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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트 버틀러의 사람들
도널드 맥카이그 지음, 박아람 옮김 / 레드박스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레트 버틀러의 사람들>은 마거릿 미첼의<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빼놓고는 얘기할 수 없다. '마거릿 미첼 위원회'의 공식승인을 받은 '속편'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남자주인공 레트 버틀러를 주인공으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는 다뤄지지 않은 레트의 주변인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명예는 갖지 않았지만 넘치는 부를 가졌고 스칼렛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그녀에게 도움의 손길을 주었던 남자 레트 버틀러. <레트 버틀러의 사람들>은 본편인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큰 줄거리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레트 버틀러'라는 인물을 좀더 자세하고 본편과는 또다른 느낌의 매력적인 캐릭터로 부활시켰다.
'뱀발'이겠지만 영화<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TV에서 방영해줄 때마다 보고 DVD까지 소장하고 있어서 굉장히 많이 본 영화다. 영화의 매력적인 여주인공 스칼렛 역의 비비안 리가 말년에는 굉장히 외롭고 불행해서 결국 우울증을 앓다가 아파트에서 쓸쓸하게 죽었다는 얘기를 듣고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팬으로서 안타까움을 크게 느꼈었고 다큐에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뒷얘기를 틀어줄 때는 리모컨을 내려놓고 TV에 집중했다. 레트 역의 클라크 게이블이 실제로는 구취가 심해서 영화의 백미였던 키스씬을 찍는 데 비비안 리가 무척 고생했었더라는 뒷이야기를 듣고는 영화의 환상이 조금 깨지기도 했지만.
같은 사건을 관점을 조금 달리해서 보면 굉장히 새롭게 느껴진다. <레트 버틀러의 사람들>은 그런 재미를 느끼게 해준 소설이다. 나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소설은 읽지 못했기 때문에 소설은 어떤 시점을 취하고 있고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는 잘 모른다. 영화와 비교해서 말할 수밖에 없는데 대부분의 장면들이 스칼렛을 중심에 놓고 진행됐다면 이 소설에서는 주요장면에서 '레트 버클러'의 입장이 되어볼 수 있다. 또한 레트의 어린시절과 청년시절을 통해 레트의 캐릭터가 왜 그런 성격을 갖게 됐는지에 대한 배경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새롭게 등장한 레트 주변의 인물들도 비교적 개성있게 그려져 있으며 영화에서도 주요등장인물로 나온 애슐리 윌크스와 멜라니 윌크스를 다시 등장시켜 그들의 속마음을 조금더 깊게 엿볼 수 있다. 작가의 원작에 대한 풍부하고 해박한 이해, 캐릭터에 대한 정확한 성격파악이 선행되어야 본편의 팬들도 공감할 수 있는 '속편'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레트 버틀러의 사람들>의 작가 도널드 매케이그는 원작에 대해서는 겸손하게, 그렇지만 새롭게 등장시킨 인물들에는 과감하고 적극적으로 캐릭터성을 부여한다.
소설은 남북전쟁과 인종과 사상, 집단간의 갈등을 자세하고 깊게 그리고 있다. 전쟁이 끝난 후 남부연합군으로 참전했던 찰스턴 남성들의 패배감과, 폐허 속에서 그들이 겪었을 공허함과 무기력, 절망을 설득력있게 보여주며 한편으로는 전쟁 후 남편과 자식들을 잃은 찰스턴 여인들이 치열하고 진취적인 여성으로 변화하는 삶의 모습을 서사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저 '속편'이라는 작은 틀에 묶어 두기에는 소설의 완성도가 조금 아깝다. 중간중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내용을 잘 기억하고 있지 못한다면 전후 맥락이 와닿지 않을 내용들이 있지만 그런 건 차치하고서라도 레트 버틀러와 새롭게 탄생한 캐릭터들의 개성있는 삶을 엿보는 재미가 있다. 만만치 않은 두께지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옥같은 장면들을 떠올려 보면서 소설의 내용을 새롭게 음미하며 읽어나간다면 색다른 맛이 나는 개성 강한 소설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