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검은 새 - 누가 메리 로저스를 죽였을까?
조엘 로즈 지음, 김이선 옮김 / 비채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여기 한 남자의 인생을 잠시 돌아보자. 그는 스스로를 천재라고 여겼으며 작품에 대한 욕심도 많았고 질투심도 남달랐다. 수많은 문인들이 그의 날카로운 펜촉 끝에서 일희일비했으며 그를 손가락질 하며 깎아내렸다. 하지만 고매하신 이 작가 선생님은 그러면 그럴수록 굴하지 않고 펜촉을 더 뻣뻣하게 잡고 본연에 충실했다. 사랑에도 작품에도 그는 열정이 넘쳤으며 그의 주옥같은 작품들은 오늘 날에도 많은 독자들에게 활자가 주는 근사한 매력을 선사해 주고 있다. 하지만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또예프스키도 피해갈 수 없었던 '돈'과 '가난'은 미국의 젊고 열정이 넘치는 젊은 작가의 발목을 잡았다. 늘 가난에 시달렸으며 남루한 코트 하나 걸치며 살 수 밖에 없는, 거기에다 알코올과 진한 사랑에 빠진 탓에 쇠골이 삐쩍말라 남다른 속도로 약골이 되어가는 안타까운 시인이었다. 그의 죽음 또한 요절이었다. 그는 어린 부인의 죽음에 버금가는 짧은 생을 살았다.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했다. 그의 남루한 행색에도 그를 무시할 수 없었다. 그는 <모르그가의 살인><검은 고양이><붉은 죽음의 가면>등을 쓴 "에드거 앨런 포"였기 때문이다. 

공평하지 못한 신은 그에게 또 하나의 시련을 준다. 그에게 곤궁과 알코올 중독, 그리고 메리를 살해한 살인용의자라는 의혹을 심어준다. 어떤 영화 제목처럼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많았다. 메리는 아름다웠으며 발랄했고 온동네 사내들의 마음을 들뜨게 했던 담배가게 아가씨였다. 그녀, 메리의 죽음은 수많은 메리빠들을 절망에 빠지게 했으며 타블로이드는 그녀의 실종에 이은 끔찍한 살인사건에 관한 도발적인 기사들로 대중을 달궜다. 그중에는 달필인 미국의 유명작가들도 끼어있었는데 "에드거 A. 포"도 그녀의 죽음을 특별하게 바라보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는 메리의 이야기를 단편소설로 연작한다. 하지만 소설의 내용엔 사건을 수사한 노수사관 제이콥 헤리스도 알지 못했던 사실이 섞여 있어 정보의 출처와 함께 그를 용의자로 의심한다.

이 책은 미스터리와 역사팩션이 섞여 있다. 별다섯개를 주고 싶어도 미스터리 부분이 많이 아쉬워서 1개를 빼야한다고 여겨질만큼 조금 부족한 부분도 있다. 우선 마지막에 밝혀지는 사건의 진실에서 쉽게 납득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조엘 로즈의 담백하고 세련된 문체는 마지막의 클라이막스 부분에서는 빛이 조금 바랜다. 내가 느낀 이 책의 부족한 점은 이것 뿐이다. 이 책에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고 조엘 로즈는 연극의 지문을 보는 것 마냥 세심한 글을 썼다. 지문 하나하나가 바로 대본으로 옮겨도 될 정도로 꼼꼼하다. 문장도 단문이지만 읽히는 맛이 남달랐다. 끝까지 정신차리고 쓴 글 같다.

요즘도 자본의 부패와 권력과의 밀착은 심각하다. 포가 살았던 19세기 중반의 뉴욕처럼. 뉴스의 내용을 조금 알아듣기 시작하면서 세상은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다. 아마 그 책들은 현실이 그렇지 못함을 안타까워 하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보내는 희망과 바람인지도 모르겠다. 남보다 목소리가 커야 하고 잘못을 대놓고 인정하면 안되며 함부로 사람의 집단, 대중을 믿어서도 안 된다. 언론도 쉽게 믿어서는 안 된다. 언론이 보여주는 서로 제 살 깎아먹는 식의 상대에 대한 비판과 왜곡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외면하게 만든다. 정치권과 언론의 커넥션도 밀월을 넘어 대놓고 보살펴주는 식이다. 무엇을 믿을 수 있겠는가. 어느 누구를 공정하다고 말하겠는가. 

포도 생계를 위해 글을 썼다. 때론 검은 돈도 받았다. 생계와 아내의 병치료를 위해 그의 영혼, 아니 작품을 가지고 치사한 장사치들과 흥정했다. 그의 자존심을 사람들은 벌레 밟듯 깔아뭉갰다. 하지만 그에게도 대중과 평단의 따스한 치마폭 안에서 인기를 누리던 행복한 시절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의 작품에 넋을 잃었고 평단은 그를 극찬했다. 대중에게 차가운 몰매도 맞아보고 대중의 뜨거운 사랑도 받아본 극과 극의 인생을 살다 간 남자. 최후에는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했던 에드거 앨런 포. 그는 우리가 단점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걸 갖고 있었다. 사랑이 많았지만 집착도 심했다. 다른 사람을 손가락질 하며 비웃었지만 그 자신도 똑같은 행동을 했다. 저돌적이나 때론 우유부단했다. 자신감도 넘쳤지만 오만했다. 재능이 많았지만 불행했다. 하지만 가난과 싸우며 정당한 대가를 받을 거란 믿음으로 시를 지었다.

<가장 검은 새>에는 현실이 반영된 작은 사회가 보인다. 가쉽거리를 찾아다니는 하이에나 같은 언론, 기만하기 쉽지만 변덕도 그에 못지 않은 대중, 검은 돈을 뿌리는 부패한 자본, 서슴없이 그 돈을 받는 정치권, 가는 곳마다 이야기를 만드는 셀러브리티, 대놓고 범죄자의 편에 서는 공권력, 그리고 그 속에서 터져나오는 이성적인 목소리들. 조엘 로즈는 이렇듯 현실의 이야기가 투영된 내용을 작품 속에 버무렸다. 요즘에는 연예계이지만 그 시절엔 문학계 혹은 예술계에 뜨고 지는 별이 많았으며 그들의 가쉽과 스캔들은 대중과 언론을 먹여 살렸다. 그중에는 출세주의적인 사람들도 많았고 생계를 위해 더욱 절실하게 작품과 성공에 매달린 포같은 작가들도 있었다. 그를 괴롭혔던 현실적인 어려움들은 그가 펜을 잡을 때만이 그를 놓아줬나보다. 작품 안에서만 자유롭게 날아다닌 검은새, 갈가마귀, 에드거 앨런 포. 그를 부르면 그는 꿈꾸는 악마의 눈을 하고서 세상에서 가장 슬픈 대답. 네버모어(Nevermore)라고 대답할 것 같다. <가장 검은 새>를 읽는 시간은 에드거 앨런 포를 읽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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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어 2009-03-02 0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에 대한 기억은 그다지 많지 않지만 짧고 강렬한 것이었죠. 지금은 먼지가 수북히 쌓인 문학전집 가운데 어셔가의 몰락이 있었는데 어렸을 때(아마도 초딩때?) 무서워서 그 부분만 잘라내 버렸던 기억이 나네요. 그나마 마음 편히 봤던 건 도둑맞은 편지정도? -_-a

마빈 2009-03-03 01:22   좋아요 0 | URL
저도 사실 포하면 뒤팡밖에 아는 게 없어요.
하지만 굉장히 뛰어난 작가임은 보증할 수 있을 듯^^;
포의 작품은 앞으로 틈틈히 만나보고 싶어요^^

비로그인 2009-03-02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ver with thee I wish to roam -
Dearest my life is thine.
Give me a cottage for my home
And a rich old cypress vine,
Removed from the world with its sin and care
And the tattling of many tongues.
Love alone shall guide us when we are there -
Love shall heal my weakened lungs;
And Oh, the tranquil hours we'll spend,
Never wishing that others may see!
Perfect ease we'll enjoy, without thinking to lend
Ourselves to the world and its glee -
Ever peaceful and blissful we'll be

Poe의 부인이었던 Virginia가 죽기 1년전 발렌타인데이에 남편에게 보낸 시입니다.
두운을 잘 살펴보세요~^^

마빈 2009-03-03 01:23   좋아요 0 | URL
부창부수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거겠죠? ㅋㅋ
서로 많이많이 사랑하는 애틋한 부부였네요.^^
그렇죠! 사랑만이 그녀의 병약한 폐를 치료할 수 있겠죠.
아~ 너무너무 안타까운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