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문장들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청춘의 문장들│김연수│마음산책│2004.05.01



네이버에 지식인의 서재라는 공간이 있어요. '이 시대 지식인들이 직접 고르고 추천한 책들을 모아 책과 서재의 향기를 모두와 함께 나누자' 는 슬로건 아래 진행되는 캠페인이죠. 저도 빠짐없이 살펴보는데 타인의 책 취향은 언제나 흥미로와요. 가끔 읽어봐야지 하며 메모도 하죠. 지난 봄 배우 정진영의 서재에서 이 책이 소개되었어요. 책은 생각을 위한 데이터라는 그는 공공도서관을 애용한다고 해요. '읽음'보다 '소장'으로 변질되었던 한 때의 애정이 살짝 부끄러워지는 순간 ! 그래도 요즘은 책 욕심을 많이 비우고 있어요. 읽었던 책을 선물하는 일도 잦아졌구요. 저자 김연수의 청춘의 시절을 함께 한 문장들이 내게는 어떤 데이터를 제공해줄지 한껏 들뜬 마음입니다.  (http://bookshelf.naver.com/story/view.nhn?intlct_no=60


있잖아요, 계속 마음을 잡고 있는 책. 무엇 때문인지 모르지만 이 책이 그랬어요. 여기저기서 귀동냥으로 어느정도는 - 이미 반이상- 읽어 버린 듯한 이 책을 아끼고 아끼다가 집어 들었습니다. 서문에서부터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내 마음을 모두 헤아린단 듯이 도닥도닥 도닥입니다. p. 7 내 마음 한가운데는 텅 비어 있었다. 지금까지 나는 그 텅 빈 부분을 채우기 위해 살아왔다. 사랑할 만한 것이라면 무엇에든 빠져들었고 아파야만 한다면 기꺼이 아파했으며 이 생에서 다 배우지 못하면 다음 생에서 배우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아무리해도 그 텅 빈 부분은 채워지지 않았다. 아무리 해도. 그건 슬픈 말이다. 그리고 서른 살이 되면서 나는 내가 도넛과 같은 존재라는 걸 깨닫게 됐다. 빵집 아들로서 얻을 수 있는 최대한의 꺠달음이었다. 나는 도넛으로 태어났다. 그 가운데가 채워지면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사춘기도 아닌데 존재의 이유 혹은 목적마저 상실한, 차가운 가을 밤 하늘의 별 대신 물음표가 가득 맺힌 그러한 날이었습니다. 외로웠어요. 사람들과 즐거운 노닥거림 안에서 목청껏 까르르 웃고 있지만 마음 한 켠이 부서진 이유인지 채워도 채워도 고스란히 사라지던 날, 외면하다가 혹은 참아내다 퐝! 터진 딱 그날 만났습니다. 그의 청춘의 문장들.



 p.34

그나마 삶이 맘에 드는 것은,

첫째 모든 것은 어쨌든 지나간다는 것,

둘째 한 번 지나가면 다시 돌이킬 수 없다는 것.


 

자박자박 걸어 온 청춘의 시간을, 그리고 청춘을 향해 쑥쑥 자라나던 풀잎 닮은 싱그러운 시절을, 이제 청춘이라 말하기엔 한 번 머뭇거리게 된 쑥쓰러운 조금 늙은 청춘에의 날들을 나긋나긋 이야기합니다. 그렇게 지나 온 그러나 다시 돌이킬 수 없음에 아름다운 날들의 이제는 잔잔해진 기록. 그리고 그 순간을 깨우친 문장들을 더해줍니다. p.53 내게도 꿈이라는 게 몇 개 있다. 그 중 하나는 마음을 잡아 끄는 그 절실함을 문장으로 옮기는 일. 쓸데없다고 핀잔준다 해도 내 쓸모란 바로 거기에 있는 걸 어떡하나. 부끄럽지만 나도 글쟁이의 꿈을 품었던 적이 있어요. "저도 시나 써야겠어요."라는 그의 비꼼에 "그거 좋은 생각이구나. 네가 어떤 시를 쓸지 꼭 보고 싶다."라고 말해주었던 어느 시인의 푸르름에 저자는 시를 쓰게 되었다고 하던데, 저도 중학교 1학년 때 국어 교생 선생님께서 "지영이는 글을 참 맛있게 쓰는구나." 하셨거든요. 그런데 나는 작가가 되는 일이 이렇게 지난할 줄 몰랐으니까, 그랬으니까 아직도 그 꿈의 끄트머리를 부여쥐고 있는거겠지요. 그의 넓고 깊은 학식에 그저 맥없이 탄사를 쏟아냅니다.  


p.122

내가 서른 살 너머까지 살아 있을 줄 알았더라면 스무 살 그 즈음에 삶을 대하는 태도는 뭔가 달랐을 것이다.



같은 책을 읽더라도 읽는 사람에 따라서 그리고 그 날의 기분에 따라서 감정의 발화점은 달라지죠. 서른의 문턱에서 허우적거리는 내게 그래서 그의 글은 더 많은 데이터를 제공해줍니다. 의연하게 쏟아내는 그의 이야기는 사실 그리 달콤하지 않으니까요. 책받침만한 들창으로 보이는 풍경이라곤 달랑 교회 십자가 하나, 그리고 그가 갖은 것은 낡은 286 컴퓨터가 전부인 전기장판 하나로 겨울을 나던 정릉의 산꼭대기, 그 곳에서 그는 무작정 쓰고 읽는 일 밖에 도리가 없었습니다. p.202 어둠을 똑바로 바라보지 않으면 그 어둠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제 몸으로 어둠을 지나오지 않으면 그 어둠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어둡고 어두울 정도로 가장 깊은 어둠을 겪지 않으면 그 어둠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 그렇게 어둠을 마주하며 이렇게 담담히 이야기하기까지 그가 맞닥뜨린 외로움은 차마 어떠한 글로도 온전히 담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살갗을 간질이는 바람이 가을을 속삭입니다. 마음에 보듬던 글귀는 청춘을 속삭입니다. 살갗을 간질이던 바람의 가을도, 마음을 보듬던 글귀의 청춘도 아주 잠깐이겠지요? 한 권 가득했던 살갑지 못한 그 순간이 목적 없이 흔들리던 내게 가득 와 닿았습니다.





소녀, 어른이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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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파워북로거 지원 사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 마음에 닿던 문장. 

 

p.93

나는 밤을 사랑한다. 밤은 천 개의 눈을 가진 검은 얼굴을 지녔다.


p.102

다른 사람에게 이해받을 수 있는 삶을 산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p.118

<Long Distance Flight> 들으며 나는 잊혀지는 것도 그렇게 아쉬운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잊혀진 것들은 변하지 않고 고스란히 내 안에 남아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p.136

그 집의 식구들은 모두 스물넷에서 서른두 살 사이의 사람들이었다. 인생의 정거장 같은 나이, 늘 누군가를 새로 만나고 또 떠나보내는 데 익숙해져야만 하는 나이. 옛 가족은 떠났으나 새 가족은 이루지 못한 나이. 그 누구와도 가족처럼 지낼 수 있으나 다음날이면 남남처럼 헤어질 수 있는 나이. 그래서인지 우리는 금방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사이처럼 친해질 수 있었다.


p.138

내가 기억하는 청춘이란 그런 장면이다. 겨울에서 봄이로 넘어가는 애매한 계절이고, 창문 너머로는 북악 스카이웨이의 불빛이 보이고 우리는 저마다 다른 이유로, 다른 일들을 생각하며, 하지만 함께 김광석의 노래를 합창한다.


p.141

청춘은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고 그 그림자는 오래도록 영혼에 그늘을 드리운다.


p.151

여전히 삶이란 내게 정답표가 뜯겨나간 문제집과 비슷하다. 어떤 것인지 짐작할 수는 있지만, 그게 정말 맞는 것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p.164

때로 취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는 것. 그게 바로 젊음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인생이란 취하고 또 취해 자고 일어났는데도 아직 해가 지지 않는 여름날 같은 것. 꿈꾸다 깨어나면 또 여기,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는 곳.

p.191

사실은 지금도 나는 무언가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이상하기만 하다. 그 모든 것들은 곧 사라질 텐데,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p.210

재촉하는 만큼 빨리 흐르지는 않는다고 해도 나이가 들고 싶다는 아이의 소원쯤이야 들어준다는 것, 삶이 너그러운 건 그때뿐이다.

 

p.212

아쉬움도 없이 세월을 보내던 그때 그 시절이 떠오른다. 내가 그리워하는 것은 그렇게 흘러가던 세월의 속도다. 그 시절이 결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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