록되어 지고 르포라이터는 살해당한 남편과 아내의 지인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과거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털어서 먼지 하나 안 나오는 사람 없다고 죽은 남편과 아내는 화려한 과거를 갖고 있었다. 문란하다기 보다는 말 그래로 화려한. 엘리트 남편과 아내. 대학 때는 선망의 대상이었고 드러나지 않는 신분이 존재하는 작은 일본사회에서도 상류층에 있었던 있는 집 자식들이었다. 누구나 살아오면서 마음을 등진 원수 하나 없을까. 만나왔던 모든 사람들과 아름답고 반짝이는 추억만 있을까. 르포라이터가 인터뷰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죽은 부부가 그렇게 나빴던 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됐다는 식의 과거 이야기를 늘어 놓는다. 전제는 그거다. “나는 어디까지나 객관적인 제3자였다고.”  


르포라이터에게 일련의 일화들을 들려주는 사람들의 얘기를 통해 그 입에서 오르락내리던 사람들 중에 끔찍한 일을 일으킨 범인이 숨어 있다. 나중에 밝혀지는 범인의 정체는 그렇게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가 자라온 성장환경이나 비뚤어지게 된 근본적인 계기들은 충격이었다. 사회적, 가정적 영향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 그리고 그 안에서 인간의 모습을 한 비뚤어진 괴물이 만들어 진다. 그리고 그 괴물은 분노를 삭히지 않고 한 가정을 잔인하게 뭉게 버렸다. 조금의 반성도 죄책감도 느끼지 않은 괴물의 고백이 계속 이어진다. 섬찟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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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인형 모중석 스릴러 클럽 23
제프리 디버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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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처럼 심리상태가 얼굴에 쉽게 드러나는 타입의 (정직한) 사람은 캐트린 댄스처럼 사람의 특정 동작이나 표정으로 거짓말 여부를 가려내는 수사관에게는 조사받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겠다. 패턴에서 어긋난 특정 시선으로 그 사람의 심리상태라던지 드러나지 않았던 저의를 파악해야 하는 고도의 심리 수사. 심문이나 인터뷰처럼 쉽게 말문이 열리지 않는 공식적인 어려운 자리에서 상대의 속 마음에 담겨 있던 진실들을 끌어 내기 위해서는 심리적인 배려와 고도의 압박을 요한다. <잠자는 인형>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들이 바로 이런 심리수사를 통한 사건 해결이다.


8년 전 일가족을 끔찍하게 살해하고 복역 중이던 “패밀리”의 컬트 리더인 펠은 법원에서 캐트린 댄스에게 심문을 받고 있던 도중 탈옥에 성공한다. 하지만 그의 저변에는 그의 팬을 자처했던 백치미 여인과 암암리에 그의 탈옥을 도운 외부의 심복들이 있었다. 그 역시도 사람의 심리 변화에 지나칠 정도로 예민하게 관심을 두고 있는데 이런 펠과 수사관 댄스가 보여주는 누가누가 더 상대를 잘 꿰뚫어 보는지에 대한 대결구도도 볼만하다. 상대의 약점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약점에 대한 협박을 노골적으로 하면서 상대를 궁지에 몰아가는 심리공격에 서로 의연하게 대처하면서 지지 않으려고 용을 쓰는 둘의 심리 대결이 이 책의 백미라고 할 수 있겠다.

제프리 디버는 [링컨라임] 시리즈로 유명한데 이번에는 CBI 심리수사관 캐트린 댄스를 주인공으로 한 새 시리즈를 내놓았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침대에 누워 범인의 윤곽을 잡아가는 링컨 라임의 방식도 독특하고 신선하지만 심리수사를 통한 댄스의 수사기법도 얻을 만한 것들이 많이 있었다. 특히 나처럼 상대의 말을 곧이 곧대로 들어서 눈치 없다는 소리를 즐겨 듣는 사람에게는 인간의 행동에 특정적으로 드러나는 신호들에 대한 지식을 좀 얻을 수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람이 많다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런 축복받은 눈썰미가 부족하기 때문에 난 좀 배워둘 필요가 있다는 거다. 그렇다고 매사 심문모드로 가면 안되는데. 

600 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라 능란한 작가가 아니라면 자칫 호흡조절의 실패로 지루하고 부담스러운 두께로만 여겨질 테지만 우리의 프로 작가 제프리 디버는 그런 독자의 우려는 사뿐히 즈려 밟아주신다. 캐트린과 펠의 뚜렷한 대결구도, 중반부 부터 등장하는 특정 인물들의 평범하지 않은 생활상들, 그리고 과거에 받았을 상처들을 극복하는 저마다의 삶의 방식들을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두꺼운 페이지는 후반부에 가서 반전의 선물 꾸러미를 독자에게 선물해 주는 데 평소 눈치 없다는 칭찬을 많이 듣는 덕분에, 이 책도 눈치 없게 읽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상황전개들이 그저 재밌게만 여겨졌다. 

요즘 시간에 쫓겨 두꺼운 장르소설 읽으며 무더운 여름을 식혀 가는 피서 방법이 요원한 일이 됐지만 그래도 이렇게 책 한권 읽고 나면 뿌듯하고 스스로가 대견하게 생각되기도 한다. 읽고 덮는 텀을 엄청 길게 두고 읽은 책이지만 매번 책장을 다시 펼칠 때마다 또 다른 긴장감으로 미처 기대하지 않았던 두근거림을 맛볼 수 있게 해준 재밌는 스릴러 소설이다. 올 여름 이 책 읽고 디버가 선사해 주는 심리 스릴러의 세계에 발을 담궈보는 것도 적절한 피서 방법이 될 수 있겠다. 책의 판권을 영화배우 우마 서먼이 구입했다고 하는데 조만간 영화에서 종횡무진 활동하는 캐트린 댄서를 만나볼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배우를 캐스팅할지 혼자 즐거운 상상에 빠져 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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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 지구에서 7만 광년
마크 해던 지음, 김지현 옮김 / 비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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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뭐가 중요하냐고 하겠지만 난 <한밤 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은 당연히 미국 소설이고 작가 마크 해던 또한 미국 뉴욕쯤에 거주하는 유쾌한 작가일 것이라고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알고 있었다. 유머스럽고 의뭉스러울 것 같은 제목에서 받은 책의 첫 느낌이 어느새 나에게는 사실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마크 해던은 내가 알고 있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영국작가였고 소설의 배경 또한 영국이었다. 아. 미국과 영국의 기후가 그토록 다른 것처럼 선샤인보다는 스산하고 쌀쌀해 보이는 영국의 바깥 분위기가 상상된다. 배경의 전환이 상상 속 분위기를 180도 바꿔놓았다. 난 그저 사실을 제대로 알게 됐을 뿐이데.


조금 이기적인 시각에 빗대어 말하자면 나는 외계인의 존재 여부에 대해서 왜 지금 세상에서도 그렇게 호들갑스럽게 난리인지 모르겠다. 외계인이 정말 있을 것 같냐는 질문 역시 고민되지 않는다. 지구 바깥의 광활한 우주 어딘가에 외계인 하나 없을까. 그들에게도 우리가 외계인인 것처럼 우리도 그들이 낯설고 호기심있게 바라봐야 할 존재일까. 그래. 난 외계인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드는 생각. 우리 주위에 외계인이 있지는 않을까. 난 그럴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여긴다. 어딘가에서 우리의 생활상을 엿보고 기록할 것 같고 남몰래 본부로 우리의 현재를 보고 할 것 같다. 조심스럽고 은밀하게 의심 많고 호기심 많은 인간의 눈에 수상하게 보이지 않게 조심 또 조심하면서. 그래서 말인데, 아주 우연히 그토록 조심스럽게 감춰온 꼬리를 결코 영리하다고 볼 수 없는 평범한 인간꼬마의 눈에 띄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쾅! 지구에서 7만 광년>은 그러니까 그 얘기를 하고 있는 거다. 그렇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하지만 요란스럽지 않고 소담한 소동으로 일들은 전개되고 두 꼬마녀석은 조금 어설픈 외계생명체들과 사투를 벌인다. 역시 다른 사람들 눈치 못채게. 유일하게 눈치 챈 사람이 있다면 남동생에 대한 사랑을 독설과 무시로 풀어놓는 불량끼 다분한 친누나만 알고 있을 뿐이지만. 이야기는 <맨 인 블랙> 버금갈 정도로 기발하지는 않지만 소극적인 상상력으로 이야기를 풀어놓은 것이 아기자기한 이야기로 느껴진다. 심각할 것 없고 그냥 웃으면서 책장을 넘길 수 있는 이야기. 세상일에 달관한 듯한 능글맞은 아이의 시선은 또 어떻고.

우주에 로켓 하나 성공적으로 발사하는 것이 요원한 작금의 현실! 하지만 문학만큼은 이미 우주에 가까이 닿아 있다. 상상력으로 빚어지는 모든 이야기들, 가령 미국발 판타지드라마가 보여주는 것처럼 외계생명체는 친구도 되었다가 적도 되었다가 조언자가 되었다가 팔색조의 역할로 지구의 독자들과 시청자들에게 재미를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주함선같은 인공적인 구조물 안에서 서로 볶닥거리고 부산스럽게 정을 나누는 모습이 우습지만 소담한 정이 엿보인다. 본격공상이야기라고 하기에는 그렇게 거청한 이야기는 아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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