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안나 가발다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세계사 / 2009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그것이 무엇이였든 좀 더 명확하게 실체적인 결말을 바랐던 것 같다. 200 페이지 남짓 얇은 책 한권, 신재 언니의 선물이였기에 아마도 내 마음에 미리 와닿아 있었던 듯 하다. 책이 재미있다고 금방 읽어낼 것 같다며 설레발을 쳐 놓고는 중반부를 넘길 수록 속도가 붙지 않아 4일을 부여쥐고 있었다. 나는 이야기 속에 있었지만, 자꾸 명치 끝이 무직해서 몇장을 넘기기는 일조차 어려웠다.

두 아이의 엄마, 한 남자의 아내로 큰 문제없이 살아오던 클로에에게, 갑자스러운 남편의 부재는 그녀의 삶을 송투리째 흔든다. 그 부재의 원인 또한 눈꼽만큼의 의심도 하지 않던 남편이 자신이 아닌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진 탓이다. 그것은 흔들림 이상의 무너짐이다. '사랑이 무엇일까?' 라는 근복적인 물음. 그것이 무엇이기에 그녀의 남편은 자신이 마땅히 살아냈어야할 삶의 책임감으로부터 도망칠 수 밖에 없었을까. p.95 아쉽다……너무나 많은 것이 아쉽다. 너무나 많은 것이……

실의에 빠진 그녀에게 피에르(시아버지)는 어린 두 딸과 함께 시골 별장에서 지낼 것은 권한다. 시아버지의 마음씀이 내키지 않지만 사실 그녀는 별 도리가 없다. 작은 가방조차 꾸리지 못하고 도착한 얼어붙은 시골 별장, 그곳에서 피에르 - 늘 무뚝뚝하고 냉정한, 가족들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이는, 클로에는 이해할 수 없고 맘에 들지도 않았던 시아버지 피에르 - 는 그 별장보다 차갑게 얼어버린 클로에의 마음을 녹이기 위해 자신의 사랑했던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했지만 용기가 없어 잃었던 그 여인과의 러브스토리가 과연 클로에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을까

출장길에서 통역을 맡았던 마틸드,와 그는 무섭도록 두려운 사랑에 빠져들었다. 그는 겁이 났다. 사랑도,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도 놓을 수 없다. 그래서 그는 마틸드에게 어떠한 약속도 할 수 없다. 그녀를 사랑하지만, 그녀에게서 그는 본래의 자신을 되찾지만 결국 그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쪽을 택한다. p. 205~206 " 아아, 나는 너무나 지쳐 있었어. 게다가 추억과 후회가 나를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었지. 눈을 반쯤 감고 금방이라도 토할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면서, 나는 보잘것없는 내 인생에 대해 생각했어. 행복이 찾아왔었는데, 나는 삶을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그것이 그냥 지나가도록 내버려두었어. 너무나 간단했는데, 손을 내밀기만 하면 되는 거였는데, 그 다음 일은 어떻게든 해결될 수 있는 거였는데 말이야. 행복하기만 하다면, 나머지 일은 어떻게든 해결되기 마련 아니겠니? 네 생각은 어때?" 도무지 융통성이라고는 없어 보이던 답답한 늙은이의 삶의 내면에 존재했던 뜨거운 로맨스는 클로에의 마음을 꽁꽁 언 마음을 녹인다. 남편이 자신과 아이들을 버리고 사랑을 찾아 떠났음에 실의에 빠져있던 그녀가 아니던가.

p.110

"왜 참으셨어요?"

"남자로서 그렇게 교육을 받고 자란 탓이겠지……그리고 나 자신이 너무나 약해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 자칫하면 스스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감정에 휩쓸리겠다 싶었지. 울더라도 그런 싸구려 식당에서 아내와 함께 울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 나 자신이……뭐랄까……너무나 부서지기 쉽다는 느낌이 들었단다."

그는 마틸드와 헤어지고 며칠을 앓았다. 그뿐이다. p.162~163 마음 속이 단단하고 굳센 사람들은 늘 자기 자신을 힘들게 하면서 삶에 부딪혀 자꾸 튕겨 나오지요. 그에 반해서 마음속이 말랑말랑한 사람들, 아니 말랑말랑하다기보다 유연하다는 말이 낫겠네요. 그래요, 마음속이 유연한 사람들은 외부로부터 충격을 받으면 고통을 덜 받지요……그것은 그의 삶에 찾아온 찬란의 행복의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선택을 번복하거나 그 선택을 한탈할 틈도 없이 그는 그렇게 그대로의 삶을 살아내고 있다. p.169 "아니야. 있을 수 있는 일이야.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고 말고……그게 인생이야. 거의 모든 사람들의 인생이 그래. 때로는 에움길로 돌아가고 상황에 적당히 맞춰 가며 사는 게 인생이야. 우리 안에는 약간의 비열함이 있어. 그 비열함은 애완동물과 같아. 그것을 쓰다듬어 주면서 기르다 보면 애착을 갖게 돼. 그게 인생이야. 용감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적당히 타협하며 사는 사람들도 있어. 타협하며 사는 게 한결 덜 피곤하지……자아, 술병 좀 건네 다오." 이미 가정이 있는 그들에게 찾아온 사랑은 -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분륜이겠지만 - 어쨌든 '불륜'이라는 이름으로 통틀어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행동으로, 하지만 그 '불륜'이 그 인생에 절대적인 것이라면 어떠한가. 그래도 사회적인 이념과 도리를 위해 분륜쯤(?)은 인내하고 참아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진정한 사랑을 찾아 떠나 자신의 절대적인 행복을 추구해야 함이 맞는 것인가. 피에르의 로맨스를 엿들으며 사실 왜 굳이 피에르는 자신의 불륜을 며느리에게 털어 놓았는지, 자신의 행동은 어리석었으므로 삶의 불행을 초래했고 그러함에 아들의 행동을 타당화시키기 위함인지 나는 그의 마음을 헤아리기 어려웠다.

책이 남은 분량이 가벼워질수록 내 마음도 조바심쳐진다. 그들은 내게 사랑에 관한 명쾌한 결론을 내려줘야 한다. 하지만 마지막 장을 덮기까지 변화되는 사실은 아무것도 없다. 클로에는 남편을 잃었다. 주례사에 심심찮게 등장했던 백년해로(百年偕老)하라는 축북을 나는 언제나 의심했었다. 늘 황홀한 사랑을 꿈꾸면서도 그 불확실성과 가벼움을 나는 두려워했다. 두 명의 남, 녀가 만난 평균 60년 이상을 변함없이 사랑할 확률이란 과연 존재하기나 할까. 정으로 사는 거라는 어른들의 말씀처럼 그렇게 사는 것이 맞는 것일까. 그래, 여전히 답은 모르겠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것 모두 그저 그대로가 삶이고, 또 그 삶이 답이다. p.51 우리가 행복한 게 당연하다고 믿는 것, 그게 바로 덫이다. 우리는 얼마나 어리석은가. 우리 삶의 방향을 우리가 좌우할 수 있다고 착각하기 일쑤니 말이다. 우리 인생은 우리 뜻대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p.42~43 

담배 한 대 피웠으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이없는 생각이었다.

담배를 입에 대지 않은 게 벌써 몇 년째인데……

하지만 어찌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인생이란 것이 원래 그런 것 아닌가……

금연을 결심하고 오랫동안 굉장한 의지력을 보여주다가도,  

어느 겨울날 아침

다시 담배 한 갑을 사기 위해 추위를 무릅쓰고 십리 길을 걸어가는 것, 혹은

어떤 남자를 사랑해서 그와 함께 두 아이를 만들고서도

어느 겨울날 아침 그가 나 아닌 다른 여자를 사랑하기 때문에 떠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

나를 사랑한다고 믿고 있던 남자가 어느 날 갑자기  

"미안해, 내가 실수를 했어."라고 말하는 걸 듣는 것,

그런게 인생이다.

 

전화를 잘못 걸어온 사람이 "죄송합니다, 제가 실수를 했군요."라고 말하면,

"괜찮습니다. 그럴 수도 있죠."라고 대답할 수 밖에 없는 것, 그런 게 인생 아닌가……

 

인생사 모든 게 지나고 보면 한낱 비눗방울이 아니던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