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 도서관
조란 지브코비치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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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이라는 맛있는 단어가 주는 설레임은 아마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품는 즐거움일테다. 더군다나 환상 도서관이라니! 과연 어떠한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로움 가득 안고 마주한 얆은 책 한권. p.44 그리고 책이 공간을 잡아먹는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 법칙을 뒤집을 방법은 없다. 책에 아무리 많은 공간을 할당해도 항상 부족하다. 처음에는 벽을 차지한다. 그 다음에는 발이 닿는 곳이라면 어디든 범위를 넓혀가기 시작하다. 천장만이 그 침공에서 유일하게 무사한 곳이다. 처음으로 책을, 아니 책에 욕심을 부리는 것이 어쩌면 정말 한낱 욕심일 수도 있겠구나 한다. 방을 둘러보니 자리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쌓인 책들이 순간, 무겁게 느껴지지만 아마도 나는 앞으로도 계속 무거운 책을 쌓아나가리라.

단편은 뭐랄까, 차마 다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가 남아 있는 듯 같아서 변비날의 화장실처럼 개운하지 않다. (비유가 참...저렴하다) 그래서 단편은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 6편의 도서관 이야기는 놀라운 상상력으로 '오~'하고 감탄을 자아낸다. 가상의 공간에 존재하는 심지어 내가 미래에 집필할 책,의 정보까지 존재하는 <가상 도서관>, 우편함에서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 세계문학전집이 결국 집안 모든 공간을 차지한 <집안 도서관>, 무료한 주말이 두려워 찾은,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존재하는 <야간 도서관>, 죽은 이들에게 영원히 책을 읽는 벌을 내리는 <지옥 도서관>, 책을 덮었다 펼치면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지는 <초소형 도서관>, 어떠한 방법으로도 죽일 수 없는 페이퍼백과의 이야기를 그린 <위대한 도서관>. 캬- 정말 군침이 도는 이야기들이다.  

또한, 이야기는 단순히 책,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고 책과 얽힌 주인공 얽힌 주인공들의 삶을 살짝 건드린다. 시선을 책으로 유도하며 하고 싶은 이야기는 콕 찝어 들지 않고 살짝 뒤에 물러 놓는다. <가상 도서관>에서 자신이 쓰지 않은 이야기를 보면 분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크게 안심하였을, <초소형 도서관>에선 단 하나뿐인 그리고 무한정으로 쏟아지는 이야기는 훔치고 싶은 작가들의 고뇌를 (어쩌면 조란 지브코비치 역시 이렇한 집필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집안 도서관>에서 매일 매일 우편함을 들척거리는, <야간 도서관>에선 주말이면 할 수 있는 일이 독서뿐인 그들이 갖은 것은 누릴 것이 무한한 이 시대의 사실은 질척거리는 외로움으로 소통할 것은 오직 책뿐인 서투른 이들의 이야기다. 책을 읽지 않아 죽어서 책만 읽어야 하는 벌을 받은 <지옥 도서관>과 하드커버 책에만 집착하는 <위대한 도서관> 역시 현대인들의 척박해진 마음에 메마른 정서를 비추어준다. 하지만, 너무 기대를 했던 탓일까. 많은 호평에도 <환상 도서관> 역시 단편에 대한 나의 갈증을 해소시켜주진 못했다. 조금 더 깊게, 그리고 진지하게 6명의 주인공과 나눌 수 있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며 아쉬움을 삼킨다.

그러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구 작가는 기발한 상상력으로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분명하니 작가가 표현하였듯 러시아식 샐러드의 향취가 풍기는 <가상 도서관>, 영양가 풍부한 소고기 수프같은 <집안 도서관>, 속 채운 고추같은 <야간 도서관>, 체리 파이맛 <지옥 도서관>, 크림을 넣은 커피 같은 <초소형 도서관>, 그리고 이 모든 맛을 섞어놓은 것 같은 <위대한 도서관>은 에피타이저부터 디저트까지 풀코스 만찬같다. 익숙해진 것들에 지리멸렬(支離滅裂 ) 책읽기가 지속된다면, 그러한 날에 청량제가 되어 줄 책. 단, 만병통치약은 아니니 과한 기대는 금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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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싸라비아 - 힘을 복돋아주는 주문
박광수 글.사진 / 예담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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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컨데 내 사진책에는 네가 어쩌면 기대하는 아주 아주 멋진 풍경 따위는 없어. 왜냐하면 네가 기대했던 그런 풍경이 내 앞에 펼쳐질 때, 난 기민한 동작으로 카메라를 즉시 들지 못했거든...그래서 네가 보는 지금의 내 사진은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막 지나간 찰나의 사진이야. 그러니 부디 내 사진을 보면서는 가장 아름다웠을, 사진의 바로 앞 순간을 상상해줘. 카메라를 바로 꺼내들 수 없었던 그 수많은 아름다운 풍경들과 나날을 말이야. 

수생각의 뽀리에 꽃혀 있던 학창시절에 손편지 마지막에 꼭, 맘에 담았던 한 장을 그려내 담아주었다. 한줄의 글이 한칸의 카툰이 가진 힘은 구구절절 풀어내는 열마디보다 나의 맘을 위로하였더랬다. 몇장을 고쳐쓰던 손편지도, 열심히 따라 그리던 뽀리도 이제는 뽀얀 먼지 앉은 기억이였는데 오랜만에 사진이 가득한 에세이로 다시 만난 박광수는 세월을 보태어 그래도 그만큼 많이 다져진 느낌이다. <앗싸라비아>를 실로 마주하기 전부터 들려 온 지인들의 호불호(好不好)에는 부디 흔들리지 말자며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지나쳐 마지막장을 덮는다. 사진과 그의 이야기, 어쩌면 그보다 많은 유명인들의 주옥같은 한마디가 어쩌면 조금 식상하고 성의없어 보일진정 그가 에필로그에 고백하며 부탁하였듯 사진의 바로 앞 순간을 상상하는 조금 더 너그러워진 마음으로 함께 하기로 한다.

p.74 겉보다 속. 결혼하기 전 울 엄니는 겉옷뿐만 아니라, 속옷까지 다리미로 반듯하게 다려 주시곤 했다. 아들 사형제와 아버지의 뒷수발만도 충분히 힘에 부치실 터인데, 속옷까지 다리미질을 하시는 엄니를 옆에서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나는, 사람들에게 보이지도 않는 속옷을 왜 그리 열심히 다리시냐고 볼멘소리를 했다. 그러자 엄니는 이마에 맺힌 땀을 손등으로 쓱 닦아내시고는, 다리미에서 눈을 떼지도 않은 채 내게 말하셨다. " 아들, 사람은 겉보다 속이 더 반듯해야 하는거란다."

기억을 소거해가는 엄니에게 바치는 마지막 책, 일지도 모른다는 첫 장의 그의 이야기에서 깊은 사랑을 느껴진다. 그가 이렇게 사람 마음을 건드리는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속옷을 다리미질하며 아들의 속을 반듯하게 키우고 싶으셨던 어머니의 곱고 바른 사랑 덕택이 아니였을까. 세계의 여러곳을 여행하며 찍은 사진은 언뜻 쭉 훑어보아도 '앗싸라비아'라는 주문답지 않게 칙칙하고 버거워보인다. 그의 모든 이야기에 맞아, 라고 고개를 주억거리기도 힘들다. 하지만 그것이 그대로 우리의 삶이 아닐까. 반짝반짝 웃으며 빨주노초 알록달록한 응원은 아니더라도 있는 구태여 꾸미거나 보태지 않고 그대로의 따뜻한 시선이, 가끔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그저 우리의 삶이니까. p.55 삶은 정답을 찾는 시간이 아니고, 질문을 하기 위해 주어진 시간이므로.  

p.165 누군가가 그랬지. 나이가 드는 것이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단풍이 잘 물들면 꽃보다도 아름답다고. 서른을 눈 앞에 두고는 생각이 많아졌다. 나의 이십대가 이대로 끝나가는 것이 억울하기도 하고, 서른이 되는 것이 막연히 두렵기도 했다. 이십대를 맞이했던 성인이 되는 설렘과 두려움과는 또 다른 그 두려움은, 많은 이들이 이십대에 이루어 낸 것들은 나는 하지 못했음에 부끄러움과 그리고 남들처럼 태연히 삼십대로 살아내야 할 삶의 무게가 농밀하게 섞인 애매한 그것이였다. 그러다 문득, 나는 이제껏 내게는 너무 버거운 남들과 닮은 삶의 잣대를 드리우고는 왜 그만큼 닿지 못하냐고 다그치며 실망하고 애태우며 시간을 보내 온 건 아닐까 싶었다. 내 삶에 내가 제대로 주인이 되지 못하고 두리번거리며 다른 이들의 인생에 조연으로 기웃거리니 실망의 무게가 버거울 수 밖에.  나는 이렇게 책을 읽으며 나의 모지람에 그대로 순응하며 내 몫의 삶을 살아갈 용기를 조금씩 보태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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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라 이야기 - 아주 특별한 사막 신혼일기
싼마오 지음, 조은 옮김 / 막내집게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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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잘 알고 있어. 인생은 단 한 번뿐이라는 걸, 아주 진실한 한 번뿐이라는 걸……. 그래서 날이 갈수록 안타까워. 더 용감하고 유쾌하게 인생과 대면하지 못한 게 참 아쉬워." 라는 첫 장의 문장에 홀딱! 반해버렸다. 가끔은 이렇게 책표지에, 첫 문장에 반해서 무한한 애정과 신뢰로 시작하는 책이 있으니 이 책은 이웃 까망머리앤님께 선물을 받아 더욱 더 기대롭다. 사하라의 사막, 나는 이제껏 한번도 사막의 삶에 대해 진진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거니와 중국문학은 내게 너무 생소하다. 아마도 처음이지 않을까. 내게 그려지는 사막의 이미지는 척박하고 메마른 땅과, 뜨거운 태양, 궁핍한 삶, 인고(忍苦)의 생명 그러함이다. 그 건조함 가운데서 시작하는 달콤해야 마땅할 신혼이 몹시도 궁금해졌다.

중국에서 사랑받는 대표 여성작가라더니, 그녀의 글자는 화려하지 않지만 생동감이 그득하여 살아있다. 그녀도, 그녀의 호세도, 그녀의 이웃들도 내 눈앞에 생명을 얻어 움직인다. 1970년대의 사막은 아마도 우리가 지레 짐작할 수 없을만큼의 불편함이 생활이였을 것이다. p.217 사하라 사막은 이토록 아름답건만, 여기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엄청난 의지와 끈기를 대가로 지불하며 스스로 적응해 가야 했다. 나는 사막을 미워하지 않았다. 단지 사막에 익숙해져 가는 과정에서 작은 좌절을 겪었을 뿐이다. 나였다면 과연... 생각과 행동의 불일치는 늘 그렇듯 타인의 삶을 향한 미련스러운 동경으로 채워지지만, 그녀처럼의 생각과 행동의 완벽한 조화는 진정한 삶의 향기를 만발한다. 그래서 그녀의 신혼은 척박한 사막의 땅에서 시작되었지만 충분히 풍요롭고 반짝반짝 빛을 낸다. p. 205 생명은 이렇게 황폐하고 낙후되고 빈곤한 곳에서도 똑같이 무럭무럭 활기하게 자란다. 결코 생존을 위해 안간힘 쓰고 발버둥치지 않는다. 사막에 사는 사람들에게 생로병사란 이렇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피어오르는 연기를 바라보노라니, 그들의 안온함이 우아하게 까지 느껴졌다.

토착민인 사하라위족이 사는 라윤시의 변두리에 삶의 기초를 다진 그들의 삶은 예상보다 더 다이나믹하다. 소염진통제 한알로 의사가 되고, 매니큐어로 이를 때워준다. 식사 때마다 포크와 나이프를 빌리러 오는 이웃, 심지어 낙타를 냉장고에 넣어달란다. 거절하면 "당신은 내 자존심을 건들였어요!" 거침없이 내뱉는, 하지만 성냥개비 하나도 빌려 주지 않는 얄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어부가 되어 잡은 물고기를 호텔 주방에 팔고 12배가 넘는 가격으로 다시 사먹기도 하는 부부의 이야기에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나다가도 우연히 줍게 된 모리타니 부적 목걸이 때문에 원인불명의 증상을 겪게 되는 싼마오 때문에, 화석을 찾아 나선 길에서 호세가 진흙늪에 빠졌을때 마음 조리며 함께 염려키도 한다. 애정가득한 마음으로 담담한 듯 써내려간 그녀의 이야기는 위트가득하며, 사막 생활의 고충도 질척거리거나 푸석거림없이 담백하다.

결혼을 해도 자신의 방식대로 살아갈 것임을 선포하는 싼마오와 그런 그녀를 좋아하는 것이라도 말하는 호세는, 사막으로 떠나겠다는 그녀를 나무라기보다 먼저 사막에 가서 터전을 마련하는 그는 정말 천생의 배필이다.  p.206  담담하면서도 깊고 그윽한 결합이었다. 마음이 더없이 편안하고 행복해졌다. 안타깝게도 호세는 싼마오의 나이 37살에 - 싼마오는 31살에 호세와 결혼했다 - 잠수 사고로 목숨을 잃고, 고국으로 돌아온 그녀도 48살의 젊은 나이에 스스로의 생을 마감한다. 책 속 사막에서의 그녀는 삶에 대한 호기심과 적극적인 태도로 에너지 넘쳐 나에게도 그 밝음이 잠시나마 전염되었는데, 고향으로 돌아 온 그녀의 삶은 사막의 모래 먼지보다 더 까끄럽고 황량했던걸까. 좋은 작가를 너무 빨리 잃은 것 같은 마음에 아쉬움이 먼저 앞서간다. 그녀의 다른 이야기도 궁금하다. 


p. 244

사람이란 참 이상하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증명해 주기 전에는 자기 가치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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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가분 - 마음주치의 정혜신의 나를 응원하는 심리처방전
정혜신.이명수 지음, 전용성 그림 / 해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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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가분' 입안에서 굴러가는 발음이 참 기분 좋다. 마음주치의 정혜승의 나를 응원하는 심리처방전, 이라는 부제도 기대감을 부풀렸다. 아마도 기대가 너무 컸던 모양이다. 몇가지 이야기들이 마음을 건들지만 사실 기대만큼의 홀가분은 경험하지 못해 조금 아쉬운 마음이다. 그러고보니 요즘 부쩍 심리치료나 위로에 대한 에세이가 많아진 느낌이다. 우리는 이전 세대보다 절대적인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마음은 그 풍요로움을 따라가지 못하니 상대적인 박탈감으로 인한 빈곤을 혼자서는 제대로 감당해내기 어려운 탓일거다. 그렇게 나도 책에서 얻는 위로가 더 없이 살갑고 고맙다.

이야기 내내 저자 정혜승님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자신을 잘 알고, 보살펴 사랑해야 진정한 '홀가분'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p.49 살면서 무엇보다 먼저 시정되어야 할 것은, 자기를 잘 보듬지 못하고 귀히 여기지 못 하는, 자기애와 관련된 나태함이라고 저는 철석같이 믿고 있습니다. 자신을 향한 사랑은 자못 이기주의, 로 와전되어 인식될 수도 있으나 자신을 진정 사랑하고 귀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이야말로 타인의 가치도 존중할 수 있음이다. 그렇기에 타인에게 흩어져 있는 삶의 시선을 우선은 나에게도 거두어 와야 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집중해야 한다. p.66 마음의 영역에서도 이런 순환의 법칙은 그대로 적용됩니다. 한옥의 광 같은 허드레 공간이 있어야 인간의 마음은 정상적으로 순환됩니다. 나 자신이 세운 날카로운 기준에 베여 여기저기 상처로 곪을대로 곪아버린 안타까운 내 마음을 살짝 들여다 본다. 미안하고, 안쓰럽다. p.35자기 마음을 바라볼 때도 그러면 됩니다. 때로 본인이 생각해도 괜한 짓이라 느껴지는 경우가 있겠지요. 그러면 어떤가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거니……. 기다리면 되지요. 타인에게도 그렇지만 자신에게 너그러워지는 일은 쉽지 않다 

모르는 것은 아니다. 누누히 들어온 자신을 사랑하라, 자신을 믿어라, 자신에게 너그러워야 한다는 이야기들이 이제 신선함을 잃고 식상하기까지 하다. 수없이 들어도 변하지 못하면 그뿐이고, <홀가분>에서 좀 더 구체적이고 명쾌한 심리처방전을 기대하긴 어렵다. 하지만, 전용성 화백의 무심한 듯 많은 이야기를 건네는 그림들이 어떤 페이지에서는 글자보다 더 많은 위로를 건넨다. 기교가 뛰어나거나 화려하진 않아도 삶을 충분히 살아내고 누린 사람만이 이야기할 수 있는 깊이가 담겨 있다. 보태거나 과하게 꾸미지 않아도 삶은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답듯이. p.165 나희덕 시인의 절창(絶唱)처럼, '산다는 일은 더 놓이 올라가는 게 아니라 더 깊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p.229 어떤 일을, 긍정적으로 보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있는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 그래야 다 편안해집니다. 예전에 읽었던 공지영 님의 책에서 그런 구절을 보았다. 이제껏 불행한 것도 억울해 죽겠는데, 과거의 불행때문에 나의 오늘이 불행해지는 것은 내 탓이라고 말한다. 그 불행의 원인이 어디에서 온 것이든 그 불행에 발목 잡혀 모든 날들을 불행의 먹물로 칠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임을 꾸짖는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삶을 바라보고 있을까. 불행까지도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는 아량이 생기려면 삶을 얼마나 더 살아내야 하는걸까. 어떠한 값진 이야기든 내것으로 삼지 않으면 소용없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 라고 - 요즘, 내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다. 생각만 있는대로 가지를 뻗치고 아무것도 행동에 옮기지 못하니 이런 나를 바라봄이 답답하기 떄문일거다 -  이 책을 자극제 삼아 조금 더디더라도 미약할지라도 변화의 첫걸음으로 삼으면 좋을 것이다.  


 

p.223

울건 웃건 아기가 존재 그 자체로 빛나는 가치가 있는 것처럼

흐리든 화창하든 나에겐 '나'그.자.체.로.가 그대로 쓸. 모.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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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안나 가발다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세계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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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무엇이였든 좀 더 명확하게 실체적인 결말을 바랐던 것 같다. 200 페이지 남짓 얇은 책 한권, 신재 언니의 선물이였기에 아마도 내 마음에 미리 와닿아 있었던 듯 하다. 책이 재미있다고 금방 읽어낼 것 같다며 설레발을 쳐 놓고는 중반부를 넘길 수록 속도가 붙지 않아 4일을 부여쥐고 있었다. 나는 이야기 속에 있었지만, 자꾸 명치 끝이 무직해서 몇장을 넘기기는 일조차 어려웠다.

두 아이의 엄마, 한 남자의 아내로 큰 문제없이 살아오던 클로에에게, 갑자스러운 남편의 부재는 그녀의 삶을 송투리째 흔든다. 그 부재의 원인 또한 눈꼽만큼의 의심도 하지 않던 남편이 자신이 아닌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진 탓이다. 그것은 흔들림 이상의 무너짐이다. '사랑이 무엇일까?' 라는 근복적인 물음. 그것이 무엇이기에 그녀의 남편은 자신이 마땅히 살아냈어야할 삶의 책임감으로부터 도망칠 수 밖에 없었을까. p.95 아쉽다……너무나 많은 것이 아쉽다. 너무나 많은 것이……

실의에 빠진 그녀에게 피에르(시아버지)는 어린 두 딸과 함께 시골 별장에서 지낼 것은 권한다. 시아버지의 마음씀이 내키지 않지만 사실 그녀는 별 도리가 없다. 작은 가방조차 꾸리지 못하고 도착한 얼어붙은 시골 별장, 그곳에서 피에르 - 늘 무뚝뚝하고 냉정한, 가족들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는, 클로에는 이해할 수 없고 맘에 들지도 않았던 시아버지 피에르 - 는 그 별장보다 차갑게 얼어버린 클로에의 마음을 녹이기 위해 자신의 사랑했던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했지만 용기가 없어 잃었던 그 여인과의 러브스토리가 과연 클로에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을까

출장길에서 통역을 맡았던 마틸드,와 그는 무섭도록 두려운 사랑에 빠져들었다. 그는 겁이 났다. 사랑도,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도 놓을 수 없다. 그래서 그는 마틸드에게 어떠한 약속도 할 수 없다. 그녀를 사랑하지만, 그녀에게서 그는 본래의 자신을 되찾지만 결국 그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쪽을 택한다. p. 205~206 " 아아, 나는 너무나 지쳐 있었어. 게다가 추억과 후회가 나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었지. 눈을 반쯤 감고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면서, 나는 보잘것없는 내 인생에 대해 생각했어. 행복이 찾아왔었는데, 나는 삶을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그것이 그냥 지나가도록 내버려두었어. 너무나 간단했는데, 손을 내밀기만 하면 되는 거였는데, 그 다음 일은 어떻게든 해결될 수 있는 거였는데 말이야. 행복하기만 하다면, 나머지 일은 어떻게든 해결되기 마련 아니겠니? 네 생각은 어때?" 도무지 융통성이라고는 없어 보이던 답답한 늙은이의 삶의 내면에 존재했던 뜨거운 로맨스는 클로에의 마음을 꽁꽁 언 마음을 녹인다. 남편이 자신과 아이들을 버리고 사랑을 찾아 떠났음에 실의에 빠져있던 그녀가 아니던가.

p.110

"왜 참으셨어요?"

"남자로서 그렇게 교육을 받고 자란 탓이겠지……그리고 나 자신이 너무나 약해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 자칫하면 스스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감정에 휩쓸리겠다 싶었지. 울더라도 그런 싸구려 식당에서 아내와 함께 울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 나 자신이……뭐랄까……너무나 부서지기 쉽다는 느낌이 들었단다."

그는 마틸드와 헤어지고 며칠을 앓았다. 그뿐이다. p.162~163 마음 속이 단단하고 굳센 사람들은 늘 자기 자신을 힘들게 하면서 삶에 부딪혀 자꾸 튕겨 나오지요. 그에 반해서 마음속이 말랑말랑한 사람들, 아니 말랑말랑하다기보다 유연하다는 말이 낫겠네요. 그래요, 마음속이 유연한 사람들은 외부로부터 충격을 받으면 고통을 덜 받지요……그것은 그의 삶에 찾아온 찬란의 행복의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선택을 번복하거나 그 선택을 한탈할 틈도 없이 그는 그렇게 그대로의 삶을 살아내고 있다. p.169 "아니야. 있을 수 있는 일이야.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고 말고……그게 인생이야. 거의 모든 사람들의 인생이 그래. 때로는 에움길로 돌아가고 상황에 적당히 맞춰 가며 사는 게 인생이야. 우리 안에는 약간의 비열함이 있어. 그 비열함은 애완동물과 같아. 그것을 쓰다듬어 주면서 기르다 보면 애착을 갖게 돼. 그게 인생이야. 용감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적당히 타협하며 사는 사람들도 있어. 타협하며 사는 게 한결 덜 피곤하지……자아, 술병 좀 건네 다오." 이미 가정이 있는 그들에게 찾아온 사랑은 -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분륜이겠지만 - 어쨌든 '불륜'이라는 이름으로 통틀어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행동으로, 하지만 그 '불륜'이 그 인생에 절대적인 것이라면 어떠한가. 그래도 사회적인 이념과 도리를 위해 분륜쯤(?)은 인내하고 참아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진정한 사랑을 찾아 떠나 자신의 절대적인 행복을 추구해야 함이 맞는 것인가. 피에르의 로맨스를 엿들으며 사실 왜 굳이 피에르는 자신의 불륜을 며느리에게 털어 놓았는지, 자신의 행동은 어리석었으므로 삶의 불행을 초래했고 그러함에 아들의 행동을 타당화시키기 위함인지 나는 그의 마음을 헤아리기 어려웠다.

책이 남은 분량이 가벼워질수록 내 마음도 조바심쳐진다. 그들은 내게 사랑에 관한 명쾌한 결론을 내려줘야 한다. 하지만 마지막 장을 덮기까지 변화되는 사실은 아무것도 없다. 클로에는 남편을 잃었다. 주례사에 심심찮게 등장했던 백년해로(百年偕老)하라는 축북을 나는 언제나 의심했었다. 늘 황홀한 사랑을 꿈꾸면서도 그 불확실성과 가벼움을 나는 두려워했다. 두 명의 남, 녀가 만난 평균 60년 이상을 변함없이 사랑할 확률이란 과연 존재하기나 할까. 정으로 사는 거라는 어른들의 말씀처럼 그렇게 사는 것이 맞는 것일까. 그래, 여전히 답은 모르겠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것 모두 그저 그대로가 삶이고, 또 그 삶이 답이다. p.51 우리가 행복한 게 당연하다고 믿는 것, 그게 바로 덫이다. 우리는 얼마나 어리석은가. 우리 삶의 방향을 우리가 좌우할 수 있다고 착각하기 일쑤니 말이다. 우리 인생은 우리 뜻대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p.42~43 

담배 한 대 피웠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이없는 생각이었다.

담배를 입에 대지 않은 게 벌써 몇 년째인데……

하지만 어찌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인생이란 것이 원래 그런 것 아닌가……

금연을 결심하고 오랫동안 굉장한 의지력을 보여주다가도,  

어느 겨울날 아침

다시 담배 한 갑을 사기 위해 추위를 무릅쓰고 십리 길을 걸어가는 것, 혹은

어떤 남자를 사랑해서 그와 함께 두 아이를 만들고서도

어느 겨울날 아침 그가 나 아닌 다른 여자를 사랑하기 때문에 떠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

나를 사랑한다고 믿고 있던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미안해, 내가 실수를 했어."라고 말하는 걸 듣는 것,

그런게 인생이다.

 

전화를 잘못 걸어온 사람이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를 했군요."라고 말하면,

"괜찮습니다. 그럴 수도 있죠."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는 것, 그런 게 인생 아닌가……

 

인생사 모든 게 지나고 보면 한낱 비눗방울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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