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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있는 거북이는 지치지 않습니다 - 김병만 달인정신
김병만 지음 / 실크로드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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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이 있는 거북이는 지치지 않는다│김병만│실크로드│2011.08.10

 

달인이라고 쓰구요, 피나는 노력이라고 읽어요. 정말 오랜만에 한숨에 읽히는 책을 만났습니다. 어려운 말로 뻐기지도 않구요, 안달나게 하며 숨기지도 않아요. 있는 그대로 고스란히 내어 놓고 이야기해주니까 읽는 마음이 가볍고 금세 빠져들어요. 나는 코미디 프로그램을 좋아하지 않아요. 예를 들자면 늘 이슈의 중심에 서 있는 '무한도전'보다 '남자의 자격:청춘합창단'이 좋아요. 나는 '개그콘서트'보다 '인간극장'이 좋아요. 그러니까 나는 웃음보다 눈물에 약한 사람이예요. 기뻐서 울고, 슬퍼서 울고, 화가 나서 울고 울보예요. 김병만의 웃음에서는 눈물이 묻어나죠. 개그콘서트의 '달인'이라는 코너는 스치듯이 몇 번 봤어요. 그는 정말 묘기를 부리네요. 아ㅡ 신기하다, 대단하네 그랬어요 그뿐. 출발 드림팀에도 가끔 나오던데 운동신경이 좋은가보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에게 반한 건 <김연아의 키스앤크라이>에서 그가 빙판 위에 무릎을 꿇는 순간이었어요.

이 책에도 그 순간이 담겨 있어요. 김병만의 발목은 지금 뼈에 금이 가 있어요. 그것도 양쪽 모두. 그는 그 상태로 달인을 연기하고 스케이트를 신었던 거예요. 혼신의 연기를 다하고 너무 아파 주저 앉을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해요. 스케이트화도 신을 줄도 모르던 그가 빙판 위에서 사람들은 웃기고 울려요. 슬픈 장면이 아닌데 뭉클, 해요. 짐작 할 수 있거든요 그가 어떤 통증을 참으며 이루어 낸 것인지. (그는 스케이트 초급 심사에도 도전했어요.) 그는 그렇게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 총 16번의 오디션에 실패하고 KBS 공채 개그맨이 되었습니다. 아니 17번의 도전이었네요. 될 때 까지 하는 것, 남들이 안된다고 아니라고 해도 뜻을 굽히지 않고 해내는 것, 그것이 그의 삶에 모토(motto)입니다.

p.89

" 병만아, 나는 '성공했다'도 없고, '실패했다'도 없다고 생각해. 실패가 뭔가? 자기가 원치 않는 결과가 나왔을 때 실패했다고 말하지. 실패가 규정되어 있나? 한정되어 있나? 내가 실패라고 인정하지 않으면 실패가 아닌 거야. 원하지 않는 결과가 나왔더라도 자기가 어떤 만족을 느꼈다면 실패라고 할 수 없는 거야. 고생도 마찬가지다. 고생이라고 생각 안 하면 고생이 아닌 거야. 세상에는 말이야..."

그가 경험한 가난은 단순히 비싼 옷을 못입고 좋은 차를 타지 못하는 상대적인 것이 아니였습니다. 양을 최대한 많게 하기 위해 퉁퉁 불린 라면을 먹고 - 그조차도 넉넉하지 않았어요 - 몸을 뉘일 곳이 없어 노숙을 합니다. 겨우 얻은 옥탑방엔 아침이면 고드름이 얼어요. 조금 형편이 나아졌던 옥탑방엔 아침에 옷을 입으면 바퀴벌레가 후두둑 떨어집니다. 빈 화장실에서 샤워를 하다 거지라는 소리도 듣지요. 그의 가난은 그렇게 절대적인 생활의 누락이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꿈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바닥부터 올라와 거머쥔 성공이기에 그는 지금 더욱 빛이 납니다.

그는 이제 모두가 인정하는 성공한 개그맨입니다. 이제는 많은 프로그램에서 쉽게 그를 만나죠. 하지만 그는 여전히 금이 간 발목으로 통증을 참고 있습니다. 발목 수술을 하면 걷기까지 최소 3개월의 시간이 필요한데 그 시간동안 대중에게 잊혀질까 두렵다고 말합니다. 이제 좀 쉬어가는게 좋지 않겠냐고, 모두가 당신을 기억할 것이라고 아무도 잊지 않을테니 좀 쉬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에게 지금 얻은 행복이 시간이 얼마나 절박했고 그랬기에 얼마나 즐거운지 알아서 박수를 보내기로 합니다. 그래도 조심하세요! 이 책을 읽어보세요, 그럼 당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누리고 있는지 알게 될 테니까요.  


 

P.90 

"연기자로서의 나의 꿈은 희극배우지만 아들로서의 꿈은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는 겁니다."
 

 



녀, 어른이되다.

copyright ⓒ 2011 by. Yu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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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문장들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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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춘의 문장들│김연수│마음산책│2004.05.01



네이버에 지식인의 서재라는 공간이 있어요. '이 시대 지식인들이 직접 고르고 추천한 책들을 모아 책과 서재의 향기를 모두와 함께 나누자' 는 슬로건 아래 진행되는 캠페인이죠. 저도 빠짐없이 살펴보는데 타인의 책 취향은 언제나 흥미로와요. 가끔 읽어봐야지 하며 메모도 하죠. 지난 봄 배우 정진영의 서재에서 이 책이 소개되었어요. 책은 생각을 위한 데이터라는 그는 공공도서관을 애용한다고 해요. '읽음'보다 '소장'으로 변질되었던 한 때의 애정이 살짝 부끄러워지는 순간 ! 그래도 요즘은 책 욕심을 많이 비우고 있어요. 읽었던 책을 선물하는 일도 잦아졌구요. 저자 김연수의 청춘의 시절을 함께 한 문장들이 내게는 어떤 데이터를 제공해줄지 한껏 들뜬 마음입니다.  (http://bookshelf.naver.com/story/view.nhn?intlct_no=60


있잖아요, 계속 마음을 잡고 있는 책. 무엇 때문인지 모르지만 이 책이 그랬어요. 여기저기서 귀동냥으로 어느정도는 - 이미 반이상- 읽어 버린 듯한 이 책을 아끼고 아끼다가 집어 들었습니다. 서문에서부터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내 마음을 모두 헤아린단 듯이 도닥도닥 도닥입니다. p. 7 내 마음 한가운데는 텅 비어 있었다. 지금까지 나는 그 텅 빈 부분을 채우기 위해 살아왔다. 사랑할 만한 것이라면 무엇에든 빠져들었고 아파야만 한다면 기꺼이 아파했으며 이 생에서 다 배우지 못하면 다음 생에서 배우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아무리해도 그 텅 빈 부분은 채워지지 않았다. 아무리 해도. 그건 슬픈 말이다. 그리고 서른 살이 되면서 나는 내가 도넛과 같은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됐다. 빵집 아들로서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의 꺠달음이었다. 나는 도넛으로 태어났다. 그 가운데가 채워지면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사춘기도 아닌데 존재의 이유 혹은 목적마저 상실한, 차가운 가을 밤 하늘의 별 대신 물음표가 가득 맺힌 그러한 날이었습니다. 외로웠어요. 사람들과 즐거운 노닥거림 안에서 목청껏 까르르 웃고 있지만 마음 한 켠이 부서진 이유인지 채워도 채워도 고스란히 사라지던 날, 외면하다가 혹은 참아내다 퐝! 터진 딱 그날 만났습니다. 그의 청춘의 문장들.



 p.34

그나마 삶이 맘에 드는 것은,

첫째 모든 것은 어쨌든 지나간다는 것,

둘째 한 번 지나가면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것.


 

자박자박 걸어 온 청춘의 시간을, 그리고 청춘을 향해 쑥쑥 자라나던 풀잎 닮은 싱그러운 시절을, 이제 청춘이라 말하기엔 한 번 머뭇거리게 된 쑥쓰러운 조금 늙은 청춘에의 날들을 나긋나긋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지나 온 그러나 다시 돌이킬 수 없음에 아름다운 날들의 이제는 잔잔해진 기록. 그리고 그 순간을 깨우친 문장들을 더해줍니다. p.53 내게도 꿈이라는 게 몇 개 있다. 그 중 하나는 마음을 잡아 끄는 그 절실함을 문장으로 옮기는 일. 쓸데없다고 핀잔준다 해도 내 쓸모란 바로 거기에 있는 걸 어떡하나. 부끄럽지만 나도 글쟁이의 꿈을 품었던 적이 있어요. "저도 시나 써야겠어요."라는 그의 비꼼에 "그거 좋은 생각이구나. 네가 어떤 시를 쓸지 꼭 보고 싶다."라고 말해주었던 어느 시인의 푸르름에 저자는 시를 쓰게 되었다고 하던데, 저도 중학교 1학년 때 국어 교생 선생님께서 "지영이는 글을 참 맛있게 쓰는구나." 하셨거든요. 그런데 나는 작가가 되는 일이 이렇게 지난할 줄 몰랐으니까, 그랬으니까 아직도 그 꿈의 끄트머리를 부여쥐고 있는거겠지요. 그의 넓고 깊은 학식에 그저 맥없이 탄사를 쏟아냅니다.  


p.122

내가 서른 살 너머까지 살아 있을 줄 알았더라면 스무 살 그 즈음에 삶을 대하는 태도는 뭔가 달랐을 것이다.



같은 책을 읽더라도 읽는 사람에 따라서 그리고 그 날의 기분에 따라서 감정의 발화점은 달라지죠. 서른의 문턱에서 허우적거리는 내게 그래서 그의 글은 더 많은 데이터를 제공해줍니다. 의연하게 쏟아내는 그의 이야기는 사실 그리 달콤하지 않으니까요. 책받침만한 들창으로 보이는 풍경이라곤 달랑 교회 십자가 하나, 그리고 그가 갖은 것은 낡은 286 컴퓨터가 전부인 전기장판 하나로 겨울을 나던 정릉의 산꼭대기, 그 곳에서 그는 무작정 쓰고 읽는 일 밖에 도리가 없었습니다. p.202 어둠을 똑바로 바라보지 않으면 그 어둠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제 몸으로 어둠을 지나오지 않으면 그 어둠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어둡고 어두울 정도로 가장 깊은 어둠을 겪지 않으면 그 어둠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그렇게 어둠을 마주하며 이렇게 담담히 이야기하기까지 그가 맞닥뜨린 외로움은 차마 어떠한 글로도 온전히 담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살갗을 간질이는 바람이 가을을 속삭입니다. 마음에 보듬던 글귀는 청춘을 속삭입니다. 살갗을 간질이던 바람의 가을도, 마음을 보듬던 글귀의 청춘도 아주 잠깐이겠지요? 한 권 가득했던 살갑지 못한 그 순간이 목적 없이 흔들리던 내게 가득 와 닿았습니다.





소녀, 어른이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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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파워북로거 지원 사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 마음에 닿던 문장. 

 

p.93

나는 밤을 사랑한다. 밤은 천 개의 눈을 가진 검은 얼굴을 지녔다.


p.102

다른 사람에게 이해받을 수 있는 삶을 산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p.118

<Long Distance Flight> 들으며 나는 잊혀지는 것도 그렇게 아쉬운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잊혀진 것들은 변하지 않고 고스란히 내 안에 남아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p.136

그 집의 식구들은 모두 스물넷에서 서른두 살 사이의 사람들이었다. 인생의 정거장 같은 나이, 늘 누군가를 새로 만나고 또 떠나보내는 데 익숙해져야만 하는 나이. 옛 가족은 떠났으나 새 가족은 이루지 못한 나이. 그 누구와도 가족처럼 지낼 수 있으나 다음날이면 남남처럼 헤어질 수 있는 나이. 그래서인지 우리는 금방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사이처럼 친해질 수 있었다.


p.138

내가 기억하는 청춘이란 그런 장면이다. 겨울에서 봄이로 넘어가는 애매한 계절이고, 창문 너머로는 북악 스카이웨이의 불빛이 보이고 우리는 저마다 다른 이유로, 다른 일들을 생각하며, 하지만 함께 김광석의 노래를 합창한다.


p.141

청춘은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고 그 그림자는 오래도록 영혼에 그늘을 드리운다.


p.151

여전히 삶이란 내게 정답표가 뜯겨나간 문제집과 비슷하다. 어떤 것인지 짐작할 수는 있지만, 그게 정말 맞는 것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p.164

때로 취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는 것. 그게 바로 젊음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인생이란 취하고 또 취해 자고 일어났는데도 아직 해가 지지 않는 여름날 같은 것. 꿈꾸다 깨어나면 또 여기,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는 곳.

p.191

사실은 지금도 나는 무언가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이상하기만 하다. 그 모든 것들은 곧 사라질 텐데,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p.210

재촉하는 만큼 빨리 흐르지는 않는다고 해도 나이가 들고 싶다는 아이의 소원쯤이야 들어준다는 것, 삶이 너그러운 건 그때뿐이다.

 

p.212

아쉬움도 없이 세월을 보내던 그때 그 시절이 떠오른다.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그렇게 흘러가던 세월의 속도다. 그 시절이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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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또는 유년의 기억 펭귄클래식 110
조르주 페렉 지음, 이재룡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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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또는 유년의 기억│조르주 페렉│펭귄클래식코리아│2011.06.27

 

 

기억(記憶)

1.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도로 생각해 냄.
2. 사물이나 사상(事象)에 대한 정보를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저장하고 인출하는 정신 기능.
3. 계산에 필요한 정보를 필요한 시간만큼 수용하여 두는 기능


 

 

기억을 잃는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요? 몇 해 전 리사 제노바의 <내 기억의 피아니시모>라는 책을 읽었지요. 하버드 대학의 심리학과 교수인 50세의 앨리스(남편도 하버드 교수, 큰 딸은 법대, 둘째는 의대, 막내는 배우입니다. 미국 상류층 백인의 전형이죠)가 조발성 알츠하이머에 걸려 점점 기억을 잃어가는 과정을 이야기합니다. 피아니시모처럼 여리게 소멸해가는 기억의 과정을 앨리스의 목소리로 이야기하죠. 알츠하이머, 는 더 이상 흥미로운 소재는 아니예요. 하지만 <내 기억의 피아니시모>에서는 늘 이야기되던 알츠하이머 환자의 가족들이 겪는 어려움으로서가 아니라 기억을 잃어가는 주체가 겪는 상실감을 애잔하게 그러나 담담히 그려냅니다. 이 소설의 원제는 STILL ALICE입니다. 기억의 빛이 소멸해가는 그 모든 과정에서 앨리스는 여전히 앨리스입니다.

 

<W 또는 유년의 기억>은 W와 유년기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흐릅니다. p. 57 나는 쓴다. 나는 쓴다, 왜냐하면 우리는 함께 살았고, 나는 그들 속에 있었으며, 그들 그림자 속의 그림자, 그들 몸 가까이에 있는 몸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쓴다, 왜냐하면 그들은 내게 지울 수 없는 그들이 흔적을 남겼으며 그 흔적의 자국이 바로 글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기억은 글쓰기에서 죽는다. 글쓰기는 그들 죽음의 기억이며 내 삶의 확인이다. 반듯반듯하게 첫번째 씌여진 이야기는 실종된 진짜 가스파르 뱅클레를 찾아 가는 여정입니다. (사실은 퐌타스틱한 이야기를 살짝 기대했었지요, 기대는 와르르!) 두 번째 이야기는 안개처럼 흐릿한 자신의 이야기를 삶의 연장선 어디쯤에서 살짝 벗겨나 담담하도록 이야기합니다. 쫄레쫄레 그의 이야기를 뒤따르다가 어딘가에쯤, 두 이야기의 연결고리를 보여주리라 기대헀지만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까지 속시원히 까발려 주지 않습니다. 다만, W 에서는 가스파르 뱅클레가, 자신의 이야기에서는 유년의 기억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존재와 기억의 실종.

 









W섬, 올림픽의 이상(理想)이 지배했던 공간이라 말합니다. p.180 직위가 아무리 낮더라도 하급 관리자들은 선수에 대해 전능한 권력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공포를 동반한 야만성을 발휘해서 잔혹한 스포츠의 법을 준수하도록 강요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더 잘 먹고, 더 잘 입고, 더 잘 잘고, 더 편하기 때문이지만 그들의 운명은 영원히 감독관의 성난 시선과 부심의 얼굴에 스치는 표정, 주심의 기분이나 장난에 좌우된다. 하지만 그들의 운명(運命)을 결정하는 것은 온전히 운(運)일 뿐입니다. 여자의 숫자를 제한하기 위해 태어난 여자 아이의 다섯 중 하나만 살려 두죠. 아이들은 집단 양육되며 그들이 살아남는 방법은 경기에서 승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승리를 거머쥐면 관리자가 될 수 있고 누군가의 운을 마음껏 주무릅니다. 페렉의 가정을 붕괴시키고, 유년 시절의 기억을 누락시킨 2차 세계대전은 W섬 그 자체, W의 변질된 이상(理想) 나치에 의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누리지 못했던 우리의 이야기가 아닐런지.

  



그리고 그의 이야기. 2차 셰계대전이라는 사실을 배제한다면 기억의 소실에도 불구하고 누구에게나 있음직한 이야기들이 끊어질 듯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아버지의 이름에 대한 아쉬움과 전장에서 영웅적인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라는 자신의 예상과는 다른 아버지의 죽음으로의 실망감, 어머니에 대한 기억의 누락 등을 태연하게 조근조근 설명하지만 오히려 담담해지려는 그의 노력에 콧날이 시큰하기도 하였습니다. p.78 나는 입을 다물었다. 문득 해양경비대보다 내가 아이를 찾을 가능성이 더 많다고 믿는지 묻고 싶었다. 그러나 이제부터 그것은 오로지 나만이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패렉(가스파라 벵클레의 이름을 빌린)은 실종된 가스파라 벵클레가 누구의 손에도 닿지 않는 곳에 숨길 원하는 것일까, 아니면 발견되기를 원하는 것일까요. 기억에 없다고 못 박았던 - p.17 나에겐 유년기에 대한 기억이 없다 - 어린시절을 기억하고 싶은 것일까, 지우고 싶은 것일까요. 그렇게 'W 혹은 유년의 기억'은 'W 그리고 유년의 기억'으로 전혀 다른 공간의 이야기이지만 어디쯤에도 손을 댈 수 없이 엉키고 설킨 하나의 이야기였습니다.

 


p193

따라서 기억의 무재는 죄의식을 동반하는 동시에 그것을 회피하고자 하는 자기방어가 아니었을까. 작가가 자신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이름조차 그 어원상 "구멍"을 뜻한다고 설명한 것은 바로 결핍, 구멍이 자신의 뜻과 무관한 천부적 숙명임을 강변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망각은 나의 책임이 아니라 내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정체성이며 그것을 글로 남기는 것은 애도 작업의 일환이 될 것이다.

 

 

아마도 독서모임, 이라는 기회가 아니였다면 마주하지 못했을 페렉은 내게는 여전히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입니다. 하지만 옹송그리던 나의 독서는 이렇게 조금씩 기지개를 켭니다. 한 권의 책을 7번 읽은 기분이라서 1타 7피랄까, 쉽게 너무도 많은 걸 얻은 듯 하여 조금 송구스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좋은걸요. 그리고 나도 조금 더 나은 내가 되어야겠다고 그래서 당신께도 내가 제대로 1피의 몫을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해봅니다.

 

 

 


녀, 어른이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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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1초들 - 곽재구 산문집
곽재구 지음 / 톨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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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사랑한 1초들│곽재구│문학동네│2011.07.25


란 하늘에 바람이 몽글몽글 피운 뭉게구름을 넋놓고 바라보는 1초, 요즘 내가 가장 사랑하는 순간입니다. <포구기행>이라는 그의 책을 몇년 전 낡은 증고서점에서 구입했지만 읽지 않았던터라 낯설은 그가 사랑하는 1초는 어떠할까 궁금했습니다. 이거야! 라고 콕 찝어 말해주면 좋을텐데 그는 그저 담담히 산티니케탄에서의 그의 생활을 들려줍니다. 한때는 열망하였던 나라, 인도! "노프라블럼!"을 외치는 인도에 꼭 가보고 싶었는데 이제는 좀 시들해졌던 참입니다. 별거없는 일상이 참 재미가 없어서 지루한 책장을 넘기고 있었습니다.

p. 95 사람을 좋아하고 모든 생명들에게 큰소리로 인사하기 좋아하는 그가 왜 어두컴컴한 흙집 속에서 한 생애를 살아야 하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그를 생각하면 현생에서의 내 삶이 많이 다행스럽기도 하고 많이 부끄럽기도 합니다. 쿵, 하고 묵직한 무언가가 내려앉습니다. 내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덧없음에 지치던 날들이었습니다. 왜 내게 주어진 것이 이리도 쓴지, 이유를 찾고 싶어서 안달이 났더랬는데 그들에 비하면 나는 천국에서 앓은 소리를 했던 꼴입니다. 그렇게 나는 깊이도 그의 이야기에 빠졌습니다. 달걀을 바닥에 깨트리면 달걀프라이가 된다는 그 더위는 상상하기만 하여도 숨이 막힙니다. 릭샤를 타고 비오는 거리를 달리고 싶어집니다. 조전건다 나무에서 풍기는 달빛냄새도 궁금합니다.

특히나 마시(가정부)들과의 고군분투한 이야기들에는 피식피식 깨알같은 웃음도 쏟고, 아하! 감탄도 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고 이야기에 빠졌습니다. 시인이라서 그런지 담백하게 잘 정돈된 언어로 읊조리는 그의 이야기는 나를 산티니케탄에 옮겨 놓았습니다. 2층 베란타 바깥 난간에 나란히 앉아 샌드위치를 만들어 티타임을 갖는 마시 곁에 앉고 싶습니다. 그렇게 다름,을 깨닫고 인정해가는 과정들에서의 행복이 내게도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사라(인도 생활이 사 년째인 한국 아가씨)는 그녀의 마시가 500루피(10루피=250원, 콩을 야채와 볶아 루띠라 부르는 손바닥 크기의 공갈빵 4개, 짜이 한잔을 먹을 수 있는 가치예요. 그러니 500루피는 정말 큰 돈입니다.)를 훔쳤는데, 돈을 보이는 곳에 둔 자신의 잘못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큰 돈을 보았다면 자신도 욕심이 날 것이라고 마시를 감쌉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마음들이 소복히 쌓인 책입니다.

p.218

내가 보기에 소루밀라는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유쾌한 일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거의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인도의 흙과 바람과 햇살이 만든 설움이지요. 혹독한 자연환경 속에서 그냥 다람쥐나 염소나 소처럼 살아온 것이지요. 뭔가 물건이 많이 있으면 욕심을 내지만 그때뿐이지요. 없으면 그만이고 있으면 잠시 가져다 쓰는 것입니다. 더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해 학교에 갈 필요도 없고 고용주의 눈에 들기 위해 정해진 시간에 가려고 노력하지도 않습니다. 삼 주의 긴 휴가 끝에 일주일쯤 건성건성 일하고 다시 사흘 쉬고 그게 고용주와의 계약 이행에 심각한 문제가 되리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지요. 안다면 아무도 그렇게 행동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p.298

조이렙의 바울 축제에 갔다가 9인승 지프에 서른 명도 넘는 사람들이 탄 것을 본 적이 있지요. 스물여석 스물일곱 세다가 그만두었습니다. 셈을 하는 동안에도 사람들이 계속 타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지붕 위까지 빼곡히 들어찬 사람들의 모습이 유쾌한 콩나물시루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트럭에 가득 찬, 버스의 지붕을 가득 메운 인도인들 중 인상을 지푸리는 이를 나는 본 적이 없습니다. 길을 가다 손을 흔들면 그들 모두 환히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지요

 

한국인들조차 그를 마니푸르인(미얀마 국경 가까운데 사는 인도인들을 지칭하는데 한국인들과 흡사하단다)으로 착각하고 길을 물을 정도로 그는 그 안에서 이질감이 없습니다. 내게 여행이라 함은 그 곳의 명소를 찾아 사진으로 기록을 남기는 여행객이 되는 일이였습니다. 그런 생각들이 차츰 바뀌어갑니다. 그 곳의 삶 안에 놓인 생활인이 되고 싶습니다. 물론 내게 지금은 그만큼의 여유로움이 없으니까 살아보는 것은 어렵지만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것은 그 곳의 커피숍을 찾는 일입니다. (나는 커피도 좋아하니 일석이조) 여행까지 가서 커피숍에 앉아 시간을 때우는 것이 아깝지 않느냐 누가 내게 물었지만 나는 시간을 때우는 것이 아니라 채웠습니다. 나도 안식년을 맞이하면 꼭 짜이 한 잔 하러 가야겠군요.

달빛이 깨끗하고 바람이 서걱거리던 가을 밤에 모든 아름다운 1초들의 가꾸어 낸, 풍요로운 생을 마주했습니다. 그것은 물직적인 풍족은 차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행복입니다땅과 바람이 키운 인도인들의 삶으로의 그 너그러운 시선을 닮은 그의 이야기가 참으로 평안합니다.



 

p.345

삶이란 원래 이런 거야. 이렇게저렇게 다 헤맨 뒤에야 지혜의 길에 도달할 수 있는 거라구,

 






녀, 어른이되다.

copyright ⓒ 2011 by. Yu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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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봉사여행 - 5년간 25개국 여행, 6개국 봉사여행을 통해 성장한 꿈의 기록
손보미 지음 / 쌤앤파커스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봉사여행│손보미│쌤앤파커스│2011.07.20

쿵!내안의 묵직한 무언가가 내려 앉습니다. 미련스러운 막연한 부러움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깊이 뿌리 내리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내 청춘으로의 안타까움과 부끄러움이 겹쳐집니다. 5년이라는 시간동안 25개국을 여행하고, 6개국 봉사여행을 한 그녀의 이야기는, 나의 시간들을 돌아보게 합니다. 나의 대학생활, 방학이라는 이름으로 주어진 시간동안 나는 그저 흐르는 시간을 망연히 바라보며 의미없는 호흡을 채웠습니다. 생의 에너지가 넘쳐야 마땅할 그 시간에 나는 끝도 없이 침잠하였습니다. 그래서 늘, 인생의 타임머신을 돌릴 수 있다면 나는 늘 고등학생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합니다.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이라는 짙은 후회가 드리워진 그 시간으로.

인정하기 싫어도 현재의 젊은이들에게 주어지는 기회는 공평하지 않습니다. 출발점에서부터 부와 빈으로 나누어져 언어를 습득하기 이전의 시간부터 다양한 차이가 - 그리고 쉽게 좁힐 수 없는 격차가 - 엄연히 존재합니다. 글쎄요, 어쩌면 그녀도 저기 저만치 앞서서 출발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렇게라도 위안해볼까요? 하지만 딱 한가지, 우리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chance가 있죠. 시간. 맞아요, 그녀는 쉼없이 노력합니다. 자신의 꿈을 찾기 위해서, 끊임없이. 사실은 조금 더 편안하게 청춘의 젊음을 드끓는 피를 만끽할 수도 있었을텐데. 사실 그렇잖아요. 젊음으로의 끊임없는 유혹들을 뿌리치는 일은 쨍쨍 햇볕이 내리쬐는 한여름의 정오에 바짝바짝 목은 말라가는데 아이스커피를 눈 앞에 두고 '참아라!' 하는거죠. (낄낄낄. 너무 나에게만 유혹되는 이야기인가요?) 

p.59

내가 상상하던 여행은 이런 게 아니었다. 항상 뭔가 신나고 재밌는 일, 멋지고 로맨틱한 일이 벌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멀리까지 와서 시간을 죽이는 건 너무도 아깝고 싫은데. 지금에 와서 되돌아보니 이것도 여행의 일부고, 내가 즐기고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었는데 그땐 그러지 못했다. 내 조금함과 여행에 대한 높은 이상, 그리고 과도한 기대감 때문에.

기쁨과 즐거움만이 아닌 외로움과 고독, 떄떄로 이렇게 느끼는 우울함도 여행의 일부임을, 삶의 희로애락은 여행에도 유효하다는 것을 알았어야 했다. 이렇게 가끔 맘에 안 들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하고, 우울하기도 한 날이 있겠지. 내가 경험하는 여행은 인생의 단면, 삶의 축소판인걸. 

25개국 여행이라는 타이틀, 부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그 시간이 언제나 달콤했던 것은 아니예요. 지독하게 시린 외로움도 마주하고, 모든 돈을 도둑맞는 절망의 순간도 다가왔어요. 하지만 그녀는 말하죠. "내가 얻어야 할 모든 것은 여행에서 배웠다!" 고. 책 뒷 표지에는 "보미 씨는 '커뮤니케이션'을 잘하는 유능한 인재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나 했더니, 세계 각국의 사람들과 함께한 '봉사여행'이라는 좋은 경험 덕분인 듯하다." 라는 추천평이 있습니다. 21세기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의 매체의 발달과 더불어 우리는 서울과 제주도에 있어도 눈 짝 할 사이에 메시지를 나누죠. 전달되는데 몇 초도 걸리지 않는 이메일 덕분에 이제 빠알간 우체통은 향수를 불러 일으키고, 온라인 공간의 소통은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다양하고 편리한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안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오히려 고독해집니다. '커뮤니케이션'을 제대로 배우기 전에 너무도 많은 기회에 노출 되었기 때문에.

p.108

말을 이해하는 정도에 따라 그 삶의 미래나 인생이 결정된다고 한다. 우리는 얼마나 서로의 말을 이해하고 있는 걸까. 그 깊이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내 미래라는 토양에 단비와 같은 자극이 된 것만은 분명하다. 이제 우리의 꿈은 더 쑥쑥 자랄 거라는 확신이 든다. 미도리도 나와 같은 마음이겠지? 자, 우리의 우정과 성장을 위해 상떼santé! 건배!

p.209

"우리는 다른 사람과 결합되었을 때, 보다 나은 사람이 된다."

어린 나이에 많은 것들을 이루어 낸 그녀는 정말 대단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이 정답이라고 당장에라도 봉사여행을 갈 기세로 짐을 꾸린다거나 그럴 수 없음에 낙담하지 않길 바라요. 그녀가 이루어 낸 성공의 이유는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보다 그 이전에 자기 자신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목표를 위해 끊임없이 자신과 이야기하고, 자신이 잘하는 일이,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았으며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감내의 시간을 보냈기에 가능한 일이였죠. 그리고 나도, 그녀를 통해 접어두었던 나의 꿈을 기억해 냅니다. 잠시 내려두었지만 포기하지 못했던 나의 푸릇한 싱싱함이 가득한 꿈을 위해서 나도 첫걸음을 뗍니다. 조금 더 일찍이였다면 하는 - 나의 망연했던 이십대로의 - 아쉬움을 떨치기 쉽지 않지만, 오늘은 우리 남의 인생의 첫날이니까 으쌰으샤, 기운을 내어봅니다.  


 

p.221

물론 잘 안 될 수도 있고, 나중에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도하지 않은 후회보다는 더 노력하지 못한 후회가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녀, 어른이되다.

copyright ⓒ 2011 by. Yuju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파워북로거 지원 사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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