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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인형 ㅣ 모중석 스릴러 클럽 23
제프리 디버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0년 6월
평점 :
절판
나처럼 심리상태가 얼굴에 쉽게 드러나는 타입의 (정직한) 사람은 캐트린 댄스처럼 사람의 특정 동작이나 표정으로 거짓말 여부를 가려내는 수사관에게는 조사받는 일이 없도록 조심해야겠다. 패턴에서 어긋난 특정 시선으로 그 사람의 심리상태라던지 드러나지 않았던 저의를 파악해야 하는 고도의 심리 수사. 심문이나 인터뷰처럼 쉽게 말문이 열리지 않는 공식적인 어려운 자리에서 상대의 속 마음에 담겨 있던 진실들을 끌어 내기 위해서는 심리적인 배려와 고도의 압박을 요한다. <잠자는 인형>에서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들이 바로 이런 심리수사를 통한 사건 해결이다.
8년 전 일가족을 끔찍하게 살해하고 복역 중이던 “패밀리”의 컬트 리더인 펠은 법원에서 캐트린 댄스에게 심문을 받고 있던 도중 탈옥에 성공한다. 하지만 그의 저변에는 그의 팬을 자처했던 백치미 여인과 암암리에 그의 탈옥을 도운 외부의 심복들이 있었다. 그 역시도 사람의 심리 변화에 지나칠 정도로 예민하게 관심을 두고 있는데 이런 펠과 수사관 댄스가 보여주는 누가누가 더 상대를 잘 꿰뚫어 보는지에 대한 대결구도도 볼만하다. 상대의 약점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약점에 대한 협박을 노골적으로 하면서 상대를 궁지에 몰아가는 심리공격에 서로 의연하게 대처하면서 지지 않으려고 용을 쓰는 둘의 심리 대결이 이 책의 백미라고 할 수 있겠다.
제프리 디버는 [링컨라임] 시리즈로 유명한데 이번에는 CBI 심리수사관 캐트린 댄스를 주인공으로 한 새 시리즈를 내놓았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침대에 누워 범인의 윤곽을 잡아가는 링컨 라임의 방식도 독특하고 신선하지만 심리수사를 통한 댄스의 수사기법도 얻을 만한 것들이 많이 있었다. 특히 나처럼 상대의 말을 곧이 곧대로 들어서 눈치 없다는 소리를 즐겨 듣는 사람에게는 인간의 행동에 특정적으로 드러나는 신호들에 대한 지식을 좀 얻을 수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람이 많다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런 축복받은 눈썰미가 부족하기 때문에 난 좀 배워둘 필요가 있다는 거다. 그렇다고 매사 심문모드로 가면 안되는데.
600 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라 능란한 작가가 아니라면 자칫 호흡조절의 실패로 지루하고 부담스러운 두께로만 여겨질 테지만 우리의 프로 작가 제프리 디버는 그런 독자의 우려는 사뿐히 즈려 밟아주신다. 캐트린과 펠의 뚜렷한 대결구도, 중반부 부터 등장하는 특정 인물들의 평범하지 않은 생활상들, 그리고 과거에 받았을 상처들을 극복하는 저마다의 삶의 방식들을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두꺼운 페이지는 후반부에 가서 반전의 선물 꾸러미를 독자에게 선물해 주는 데 평소 눈치 없다는 칭찬을 많이 듣는 덕분에, 이 책도 눈치 없게 읽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상황전개들이 그저 재밌게만 여겨졌다.
요즘 시간에 쫓겨 두꺼운 장르소설 읽으며 무더운 여름을 식혀 가는 피서 방법이 요원한 일이 됐지만 그래도 이렇게 책 한권 읽고 나면 뿌듯하고 스스로가 대견하게 생각되기도 한다. 읽고 덮는 텀을 엄청 길게 두고 읽은 책이지만 매번 책장을 다시 펼칠 때마다 또 다른 긴장감으로 미처 기대하지 않았던 두근거림을 맛볼 수 있게 해준 재밌는 스릴러 소설이다. 올 여름 이 책 읽고 디버가 선사해 주는 심리 스릴러의 세계에 발을 담궈보는 것도 적절한 피서 방법이 될 수 있겠다. 책의 판권을 영화배우 우마 서먼이 구입했다고 하는데 조만간 영화에서 종횡무진 활동하는 캐트린 댄서를 만나볼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배우를 캐스팅할지 혼자 즐거운 상상에 빠져 있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