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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기 때문에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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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프랑스 작가 기욤 뮈소의 <사랑하기 때문에>는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현재를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세 인물들이 서로를 알게 되면서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5년 전 딸 라일라가 실종되고 2년 전부터는 슬픔을 극복하지 못하고 거리를 떠돌게 된 정신과의사 마크와 엄청난 거액을 상속받았지만 스캔들과 사건이 끊이지 않는 셀러브리티 앨리슨, 그리고 억울한 엄마의 죽음을 복수하기 위해 라스베가스에서 뉴욕으로 온 십대소녀 에비, 이들 세사람은 LA에서 뉴욕으로 향하는 비행기편에 탑승하고 필연처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서로의 지난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말동무가 되어주고 상처입은 서로를 위해 마음 쓰는 따뜻한 모습을 보여준다.


세명의 인물 외에 이 책에는 마크의 친구인 커너, 그리고 마크의 아내인 니콜이 등장한다. 다섯명의 현재와 과거 이야기를 통해 상처 입은 안타까운 인물들임을 보여준다. 우연히 같은 비행기를 타게 되고 그곳에서 우연처럼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 세 사람은 그동안 타인에게 닫혀있던 마음을 서로에게만은 열어준다. 그리고 결말에 가서는 예측하지 못했던 반전 장치를 통해 수수께끼처럼 진행되었던 이야기의 진실을 말한다. 이들이 보여주는 사람에 대한 용서와 이해, 그리고 죄책감과 같은 감정들은 민감하고 어려운 감정들이다.

결말에서 이야기의 진실과 반전을 알게 되면서 처음에는 멍했었다. 서로에게 그런 인연이 있었을 거라고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으며 이들의 상처를 치유해주기 위해 동원한 방법이 뜻밖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동스러운 부분에서 느낀 의문점은 책에 대한 아쉬움을 남긴다. 사용된 장치에 드는 과학적 의문은 그렇다 치고 너무나 쉽게 풀려버린 인물들의 복잡하고 미묘했던 감정 중에 공감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었다. 서로가 서로의 이야기에 관련된 당사자가 아니었을 때와 당사자였음을 알게 됐을 때 느낄법한 복잡한 감정들을 이 소설은 반대로 표현한다. 오히려 그동안 인물들이 안고 있었던 죄책감과 실망감이 서로를 알게 되면서 서로에게 짧막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풀릴 수 있는 문제들인지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공감하지 못했다.

이런 모든 이야기와 진실을 알게 된 후 보인 인물들의 말없는 반응들이 소설의 말미에서 암시하는 것처럼 용서와 이해할 수 있음을 나타내는 표시인지는 모르겠다. 반전에 대한 신선한 충격과 앞서 전개된 인물들의 드라마틱한 삶에 만족한다면 신선하고 재밌는 소설이 되겠지만 반대로 깊게 생각하면 이 이야기들이 상처와 고통, 그리고 용서를 담기에 넉넉한 이야기가 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든다. 또 하나 언급하고 싶은 부분은 마크 못지않게 상처받았을 아내 니콜의 이야기다. 이들 세 사람의 감정치유를 위해 충격적인 진실을 먼저 알았던 니콜의 감정은 소설 말미에 해결사로 등장하면서 없는 감정이나 마찬가지인 듯 되어버린다. 그녀의 감정은 프리패스(?)란 말??

작가 기욤 뮈소의 작품은 이번에 처음 읽어봤는데 굉장히 쉬운 문체로 사랑에 대해 우화같은 착한 소설을 쓰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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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민 -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지독한 감정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이온화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책을 읽는 내내 불안감이 엄습해 올 때마다 읽기를 멈추고 다른 일을 해야만 했다. 한 젊은이가 품은 연민의 순수했던 감정이 내면으로 침잠해가며 남자를 파멸로 몰아가는 현실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적인 불안을 날카롭게 파헤치며 거기에서 파생되는 인간의 불편하고 불안한 감정이 남긴 내면의 흉터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소설이다. 연민의 쾌락에 빠져있던 한 젊은이로 인해 삶에 희망을 잠시 놓아버렸던 장애소녀가 사랑에 대한 욕망과 나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게 된다. 하지만 젊은이는 이 소녀를 사랑하지 않았다. 소녀의 사랑을 자신에 대한 집착과 올가미로 받아들이고 소녀에게서 도망치려고만 했을 뿐이다.

연민이라는 감정이 사랑의 감정으로 오해될 때 치닫게 되는 고통과 좌절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는 이야기다. 남자의 이야기는 초반에는 아름다웠다. 그가 느끼는 연민의 감정이 때로는 달콤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으니까. 그리고 초반부터 드러나는 소녀의 남자에 대한 사랑을 읽는 나도 느낄 수 있었는데 어리석은 이 바보는 끝까지 모르고 있었다. 소녀의 사랑을 확인하고 나서 현실에서 도망치려는 남자의 모습이 그렇게 당황스러울 수 없었다. 마지막 부분에 와서는 이야기의 비극적인 결말이 너무 가까이 왔기 때문에 견딜 수 없이 불안했다.

남자가 품었던 연민이라는 감정은 치명적인 독이었다. 그 아름답고 순수하게만 보여지는 감정이 남자의 내면에서 점점 치명적인 가시가 되어 그의 내면에 깊게 뿌리 내리는 모습을 보는 게 고통스럽고 두려웠다. 연민은 동정으로, 그리고 소녀가 자신을 욕망한다는 것을 확인한 후로는 도망쳐야할 올가미로, 결국에는 위선으로 변한다. 그리고 남자는 이런 연민의 감정 변화에 자신의 이성과 내면의 목소리를 맡겨버린다.
 
장애소녀가 품은 사랑의 감정을 집착으로 받아들이고 상황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됐다고 오해하는 우유부단한 남자를 보면서 안타깝지만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이 비극적이고 안타까운 이야기가 츠바이크가 직접 남자에게 들었던 실화라는 사실에 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왜 몰라줬을까. 도망치지만 말고 조금만 더 이성적으로 행동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너무 크다.

기병대소위였던 호프밀러의 이 가련하고도 실망스러운 젊은 날의 치명적인 이야기는 아마 우리에게 많은 의미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연민과 사랑은 다른 것일까. 소설에서 이 두 감정은 절대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처럼 융화되지 못하고 겉돌기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 감정이 어긋났을 때 일어난 비극적인 남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마도 호프밀러는 평생 자신의 지난 날의 일을 후회하며 보냈을 것이다. 자신이 품었던 연민의 감정을 후회하며.

에디트가 호프밀러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호프밀러가 케케스팔바 저택에 초대되지 않았더라면, 장애소녀인 에디트를 보고 연민의 감정을 품지 않았더라면, 에디트에게 실수에 대한 미안함의 표시로 장미꽃을 보내지 않았더라면, 매일 그녀에게 찾아가 그녀에게 웃음을 주지 않았더라면, 에디트의 사랑을 사랑이라고 받아들였더라면, 그에게 용기가 있었더라면.

사랑과 연민은 어떤 관계일까. 둘을 뭐라고 정의 내려야할까. 연민이 사랑으로 변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남자에게 일어난 이 모든 일은 그의 가혹한 운명일까. 왜 사람들은 에디트가 보여주는 연민에 대한 불편한 반응에 귀 기울이지 않았던 걸까. 그녀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연민의 쾌락에 빠져 결국 지쳐갔고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에디트는 얼마나 마음 아파하고 괴로워했을까.

이런 현실에 괴로워하고 도망치려하는 호프밀러를 보면서 나 또한 연민이라는 감정을 품게 됐다. 그가 느꼈던 에디트에 대한 연민에 동조하고 그를 흐뭇하게 바라본 적도 있었다. 그리고 에디트가 호프밀러에게 제발 그런 감정으로 자신을 바라보지 말라고 할 때마다 나도 호프밀러처럼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하지만 다시 연민이라는 감정에 자신을 너무 쉽게 맡겨버렸던 호프밀러처럼 나도 그 감정으로 너무 쉽게 빠져들었다. 호프밀러와 한 느낌이 된 기분이었다. 연민이라는 감정이 이렇게 쉽게 생겨날 수 있는 건지 미처 알지 못했다. 나또한, 아니 건강하다고 자부하는 누군가도 또다른 호프밀러다. 책을 덮고 감상을 쓰고 있는 지금도 불편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놓지 못하는 걸 보면 아직 호프밀러와 에디트에게 느낀 연민의 감정을 버리지 못했나 보다. 정말 지독한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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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장미 2008-04-04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좋은 리뷰네요. 연민과 사랑.. 구분하기 참 힘든 것 같아요. 그래도 엄연히 다른 감정일텐데요..연민도 사랑도..자의에 의해서 생기는 감정은 아닌 것 같아요. 시나브로 가슴에서 싹트는 감정이 아닐까해요. 그래서 통제하기도 힘들도, 빠져들기는 쉽나봅니다.

마빈 2008-04-05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두서없이 써내려간 글이라.. 조금 부끄럽네요^^;; 연민이라는 감정은 마냥 좋은 건줄 알았는데 받는 상대에게 고통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지요. 사람은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해야 나의 처지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가 봐요. 기회가 되신다면 꼭 한번 읽어보시길를 권해드립니다^^
 
신의 침묵
질베르 시누에 지음, 이원복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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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그레이 부인의 집에 목에 상처를 입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절체불명의 남자가 찾아온다. 당황한 마음에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이 도착했을 때는 남자는 이미 사라진 상태. 나중에 남자와 인상착의가 비슷한 남자가 시체로 발견되고 그레이 부인은 남자가 남긴 수하물 보관표로 수첩 하나를 찾아온다. 스스로를 가브리엘 천사라 밝힌 남자는 천국에서 벌어지는 의문의 연쇄살인사건에 대한 단서를 남기고 그레이 부인은 지인인 매클린 교수의 도움을 받아 수첩을 해독한다. 용의자로 지목된 예수와 모세, 마호메트 중에 범인은 과연 누구일까.

줄거리 면에서는 큰 굴곡이 없는 무난한 책이다. 다만 너무 무난해서 오히려 평범하게 느껴진다. 차용한 소재들은 흥미로운데 그 소재를 달큰하게 버무리지 못한 느낌의 이야기다. 실은 거창한 소재들에 비해 얘기가 지극히 사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하느님이니, 천사들이니, 모세, 예수, 마호메트니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무게감이 있는 캐릭터들인데 천국에서 밝혀지는 연쇄살인을 지상의 어느 유명 추리소설 작가에게 평소 작품의 팬이었기 때문에 해결을 의뢰한다는 게 아기자기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별할 것 같은 소재들이었는데 개성있게 풀어가는 소설은 아니었다.

범인이 밝혀지는 결말부분에서도 시원한 해방감 같은 것은 맛볼 수 없었다. 애초부터 처벌이 불가능한 거였다면 왜 이런 수수께끼같은 숫자놀음을 제안한 것일까. 마치 그 사람의 변론을 위해 이 모든 게 이뤄졌다는 느낌이다. 단지 왜 그래야만 했는지를 밝히기 위해 소설의 내용이 존재한다는 느낌. 이건 열린 결말이 아니다. 살인자의 변론만을 위한 결말, 그런데 그 이유가 단지 본인을 의심해서 죽인 거라니. 허무하고 여운도 느껴지지 않는 결말이다. 수사의 해결을 맡은 캐릭터가 마지막에 가서 그렇게 무기력하고 끌려다니는 느낌이 들면 믿었던 독자는 어쩌라고. 자칫하면 그 사람이기 때문에 죽음을 그렇게 가볍게 바라봐도 됐던 거냐고 시비를 걸지도 모를 일이다. 자기 할말만 하고 슬쩍 사라지는 범인이라.

또 하나 의문스러운 부분, 바로 사건을 그레이 부인에게 목숨을 걸고 의뢰한 가브리엘 천사의 부분이다. 그레이 부인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었던 건 숫자 19와 쌍둥이 0.809의 비밀을 밝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반대로 생각하면 숫자를 메모로 남긴 가브리엘은 이미 범인을 의심의 단계를 넘어 확신하고 있었다는 얘기인데 왜 굳이 지상으로 내려와서 부인에게 사건의 해결을 부탁한 걸까. 모든 걸 다 알고 있으면서 왜 번거로운 수고를 바랐던 걸까. 나는 범인을 알고 있는데 다른 사람한테 단서를 맡기면서 범인이 누구인지 맞춰봐!하는 게 상식적으로 납득될 수 있는 부분일까. 그것도 죽어가는 와중에. 기대가 너무 컸나보다. 처음 느꼈던 흥미를 말끔하게 채워주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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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코맥 매카시 지음, 임재서 옮김 / 사피엔스21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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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문체로 쓰여있는 소설은 처음 행간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느끼게 한다. 따옴표 없는 대화들로 군더더기없이 간결하게 상황을 묘사한다. 에둘러 가지 못하는 매카시의 단도직입적인 표현일까 아니면 텍스트를 낭비하지 않는 매카시의 검소함일까. 아무튼 문맥에 집중해서 누가 누구에게 한 말인지, 좀 전에 그 말은 누구에게서 나온 말인지 집중하며 읽어야 했다.

텍사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돈가방을 들고 도망간 자와 그를 쫓는 잔혹한 살인마의 추격전이라고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사실 이 소설에서 특징이 제대로 드러나는 건 관조적인 시선을 던지는 보안관 벨의 시선뿐이다. 은퇴를 앞둔 벨은 자신이 해야할 역할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지만 살인마에게 쫓기는 모스를 연민할 뿐이다. 적극적인 행동을 보여주지 않아서 사건에 중심으로 들어가기 보다는 경계에서 일부러 겉도는 느낌이다.

벨은 그가 겪고 있는 모든 것들에 걱정어린 시선을 보내며 상황을 염려한다. 하지만 거기에는 벨의 무기력과 허무함이 서려 있었다.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느끼는 실망과 앞으로 자신의 주변에 다가올 미래를 암울하게 바라보지만 올드맨이기에 쿨한 척 할 수 없다. 산전수전 다 겪은 올드맨이기에 인생을 너무 잘 알기에 몸을 사리는 것이다. 안타깝고 걱정스럽긴 하지만 쯧쯧 혀를 차며 지금보다는 좀더 평안하게 지냈음을 소망하는 것밖에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올드맨들이 사회에 걸었던 기대는 노인이 자신의 손자 손녀에게 기대했던 희망과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다. 자신들이 지키고 만들어 온 나라가 그 옛날 자신들이 그렸던 청사진의 모습이 아니었음을 알게 될 때 그들이 느끼는 실망은 자신들의 땀과 젊은 시절이 허무하게 무너지는 느낌이 아닐까.

노년의 벨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아니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살인마 시거가 등장하지만 보안관인 그는 감히 살인마의 정면에 서려 하지 않는다. 한참 뒤에서 살인마의 행적을 쫓으며 시간을 느리게 밟고 가는 느낌이다. 그렇지만 남편을 걱정하는 모스의 부인에게 올드맨 특유의 자애로움과 동정을 보여주는 것을 보며 마음과 행동에서 오는 그의 괴리감을 보았다. 아마 모스 부인은 따뜻하고 희망적인 말을 건네는 벨을 보며 안심하며 안도감을 느끼겠지만 그녀의 믿음과는 다르게 벨은 사건의 중심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조연을 자처한 인물이니 말이다.

쉽게 만나볼 수 없는 이야기가 올드맨의 상상력으로 쓰여졌다. 간결하고 날랜 문장들, 짧막한 대사들, 그리고 살인마 안톤 시거가 평범한 결말을 바라는 평범한 인물들에게 던지는 냉소적이지만 진지한, 그럼에도 조소로 가득한 질문이 있다. 그의 행동은 우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리고 그로인해 초래된 인물들의 비참했던 결말은 분명 우리가 바랐던 게 아닐 것이다. 우리는 해피엔딩을 바라고 또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믿고 있으니까. 하지만 이런 믿음을 안톤 시거는 사뿐히 즈려 밟고 으깬다. 그에게 해피엔딩은 없는가 보다. 어쩌면 우리의 믿음과는 다르게 세상은 안톤 시거의 믿음대로 움직이는지 모른다. 어쩌면 그런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그 어떤 인간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에게 편한 원칙만을 받아들이며 자유롭게(-우리의 관점으로는 무모하게-) 살아가는지 모른다. 올드맨 매카시는 우리에게 묻는다. 올드맨을 위한, 아니, 올드맨이 꿈꿨던 나라도 없는데 영맨, 아니 당신들은 무엇을 기대하느냐고. 세상 정말 엿같지 않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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