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 도서관
조란 지브코비치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도서관, 이라는 맛있는 단어가 주는 설레임은 아마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품는 즐거움일테다. 더군다나 환상 도서관이라니! 과연 어떠한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로움 가득 안고 마주한 얆은 책 한권. p.44 그리고 책이 공간을 잡아먹는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 법칙을 뒤집을 방법은 없다. 책에 아무리 많은 공간을 할당해도 항상 부족하다. 처음에는 벽을 차지한다. 그 다음에는 발이 닿는 곳이라면 어디든 범위를 넓혀가기 시작하다. 천장만이 그 침공에서 유일하게 무사한 곳이다. 처음으로 책을, 아니 책에 욕심을 부리는 것이 어쩌면 정말 한낱 욕심일 수도 있겠구나 한다. 방을 둘러보니 자리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쌓인 책들이 순간, 무겁게 느껴지지만 아마도 나는 앞으로도 계속 무거운 책을 쌓아나가리라.

단편은 뭐랄까, 차마 다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가 남아 있는 듯 같아서 변비날의 화장실처럼 개운하지 않다. (비유가 참...저렴하다) 그래서 단편은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 6편의 도서관 이야기는 놀라운 상상력으로 '오~'하고 감탄을 자아낸다. 가상의 공간에 존재하는 심지어 내가 미래에 집필할 책,의 정보까지 존재하는 <가상 도서관>, 우편함에서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 세계문학전집이 결국 집안 모든 공간을 차지한 <집안 도서관>, 무료한 주말이 두려워 찾은,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존재하는 <야간 도서관>, 죽은 이들에게 영원히 책을 읽는 벌을 내리는 <지옥 도서관>, 책을 덮었다 펼치면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지는 <초소형 도서관>, 어떠한 방법으로도 죽일 수 없는 페이퍼백과의 이야기를 그린 <위대한 도서관>. 캬- 정말 군침이 도는 이야기들이다.  

또한, 이야기는 단순히 책,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고 책과 얽힌 주인공 얽힌 주인공들의 삶을 살짝 건드린다. 시선을 책으로 유도하며 하고 싶은 이야기는 콕 찝어 들지 않고 살짝 뒤에 물러 놓는다. <가상 도서관>에서 자신이 쓰지 않은 이야기를 보면 분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크게 안심하였을, <초소형 도서관>에선 단 하나뿐인 그리고 무한정으로 쏟아지는 이야기는 훔치고 싶은 작가들의 고뇌를 (어쩌면 조란 지브코비치 역시 이렇한 집필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집안 도서관>에서 매일 매일 우편함을 들척거리는, <야간 도서관>에선 주말이면 할 수 있는 일이 독서뿐인 그들이 갖은 것은 누릴 것이 무한한 이 시대의 사실은 질척거리는 외로움으로 소통할 것은 오직 책뿐인 서투른 이들의 이야기다. 책을 읽지 않아 죽어서 책만 읽어야 하는 벌을 받은 <지옥 도서관>과 하드커버 책에만 집착하는 <위대한 도서관> 역시 현대인들의 척박해진 마음에 메마른 정서를 비추어준다. 하지만, 너무 기대를 했던 탓일까. 많은 호평에도 <환상 도서관> 역시 단편에 대한 나의 갈증을 해소시켜주진 못했다. 조금 더 깊게, 그리고 진지하게 6명의 주인공과 나눌 수 있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며 아쉬움을 삼킨다.

그러한 아쉬움에도 불구하구 작가는 기발한 상상력으로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분명하니 작가가 표현하였듯 러시아식 샐러드의 향취가 풍기는 <가상 도서관>, 영양가 풍부한 소고기 수프같은 <집안 도서관>, 속 채운 고추같은 <야간 도서관>, 체리 파이맛 <지옥 도서관>, 크림을 넣은 커피 같은 <초소형 도서관>, 그리고 이 모든 맛을 섞어놓은 것 같은 <위대한 도서관>은 에피타이저부터 디저트까지 풀코스 만찬같다. 익숙해진 것들에 지리멸렬(支離滅裂 ) 책읽기가 지속된다면, 그러한 날에 청량제가 되어 줄 책. 단, 만병통치약은 아니니 과한 기대는 금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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