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벰버 레인
이재익 지음 / 가쎄(GASSE)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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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벰버 레인

이재익 │ 가쎄 │ 2011.11.22 │ p.362

 

 

 

건즈 앤 로지스의 ‘노벰버 레인’을 듣고 있습니다.

 

Nothing lasts forever

And we both know hearts can change

And it`s hard to hold a candle in the cold Novemver rain.

 

이재익 작가와는 <압구정 소년들> 후로 두 번째 만남입니다. 그의 텍스트는 여전히 미끈합니다. 미적거림 없이 그의 이야기에 빠져 들지요. 라디오 PD라는 그의 또 한 가지 타이틀 덕분인지 그의 텍스트는 걸림이 없이 매끄럽게 다듬어져 있습니다. 또 여전히 그의 책에는 음악이 공존합니다. 텍스트를 얹은 음악, 그 움직임에는 망설임이 없습니다. 아! 이번 소설에는 사진도 함께 하네요. 낯선 듯 몽환적인. 눈과 귀로 읽고, 보며, 들어야 완벽해지는 그의 아니 그녀의 이야기 <노벰버 레인>. 유려한 텍스트, 흥미로운 소재, 속도감 있는 전개는 흠이 없이 그의 이름을 빛냅니다. 그렇지만 <압구정 소년들>에서도 그랬듯이 딱 꼬집어 말하기엔 두루뭉술한 실망이 낮게 가라앉습니다.

 

신이 나서 그의 이야기에 빠져 들다가 넘어진 자리는 준희가 희준의 오랜 사랑이었다는 대목입니다. 10년을 기다린 사랑과 우연히 공항에서 마주쳤고, 사랑에 빠졌다는 설정 - 아! 이 소설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지요. - 은 조금씩 자맥질 치려던 심장을 고요히 침묵시켰습니다. 아무리 소설이라 하여도 기적과 같은 우연 앞에서 나는 주춤합니다. 영원히 남기고 싶었다는 그녀의 바람, 이 한 권의 책이 아니었다면 그‘영원함’이 누락되었을까요. 차라리 준희에게 희준에게 종우에게 ‘보관’ 되었다면 좋았을텐데, 하는 이유 모를 늦은 바람이 생기는 것은 나의 욕심이겠지요.

 

홍대 앞 오피스텔, 글을 쓰고 싶다는 평범한 서른 살의 준희에게는 완벽한 조건을 갖춘 애인이 있습니다. 3년, 느슨해진 템포의 연애, 하지만 처음부터 준희는 종우에게 어떠한 떨림도 없었지요. 그리고 프로포즈, 그렇게 종우는 언제나처럼 차근차근 자신의 인생 계획안에 준희를 초대합니다. 가슴 떨리는 사랑에 목마른 준희에게 친구는 충고합니다. 종우만한 남자가 없다고. 그렇게 준희는 종우의 프로포즈를 받아들이고 결혼 전 미리 신혼여행을 준비합니다. 하지만 결혼 전 종우에게 중요한 일이 생기고 여행은 준희 혼자 떠나기로 합니다. 그리고 그 여행이 시작되려는 찰나 그녀는 마음의 북소리를 듣게 됩니다. 둥둥둥둥.

 

마지막 장을 덮는 그 순간까지의 시간을 길지 않습니다. 그러나 책장을 덮은 후의 머뭇거림은 여전히 지속됩니다. 준희의 선택이 궁금하지 않습니다. 준희의 몫이니까요. 나의 더딘 머뭇거림은 에필로그에서 작가의 이야기 때문입니다. p.232 이 소설을 읽고 한 번쯤 돌아보시기를. 옛사랑을, 혹은 지금 당신이 빠져 있는 사랑을. 그리고 당신이 꿈꾸는 사랑을. 주말 부산으로 향하던 기차에서 쿵. 무언가가 묵직하게 내려앉습니다. 더 이상 나에게 심장이 소스라칠 만큼 쿵쾅거리는 사랑이 없을 것 같은 덤덤한 예감, 나 스스로도 놀랄 만큼 덤덤한 예감이었습니다. 준희처럼 아니 나는 준희보다 더 그럴듯한 표정으로 종우와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내려앉음.

 

‘책을 읽는다’는 행위 자체의 위로는 (그 책의 좋고 나쁨도 물론 중요하지만) 내 삶의 시기와 감정 변화의 곡선에 따라서 너울너울, 그리고 책을 읽고 있는 공간으로부터 전해지는 공기의 질감에까지 예민하게 반응하지요. 그랬습니다. 옹송그렸던 나의 감정이 고스란히 읽는 행위로 번집니다. 그러니 나는 오래도록 이 책을 내려 놓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아직 끝나지 않은 그들의 이야기처럼.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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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의 세 딸
펄 벅 지음, 이은정 옮김 / 길산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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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마담과 세딸

펄s, 벅 │ 길산 │ 2003.12.15 │ p.366

 

 

 

인간이 역사에게가 아니라, 역사가 인간에게 가져야 할 도의적 책임은 무엇인가.

 

 

서문의 한 문장을 빌려왔습니다. <양마담과 세딸>이라는 책을 통해 펄s. 벅을 처음 만났고, 그 만남은 사실 그리 달갑지가 않았습니다. 세월을 견디어 누렇게 변한 속지, 촌스러운 표지에 덜컥 겁이 나서 미루고 미루다가 열흘을 채워 쪼개고 쪼개어 읽었지요. 그러나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였음을 고백합니다.

 

 

<양마담과 세딸>은 문화대혁명, 그 격동의 시기를 고스란히 지나 온 한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상해 최고 대반점의 여주인 양마담은 그 혼란 가운데서도 여전히 부르주아적인 삶을 누리고 있지만 사실 그녀의 삶은 팽팽한 활시위처럼 위태롭고 연약하며 외롭습니다. 그녀의 뛰어난 통찰력은 세 딸을 미국에서 교육 받을 수 있도록 하였으나 자신은 그 시대에 대한 책임감으로 차마 중국을 떠나지 못합니다. 세 딸만은 이 혼란 안에 안전하길 바랐던 그녀의 계획과는 달리 두 딸은 조국을 선택합니다. 그렇게 양마담의 가족은 시퍼렇게 날 선 역사의 소용돌이, 그 한가운데 처참히 던져집니다.

 

 

내가 모택동이니 문화대혁명이니 등소평에 관심이 있을리가요. 나는 내 삶의 안위를 걱정하기에도 버거운 소시민입니다. 모르는 것이 약이라 하지요. -「뿌리깊은 나무」에서 최만리는 “백성이 많이 알면, 그들이 삶은 더욱 척박해진다.” 라고 말하며 한글창제를 반대합니다. - 눈을 감고 귀를 닫고 그렇게 내게만 집중합니다. 그러던 나를 내려친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였습니다. 더 이상은 외면할 수 없었지요. 진실이 무엇이든 한 나라의 대통령을 죽음의 벼랑 끝에 세운 나라가 나는 너무 두려웠습니다. 나는 여전히 이 나라 돌아감을 잘 알지 못하지만 더 이상 무지(無知)로부터의 안위(安危)에 머물지 않습니다.

 

 

무구한 희생, 피할 수 없는 시대의 비극 안에서도 역사는 멈추지 않고 흐릅니다. 그 흐름은 신나게 날뛰며 진보하기도 바닥으로 꼬구라지는 퇴보를 거듭하기도 하지만 한 순간도 그 자리에 멈춰 있지 않음은 분명합니다. 그 흐름에 목적 없이 휘말려 흔들지기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조심스럽게 건네집니다. 영화로움의 상징 공간이었던 대반점의 문 앞에서 대혁명의 습격으로 최후를 맞았던 양마담은 결국 우리를 닮아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서문의 문장을 빌려옵니다.

 

 

인간의 이념은 그것을 원치 않는 이들까지도 그 폭풍 속으로 끌어들인 뒤, 그렇게 흘려진 피를 바탕으로 자라난다는 역사적 반복을 통탄하는 동시에, ‘문화대혁명’의 물결 속에 사라져버린 과거를 열정적으로 향수한다.

 

 

 

  p.281

 

양 마담은 주변에 많은 사람들을 두었음에도 언제나 외로움을 느꼈고,

그 외로움 속에서 인간의 본질을 발견했다.

그녀는 이 수많은 변화를 통해 인간의 본질은 어떤 시대적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어떤 것을 발견하게 된 셈이다.

노자는 이렇게 말했다.

"계란으로 바위를 쳐 보아라.

세상의 모든 계란을 던져도 바위는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이 단순하고도 심오한 진리는,

인간과 자연이 만들어 낸 재앙으로 고통 받고 있는 이 순간

더더욱 그 진가를 나타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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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Thank You 땡큐 - 마음을 감동시키는 힘
존 크랠릭 지음, 차동엽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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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5 Thank You (마음을 감동시키는 힘, 365 땡큐)

존 크랠릭│한국경제신문사│2011.12.05│p.276

 

 

 

2012년, 나의 처음 책은 <365 thank you>입니다. 지난 12월의 어느 날 설명도 없이 배달된 책 한 권이지요. “나는 365일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겠다는 마음 따위 품지 않겠어요!” 라고 했지만 그것은 감사한 마음으로의 부정은 아니였어요. 단지 서른을 앞에 두고 내 삶을 향한 태도로의 혼란에서 온 얄팍한 반항이였달까. 내 감정의 변화에 조금 더 집중하고 싶었습니다. 괜찮은 듯, 덤덤한 듯 내 안에 쌓아 두었던 감정들이 고스란히 내게 남아 나를 부식시켰지요. 그래서 나는 지금에라도 슬픔에도 아픔에도 즐거움에도 나를 충분히 소진하고 싶었습니다.

 

 

몇 년 전 교회 동생에게 들었던 말은 아직도 내게 깊게 새겨져 있습니다. 기도 제목을 나누는 자리 “내 안에 주님을 닮은 마음이 가득 차 넘쳤으면 좋겠어요. 잔에 물이 가득 채워지면 자연스럽게 넘쳐 흐르듯이 내안에 가득 차서 자연스럽게 넘치길 바라요. 채워지지 않은 잔을 억지로 흔들어 넘치도록 하고 싶지 않아요.”라는 말이 몇 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공간, 그 표정, 말투, 몸짓 하나하나가 사진처럼 선명히 그려집니다. 그래요, 나 또한 감사한 마음이 내 안을 채우지 못하고 억지로 흔들어 넘치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내게 이 책은 행복이 나의 잔을 채우고, 충만하게 소진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을 제시합니다.

 

 

<365 thank you>는 망해가는 로펌의 변호사 존 크랠릭에게 일어난 기적과 같은 소담한 일상을 그의 목소리로 듣는 듯 편안한 말투로 적어 내려갑니다. 더 이상 나빠질 것이 없는 삶, 경제적 위기와 두 번의 이혼으로 전처들과 아이들과의 어려워진 관계에서 그가 찾은 탈출구는 감사편지 아니 감사쪽지 쓰기였습니다. 그 감사쪽지는 긍정의 피드백이 되어 그를 삶의 위기에서 건져냅니다. 다소 진부한 이 기적 이야기 안에서 만약 당신이 행복의 완벽한 비법을 원했다면 아마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허무함이 당신을 덮칠테지요. <365 thank you>는 우리가 행복해지는 방법이 아주 작은 시선의 변화에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유린했던 이미 소유한(했던) 행복에 대하여.

 

 

또각또각 한글자한글자에 눌러 담은 마음을 보내는 일은 받는 마음보다 설레이지요. 그러나 전해야지 했던 마음들이 바쁜 일상에 유통기한(과연 유통기한이란게 있기는 할까요)이 지나버려서, 너무 친하니까 쑥스러워서 혹은 어려운 사이라 어색해서라는 구차한 변명들도 포장되어 이제는 가늠도 할 수 없을 만큼 쌓여 버렸습니다. 그리고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수많은 무료어플을 통해) 문자메시지로 일상을 나누게 되니 손편지를 쓰는 일은 그저 번거롭고 거추장스러운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마음 한 켠으로 미뤄두었던 손편지에 대한 열망에 이 책이 또 다시 불씨를 지핍니다. 그리고 ‘나눔’에 대하여, ‘표현’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합니다. 스마트한 시대지만 조금 더 아날로그적인 삶을 추구하는 나에게, <365 thank you>은 2012년의 시작에서 내 삶의 방향을 따뜻하게 제시합니다.

 

 

 

 

p.89

나에게 그날 밤은 삶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한 터닝 포인트였다.

나는 내가 부러워했던 그 모든 사람들보다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어떤 특별한 것을 알아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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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Thirty - 젊은 작가 7인의 상상 이상의 서른 이야기
김언수 외 지음 / 작가정신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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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른 Thirty│김언수 등│작가정신│2011.10.10

서른, 이라는 단어 하나에 숨이 턱 막혀 옵니다. 나이가 차오름에 짐짓 태연했던 나였는데, 서른의 문턱을 밟아가는 일은 도무지 태연한 척으로 버터내기엔 너무 가파르고 거친 고개입니다. 아마도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멈짓하는 순간인지 '서른'에 대한 책들이 제법 눈에 띕니다. 대부분 뻔한 이야기들이 줄줄이 세워놓고 명쾌한 답변 한마디 보태주지 않으며 "원래 그런거야. 다 지나갈거야!" 할테지만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7명의 작가가 이야기하는 '서른'을 만났습니다.

70년대 중반에서 80년대 초반에 태어난 젊은 작가들은 이제 갓 혹은 조금 더 전에 서른을 지났습니다. 서른이라는 시간을 지나고 이야기하는 서른은 어떨까, 그리고 제게 다소 트라우마가 되었던 <제2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 만났던 작가들이 많아서 괜스레 친근감도 들고 믿음직도 하고 그렇게 반갑게 그들의 이야기를 만났습니다. 책장은 미끌어지듯 유연하게 넘어가지만 결코 그 안에 이야기들은 나를 응원하거나 다독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마음 한 켠이 뻐근하게 그들의 서른을 녹여냅니다. 

김나정 작가님의 <어쩌다>에서는 어쩌다 보니 살인사건의 공범에서 주범이 되는 죄의식은 물론이고 현실의 버걱거림 앞에서 정의를 상실한 우유부단한 청춘을 만납니다. 하지만 그렇게 포기하기엔 아직은 너무 창창한 나이, 그러나 그의 삶은 노력할수록 엉켜갑니다. 한유주 작가님 - 아, 나의 애정하는 닉네임과 같아 더 많은 기대를 했지만 단어의 나열은 역시나 난해하기로 손꼽히는 텍스트 실험적 소설집 ‘달로'‘얼음의 책’에서 처럼 내 입맛에는 거칠어 보리밥을 먹은 것처럼 까끌꺼려 목넘김이 버겁습니다. - <모텔 힐베르트>에서는 연쇄살인범의 이야기를 만났습니다. 마지막 살인을 끝내고 떠나기 전 들른 끝을 알 수 없는 모텔 힐베르트에서 그는 이유도 모른채 옆방으로 옆방으로 계속 옮겨야 합니다. 주인에게 항의하고 싶지만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으니까 주인의 요구에 따를 수 밖에 없습니다. 박주현 작가님의 <모히토를 마시는 방>에서는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지만 삶의 공허를 채우지 못하여 결국 간통을 저지르고 살해당한 채 자신의 과거를 회상합니다. 서른이 되었지만 서른처럼 보이지 않음에 집착하는 그녀는 사실은 별 다를 것이 없는 -하지만 그녀에게는 특별한 - 805호에서 떠나지 못합니다. 김성중 작가님의 기억을 팔고 사는 <국경시장>에서는 지우고 싶은 기억들을 모조리 팔아 버리고 만월이 뜨는 밤에만 열리는 야시장에 갇힌 서른이 있습니다. 정용준 작가님의 <그들과 여기까지>는 자살을 하고자 마음먹지만 상황에 휘둘려 자살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웃지 못할 청년의 이야기 입니다. 박화영님의 <자살 관광 특구>는 자살을 하고자 하는 이들이 모인 마을과 그들의 자실을 돕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 자살하고자 떠난 이를 찾는 탐색자의 이야기입니다.

한참이나 내 마음을 묶어 놓았던 김성중 작가님의 <바람의 언덕>의 제이에게 달려가 그녀의 식은 손을 잡아주고 싶습니다. 스무살이 되어 만난 잘 정돈된 정원보다 먼지가 폴폴 날리는 낡은 동네길을 좋아했던 공주님 제이는 삶이 굴러가는 대로 자신의 손을 잡아 끄는 남자의 욕정에 거침없이 흔들립니다. 그 고독을 삼키다 삼키다 한계에 도달했을 때 그녀는 그린란드의 에스키모인들처럼 스스로를 놓아 버립니다. 아직은 서른, 지나온 시간보다 지나야 할 시간이 많은 그녀는 누구의 이해도 얻지 못한 채 그렇게 촛불처럼 사그라듭니다. 그리고 그녀와 마지막 밤을 보낸 어린 날 골목의 친구인 나는 적당한 거리, 그녀와의 친근감이 닿지 않을 거리에 서 있습니다. 그는 태연자약(泰然自若)한 듯 위장한 비열한 서른의 남루한 표본이 됩니다. 그리고 그녀의 마지막 남자친구 명훈은 꼭 일년이 지나 제이를 따라갑니다. 목적을 상실한 청춘, 의 고린내 진동하는 단면을 작가는 꺼리김없이 고스란히 노출시킵니다. 

p.29 

인간은 자신이 보낸 시간과 결코 이별할 수 없는 법이다. 

죽음으로 귀결되는 서른의 7가지 이야기를 만났습니다. 아직은 남의 일처럼 느껴졌는 '죽음'이라는 설정,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죽음'이 낯설지 않은 까닭은 우리 한 번 쯤은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서른이 되는 탓일까요. 절대로 달콤하지 않아서, 폭풍 뒤의 무지개처럼 희망하지도 못하는 이야기들에서 나는 서른으로의 걸음을 주춤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슬프지 않은 까닭은 내 주춤거림에 당위(當爲)를 얻었기 때문일까요. 조심스럽게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녀, 어른이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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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환의 쉐이크]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김탁환의 쉐이크 - 영혼을 흔드는 스토리텔링
김탁환 지음 / 다산책방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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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탁환의 쉐이크│김탁환│다산책방│2011.08.16

 

리뷰를 쓰는 일이 점점 힘겨워집니다. (그만둘까봐요..-ㅁ-;;) 이 짧은 리뷰 한 편에도 나는 몇시간을 허망히 흘려 보내니 문득문득 아니 사실은 거의 모든 순간에 나는 도대체 무얼하고 있는가, 의문이 꼬리표처럼 따라 다닙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딱히 무엇을 쓰고 싶은지도 모르면서 더군다나 나는 어릴 때부터 상상력이 뛰어난 아이는 아니였으니까 그저 망연해진 - 어린 날에 수도 없이,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바뀌던 - 장래희망처럼 그렇게 마음 한 켠 접어 두었지요. 그런데 꿈틀거려요. 그저 어린 날의 호연했던 꿈이려니 했던 것이 그러나 나의 끄적임은 여전히 마뜩잖으니 자꾸 화가 나는 거죠. 답답하고. 요즘 내 또래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접하게 되면서 나는 작아지고 작아져 한 줌 재가 됩니다.

p.76 

'SHAKE'는 둔중하고 치명적인 단 한 번의 충격이라기보다는 언제 생겼는지도 불분명한 실금과 같은 두려움일지도 모릅니다. 단 한 번의 큰 충격은 예측하여 방어할 수도 있지만 무수한 실금들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터져 무너질지 가늠하기 어렵지요. 제가 주장하는 'SHAKE'는 작고 부족해 보이지만 결국 한 인간의 영혼을 새롭게 태어나도록 만드는 예술적 공포입니다.

그런 날들에 <김탁환의 쉐이크>를 만났습니다. 사실 이름이야 너무도 유명한 작가니까 많이 들어봤지만 작품은 접해보지 못해서 - 아, 영화 <조선명탕점:각시투구꽃의 비밀>을 보긴 했네요. - 에세이 분야 신간도서라기에 부담없이 집었는데 책은 영혼을 흔드는 스토리텔링에 대해 이야기하네요. 그렇게 만난 김탁환 작가님은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작가라기 보다 노력형 작가였어요. 한 편의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관련 서적을 100권을 읽는다고 하시니, 그 이야기가 만들어지기까지의 노력을 차마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4계절 24코스의 여정은 가벼운 산책과 같은 봄 코스, 이야기꾼이 되고자 준비하는 여름 코스, 본격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가을 코스, 퇴고의 과정인 겨울 코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각 코스마다 마련된 게스트하우스에는 교과서에 단원마다 실려 있던 연습문제처럼 그냥 스쳐 지나지 않기를 권고하네요. 물론 저는 리뷰에 쫓겨 질문만 읽고 지나쳤지만 꼭 다시 천천히 게스트하우스를 다녀와야겠어요.

리뷰를 쓰면서 특히 문장의 한계에 자주 부딪힙니다. 쓰고자하는 것을 의도대로 표현하는 것이 매우 맹랑한 일임을 수도 없이 마주합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며 어감이 좋은 단어나 뜻이 생소했던 단어들은 네이버 어플로 검색해서 화면 캡처를 해서 사진 파일로 저장해둡니다. (아, 참 편리한 세상이 되었군요. 그래서 더욱 더 게을러지지요) 공책을 만들어 정리해야지 하면서도 그냥 사진파일로 쌓여 가는데 김탁환 작가님도 단어장을 만들고 계시네요. 그리고 내가 리뷰를 쓰는 이유 한가지를 확인시켜 줍니다. shake, 단 한 사람일지라도 그 한사람이 나에게 한정될지라도 change가 아니라 아주 미미하더라도 shake 그것이네요. 맞아요. 나를 그리고 당신에게 아주 미세한 흔들림을 만든다면 나는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p.84

최대한 결정을 늦추며 경우의 수를 전부 따지고, 의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의심하며 걸어가세요.

머뭇거리는 것은 결코 겁이 많거나 용기가 부족한 것이 아닙니다.

 



녀, 어른이되다.

copyright ⓒ 2011 by. Yuj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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